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스의 마음으로 부르짖어라'
'아모스의 마음으로 부르짖어라'
  • 이승규
  • 승인 2008.04.03 10: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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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득훈 목사, [미주뉴스앤조이] 창간 1주년 감사 예배 설교 전문

아래 글은 박득훈 목사가 지난 3월 30일 <미주뉴스앤조이> 창간 1주년 감사 예배에서 한 설교 전문입니다. 이날 박 목사는 아모스 7장 10절에서 17절까지의 말씀을 본문으로, '아모스의 길 가는 기독 언론'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편집자 주)

   
 
  박득훈 목사는 비판하는 기사를 많이 쓸 수록 가슴은 뜨겁고, 사랑이 넘치고, 온유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여러분, 뵙게 되서 대단히 반갑습니다. 어떤 분들이 그동안 <미주뉴스앤조이>를 사랑해주시고, 지켜주셨을까 굉장히 궁금했습니다. 이렇게 뵙게 되니까, 한 분 한 분이 정말 귀하고 고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한국 <뉴스앤조이>에서 편집인을 하면서도, 기자들과 늘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우리가 한국 교회를 비판하는 기사를 많이 쓰기 때문에 가슴은 뜨거워야 되고, 정말 사랑이 넘치고, 온유해야 된다고 말입니다.

뉴욕에 와서 가장 최근에 나온 <미주뉴스앤조이> 종이 신문을 봤습니다. 1년 동안 어떤 기사를 실었는가도 보고, 독자 네 분이 좌담을 통해서 신문을 평가 해주신 것도 봤습니다. 기사들을 보면서 <미주뉴스앤조이>가 참 귀한 일을 해왔구나 하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저는 지금까지 걸어 온 발걸음 조금도 지치지 않고, 좀 더 힘차게 걸어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앞으로도 힘찬 발걸음 걸어라'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아모스의 말씀은 어떻게 보면 직접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 적절한 말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기자들에게, 실제로 신문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말씀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곰곰이 생각해보면 <미주뉴스앤조이>는 기자들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신문을 아끼고 사랑해주는 사람들과 함께 만드는 것입니다. 또 다른 신문과는 달리 기자회원 제도가 있지 않습니까. 전문 기자만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여기 앉아 계신 여러분이 다 글을 써서 기자의 역할을 감당해주면 그만큼 <미주뉴스앤조이>도 풍성해 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신문은 만드는 사람 따로 있고, 후원하는 사람 따로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한 가족이라는 마음으로 아모스 말씀을 생각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아모스가 걸어간 길을 대개 세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 아모스는 핍박과 어려움을 견디면서 개혁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아모스가 시련을 견뎌야만 했듯이 <미주뉴스앤조이>가 가야 할 길도 여러 종류의 시련을 견디며 걸어가야 할 길이라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베드로전서 4장 12절은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한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라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고난의 길을 걸어가자는 권면의 말씀입니다.

사실 이런 말씀은 우리 시대에는 별로 인기가 없는 말씀입니다. 우리 시대에 인기 있는 말씀은 어떤 것일까요. '작년보다 올해가 더 좋을 것입니다. 그리고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좋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여러분에게 부어주실 축복을 창고에 가득히 쌓아두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희생자가 아니라 승리자입니다. 여러분은 챔피언입니다'하는 긍정적인 메시지. 이게 참 좋습니다. 기분 좋죠. 그런데 성경은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다고 말합니다. 여러분이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이 여러분을 사랑합니까. 그렇다면 여러분 앞길에 많은 가시밭이 있을 겁니다. 여러분을 시험하려고 이상한 일들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것을 잘 견뎌냅시다. 

저는 이것이 우리 마음에 꼭 새겨야 할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부분을 염두에 두지 않고 우리가 제자의 길을 가기 원하거나, 주님이 기뻐하시는 길을 가기 원한다면 결국 우리는 빠른 길, 쉬운 길을 만들어 놓게 됩니다. 이 길은 주님을 따라가는 길이 아닙니다. 주님이 기뻐하는 길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길을 만들어놓고 기쁨으로 걸어갑니다. 고통도 없고, 시련도 없고, 핍박도 없습니다. 허나 그 길은 결코 주님이 원하시는 길이 아닙니다. 이 말씀을 꼭 마음속에 새겨둡시다.

'예수님 따라가는 길은 가시밭길'

   
 
  ▲ 박득훈 목사는 하나님께 눈물로 기도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라고  했다.  
 
여러분, 사도 바울이 돌 맞아 죽을 위기를 겪었다가 벌떡 일어나서 자기가 전도했던 그 지역으로 돌아가면서 지금 막 예수를 믿은 사람들에게 얘기합니다. 우리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고, 아픔을 당하면 왠지 자괴감이 생깁니다. 내가 하나님의 축복을 못 받아서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하고 기가 꺾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정반대입니다. 죽을 뻔한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럼에도 자신만만하게 외칩니다.

'여러분 내가 이렇게 고통을 겪었다고 해서 어려워하거나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제가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아닙니다. 여러분이 하나님나라의 들어가려면, 나와 함께 고난의 길을 가야 합니다. 고난 받을 준비합시다.' 

이것이 바른 복음입니다. 이것이 바른 제자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주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런 생각을 많이 합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시면, 교회에 오시면 참 낯설 때가 많으시겠다, 주님이 참 불편하시겠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나와 함께 가는 길에는 시련이 많은데, 왜 사람들은 시련이 없다고 말하나. 참 이상하게 생각하실 것 같습니다. 

어떤 시련을 받습니까. 오늘 말씀을 보면 왜곡당하는 시련을 받습니다. 당시 종교적인 기득권을 갖고 있는 사람인 아마샤가 아모스에 대해 뭐라고 말합니까. 아마샤는 요즘 말로 하면 총회장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노회장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대형교회 목회자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제가 너무 노골적으로 말하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입니다. 왕과 직통하는 사람입니다. 그 당시 통치자와 항상 얘기할 수 있는 그런 실권을 가진 사람입니다. 요즘 말로 하면 청와대에 가서 예배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아모스에 대해 왜곡하고 비틀어서 말하고 있습니다. 뭐라고 합니까. '이 사람이 임금님께 대한 반란을 선동하고 있습니다. 그가 하는 모든 말을 이 나라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습니다.' 아마샤가 아모스의 마음을 얼마나 왜곡하고 있습니까. 아모스 7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심판한다고 하시면서 환상을 보여줍니다. 황충이 땅에 있는 풀을 다 먹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멸망을 예고한 것입니다. 그 때 아모스가 예수님께 '환난을 멈춰 달라'고 간청합니다. 이것이 아모스의 마음입니다.

여러분 아모스서를 앞장부터 쭉 보면 아모스가 유다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가 이런저런 죄를 지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막상 죄를 고발하는 아모스는 (비판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비판을 위한 비판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나 홀로 의롭다 생각하고, 자부심을 느끼고, 우월감을 느끼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멸망하기를 바라는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왕이 무너지길 바라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심판하신다고 하니까,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이들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모릅니다. 용서해주실 수 없습니까. 하나님.'
이것이 아모스의 심령입니다.

'제발 그 심판을 멈춰주십시오. 저들이 악해서 그런 게 아니라, 약해서 그런 겁니다.' 이것이 아모스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아마샤는 아모스의 진심을 비틉니다. 여러분이 <미주뉴스앤조이>와 길을 함께 걸어간다면, 아마 그런 얘기를 많이 들을 겁니다. 오늘 아침에도 제가 어느 교회에서 설교하고 나오는데, 참 고상하게 생기신 분이 저에게 말을 겁니다. 한국을 방문했을 때 마침 100분 토론을 보셨답니다. 그 분은 일단 저한테 '말씀을 참 조리 있게 한다'고 칭찬을 해주십니다. 여기까지는 좋았습니다. 정말 하고 싶은 얘기는 그 뒤였습니다. '아니, 그렇잖아도 교회 이미지도 나쁜데 약점을 드러내는 일을 그렇게 하십니까.'

저는 고맙게 생각했습니다. 그런 말을 대놓고 하는 게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참 고맙고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오늘 설교를 듣고 저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됐다고 했습니다. 시간만 있었다면 그 분과 조금 더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제 본심은 그게 아닌데, 아모스의 마음으로 일을 하고 싶다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한국 교회의 어려운 점을 부정하지 말고, 시인합시다. 자꾸 가리려고 하지 말고, 토를 달지 말고 시인합시다. 저는 먼저 언론에 나가서 한국 교회를 비판하는 말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목회자 세금 납부를 주제로 한 'MBC 100분 토론'에도 도살장에 끌려 나가는 심정으로 마지못해 나갔습니다. 진심으로 나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토론회 당일까지 다른 사람을 찾아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여의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정말 어쩔 수 없이 나갔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나갔습니다. 아모스의 심정으로 말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나갔지만, 사람들은 저를 한국 교회를 전복하려는 세력으로 생각합니다. 제가 100분 토론에 나간 뒤 수 천 개의 글이 올라오고, 제가 담임하는 언덕교회에도 많은 글이 올라왔습니다. 저를 비판하는 글도 있었지만, 감사의 글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이 고맙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냐하면, 교회에 실망하고 떠난 사람들, 전혀 기독교를 몰랐던 사람들, 심지어는 불교 신자들, 이런 사람들이 교회를 다시 보게 됐다, 희망이 있어 보인다는 등의 격려의 글을 보내왔습니다.

<미주뉴스앤조이>를 비판하시는 분들은 대개 교계 어르신들인데, 그런 분들이 자주 하는 말이 바로 이겁니다. 위에서 열거한 사람들이 넘어져 예수를 믿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을 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데 막상 개혁 운동을 하고 나면 예수 믿다가 떠난 사람, 예수를 믿지 않은 사람들이 오히려 고맙다고 합니다. 이런 글을 볼 때마다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아마 여러분이 그런 왜곡을 당하실 겁니다. 잘 견뎌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초월적인 하나님나라에 좌파·우파가 어딨나'

   
 
  박득훈 목사는 지난 1년 동안 <미주뉴스앤조이>의 버팀목이 되어 준 독자들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했다.    
 
한 쪽에서는 교회 개혁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보고 좌파라고도 합니다. 왕권에 도전하는 세력이라고 정치적인 해석을 합니다. 대형교회 목사들이 <뉴스앤조이>나 MBC가 좌파이기 때문에 교회를 공격한다고 말합니다. 그런 일에 좌파 소리를 듣는다면 괜찮습니다. 그러나 좌파이기 때문에 교회 개혁 운동을 하는 건 아닙니다. 어디 감히 하나님나라의 놀라운 초월적인 세계에 좌파가 도달할 수 있겠습니까. 어림도 없는 얘기입니다. 다만 하나님과 하나님나라를 사랑하기 때문에 이 일을 하는데, 그 분들은 우리에게 색깔을 칠합니다. 좌파라고. 모반 세력, 정치적인 음모가 있는 세력, 권력에 욕심이 있는 세력, 그렇게 왜곡을 합니다.

두 번째 시련은 뭐냐. 그것은 유혹입니다. 아모스 7장 12절에는 '선견자여, 사라져라. 유다 땅으로 돌아가서 거기서나 예언하면서 밥을 빌어먹으라'고 나와 있습니다. 교회 개혁 운동이 필요하다고 하는 사람도 우리에게 말합니다. '왜 여기까지 와서 그러냐. 한국으로 돌아가라. 왜 뉴욕까지 와 가지고 이런 일을 하냐. 한국 가면 듣는 사람이 더 많지 않냐. 뭐 힘들게 여기 와서 하려고 하냐.' 1년 동안 기자 생활 하면서 내가 여기 왜 왔나하는 유혹을 느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유혹을 느끼는 것 인정합니다. '너 선견자다. 너 예언자라는 것을 인정한다.' 우리를 인정하는 듯 말합니다. 그러나 그 일을 여기서 하지 말고, 다른 데 가서 해라. 좀 더 편한 곳에서 하라고 우리를 유혹합니다. 여러분 <미주뉴스앤조이>가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이 아무리 어려워도 그런 달콤한 유혹에 결코 넘어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밥을 빌어먹으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모독이면서, 유혹입니다. 계속 이런 일을 하면 굶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일종의 위협입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걱정이 앞섭니다. 과연 여기서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먹고 살 수 있을까. 실제적인 문제입니다. 제가 여기 와서 보니까 다들 걱정합니다. <미주뉴스앤조이>는 어떻게 먹고 삽니까. 기자들이 먹고 살 수는 있는 겁니까. 저한테 이렇게 물어봅니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 이것은 우리를 당혹스럽게 만듭니다. 

교회 개혁 운동을 하다 보면, 황당한 얘기를 듣습니다. 개혁을 팔아서 장사해 먹는다는 얘기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특히 우리를 알만한 분이 이런 얘기를 하면, 정말 상처가 됩니다. 여러분도 이런 비난을 받을지 모릅니다. 잘 이겨 내시기 바랍니다. 이런 사람들은 우리에게 예언을 하지 말라고 하지 않습니다. 다만 여기서 하지 말라고 합니다.

제가 세습 반대 운동을 할 때 제일 황당했던 말이 있습니다. 세습을 반대한다는 사람의 말입니다. 우리는 모든 세습을 반대하는 게 아닙니다. 시골에 있는 가난한 교회는 아들에게 물려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형교회는 아닙니다. 가톨릭은 교황이 있는데, 우리 개신교는 목황이 있습니다. 가톨릭은 한 분밖에 없는데, 개신교는 목황이 정말 많습니다.

'하나님 앞에 바짝 엎드리자'

저는 언덕교회에서 목회하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목회하기 딱 좋은 곳입니다. 아무도 제 말을 듣지 않습니다. 저 역시 한 표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곳에서 목회하는 건 힘들지만, 진짜 좋습니다. 하나님을 철저하게 의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권위로 다가가는 게 아니라, 하나님 말씀으로 진실로 교인들에게 다가갈 수 있을 때까지 바짝 엎드려 목회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뿐만 아니라, 교인들 앞에서도 바짝 엎드려야 합니다.

여러분, 기억하십니까. 모세가 12명의 정탐꾼을 보냈는데, 10명이 와서 부정적인 얘기를 합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모세를 원망합니다. 왜 우리를 여기까지 데려와서 고생시키느냐고 말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과 모세를 제외한 사람들은 모두 모세를 원망합니다. 그 때 모세의 마음을 아실 수 있습니까. 백성들 앞에 바짝 엎드린 그 마음을 느낄 수 있겠습니까. 저는 사실 그런 현실에서 목회하는 것이 좋습니다. 모세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세 번째로는 권위로 누르는 것입니다. 본문에 보니까, '다시는 여기에 나타나서 예언을 하지 마라. 이곳은 임금님의 성터요, 왕실이다. 여기는 왕이 와서 예배드리는 성소인데, 네가 무슨 권위로 여기 와서 그런 허튼 소리를 하느냐'하는 얘기입니다. <미주뉴스앤조이>에서 일하다 보면, 그런 얘기를 많이 듣습니다. 너희들이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냐. 노회의 허락을 받았느냐, 총회의 허락을 받았느냐, 그리고 하나같이 하는 말씀이 '우리 교회에 당신들보다 훨씬 똑똑한 사람이 많다'고 얘기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권위가 아니라, 인간이 쌓아놓은 권위로 압박해올 때 잘 이겨 내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이겨 내야 합니까. 소명이 있어야 합니다. 아모스처럼 하나님께로부터 소명을 받았다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이 일을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부르셨다하는 소명이 있어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이 말씀을 붙잡았으면 좋겠습니다.

교회 개혁 운동을 하면,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저도 배짱이 커서, 배포가 커서 이런 일을 하는 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 개혁 운동은 기약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하루를 천년 같이 기다리고, 천년을 하루같이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이 일을 하면서 당장 성과가 나오길 기다리십니까.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역사를 보면, 그런 일이 있습니다. 베를린 장벽이 하루아침에 무너질지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러나 그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장기전을 하시려면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더라도, 끝까지 해야 합니다. 패역한 교회 지도자들이 <미주뉴스앤조이>의 목소리를 듣고, 돌아오지 않더라도, 끝까지 해야 합니다.

하루를 천년같이 기다렸다는 얘기는 그만큼 간절했다는 얘기입니다. 아무런 성과도 없이 천년 같은 하루가 지났습니다. 주님은 그 천년을 하루가 지났다고 생각하십니다. 실제로는 천년이 지났는데, 하루밖에 안 지났다고 생각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진실로 교회를 개혁하겠다고 하면, 막막합니다. 앞이 캄캄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직업의식으로는 안 됩니다. 소명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매일매일 새롭게 우리 스스로 확인해야 합니다. 오늘 이 자리가 그런 의식을 확인하는 자리가 되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이 길을 가려면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초지일관 충성스럽게 길을 가야 합니다. 주변에서 '하지 마라'고 해도 기죽지 마십시오. 눈치 보면서 해야 할 얘기의 수위를 낮추지 마십시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이 길을 가십시오. 예언자는 당대와 불화하고, 미래와는 화해합니다. 저는 아모스를 읽을 때마다 가슴이 뛰고 동지의식을 느낍니다. 아모스의 동지가 된 셈이지요. 아모스가 몇 년 만에 동지를 얻었나요. 수 천 년 만입니다.

한 쪽에서는 이제 그만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그만해야 합니까. 그럴수록 더 선명하게 더 분명하게 외칠 수 있는 <미주뉴스앤조이>가 되길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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