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효복음 vs 부패복음
발효복음 vs 부패복음
  • 최종운
  • 승인 2008.02.25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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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원하시는 발효복음이 만들어지려면?

발효와 부패의 차이

지금까지 교회 안에서 통용된 복음이란 단어에 00복음 혹은 복음의 00 등등의 접두어나 접미어를 사용한 무수한 많은 단어나 관용어가 있지만 필자는 교회 사상 최초로 복음이란 단어에다 생물학적 개념인 발효와 부패 현상을  연관시켜 하나님의 창조 질서인 자연의 현상에 내재된 복음의 의미와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복음의 이중성을 간단히 살펴보고자 합니다.

발효란, 대체로 미생물(세균, 바이러스)이나 균류 등을 이용해 인간에게 유용한 물질, 예컨대 된장·간장·청국장, 젓갈종류, 젖산균에 의한 젖산 발효, 효모에 의한 알코올 발효 등의 몸에 유익한 식품을 만드는 과정을 말합니다. 부패란 미생물(세균, 바이러스)들이 유기물을 분해할 때 악취를 내거나 유독성 물질을 생성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이는 부패균에 의해서 일어나는데 발효와 부패는 모두 미생물에 의한 유기물의 분해 현상입니다.

발효의 유익과 부패의 무익

발효와 부패의 차이는 간단합니다. 인간에게 유익하게 작용할 경우에는 발효라고 하고, 미생물의 작용에 의해 인간에게 무익한 악취를 내는 것을 부패라고 말합니다. 음식물과 고기가 살모넬라균과 같은 유해성 세균에 의하여 분해될 때 각종 아민이나 황화수소 등 악취 가스를 발생합니다. 악취가 나는 곳에는 반드시 파리가 날라듭니다. 교회가 부패하여 악취가 나고 있음에 안티들이 그 냄새를 맡고 모여드는 것은 자업자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단체급식에서 종종 발생하는 식중독 사고는 부패의 초기 단계입니다. 따라서 부패한 음식을 먹게 되면 결과적으로 질병을 얻거나 심하게는 목숨까지 위협받게 되지요. 반대로 발효에 의한 음식은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하고 생명을 연장하는 주요 인자로 작용하게 됩니다. 대표적인 발효 식품으로는 김치, 간장·된장·고추장이 있고 술 종류로는 막걸리·청주·맥주·포도주 등이 있고, 음식으로는 식초, 청국장, 낫또(일본청국장), 빵, 치즈, 요구르트 등이 있습니다. 그 밖에 발효차(茶)로는 중국의 보이차가 있습니다.

발효의 조건과 부패의 조건

발효 식품마다 제 각각 고유한 발효 조건이 있습니다. 청국장은 청국장대로, 식초는 식초대로, 치즈는 치즈대로 온도와 습도, 시간과 환경 등의 적정한 발효 조건이 맞아야만 원하는 식품을 만들게 됩니다. 즉 유익한 세균이 자라는 환경 조건이 까다로워서 하나라도 조건에 부합하지 않으면 안 되지요. 반대로 부패의 조건은 아무런 까다로운 조건이 없습니다. 외부 환경에 노출시켜 놓으면 유해 세균은 제 세상을 만난 듯 기하급수적으로 번식하고, 분해하여 악취를 풍기게 됩니다. 부패 세균이 번식하기 쉬운 계절은 겨울보다는 아무래도 여름입니다.

복음이 발효가 되기 위해서는 역시 영적 온도와 신앙이라는 습도, 믿음의 시간, 개혁의 환경 등의 적정한 발효 조건이 맞아야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발효복음’이 만들어집니다. 그 원하는 조건이란 바로 복음서에 말씀하신 주님의 메시지입니다. 발효복음이 되기 위해서는 복음의 세균이 배양되는 환경 조건이 까다로워서 하나라도 조건에 부합하지 않으면 하나님나라는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 발효복음대로 사는 사람은 희소합니다. 그래서 말세에 믿는 자를 볼 수 없다고 하셨지요. 발효복음이 좁은 문을 걸어가게 한다면 부패복음은 넓은 길로 인도한다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율법을 제외하더라도 주님께서 공생애 기간 동안 우리에게 주신 복음의 세균들이 제대로 배양되어 발효가 된 복음이 존재한다면 지상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가 머리가 되시는 개혁적인 신앙 공동체가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허지만 현재 한국 교회는 복음의 부패 세균들이 바벨탑을 꿈꾸는 자본주의와 돈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맘몬주의 외부 환경에 그대로 노출되어 부패 현상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때문에 그 악취가 세상에 진동하고, 교회의 신뢰는 끝없이 추락해 하나님의 영광에 먹칠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이 율법의 완성이라 함은 율법은 죄의 삯인 사망이고 복음은 구원의 은혜인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부패하는 세균을 번식하는 것을 막고 발효하는 세균을 번식하게 함으로써 생명을 얻게 하는 소망의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창의적으로 탄력적으로 인용하였지만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기계적·문자적으로만 적용하여 많은 사람들을 얽어매고 자신에게도 화를 미치게 만드는 부패 작용만 증식하게 하였지요.

안식일에 예수님이 병자를 고치신 것은 일종의 발효 작용이라고 여겨집니다. 바리새인들은 모세의 율법에 따라 예수님이 율법을 범한 것으로 본 것은 그 마음이 부패하였기 때문입니다. 역시 복음을 기계적·문자적으로 보게 되면 복음은 율법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많은 교회가 복음과 율법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 결과 발효복음과 부패복음으로 나뉘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완성하시러 오셨습니다.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유대 민족에게 주신 것이며 복음은 은혜와 진리로 오신 예수로 말미암아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구별 없이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십자가의 사랑과 부활의 소망을 주신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부패복음이 아닌 발효복음이 되도록 우리는 순전한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실천하여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다른 복음을 쫓는 너희를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고 한 것은 율법을 추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율법을 따라가는 행위는 결국 부패복음을 의미합니다. 발효복음은 순전한 믿음과 온유한 마음을 중요시 하지만 부패복음은 율법적 믿음과 외식, 체면을 중요시 합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바로 부패복음이 만연하여 서로가 총회장이 되려 하고 장로·권사가 되려 하는 것은 지상 교회에서 체면을 유지하고, 천국의 열쇠도 얻을 수 있다고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죽어서도 장로·권사로 불리어져야 후손들의 체면이 서는 상황은 발효복음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대형 교회는 부패복음이 존재하기가 쉬워

부패복음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향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탄의 자식이 되도록 하게 합니다. 알곡이 되게 하는 것이 발효복음이라면 가라지게 되게 하는 것이 부패복음이 아니겠습니까? 오늘날 대부분의 한국 교회는 설교로는 발효복음을 외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부패복음에 오염된 상태에서 성경 말씀을 해석하고 설교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 내 교회만 성장하고, 전도하고, 건축하고, 세습하고, 귀족 교회로 귀족 목사로 호화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대형 교회는 부패복음이 존재하기가 쉬운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치 학교에서 대량으로 급식하는 주방에서 영양사가 영양 식단 규정에 의하여 음식 재료를 선별·장만하고 조리사가 조리 원칙대로 조리했지만 식중독균에 오염되어 식중독 사고로 연결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식중독 사고는 대부분 대형 단체급식에서 더 많이 발생하게 됩니다. 가정에서나 소규모의 급식에서는 아주 없거나 있다 하더라도 확률적으로 반비례합니다. 대형 교회에서 부패복음이 많이 발생하는 것도 바로 이와 같은 원리입니다.

왜 대형 교회가 부패복음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까? 그건 대형 식당에서 부패 세균에 노출되어 있는 상황과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대형 식당은 위생사와 영양사, 조리사와 위생법규에 저촉됨이 없이 관리하고 있지만 왜 빈번히 식중독 사고가 일어날까요? 그건 조리 전 단계가 길어서 부패 세균에 노출되는 시간이 길기 때문입니다. 모든 식품재료들은 냉장·냉동고에 보관하였다가 손질을 합니다. 이 과정에서 세포 분열이 억제된 세균들의 생존 보존 본능이 급속히 증가하기 때문입니다.

작은 식당과 가정에서는 빨리 조리를 하기 때문에 급속 분열을 할 시간이 없습니다. 그리고 엄마가 해주는 밥 속에는 사랑과 애정이 깃들어 있기 때문에 식중독 사고가 예방이 되지만 대형 식당에서 만드는 밥은 의무적으로 기계적으로 만들기 때문에 사랑과 애정이 결핍된 밥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실제로 식당의 조리사들이 애정과 사랑을 가지고 만든 음식이 맛이 있다고 합니다. 대충 만든 음식은 맛이 없습니다. 조미료의 맛만 있지요.

작은 교회와 대형 교회의 차이

작은 교회 목사들은 그래도 성도들에게 사랑과 애정이 깃든 설교를 하게 되지만 대형 교회 브랜드 목사들은 대형 식당과 같이 의무적으로, 기계적으로 설교를 하고 예배를 마치고 현관에서 인사를 할 때도 컨베이어 벨트에 이동되는 제품을 검사하듯 건성으로 인사만 하게 됩니다. 작은 교회는 그래도 성도와 목사 간에 인격적 교류가 가능하지만 대형 교회는 구조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작은 교회는 복음이 발효하기 쉬운 구조적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고 보지만 대형 교회는 그와 반대로 복음이 부패하기 쉬운 구조적 환경에 놓여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대형 교회의 브랜드 목사들은 설교를 대량 급식하기 위해서 설교의 소재와 조리에 신경을 쓰기에는 아무래도 역부족입니다. 작은 교회 목사들은 그래도 정성과 성의를 가지고 설교 준비를 할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습니다. 그러기에 더 은혜가 됩니다. 대형 교회 브랜드 목사들의 설교는 그리 실속은 없다고 봅니다. 역시 성도들도 브랜드의 이미지 상표를 중시 할뿐 포장 내용물인 설교에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마치 브랜드 옷을 걸치고 다니는 것과 유사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지요. 맛있는 음식을 조금 먹다가 쓰레기통으로 폐기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 대형 교회의 신앙생활 모습이 아닐까요?

따라서 대형 교회의 브랜드 목사나 귀족 목사의 설교 속에는 성도들에 대한 사랑과 애정이 결핍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녹음기에 재생되어 나오는 무미건조한 웅변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니면 대중들의 인기를 받는 개그맨, 탤런트와 같이 인위적인 몸짓과 뛰어난 연기를 하는 데 익숙해져 있는 것이 바로 귀족 목사들의 모습이 아닐는지요. 그래서 대형 교회가 복음의 부패 작용으로 악취가 상대적으로 더 많이 풍기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최종운 / 기자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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