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정을 중시하는 미국 어린이 축구
과정을 중시하는 미국 어린이 축구
  • 강희정
  • 승인 2008.03.20 14: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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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엿보기 20 - 축구 시합은 경쟁이 아닌 놀이

   
 
  ▲ 미국에서 어린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고 가장 많은 어린이들이 참여하는 경기는 축구이다. (사진 제공 : 강희정)  
 
흔히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는 아메리칸 풋볼 또는 미식축구이고 우리가 축구라고 부르는 사커(Soccer)는 미국 사람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우리가 미국에 살면서 발견한 사실은 미국인들이 미식축구를 좋아하는 것은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이지만, 어린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고 가장 많은 어린이들이 참여하는 경기는 미식축구가 아닌 축구라는 것이다.

4월과 5월에는 봄 시즌이 열리고 가을 시즌은 9월과 10월에 걸쳐 있다. 이제 가을 시즌이 다시 시작되어, 우리 집은 토요일마다 아침부터 오후까지 부산을 떨어야 한다. 두 딸 모두 축구 경기를 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여자라고 해서 축구를 안 하거나 그러지 않는다. 주중에는 아이들이 하루씩 축구 연습을 하기 때문에 주중에 이틀은 축구 연습장에 아이들을 데려다주어야 한다. 아이들의 축구 연습과 경기에 일주일에 3일을 할애해야 하니, 나도 이제 '사커맘'(Soccer Mom)이 다 되었다.

11시에는 운동을 잘하는 둘째 딸의 시합이 있었다. 늦지 않게 약 10분 전에 도착했는데, 그 넓은 주차장에 차가 꽉 들어차 있었다. 몇 바퀴를 돌다가 주차 공간 아닌 곳에 주차를 할 수밖에 없었다. 어린이 축구팀이라 할지라도, 시 전체를 관장하는 비영리기관에서 조직과 운영을 맡고 있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규모가 훨씬 크다.

축구팀은 나이별로 조직되어 있는데, 일반적으로 6살부터 12살에 이르는 어린이들이 주축이 된다. 가장 어린 나이로 구성된 팀이 5살짜리 팀이 있기는 하지만 이 팀은 경기를 하지 않고 축구 규칙을 배울 뿐이다. 한 팀은 10명에서 12명 정도로 구성되는데, 각 나이별로 10개가 넘는 팀들이 있다. “능력에 관계없이, 지역의 모든 어린이들에게 축구 경기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하는 것”이 지역 어린이 축구 리그가 만들어진 기본 취지이다.

팀의 코치는 보통 두 명인데, 자녀가 소속되어 있는 팀의 부모들로 구성된다. 둘째 아이는 6살이었던 작년에 축구를 시작하여 2년 차가 되는 셈이다. 작년에 둘째 아이는 팀 내에서 축구를 제일 잘해  사랑을 많이 받았다. 작년 코치는 이번 해에도 우리 아이가 있는 팀을 자기가 맡고 싶어했는데 그렇게 되지 않았다.

지난주에는 그 코치가 맡은 팀과 둘째 아이의 팀이 시합을 가졌다. 결국에는 우리 아이가 있는 팀이 이겼고, 우리 아이가 골을 많이 넣어 팀에 공헌을 많이 하였던 터라, 시합 후 그 코치는 이번 해에 우리 둘째 아이를 맡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표하기도 하였다.

경기가 시작되면 부모들은 축구 코트 옆에서 응원을 한다. 보통 접이 의자를 가지고 나와 부모들이 자기 자녀가 소속되어 있는 팀을 이기라고 열심히 아이들을 격려한다. 팀을 응원하면서 부모들은 함께 수다를 떨기도 하고 골이라도 들어가면 함성을 지르기도 하면서 아이들 축구로 인해 지역 주민들이 서로 친해지기도 한다. 부모들은 때로 아이들이 실수했을 때도 "굿 트라이"(Good Try)라고 소리치며 격려를 마지않았다.

이번 시즌에는 작년 1년 동안 배운 가락이 있어서 팀 아이들 모두 제법 축구 경기 규칙을 알게 되고 축구 경기다운 경기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작년에는 아이들이 자기 골문으로 공을 집어넣는 해프닝도 종종 일어났다. 이제는 수비하기 어려울 때에는 골을 코트 바깥으로 차 내어 위기를 모면해야 하는 것도 알게 되고, 코너킥이나 사이드킥을 어느 팀이 해야 하는지 알게 된 듯하다.

   
 
  아이들이고 부모들이고 코치고 심판이고 아이들의 축구 경기를 하나의 놀이로 받아들이고 즐거워할 뿐이다. (사진 제공 : 강희정)  
 
심판은 모두 중고등학교 청소년들이 한다. 이들은 자신들이 어려서부터 축구를 해왔기 때문에 축구경기를 잘 알 뿐만 아니라 심판이 되기 전에 별도의 경기 규칙을 배워 능숙하게 경기를 진행한다. 어린 심판이지만 코치들도 심판의 말을 절대로 존중해준다. 한 번도 심판의 판정에 시비가 붙거나 심판에게 거스른 예를 보거나 들어본 적이 없다.

둘째 아이는 작아도 몸이 날렵하여 빠르게 움직이며 골을 자주 낚아채 골을 많이 넣는 편이다. 주로 공격수가 되는 편인데, 오늘은 코치가 중간에 잠깐 골키퍼를 맡기기도 하였다. 팀 선수 교체를 다양하게 해야 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우리 아이에게 다양한 역할을 맡겨보는 기회를 주는 것일 수도 있다.

이번 경기에서는 우리 아이가 골을 많이 넣지는 못하였다. 대신에 작년부터 우리 아이와 같은 팀에 속해있던 한 아이가 골을 넣자 그 아이를 껴안고 같이 기뻐해주는 것이 보였다. 이번에 골을 넣은 아이는 달리기를 할 때마다 보는 사람이 왠지 불안한 감이 들고 순발력이 있지 않던 아이여서, 그 부모는 그 아이가 골을 넣은 것에 대해 엄청나게 감격스러워한다.

심판이 경기가 끝난 것을 알리면, 두 팀은 각자 일렬로 서서 상대방 팀원들의 손을 마주치며 ‘굿 게임’(Good game)이라고 말하면서 상대팀에게 인사한다. 심판은 경기 과정마다 골 수를 기록하지만 경기 후에 승패를 발표하지 않는다. 축구 코치나 부모들 그리고 아이들까지 이 경기를 하는 목적이 이기는 데에 있지 않고 아이들의 체력을 단련하고 규칙과 공정하게 게임을 하게 하는 것을 배우는 데에 있음에 다 공감하기 때문이다.

첫째 아이는 나를 닮은 탓인지 운동에 영 재능이 없다. 달리기라든가 골을 넣을 때 빠르거나 당차게 하는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축구를 좋아하여,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축구를 하고 싶어 했다. 축구 시합 전에 코치가 모여서 작전을 세우며 각자의 역할을 배정해주었다. 이때 우리 아이는 자기가 골키퍼를 하고 싶다고 말을 하였다.

그 아이가 지난주에도 골키퍼를 맡았다가 여러 골을 상대방에게 내준 전례가 있는데도, 코치는 우리 아이에게 3라운드에 골키퍼를 하도록 허락해주었다.

둘째 아이가 공을 열심히 쫓아가고 경기에 놀라운 집중력을 보이는 반면, 첫째 아이는 악착스럽게 공을 쫓아가기보다 오히려 친구들 주변을 맴돌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다 공이 제 앞으로 와도 힘 있게 차지 못하고 빼앗기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코치는 잘했다고 소리치면서 격려해준다. 3라운드에 우리 아이가 골키퍼가 되었을 때, 이번에도 상대방에게 세 골이나 내주었다. 4라운드 중간에 그 아이는 코치에게 쉬고 싶다고 말한다.

첫째 아이는 자기가 축구를 잘 하지 못하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으로 인해 전혀 스트레스 받지 않으며 축구를 계속 하고 싶어 한다. 작년에도 눈에 띄게 잘못하는 편이었는데, 어느 날은 경기 후에 상대 팀원의 할머니로 보이는 분이 와서 우리 아이처럼 항상 웃으며 경기하는 아이를 보지 못했다고 이야기해주고 간다. 아마도 축구를 잘하지 못하는 대신 다른 점을 칭찬해주느라고 그랬던 것 같은데, 어느 누구도 축구를 못한다고 지적하지 않는다.

아침부터 하늘에 구름이 많이 끼어 있었는데, 3시경에 경기가 끝나자 비가 조금씩 떨어지기까지 한다. 응원하던 부모들이 두 줄로 마주서서, 우리가 “동동 동대문을 열어라 남남 남대문을 열어라” 놀이를 하는 것처럼, 아이들에게 손으로 아치를 만들어주자, 아이들은 그 밑으로 뛰어 들어가며 좋아라 한다. 아이들이고 부모들이고 코치고 심판이고 아이들의 축구 경기를 하나의 놀이로 받아들이고 즐거워할 뿐이다.

우리 아이들은 작년에 팀 전원이 기념으로 받은 트로피와 메달을 가장 소중한 것으로 여기며 축구를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라고 항상 이야기한다. 아이들의 축구 경기를 지켜보면서, 승패나 일의 결과에만 신경을 쓴 나머지, 과정상에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이나 배울 수 있는 많은 것들을 놓쳐버리는 우리 문화를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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