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회의 도덕적 엔진 가다듬는 기회로 삼자
한국 교회의 도덕적 엔진 가다듬는 기회로 삼자
  • 최종운
  • 승인 2008.02.28 17: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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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가 걸린 것은 바이러스의 탓만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자신의 면역력이 약한 자신의 탓입니다. 바이러스의 존재는 사탄의 존재와 같이 항상 공간에 있어 왔습니다. 단지 자신의 영적 상태가 허약해졌을 때는 사탄의 권세에 굴복하고, 육적 상태가 허약하였을 때는 감기에 걸리게 되는 것인데 왜 그걸 모를까요? 감기에 걸려 약을 먹고 주사를 맞으면 일시적 증상은 호전될지는 모르지만 본질적인 치료법은 아닙니다.

바이러스성 감기에는 특효약이 없습니다. 물론 손의 접촉으로 전염이 되므로 손을 자주 씻는 것이 예방이 되기도 합니다.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음식을 섭취하여 면역력이 높은 상태의 몸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감기의 초기에는 따뜻한 생강차(대추, 파뿌리)를 다려먹고 충분한 수분을 섭취하여 감기 바이러스를 희석하여 체외로 배출시킵니다. 휴식을 취하며 잠을 푹 자는 것도 좋습니다. 귤 등의 비타민이 많은 과일을 먹어 면역력을 높여줍니다.

감기가 한 번에 뚝 떨어지는 약은 없습니다. 더군다나 주사를 맞아야 감기가 빨리 낫는다는 생각도 잘못된 생각입니다. 감기는 하나님께서 우리 몸의 관리를 잘못하고 있는 시점에 경고를 주신 것입니다. 이때 정신을 차리고 몸 관리를 잘하면서 일주일 전후만 근신하면 치유가 됩니다. 그래서 감기는 가만히 있으면 1주일 만에 낫고, 약을 먹으면 7일 만에 낫고, 주사를 맞으면 이레 만에 낫는다는 말도 있지요.

암 진단을 해주는 방송사에 감사해야

문명이 발전하고 생활 형편이 나아짐에 따라 여러 가지 편리하고 생활이 윤택하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 사회의 환경과 아울러 우리 몸의 환경도 반대로 병적인 상태로 되어가고 있습니다. 전에 없었던 희귀한 질병이 등장하여 난치병, 불치병으로 하필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이 닥쳤을까 하늘을 원망하며 죽음의 벼랑으로 가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불치병 중에 가장 보편적으로 정착한 질병이 바로 암(癌)입니다. 암은 조기진단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조기 치료로 완치가 가능하기 때문이지요.

암은 애당초 암세포가 자라지 못하도록 식생활과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암전문의가 암환자가 되어 투병하고 죽어가고 있으니 말입니다. 암의 가장 기초적인 경고 단계가 감기라고 했습니다. 감기의 위험성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지요.

몸 관리를 잘 하여라, 먹는 것으로 조심해라, 하나님 질서대로 밤에 자고 낮에 일하라, 등등의 순리대로 생활을 하지 못하는 데 따른 경고 신호입니다. 이는 마치 스포츠 선수가 경기 규칙에 따라 경기를 하지 못할 때 주심이 내리는 경고와 동일합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암이란 옐로카드를 주어 퇴장 명령을 내려 이 땅에서의 삶에 종지부를 찍게 하지요.

암의 위험 신호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예컨대 위암은 복부 불쾌감, 식욕부진 또는 소화 불량이 지속적으로 느껴지는가 하면 간암은 복부 위쪽의 통증이나 체중감소 및 식욕부진과 같은 증상을 보입니다. 그리고 폐암은 계속되는 마른기침이나 피가 섞인 가래가 나오는 증세를 보이는 등 인체의 부위마다 제각각 경고 신호가 있습니다. 이 신호를 잘 감지하여 조기진단을 받는 게 좋지요. 그래서 정부에서는 암 정기 검진을 하도록 권고를 하고 있습니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준 데 감사해야

한국 교회 역시 영적인 암에 걸려 있습니다. 부위에 따라 초기 암도 있고 중기 암, 말기 암도 있습니다. 이번 ‘뉴스후’의 귀족 목사들의 호화 생활은 말기 암으로 진단이 됩니다. 말기 암도 때로는 방사선 치료와 수술로 고칠 확률이 있는 것처럼 사회 의사인 언론과 방송의 진단을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이들 언론이 처음부터 특정 종교를 비난하거나 폄하하려는 의도는 없었을 겁니다. 자가진단, 자가 치료가 안 되니까 한국 사회 전체의 숙주가 살기 위해서는 부득이 방송의 힘을 빌렸다고 생각됩니다.

이미 한국 교회 자체적으로는 아무도 암이 걸렸음을 지적하지 못합니다. 물론 원론적으로 거론되기는 합니다만 특정인을 찍어 공개적으로 하지는 못합니다. 귀족 목사들의 권력은 대단합니다. 왜냐하면 패거리 정치로 보복이 뒤따르고 교회 밥을 먹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왕따도 당해야 할 각오도 해야 하고요. 목사로 살아남으려면 세상과 동일한 처세술이 요구되어집니다.

흔히 하는 말로 ‘이 바닥에서 살아남으려면 가만히 있어라, 눈 감고 있어라, 어디 감히 선배에게’ 등등의 조직 특유의 패거리 의식이 있어 감히 부패한 조직 관습을 거역하고 항변하지 못하는 사회구조가 고착화 되어 있다는 것이지요. 공무원 사회도 내부 고발자를 처벌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용기를 가지고 아무도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가 기사회생 하기 위한 발판으로 삼기 위해서는 이번에 방송사가 방울을 달아 준 것을 감사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나와바리(なわばり:구역)를 침범당한 조건반사적인 반응

한국 교회가 뉴스후 보도 후에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느덧 교회가 정치적 보수주의와 기득권 대열에서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수혜자와 특권층이 되어 있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한국 교회를 대표하는 한기총과 국민일보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오히려 집단 이기주의 반응만 보이고 있습니다. 사이비종교단체와 사회이익단체가 방송을 통하여 자신의 집단에 불이익을 초래되었을 경우 집단 시위를 하거나 성명서 내는 반응과 동일하게 반응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이기를 포기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MBC ‘뉴스후’ 방송 후 교계의 일련의 행동들은 일종의 조폭들과 장사치들의 나와바리(なわばり구역)를 침범당한 조건반사적인 반응으로 살길을 찾기 위해서 물리적 행동까지 불사하겠다는 선전포고를 하고 있으니 한국 국민들은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정치와 언론이 종교를 압박하고 고난의 십자가 골짜기로 몰아붙이겠습니까? 핍박을 합니까? 만약에 그렇다면 그것은 교회가 자초한 것임을 알고 양약(良藥)으로 받아들이고 치료약으로 먹어야 합니다.

똥인지 된장인지 구별도 못하는 유치한 신앙 의식구조를 가진 목사들이 성직자로 불리길 강제하고 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개그 그 자체입니다. 권위를 강제하면 권위주위가 되어버립니다. 성직자로 불리길 위해서 박사 가운을 입는다고, 로만 칼라의 옷을 입는다고, 목사 자격증을 가진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회 구성체로부터 우러나오는 존경심과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비로소 성직자로서의 존재가치가 있는 것임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개혁 교회 고장난 경보기를 대신하여 울려주는 방송

현대는 자본주의 사회입니다. 모든 병이 다 그렇지만 몸에 이상이 생기면 의사들은 전문의와 상담하려고 합니다. 지금 이 시대는 이미 이런 저런 의학 정보가 마케팅의 기법으로 홍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특히나 지금은 근골격계 환자와 교통사고 환자가 양산되는 시대이므로 수요공급의 시장경제원리에 위해서 병원이 생겼다하면 척추전문병원이 우후죽순처럼 생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병원과 의사들이 먹고살기 위해서는 멀쩡한 사람들은 환자로 만드는 마케팅을 하고 있는데 거기에 대부분 속아 넘어가는 상황입니다.

교회 역시 그렇습니다. 성도들은 교회 안으로만 구심적으로 모여들게만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브랜드 목사의 나와바리에서만 놀게 하는 허약한 성도들을 양산하고 있습니다. 일종의 소꿉장난을 하고 있는 모습에서 부패하는 집단으로 가고 있기에 안티들의 악성어린 공격과 정당한 비평 기능을 방송을 통하여 한국 교회의 치부를 드러내고 수술하려고 하는데, 이를 거부하는 것은 하나님의 개혁 의지를 막으려고 하는 것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감기에 걸렸다고 해서 바이러스를 원망할 수는 없는 것처럼 안티들을 원망하고 방송사에게 교회를 핍박한다고 항의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들이 자각을 하지 못한 것을 알려주니까 고마워해야지요. 안 그렇습니까?

가스 경보기가 있는데 가스 누설을 감지를 하지 못하면 화재나 폭발 사고가 일어납니다. 이처럼 자체 경보 기능을 하지도 못하고 있는 교회는 주님의 교회가 아니라 귀족 목사의 사유화 교회입니다. 소수의 교회가 그런 경보 기능을 알려주어도 대부분 경보음을 묵살하거나 무시하기 때문에 자체 경보가 아닌 사회 경보 시스템인 언론을 통하여 경보를 울려주는 것을 겸허히 수용하여 스스로 내부를 돌아보고 성찰하는 기회가 되어야 한국 사회를 이끌어갈 수 있는 도덕적 엔진을 작동할 수 있게 됩니다.

종교는 사회의 등불입니다. 특히나 교회는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회보다 높은 도덕적 완성도가 요구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현재의 엔진을 정비해야 합니다. 불완전 연소되어 검은 폐가스가 배출되어서 공기를 오염하지 않도록 하여야 합니다. 이도 거부하면 폐차를 하여야지요. 물론 이런 권한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개혁의 당위성과 엔트로피는 점점 증대되어 종말에 가까워지고 있는 듯합니다. 또다시 복음의 빅뱅이 되어야 할 시기라는 것이지요.

한국 교회가 살면 한국 사회가 살 것이고 한국 교회가 죽으면 한국 사회도 죽을 것이기 때문에 민족의 생사가 달려 있습니다. 이제 유치하게 반응하지 맙시다. 집에서 기르는 개의 밥그릇을 빼앗아보십시오. 주인이라도 으르렁 거립니다. 내 밥그릇 빼앗긴다고 반응하는 시장 상인들과 같이 약사와 의사들과 같이 맘몬의 논리로 반응하지 맙시다. 복음은 배가 부르고 등 따시고, 호화롭게 살면 부패하기 마련인 것을 왜 모르시나요? 애통하고, 가난한 자는 천국이 저희 것이라 하신 주님의 말씀이 필자의 마음속에서 살아 움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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