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영희 목사의 멍든 가슴만 어루만지나"
"왜 이영희 목사의 멍든 가슴만 어루만지나"
  • 박지호
  • 승인 2008.03.06 18: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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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요한 은퇴목사가 노회원들을 꾸짖은 까닭

“사랑 가운데 진리를 말하라.” 이요한 은퇴목사(사랑의장로교회)는 시종일관 부드럽고 차분한 목소리로 인터뷰에 응했다. 하지만 그의 말은 단호했고, 목소리에는 힘이 있었다. 따끔한 질책 속엔 진한 애정이 녹아 있음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다.

이 목사는 지난 3월 4일 열린 뉴욕서노회 정기회에서 후배 노회원들을 향해 “목사이기 전에 상식을 갖추라”며 노(怒)를 발했던 사람이다. 내일모레면 여든을 바라보는 노(老) 목사가 격앙된 어조로 날 선 비판을 가한 이유가 무엇일까. 무엇이 그토록 그를 안타깝게 만든 것일까.

이영희 목사의 해벌을 논의했던 뉴욕서노회 정기회 다음날인 3월 5일 아침, 이요한 목사를 만나 그의 생각을 들었다. 이 목사가 한사코 사진 촬영을 거부해 사진을 함께 실지 못했다. 

이 목사는 인터뷰 중간 중간 “(이영희 목사를) 사랑하는 방법이 다를 뿐”이라고 말했다. 이 목사는 ‘해벌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향해 “다른 방식으로 이영희 목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고 정의했다. 이들을 비판한 이유에 대해서는 “성경적이지 않고, 정치적이고 감정적이고 세속적인 방식으로 이영희 목사를 사랑하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깊은 연구를 통해 이번 일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이 무엇인지, 정말 성경적인 해결 방법은 무엇인지 고민하지 않았다는 뜻이며, 또 이영희 목사의 무너진 명예만 회복하려고 했지 이영희 목사와 관계 맺은 두 명의 여인과 이영희 목사의 실수로 상처 받은 지역사회 구성원들에겐 관심이 없었다는 말이다. 

이 목사는 “왜 문 밖(이영희 목사와 노회 밖)을 보지 못하고 이영희 목사의 멍든 가슴만 어루만지려 드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이해를 하자고 하는데, 우리가 이해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말했다. 문 밖에 있는 사람들을 의식해야 한다는 말이다. 

1년 전 이영희 목사가 실수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영희 목사에게 저주가 아니라 축복일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번 노회 때 그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영희 목사가 정기회 때 발언한 내용을 듣고, 회개한 사람의 모습이 아니라 정치꾼의 모습이라고 개탄했다.

또 이영희 목사 일로 노회가 분열의 조짐을 보이는 것도 안타까워했다. “선한 뜻이 올라오면 당연히 하나가 되겠지만 이영희 목사가 올라오니까 갈라질 수밖에 없다”고 해석했다. 또 노회가 하나님의 뜻을 읽으려 하기보다 정치 놀음에 휘말리는 것 같아서 아쉽다는 뜻도 전했다. 

이 목사는 또 “회개는 하나님과 일대일의 문제이지만 반드시 공동체의 공인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변화된 삶의 모습을 공인 받지 않으면 개인은 하나님으로부터 용서 받았을지 몰라도 공동체에는 덕을 세우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래는 이 목사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나도 그들(이영희 목사의 해벌을 주장하는 노회원들)만큼 이영희 목사님을 사랑한다. 아니 어쩌면 더 사랑하는지도 모른다. 다만 사랑의 방법이 다를 뿐이다. 하지만 난 자부심을 갖는다. 내가 이영희 목사를 사랑하는 방법이 더 깊고 하나님도 기뻐하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두 여인에겐 얼마나 위로금을 줬나"

“문 밖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자. 노회와 이영희 밖을 볼 줄 알아야지 왜 자꾸 이영희의 멍든 가슴만 어루만지려 하느냐. 노회가 나서서 그 사람들(이영희 목사와 관계 맺은 여인들)을 위로하고 필요하면 치유하고, 혹 복음을 믿지 않는 사람이면 대신 사죄하고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 아니냐. 목사들이 못하면 사모들이라도 나서서 할 수 있는 것 아니냐. 노회가 너무 한 쪽(이영희 목사)으로만 치우쳐 있다.”

“또 뉴욕장로교회에서 이영희 목사에게 거액의 돈을 준 것으로 안다. 그 돈으로 (이영희 목사가) 두 여자에게 얼마나 위로금을 줬나. 문 밖의 소외된 두 여인을 얼마나 위로해줬냐는 이야기다. 해벌 논의가 진행되는 내내 두 여인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내 마음을 짓눌렀다.”

“문 밖을 보라는 것은 지역사회를 바라보라는 이야기다. 정기회 때 어떤 젊은 목사님이 아주 좋은 이야기를 했다. 교회가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가진 만큼 지역사회의 정서가 매우 중요하다고 했는데, 노회는 이영희 목사의 말을 듣기 전에 지역사회의 목소리를 먼저 들어야 한다. 이해를 하자고 하는데, 우리가 이해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선한 뜻 아닌 이영희 목사가 올라오니 갈라질 수밖에”

“정기회에 참석하면서 이건 아니다 싶었다. 방 안 분위기라는 게 있잖나. 쉽게 말해 분열의 조짐이 느껴졌다. 그 자리에 있으면서 ‘이영희 목사를 다른 방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동안 끊임없이 모임을 가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들이 사전에 모이기는 하고 계략은 세웠겠지만, 성령님이 주신 마음으로 움직이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가 되어야 하는데, 노회가 둘로 나눠졌다. 선한 뜻이 올라오면 하나가 안 될 수 없다. 하지만 선한 뜻이 올라오지 않고, 이영희 목사가 올라오니까 갈라질 수밖에….”

회개한 자의 모습이 아닌 정치꾼 모습

“회개한 사람의 모습은 그런 모습이 아니다. 그리고 앞에 나와서 인사하는 것도 맘에 안 들었지만, 앞에서 이야기하는 내용을 듣고 깜짝 놀랐다. “1년 동안 죄는 참 무서운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는데, ‘저게 아닌데’ 싶었다. 죄는 무서운 게 아니라 죄의 값은 사망이다. 사망은 죽었다는 이야기다. 앞에 나와서 치유에 관련된 책을 읽었다느니, 어디 가서 치유를 받았다느니 이야기할 게 아니다. 아프면 병원 가듯 이영희 목사가 치유를 받는 건 당연한 일이지 고백할 이야기가 아니다. 또 1분이 아까워서 발언하는 사람에게 1분만 하고 점심 먹자고 노회장이 재촉하는 상황에서, 20분 가까이 신상발언을 하더라. 그것도 찬송까지 부르면서…. (한숨)”

“그리고 이영희 목사가 참석했다는 데 깜짝 놀랐다. 오지 않았어야 했다. 왔다면 점심만 먹고 갔어야 하는데,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면전에 침을 못 뱉는 법이다. 본인에 대한 이야기가 안건으로 나오면 자리를 비켜주는 것이 상식이다. 예를 들어서 교회에서 내 사례금을 논의할 때는 나는 사회봉을 내려놓고 물러선다. 하지만 이영희 목사는 그러지 않았다. 그건 바람직하지 않다. 그건 정치를 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정치는 하지 말아야 한다.”

“이영희 목사의 간음, 저주가 아닌 축복일 수 있었다. 그러나…”

“처음에 이영희 목사의 (간음) 소식을 들었을 때 하나님이 이런 방식으로 사람을 몰아쳐서 하나님의 사역을 하시길 원하시는구나 생각했다. 이영희 목사의 여생을 정말 귀하게 쓰실 수 있겠구나 생각하고 기대했다. 큰 교회이기 때문에 재정적으로 도움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엄청난 돈을 줬단다. 의식주 문제는 해결된 거 아닌가. 그것으로 남은 생을, 버려진 곳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할 수 있었다. 사도 바울처럼 말이다. 그런 측면에서 저주가 아니라 오히려 축복일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근데 어제 가서 보니까 그게 아니더라. (침묵)”

“노회가 깊이 있는 연구했어야 했다”

“이영희 목사를 비롯해 이영희 목사의 해벌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감정에만 호소하더라. 그건 옳지 않다. 그 대목에서 내가 분노를 느꼈다. 성(聖)노회이기 때문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 미리 안건을 상정하지 않고, 갑자기 얘기했다는 게 말이 되나. 부담을 느낀다면 그 중요한 안건을 어떻게 갑자기 신안건 토의에서 올리나.”

“정말 이야기를 하고 싶으면 이영희 목사의 문제에 대해서 깊은 연구를 할 수 있는 연구 모임을 만들었어야 했다. 이영희 목사가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 어떤 치유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복귀는 가능한지, 앞으로 이런 일이 생겼을 때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고민했어야 했다. 회개는 하나님과 일대일의 문제이지만 반드시 공인을 받아야 한다. 변화된 삶의 모습을 공인을 받지 않으면 개인은 하나님께 용서받았을지 몰라도 공동체에는 덕을 끼치지 못한다.”

“그냥 불쌍하니까 해벌하자고 하는 건 성경적이지 않다. 그건 정치적이고, 감정적이고, 세속적인 거다. 깊이 연구를 했어야 한다. 깊이 연구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읽는 과정이다. 하지만 이런 과정이 없었다는 것이 안타깝다.”

“주식회사가 된 한인 교회”

“난 이영희 목사가 뉴욕장로교회에서 사임할 때 퇴직금을 받았다는 것도 최근에 알았다. 그런데 들어보니까 엄청난 돈을 받았다고 하더라. 그때 나는 ‘이건 예수 주식회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뉴욕장로교회에서 이영희 목사 때문에 갈라져 나와서 또 하나의 교회를 세웠다고 하더라. 이영희 목사가 해벌되면 그 교회가 청빙할 거라는 얘기도 들린다. 이건 교회가 아니다. 주식회사다.”

“교회는 정상적으로 세워져야 한다. 이민 교회가 열정이 있으면서도 왜 미국 땅을 움직이지 못하는 줄 아는가. 영어를 못해서 그렇다고 하고, 1세 목회자라서 그렇다고도 하는데, 그게 아니다. 교회가 정상적으로 세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교회가 정상적인 태어나야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하나님나라를 위해 사용될 텐데 그게 제대로 안 되고 있는 것이 진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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