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돼지와 늑대가 공존할 순 없을까'
'아기 돼지와 늑대가 공존할 순 없을까'
  • 강희정
  • 승인 2008.02.26 15: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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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엿보기 17 - 동화 속에 숨겨진 이분법적 세계관

   
 
  ▲ <아기 돼지 삼 형제>에는 선과 악의 대립이라고 하는 이분법적 세계관이 가정되어 있다.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며 발견한 사실이 있다. 서구의 동화에는 '늑대'로 대표되는 '악의 상징'이 곧잘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빨간 모자>라든가 <늑대와 일곱 마리 아기 염소> 그리고 <아기 돼지 삼 형제> 등에는 천진난만한 소녀나 아기 염소들, 아기 돼지 등과 같은 선한 이들과 이들의 생명을 위협하고자 하는 나쁜 늑대가 대립하는 구조가 기본 뼈대를 이루고 있다. 

이 세 가지 동화는 서구에서 오래 전부터 구전되어 오다가 그림(Grimm) 형제가 만든 동화집에 실려 오늘날에 전해졌다. 사실 세 동화는 완전히 같은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다. 단지 늑대의 희생자가 되는 대상이 빨간 모자를 쓴 소녀, 일곱 마리 아기 염소, 그리고 아기 돼지 삼형제로 달라질 뿐이다.

그 중에서 <아기 돼지 삼형제>는 월트디즈니에서 1933년 어린이용 애니메이션 영화로 만들어져 큰 인기를 끌게 되면서 세계 여러 나라에 소개되었다. 이런 까닭에 자칫 이 동화의 원저자가 월트디즈니인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는 듯하다.

구전되어 오는 이야기들이 그러하듯, 이것도 여러 가지 조금씩 다른 형태로 전해지고 있는데, 우리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아기 돼지 삼형제> 이야기는 조셉 제이콥스(Joseph Jacobs)라는 작가가 1898년에 펴낸 우화집(<English Fairy Tales>, 1898) 속에 실린 것이다. 조셉 제이콥스는 이 이야기의 출처로 제임스 할리웰(James Orchard Halliwell)이라는 작가의 이야기 책(Popular Rhymes and Nursery Tales, 1849)을 들고 있다.

월트디즈니사는 미국의 경제 대공황 직후에 이 이야기를 만화영화로 만들어내어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 만화영화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미국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영화 삽입곡(<Who's afraid of the big bad wolf?>)은 '나쁜 늑대'로 상징될 수 있는 가난과 기아 그리고 실업과 같은 어려움들을 능히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나타내고 있어 당시 많은 미국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이야기는 아기 돼지 삼형제가 각자 집을 짓는 것으로 시작된다. 짚과 나무로 집을 지었던 첫째 돼지와 둘째 돼지는 늑대를 만나게 되어 집을 잃게 되지만, 벽돌집을 지었던 부지런하고 영리한 셋째 돼지는 마침내 늑대를 몰아내고 나머지 형제들을 구하게 된다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근면함과 지혜로움 그리고 미래를 대비할 줄 아는 자세를 강조하는 내용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 동화는 어린이들에게 그와 같은 교훈적 메시지만을 전해 주는 것일까? 여러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해지면서 만들어진 이야기는 그 이야기가 만들어지던 과정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집단의식 또는 세계관이 반영되기 마련이다.

이 이야기의 기본 골자에 반영되어 있는 집단의식의 한 가지는 '나쁜 늑대'라고 하는 '공공의 적'이 우리 곁에 존재한다는 가정이다. 늑대가 왜 나쁜지에 대하여 근거를 제공해주는 사전 정보는 아무 것도 없다. 늑대의 위험성은 이야기의 구조를 이루는 전제 조건으로 제시된다. 왜 나쁜지, 왜 위험한지를 질문하게 되면 그 이야기는 해체되고 더 이상 진행되지 않는다.

<아기 돼지 삼 형제> 이야기에서 아기 돼지들은 늑대를 만나서 대화를 하거나 늑대의 입장을 들어보거나 하려 하지 않는다. 늑대가 나쁘다고 하는 것에는 조금의 의심할 여지가 없다. 아기 돼지들은 처음부터 엄마 돼지로부터 늑대에 대하여 적대감과 불신을 가지도록 교육을 단단히 받고 있다.

늑대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원작의 이야기에 딴죽을 거는 작가도 있다. 미국 중고등학교의 사회과 교사이기도 한 존 셰스카(Jon Scieszka)는 동화 작가로서 늑대의 입장을 변호하고 나섰다.

늑대가 할머니에게 줄 생일 선물로 케이크를 만들고 있었는데, 설탕이 떨어져서 아기 돼지들에게 빌리러 갔는데, 감기에 걸린 늑대가 재채기를 하는 바람에 아기 돼지들의 집이 날아가 버렸다는 것이다. 늑대의 행위에 대한 이유를 찾아보고 늑대와 아기 돼지 간의 소통을 시도하며 늑대에 대한 변호를 하고 있는 셈이다.

   
 
  ▲ 존 셰스카는 늑대의 입장에서 새로운 동화를 씀으로써 <아기 돼지 삼 형제>의 이야기 속에 들어있는 흑백논리를 문제 삼고 있다.  
 
존 셰스카가 늑대에 대하여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며 장난스럽고 기발한 시도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원작의 이야기에 설정되어 있는 '나쁜 늑대와 착한 아기 돼지들'로 상징되는 선과 악의 대립이라는 이분법에 대하여 문제를 삼고 있다. 존 셰스카는 친구와 적을 확실하게 구분하며 적에 대해서는 어떠한 관용이나 이해의 눈길을 보내지 않는 미국인들의 공격적인 방어 심리를 해체하고자 하는 것이다.

미국 사람들 중에 악마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이 80%가 넘는다고 한다. 악마라는 존재에 대한 확신은 기독교 근본주의가 낳은 이분법적 사고에서 기인하는 듯하다. 사물 혹은 세상을 흑과 백 또는 선과 악으로 대립해서 나누는 시각은 시대에 따라 그 상대를 달리할 뿐 어느 때고 새로운 적들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중세에는 가톨릭과 종교적 신념을 달리 했던 사람들이 '마녀'로 몰려 화형에 처해졌다. 미국 초창기 역사에서는 아메리카 토착 원주민들이 미국 사람들의 적으로 간주되어 '인종 청소'를 당했다. 이후에는 공산주의자들이 새로운 적으로 간주되어 전 세계의 국가들이 둘로 나뉘어 대립했던 냉전의 역사가 뒤를 이었다. 공산 세력들은 미국이 '자유우방국가'들과 함께 연합전선을 형성하여 막대한 자원과 군사력을 동원하여 봉쇄한 끝에 마침내 무너졌다.

냉전 이후에 공산 세력이 더 이상 위협적인 세력이 되지 못하자, 사무엘 헌팅턴은 이슬람 세력을 서구 기독교 문명과 충돌이 불가피한 위협세력으로 등장시켰다. 부시 정부는 이라크와 이란, 그리고 북한, 아프가니스탄 등 여러 나라들을 '악의 축'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공공의 적'의 리스트에 올려놓았다.

이처럼 매번 새로운 적들이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니 우리는 질문을 바꾸어 '공공의 적'이 만들어지는 이유 또는 메커니즘을 찾아봐야 한다. 이 적들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이들은 애초에 위협적인 존재들이었는가? 아니면 위협적인 존재들로 간주된 것인가? 이들은 과연 우리의 존재의 기반을 흔들 만큼 위협적인 존재들이었을까? 누가 이들을 우리의 적들로 규정하고 적대 세력으로 만들었는가?

중세의 마녀들은 화형을 당해 마땅할 만큼 그토록 위험한 사람들이었을까? 유럽 이주자들은 아메리카 원주민들과 함께 더불어 살면서, 서로 죽이고 죽는 살육의 역사를 피할 수는 없었을까? 공산주의 체제와 자본주의 체제는 서로의 약점을 보완하며 선의의 경쟁을 할 수는 없었을까? 과연 이슬람 문명은 서구 기독교 문명과 충돌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악의 축'의 나라들과 미국의 평화스런 관계는 실현 불가능한 것일까?

엄마 돼지가 아기 돼지들에게 끊임없이 늑대라는 존재의 위험성을 주입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존 셰스카가 말한 대로, 아기 돼지들은 늑대를 오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기 돼지들과 늑대가 평화롭게 사는 것은 불가능한 것일까? 아기 돼지들은 엄마 돼지의 '겁주기' 교육 방식에 길들여져 늑대와 함께 어우러져 사는 방법을 배우기보다 적대감을 키우며 자라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끝으로 엄마 돼지와 아기 돼지들은 각각 누구를 상징하는 것일까?

이야기 이면에 감추어진 집단의식 또는 숨겨진 세계관은 사실 겉으로 드러나는 이야기 구조에서 제시되는 교훈적인 내용보다 이 동화를 접하는 아이들의 심리와 정서 발달에 더 크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 문제 삼지 않으며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동화책을 읽으면서 질문들을 끊임없이 떠올리고 대답하는 놀이를 함께 할 수 있다면, 아이들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좁은 세계관을 보다 넓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늑대'와 더불어 살아가는 '아기 돼지'들을 길러내는 '엄마 돼지'가 필요한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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