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마음 품고 '나그네 된 자'들 섬기다
예수님 마음 품고 '나그네 된 자'들 섬기다
  • 박지호
  • 승인 2008.01.28 16: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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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고민하는 신앙, 실천하는 지성' 시라큐스한인교회 최은영 씨

   
 
  ▲ 최은영 씨가 시라큐스대학에서 '마틴 루터 킹 기념 위원회'가 수여하는 'Unsung Heroe Awards'를 수상하는 모습.  
 

시라큐스대학에서 ‘마틴 루터 킹 기념 위원회’가 수여하는 ‘Unsung Heroe Awards’ 시상식(기사 보기)이 있던 1월 20일, 시라큐스한인교회(지용주 목사) 교인 최은영 씨(시라큐스대학 지리학 박사 과정)는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단상에 올라 2,000명이 넘는 참석자들로부터 뜨거운 기립박수를 받았다.

하지만 그의 눈은 이제 갓 백일을 지난 딸 의선(義善)이에게 더 자주 향했다.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사람들의 축하를 받는 것보다 칭얼대는 의선이를 달래느라 분주했다. 마치 의선이를 뱃속에 품고 있던 지난 10개월 동안 갓난아이 같은 난민들에게 집중했던 것처럼 말이다.

최 씨가 난민들을 처음 만난 건 2007년 3월이다. 의선이가 뱃속에서 자란 지 3개월쯤 지났을 때다. 난민은 일반적으로 미 국무부의 ‘난민 수용 배치 계획’에 따라 정착하게 된다. 하지만 정부가 직접 나서지 않고 민간단체(난민센터)와 협력 기관(종교 단체 등)이 연계해서 돕게 된다. 협력 기관으로 시라큐스한인교회가 참여하게 됐고, 오정훈 씨(시라큐스대학 국제관계학 석사 과정)와 함께 최은영 씨가 난민과 난민센터 사이에 연결 고리(liaison officer)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시라큐스한인교회는 난민센터와 연계해 이들이 거주할 집을 구하고, 가재도구며 생활용품을 모아 살림살이를 마련했다. Social number 및 정부가 제공하는 의료, 식량 등을 포함한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돕고, 건강 검진을 실시한 후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챙겼다. ‘난민 정착 프로그램’에 따라 영어를 배우고, 문화 적응 훈련에 들어갔다. 이력서 작성 및 인터뷰 연습 등의 취업 준비가 끝나면 일자리를 알선해주고,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4개월 안에 직업을 갖게 된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세상과 철저히 단절된 생활을 해야 하는 난민들에게 유일한 소통의 창구는 시라큐스한인교회였다. 그러니 최 씨가 도울 일도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일단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이들에게는 낯설다고 보면 된다.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손발이 묶이고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한다. 우편물을 받아도 광고 메일인지 정부에서 오는 메일인지 구분할 수 없고, 운전도 못하니 쇼핑은커녕 움직일 수도 없다. 정부에서 나오는 보조금으로 생활은 유지하지만, 돈의 가치를 모르니 재정을 규모 있게 사용하길 바라는 것도 무리다.

그러다 보니 이들의 가정을 거의 매일 방문해야 했다. 통역과 교통편을 제공하는 것은 기본이고, 건강 검진을 위해 병원 가는 것만 일주일에 서너 번이었다. 장도 봐야 했고, 정착에 필요한 서류 작성도 도와야 했다. 무엇보다 사선을 넘어온 이들은 육신뿐만 아니라, 정신까지 지칠 대로 지쳐 있는 상태다. 본국에 두고 온 가족을 그리며 눈물로 밤을 지새우는 이들을 위로하는 것도 중요한 사역의 일부였다.

누군가의 손과 발이 된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일정 부분 양보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게다가 최 씨의 뱃속에는 아기까지 있었다. 남편마저 해외에 있었기 때문에 혼자서 일인다역을 소화해야 했다. 상대적으로 학교 수업에도 소홀할 수밖에 없었지만, 최 씨는 오히려 난민 사역을 학문과 신앙과 실천을 통합할 수 있는 기회로 받아들였다. 최 씨와 함께 방을 쓰던 룸메이트는 그녀의 헌신적인 섬김을 ‘천사’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난민들이 도움이 필요하다 싶으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달려갔고, 뱃속에 있는 아이의 건강을 생각하라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난민들을 챙겼다.

하지만 이들이 기대했던 결과와 다른 반응을 보일 때는 지치기도 여러 번이다. 이들의 삶을 가장 근거리에서 지켜봐야 했기에 보람 못잖게 실망도 컸다. “나의 이기심과 해야 할 일과의 갈등을 수도 없이 했죠. 당장 내가 해야 할 일도 많은데, 또 가족들(난민들)의 필요가 눈에 보이니 외면할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누구에게 이야기할 수도 없어 속으로만 끙끙 앓았다. ‘내가 왜 이러고 있나’ 하는 물음이 생길 때마다 미친 사람처럼 동네 쇼핑몰 주차장을 끊임없이 돌았다.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난민들을 헌신적으로 도울 수 있는 원동력은 역설적이게도 그녀가 “말아 먹었다”고 표현했던 중국에서의 난민 봉사 활동 기간에서 비롯됐다. ‘난민의 인권과 사회정의’라는 주제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던 최 씨는 2006년, 모 NGO 소속 인턴으로 아시안 난민을 위해 10개월 동안 난민 봉사 활동을 했었다.

   
 
  ▲ 최은영 씨에게 난민 사역은 학문과 신앙과 실천을 통합할 수 있는 기회였다.  
 
최 씨가 봉사 활동을 마치고 돌아올 때 남긴 전리품이라곤 화려한 무용담과 놀라운 간증거리가 아니라 처절한 실패담과 상처 입은 내면이었다. 지친 육신을 이끌고 미국으로 돌아올 때 남은 것은 “하나님, 당신은 정말 살아 계시기나 한 겁니까”라는 질문뿐이었다. 난민들이 겪은 처절한 고통을 지켜보면서 하나님이 살아 있다면 저런 일이 벌어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시는 난민과 관련된 일은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분들이 겪은 슬픔과 고통이 너무 크니까 밤마다 꿈으로 나타날 정도였어요. 그에 비해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터무니없이 작아서 절망하기를 반복했죠. 사회 운동에 대해서 환상이 다 깨져서 돌아왔어요. 밥을 주고 돈을 주는 것이, 센터를 만들고 단체를 만들어 체계적으로 도와주는 것이, 궁극적인 희망을 줄 수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과연 그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했죠.”

"내가 만난 예수님이 해답이었죠"

10개월간의 봉사 활동을 마치고 시라큐스로 돌아온 최 씨는 교회라는 ‘제도권’ 안에 완전히 들어가는 대신 교회에서 열리는 모든 성경공부 모임에 나가기 시작했다.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신지’, 그리고 그분이 있다면 ‘어떤 분인지 제대로 알아야겠다’는 오기를 담은 발버둥이었다.

“성경공부를 하면서 복음 전파와 사회적 관심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했어요. 복음을 제대로 안다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당연히 따라오는 것이죠. 이웃에 대한 실천적 사랑 없이 복음만을 외치는 것은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지만, 복음 없이 빵만 주는 것은 공허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하나님 사랑에 근거한 이웃 사랑만이 가식적이지 않고 지치게 만들지 않는다는 것도요. 실천적 사랑을 통해 전달된 복음만이 난민들에게 줄 수 있는 '궁극적인 희망'이라는 답도 얻게 되었죠.”

최 씨가 다시 시라큐스한인교회에 다니기 시작할 즈음 난민센터로부터 협력 요청이 왔다. 입덧이 가라앉고 최 씨가 난민들을 돌 볼 수 있는 상태가 됐을 무렵 난민들이 미국에 입국하게 됐다. 사람들은 우연이라고 말하지만, 최 씨는 그런 과정 속에서 다시 한 번 난민들을 섬기도록 이끄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했다. 최 씨는 시라큐스한인교회에서의 난민 사역을 “하나님이 주신 회복의 시간”이었다고 표현했다. 쓰라린 실패를 맛봤다고 표현했던 10개월 동안의 봉사 활동이 의(Righteousness)와 선(Goodness)을 잉태하기 위해 준비되는 시간이었음을 깨닫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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