내 맘대로 생각하는 교회?
내 맘대로 생각하는 교회?
  • 박지호
  • 승인 2008.01.16 14: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킹덤 특강 노진준 목사…'교회란 무엇인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크리스천에게 교회만큼 익숙한 동시에 낯선 존재가 있을까. 볼티모어 갈보리장로교회 노진준 목사는 “같은 단어를 사용해도 그 단어에 대한 정의와 생각이 다르면 의사소통이 어려운 법이다. 오늘날 교회가 바로 그런 존재”라고 말했다.

노 목사는 킹덤 컨퍼런스 ‘교회란 무엇인가’란 주제 특강을 통해 “각자가 생각하는 교회에 대한 정의가 다르기 때문에 교회에 대한 그림도 다르다. 교회가 무엇이며,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먼저 알아야 한다”는 말로 강의를 시작했다. 

노 목사는 참석한 청년들에게 신약 시대에 살아가면서도 여전히 구약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교회 건물을 성전이라고 칭하고, 세상과 구별되어야 한다는 이유로 세상과 등지려고 하는 오늘날의 교회 모습을 지적했다. 아래는 노 목사의 강의를 요약한 것이다.

   
 
  ▲ 볼티모어 갈보리장로교회 노진준 목사는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가 어떤 모습인지 먼저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배당이 성전이라고?

구약에서 신약으로 이어지면서 연속적이면서도 불연속적인 개념이 몇 가지 있다. 구약의 제사에서 짐승의 피는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예표하는 것이었고, 구약에서는 장수함과 풍요로움이 곧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신약에서는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제사라는 불완전한 제도는 더 이상 필요치 않게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축복으로 인해 외적인 번영이 하나님의 축복과 직결되는 것도 아니다.

성전에 대한 개념도 마찬가지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임재는 성전이라는 특정한 건축물을 통해서만 나타났기 때문에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이 성전의 회복을 그토록 중요하게 여겼던 것이다. 하지만 신약에서는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불완전한 성전 제도가 완성되었다. 하나님의 임재 그 자체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교회 건물이 아니어도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임재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교회 건축의 정당성을 부여하면서 ‘우리는 집이 있는데, 하나님은 집이 없어서 되겠나’라는 식의 말을 하곤 하는데, 이는 잘못된 표현이다. 오늘날 진정한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공동체를 말하는 것이지 교회 건물이 아니다. 때문에 성전이라 지칭하는 것보다 예배당이나 교회당이라는 기능적인 표현을 써야 옳다.

불을 켜서 말 아래 두는 교회 

교회는 세상에 있어야 하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오늘날 교회가 그런 긴장을 잃어버리고 있다.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는 말씀 안에는 우리가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는, 그러나 세상 속에 있다는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백성은 이방인들과 어울리면 안 되는 구별된 공동체였다. 그것이 하나님의 백성된 중요한 개념이었다. 하지만 신약에서 교회라는 것은 믿는 사람들끼리의 모임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교회가 세상과 구별되어야 하지만 거룩함을 통한 구별을 말하는 것이지 세상과 접촉하지 말고 이웃을 섬기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믿는 사람들끼리만 모이려고 하는 것은 여전히 구약적인 사고에 사로잡혀 있는 것에 다름 아니다.

성경에서는 ‘불을 켜서 말(그릇) 아래 두지 말라’고 했지만 현대 교회는 세상과 이웃을 향하기보다 교회 안에 안주하기 좋아한다. 불을 켜서 말 아래 두려는 것과 같은 것이다. 말 안에 두면 그 속은 아주 환하지만 그 빛이 밖으로 전혀 새어나가지 못한다. 세상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하면서 덩치만 커지고 있는 오늘날 교회도 마찬가지다. 

세상적 가치에 지배당하는 교회

오늘날 한국 교회가 손가락질 받는 것은 크리스천들이 예수 믿지 않는 사람보다 더 악하기 때문이 아니다. 비신자와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세상 속에 있으면서 세상에 속하지 않고 살아가려면 세상과는 전혀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 교회는 세상에서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보다 예수님이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에 삶의 무게중심을 둬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오늘날 교회는 세상과 별반 다를 바 없다. 청년들과 이성교제에 관한 상담을 자주 하게 된다. 상담하는 커플 중 열에 여섯 커플은 헤어지는데, 부모님이 결혼을 반대한다는 이유가 대부분이다. ‘급이 맞지 않는다’, ‘공부를 못한다’, ‘돈이 없고 가난하다’는 등의 이유다. 그런데 그런 말을 하는 청년의 부모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집사·장로·권사다. 바로 이런 부분에서 세상의 가치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강남 출신이 따로 모이는 교회가 있다고 한다. 교회 안에서도 사회적·경제적 지위가 나뉘었다는 말이다.

요즘 한국 교회에는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말을 유행처럼 한다. 초대 공동체 구성원들은 너무 가난하고 힘들었기 때문에 공동체를 형성할 수밖에 없었고, 서로의 소유를 나눌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생활방식은 당시 로마 사회가 위기의식을 느낄 만큼 급진적이었다. 이방인과 유대인이, 종과 주인이, 남자와 여자가 함께 예배를 드리며 공동체를 이루었다. 당시 종과 여자는 인격적인 존재가 아닌 물건과 같은 소유의 개념이었다. 교회는 당시 사회적·계급적 구조에 도전하는 급진적 공동체였다. 

   
 
  ▲ 참석한 학생들은 교회와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시험에 빠진 한국 교회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시작할 때 사단에게 시험을 당했다. 사단은 “내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돌을 떡으로 만들라”고 했다. 사단의 그 요구는 ‘당신은 하나님은 아들인데, 왜 고난의 길을 가려느냐’는 질문이다. 하나님의 아들임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능력을 사용하며 편하게 살아라, 즉 고난 받지 말라는 이야기다.

오늘날 한국 교회와 수많은 크리스천을 향해서 동일한 유혹의 목소리가 들린다. 돌을 떡덩이 되게 하면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드러낼 수 있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을 것이라고 유혹한다. 고난의 길을 걷는 대신, 낮은 곳으로 향하는 대신 화려한 성공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라고 속삭인다. 기독교는 안전하고 편안한 지대에 머무는 종교가 아니다. 불의와 죄악이 가득한 세상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의 고통의 현장으로 내려가는 종교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