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돌풍 '킹 목사의 꿈' 눈앞
오바마 돌풍 '킹 목사의 꿈' 눈앞
  • 류재훈
  • 승인 2008.04.04 13: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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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민권운동 상징' 마틴 루터 킹 서거 40주기…미국 사회 인종갈등 역풍은 여전

흑인 주지사·연방의원 등 1만 명 '햇빛'…25% 빈곤층, 70% 고교 퇴학은 '그늘'

   
 
  ▲ 마틴 루터 킹 목사.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의 중심가에 위치한 로레인 모텔 306호실은 40년 전인 1968년 4월4일 오후 6시1분에 시간이 멈춰 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이 객실 발코니에서 한 백인이 쏜 총에 맞아 쓰러졌다. 국립인권박물관이 된 역사의 현장은 그가 마시다 남긴 커피까지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살아 있다면 79살이 됐을 킹 목사는 엄청나게 변화한 지금의 미국 사회를 어떻게 평가할까? 최초의 흑인 대통령을 꿈꾸는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 등장 등 흑인 정치력의 성장은 대표적인 긍정적 변화다. 1965년 300여 명에 불과하던 흑인 선출직은, 현재 주지사와 연방 상·하원의원, 대도시 시장 등 1만여 명에 이른다. 여러 제도적 개선과 흑인 중산층의 증가도 눈에 띈다.

그러나 최근 오바마의 담임목사인 제레미야 라이트 목사의 설교 파문에 대한 흑백 간 인식차가 보여주듯, 흑백갈등은 여전하다. 킹 목사가 설립한 비폭력흑인인권운동 단체 '남부기독교지도자협의회'(SCLC)의 찰스 스틸 의장은 "킹 목사가 지금 살아 있다면 여전히 인종주의적이고 오히려 나빠진 상황에 실망했을 것"이라며 "인종주의는 잠재의식적이며, 체제 안에 뿌리내리고 있다"고 말했다.

뉴욕·로스앤젤레스·시카고·워싱턴 등 대도시의 흑인 구역은 범죄와 마약, 빈곤의 게토가 됐다. 킹 목사 사망 직후 일어난 인종 폭동으로 불탄 흑인 구역 가운데 아직도 복구되지 않은 곳이 있을 정도다. 백인들은 물론, 흑인 중산층들도 대도시를 등졌다. 일자리도 찾지 못한 흑인들은 가난과 마약에 찌들어 슬럼가를 배회하고 있다.

통계는 제도적 개선의 무력함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빈곤선 이하 인구가 백인에선 8%인 반면, 흑인에선 4분의 1에 이른다. 흑인 10명 가운데 7명은 고등학교도 마치지 못한다. 뉴저지주의 경우, 학교를 그만두는 흑인 학생이 백인의 60배나 된다. 대학생 흑인보다 수감자 흑인이 더 많다. 여기에 40년 전과는 달리 미국의 최대 소수계로 등장한 중남미계(히스패닉 4,400만 명)는, 흑백으로 한정됐던 인종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이들은 흑인의 경제적 경쟁자이기 때문이다.

로레인 모텔의 주차장에서 총성을 듣고 현장에 달려갔던 인권운동가 제시 잭슨 목사는 대도시 흑인들의 상황을 "일급감옥, 이류학교"라며, 킹 목사의 과업은 "아직도 미완"이라고 단언했다. 하지만 그는 "여성에 투표하는 남성, 흑인에게 투표하는 백인들을 보면서 미국의 재탄생을 보고 있다"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오바마 바람을 통해 킹 목사가 죽기 전날 연설에서 언급한 '약속의 땅'을 향해 한 발짝씩 다가가고 있다는 것이다.

류재훈 / <한겨레신문>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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