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연령통합교육'이 대안일 수 있을까?
미국의 '연령통합교육'이 대안일 수 있을까?
  • 강희정
  • 승인 2008.03.11 15: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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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엿보기 18 - 폐교 위기 학교에 대한 발상의 전환 필요

지난 몇 주 동안 한국의 한 인터넷 신문에서 ‘나홀로 입학생’을 맞이한 학교들에 관한 기사를 읽었습니다. 충남 보령에서 농촌 공동체를 위해 애쓰고 계시는 어느 목사님으로부터도 비슷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전국에 ‘나홀로 입학생’이 130여 곳이 된다고 하니 뉴스에 소개되지 않은 여러 학교에서도 기대보다는 안타까움이 큰 입학식이 진행되었을 거라고 생각이 됩니다.

이런 학교들을 소개하는 시선들 대부분은 폐교 위기에 처한 학교를 구해달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작은 학교들이 위기에 빠져 있으니 도와달라고 하는 절박한 호소를 전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런 기사들을 읽으면서 문제는 폐교 위기에 처해 있는 농어촌의 작은 학교들이나 그 곳에 다니는 학생들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제는 바람직한 학교 교육에 대한 고민 없이 자본의 논리, 효율성의 논리로 학교와 교육 문제를 접근하는 시각에 있습니다.

교육부나 지역 교육청에서 농어촌 학교들에 대해 실시하고 있는 정책들, 소규모 학교를 인근 학교의 분교로 만든다거나 학년을 강제적으로 통폐합하는 것은 지극히 비교육적인 횡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정책의 기반에는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는 자본의 논리만이 남아 있습니다. 교육의 논리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 미국의 한 연령통합반의 모습. 미국에서는 1990년대부터 나이에 따라 획일적으로 반편성을 하는 현행 학교 체제에 대한 대안운동으로 연령통합교육(Multiage education)을 시작했습니다.(사진 제공: 강희정)  
 
그런데 이처럼 농어촌의 소규모 학교에 강요된 현실, 할 수만 있으면 벗어나고 싶은 현실이 실은 많은 교육 철학자들이 추구해마지 않던 이상적인 교육 환경이라는 사실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학교가 수많은 학생들을 수용하면서 나이에 따라 반을 나누어 가르치기 시작한 역사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습니다.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자본의 요구에 따라 읽기, 쓰기, 셈하기 등의 기본 능력을 가진 저급 노동력을 대량생산하기 위해 마련된 체제가 바로 오늘날의 학교의 모습입니다. 자본의 요구에 따라 형성된 학교 체제는 사실상 지식의 획일화와 더불어 교육의 비인간화를 가져왔습니다.

비인간화된 교육 체계의 문제를 바로 잡기 위해 많은 교육 철학자들이 대안적인 교육 체제를 모색해왔는데 이들 대안 교육 체제의 특징은 작은 학교를 지향하며 학년별 통합반을 운영하고 교사 학생 간의 긴밀한 인격적인 관계 형성을 주목적으로 한다는 점입니다. 루돌프 슈타이너, 몬테소리 등의 외국의 교육 철학자들만이 아니라 1990년대 후반 이래 세워지기 시작한 한국의 대안 학교들도 이러한 교육적 가치들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공립학교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미국에서는 1990년대부터 나이에 따라 획일적으로 반편성을 하는 현행 학교 체제에 대한 대안운동으로 연령통합교육(Multiage education)을 시작했습니다. 1990년 7월 미국의 켄터키 주에서는 모든 초등학교에서 연령통합교육을 실시했으며, 미시시피 주, 오레곤 주, 펜실베이니아 주, 플로리다 주, 아칸사 주, 조지아 주, 캘리포니아 주, 텍사스 주, 테네시 주, 뉴욕 주 등 여러 주에서 그 프로그램을 도입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오하이오 주의 더블린 시에서도 연령 통합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으며 학부모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서는 1학년과 2학년을 통합한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연령 통합반이 두 개 반이 있고 일반 학급이 두 개 반이 있습니다. 유치원이 끝나는 무렵 학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들이 연령통합반을 보낼 것인지 일반 학급에 보낼 것인지 결정합니다. 많은 학부모들이 연령 통합반을 선호하기 때문에 신청자들 중에서 추첨을 통해 결정됩니다. 여러 연구 결과들도 연령통합교육의 긍정적 효과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연령통합반의 특징을 살펴보면 하나의 교실에 나이 차이가 있는 학생들이 함께 공부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산업화 이전에 있었던 '한 학급 학교'(one-room school)를 연상시킵니다. 이런 형태의 학교는 미국의 아미쉬 공동체에 아직 남아있습니다. 의사이자 교육사상가였던 몬테소리는 연령통합반 모델이 이상적인 교육 형태임을 보여 주었고 미국에서 실시되고 있는 연령통합운동은 몬테소리의 교육 사상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교실로 이루어진 작은 학교에서 서로 나이도 다르고 따라서 지적 능력도 다를 수 있는 아이들이 함께 배우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실지 삶에서 이루어지는 환경과 크게 닮아 있습니다. 사실 연령에 따라 학급을 나누어 이루어지는 교육 체제는 지극히 인위적인 환경이지요.

연령통합반은 선생님과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특징을 가지기도 합니다. 연령별 반편성 체제에서는 1년에 한 번씩 교사가 바뀌는 반면 연령통합반에서는 최소한 2년 또는 3년간 같은 선생님 밑에서 배움이 이루어집니다. 루돌프 슈타이너의 사상에 따라 운영되고 있는 발도르프학교에서는 한 사람의 교사가 8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친다고 합니다.

발도르프학교에서 8년 담임제를 하는 이유는 한 교사와 학생들이 오랫동안 관계를 지속하면서 학생들로 하여금 교사와 깊이 있는 사귐을 하도록 함으로써 인간에 대한 신뢰와 깊이 있는 관계 맺기를 배워나가게 한다는 뜻에 있습니다. 일 년마다 교사가 바뀌는 환경에서는 교사와 학생 간에 깊이 있는 사귐이나 믿음이 만들어지기가 쉽지 않지요.

초등학교에서 배우는 교과 내용은 학생들의 나이에 따라 확연히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어떤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보다 일찍 이해하기도 하고 어떤 아이들은 더 늦게 이해하기도 합니다. 연령통합반에서 아이들은 첫 해에 배운 내용을 다음 해에 또 배우게 됩니다. 아이들에게는 같은 내용을 두 번 접하게 함으로써 이해를 깊이 있게 하고 온전히 자기 지식이 되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먼저 깨우친 아이들은 이해하지 못한 아이들에게 가르쳐주기도 합니다.

많은 교육철학자들은 연령통합반이 아이들의 발달 과정에 보다 적합한 교육 형태라고 주장합니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연령통합반이 교육 재정을 줄이기 위해 학급을 통폐합한 것이 아니라 바람직한 교육에 대한 고민과 철학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교육철학이 뒷받침되지 않은 채 경제 논리에 따라 이루어진 학년 통폐합은 오히려 부작용을 낳기가 쉽습니다.

   
 
  ▲ 연령통합반에서 학생들은 선생님과 상대적으로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할 수 있어 교사와 깊이있는 사귐을 통해 인간에 대한 신뢰와 깊이있는 관계 맺기를 배울 수 있습니다.(사진제공:강희정)  
 
경제 논리로 이루어진 학년통폐합은 한 교실에서 교사가 서로 다른 두 개의 학급의 학생들을 시간을 쪼개어 나누어 가르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교육 방식이나 교육철학이 바뀌지 않은 채, 비용의 최소화만을 고려한 학년통폐합은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시간을 반으로 줄이는 조치가 되어버릴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1960년대 후반에 시도되었던 연령통합교육은 재정상의 필요에서 이루어졌을 뿐 교육철학이 뒷받침되지 않아 실패했다고 합니다.

연령통합반의 경우 교사 한 사람이 가르치기도 하지만 둘이 팀을 이루어 가르치는 경우가 더 많이 있습니다. 일반 학급에서는 한 사람의 교사가 20여 명의 학생들을 가르치는 반면, 일부 학교의 연령통합반에서는 두 사람의 교사가 같은 수의 학생들을 함께 가르칩니다. 경제 논리에 따르면 당연히 하기 어려운 조치이지요. 1인당 학생 수는 교육의 질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습니다. 이런 기준에서 본다면 폐교 위기에 있는 학교는 바람직한 모델에 더 근접해 있는 셈입니다.

연령통합반이라고 해도 모든 학생들이 똑같은 교육 내용을 전수받는 것은 아닙니다. 우수한 재능을 보이는 학생에게는 그 학생의 수준에 합당한 교육 내용이 별도로 주어져야 합니다. 교사가 개인별 차이에 따라 적절하게 교육 내용을 달리하며 모든 학생들이 지적인 도전을 받도록 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에 통합반 성공 여부가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연령통합반 교육에 참여하는 교사들이 학생들의 지적 능력의 차이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각자의 능력에 맞게 학습 내용이 제시되도록 꼼꼼히 준비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연령통합반에서는 최소한 2년 이상 가르치기 때문에 교사가 학생의 수준과 능력에 대해 쉽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수 있습니다.

폐교 위기에 처해 있는 농어촌 지역의 학부모들이 학년통합반이나 분교화 조치를 두려워하며 도시 지역으로 자녀들을 이주시키는 것은 무리가 아닙니다. 분교화나 통합반 조치가 사실상 농어촌에 정착할 수 있는 젊은 사람들을 오히려 도시로 내몰고 있는 것도 우리가 부인할 수 없는 오늘의 실정입니다.

인구 과소 현상과 비용 최소화를 위한 교육 정책이 서로 악순환하고 있는 것이지요. 도시 공동체는 농촌 공동체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농촌 공동체의 붕괴는 도시 공동체의 위기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농촌 공동체를 살리는 데 다같이 힘을 모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학부모들이 작은 학교와 학년통합반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교육철학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마치 '밭 속에 뭍힌 보화'와 같이 숨겨져 있어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작은 학교의 가치와 중요성을 드러내주어야 합니다. 교육철학을 제시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이상적인 교육 공간이 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작은 학교나 연령통합반 모델의 가치가 물질적인 가치, 수치화된 가치에 익숙한 오늘날의 사람들에게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연령통합반의 장점과 가치가 무엇일까요? 작은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연령통합반에서는 서로 다른 나이의 학생들이 함께 공부하고 놀면서 서로 공부하게 됩니다. 나이와 능력이 서로 다른 학생들이 모인 공동체를 이루어 학생들은 교사에게서만이 아니라 서로에게서 많이 배우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모습과 아주 유사합니다. 나이에 따라 구별이 된 현행 학교 체제는 학교 밖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아주 기이한 집단 형태입니다.

아이들은 다른 사람을 모범으로 삼아 배우게 되는데 나이가 어린 학생들은 나이가 많은 학생들을 모범으로 삼아 공동체 안에서 지식과 더불어 여러 가지 삶의 규범들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된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개인주의가 아니라 공동체 의식을 몸으로 배우게 됩니다. 나이가 많은 학생들은 어린 학생들을 돌보는 것에서부터 책임감과 리더십을 쌓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경쟁의식이 아니라 서로 돕고 세워주며 더불어 살아가는 자세를 배워나가게 됩니다.

   
 
  ▲ 연령통합반에서 나이가 어린 학생들은 나이가 많은 학생들을 모범으로 삼아 지식과 더불어 여러 가지 삶의 규범들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개인주의가 아니라 공동체 의식을 몸으로 배우게 됩니다. (사진제공: 강희정)  
 
나이가 다르고 능력이 다른 학생들이 서로 어울리는 가운데 ‘차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습관도 자연스레 익히게 됩니다. 세계가 하나로 연결되어 서로 다른 여러 문화가 함께 존재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오늘날의 상황에서 ‘차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은 미래에 학생들에게 아주 중요한 덕목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미국에서는 이것을 가리켜 문화 수용 능력(cultural competence)라고 부르며 이것을 중요한 교육적 가치와 덕목으로 간주하고 학생들에게 가르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도덕적, 정서적 능력을 키우는 것이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만, 학부모들에게 가장 관심이 가는 내용은 작은 학교나 연령통합반이 학생들의 지적 능력의 향상에도 도움이 되는가 하는 것일 겁니다. 이 둘의 관계를 직접적으로 밝히는 것은 쉽지 않지만 둘 간의 상관관계를 보인다는 연구도 적지 않게 있습니다.

미국의 학부모들 중에서도 두 해를 똑같은 내용을 배우는 연령통합반에 대해 회의적으로 생각하는 부모들이 있습니다. 두 번 같은 내용을 배우는 것이 시간낭비가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입니다. 이런 의심을 하고 있는 부모들에게는 연령통합반을 1년 겪어본 후에 일반 학급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그러나 제 아이의 학교에서 확인해본 바로는 1학년 때 연령통합반에 있었던 아이들 가운데 2학년 때 일반 학급으로 간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합니다. 이것은 연령통합반에 대한 학부모들의 반응 결과가 좋다고 볼 수 있는 증거 중의 하나가 되겠지요.

오늘날 한국에서 폐교 위기에 처해 있는 학교라고 해도 교육 시설 면에서는 도시의 어느 학교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고 합니다. 컴퓨터나 기자재 확보 측면에서는 뒤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교사가 소수의 학생들과 깊이 있는 관계를 유지하며 가르치기 때문에 이상적인 교육 환경을 고민해 온 많은 대안 학교들이 추구하고 있는 학교 모델에 가장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학부모들이 작은 학교와 연령통폐합교육에 대한 근거 없는 편견과 두려움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면 폐교 위기에 처한 농어촌의 작은 학교들이 공립학교들 가운데 이상적인 교육 모델이 될 수 있습니다. 교육 당국의 지원과 헌신적인 교사의 노력이 함께 더하는 경우에 한에서 말입니다. '밭 속에 숨겨진 보화'를 캐낼 수 있는 발상의 전환과 교육철학에 바탕을 둔 농어촌 학교 지원 정책이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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