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교, 구약학 종신교수 정직
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교, 구약학 종신교수 정직
  • 박지호
  • 승인 2008.04.07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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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들과 교수들의 엇갈린 결정…재학생·졸업생 '술렁'

미국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이하 WTS) 이사회는 지난 3월 26일 구약학의 Peter Enns 종신교수 직을 정지하기로 했다. Enns 교수가 WTS의 종신교수로 승격된 지 2년 만이다.

WTS 이사회는 "(Enns 교수의) 인격적인 문제에 근거한 것이 아니며, (Enns 교수가 쓴)  <Inspiration and Incarnation : 성육신의 관점에서 본 성경 영감설>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서 벗어났다고 위원들의 상당수가 판단했다"면서 "신학교의 덕을 세우기 위해 Enns 교수를 정직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Enns 교수가 쓴 <성육신의 관점에서 본 성경 영감설>은 출간 이후(2005년)부터 논란을 불렀다. 복음주의 내에서도 Enns 교수의 관점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간간이 있었지만, 본격적인 논쟁은 WTS 교수들 사이에서 2년 넘게 이어졌다. 급기야 이 문제를 놓고 교수들을 중심으로 특별 모임이 구성되었고, 작년 12월 6일에는 찬반 표결에 들어갔다. 결과는 12대 8로, 12명의 교수가 Enns 교수의 손을 들어주면서 일단락되는 듯싶었다. 

하지만 이사회는 Lillback 총장에게 교수들 간의 신학적 논쟁에 관련된 보고서 제출을 요구했고, 총장이 200페이지 분량의 보고서를 만들어 이사회에 제출했다. 이사회는 이를 토대로 표결을 거쳐 Enns 교수를 정직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Enns 교수의 교수직 박탈 여부는 이사회 결정 이후 구성된 인사위원회에서 다룰 예정이다.

   
 
  ▲ 미국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는 Peter Enns 구약학 교수가 쓴 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서 벗어났다고 판단해 정직 처리했다. (WTS 홈페이지 화면 캡쳐)  
 
무엇이 문제였나

Enns 교수의 일차적인 정직 사유는 <성육신의 관점에서 본 성경 영감설>이라는 본인의 저서 때문이다. 그 책에서 Enns 교수는 성육신 패러다임으로 구약 성경을 해석하는 새로운 틀을 제시했다. 하지만 Enns 교수를 반대하는 측에서는 Enns 교수의 관점이 웨스트민스터신학교의 성경 해석 전통을 벗어났다고 여겼다. 

WTS에서 석사 과정을 마치고 Enns 교수의 책을 번역했던 김구원 씨(시카고대학 고대근동학 박사 과정)는 "Enns 교수는 성경의 인간적 특징을 설명하기 위한 방법으로 성육신 비유를 사용했다. 그리스도가 100% 인간인 동시에 100% 하나님이신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도 100% 하나님의 말씀인 동시에 100% 인간의 말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말씀이 '성육신'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성경이라는 주장인데, 천상의 언어로 기록된 것이 아니라 당시 계시의 대상이었던 이스라엘의 언어, 문화, 세계관을 통해 주어졌다는 말"이라고 설명했다. (관련 기사 보기)

김 씨는 "이런 내용들 때문에 Enns 교수가 '성경의 인간적 특징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성경이 하나님 말씀임을 강조하지 않았다'고 비판 받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Enns 교수는 자신의 책에서 성경의 신적인 특징을 좀더 강조하지 못한 점에 대해 유감이지만 , 자신의 책은 처음부터 복음주의자들의 성경관에서 간과되어온 성경의 인간적인 특징들을 다루고 그것을 기존의 복음주의 성경관과 조화시키려는 것이었음을 상기시켰다"고 김 씨는 설명했다.

   
 
  ▲ Peter Enns 구약학 종신교수. (WTS 홈페이지 화면 캡쳐)  
 
의미와 파장

학교 측의 이와 같은 결정에 학생들이나 졸업생들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WTS 학생들과 동문들은 'Save Our Seminary'라는 웹사이트를 개설해 이번 사건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개진하고 있고, "WTS가 편협하고 편향된 신학적 관점 대신 창의적이고 통전적인 개혁 신학을 유지하도록 하자"는 취지의 서명운동을 벌이는 등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Enns 교수가 쓴 내용은 강의하던 내용을 책으로 정리한 것일 뿐이고, 성경해석학 분야에서도 어느 정도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기에 새로울 것이 없는 관점이며, 해당 분야 교수들도 Enns 교수의 신학적 관점을 지지했기 때문에 더욱 당혹스럽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또한 Enns 교수를 지지한 나머지 교수들도 학교 측이 다른 경우에도 동일한 잣대로 처리할 것이냐는 물음이 자연스럽게 따라붙어 또 다른 파장을 예고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한편, 교수들의 판단이 12대 8로 나뉜 것에 주목하는 시각도 있다. Enns 교수의 손을 들어주었던 12명의 교수 중 대다수가 성경해석학 분야의 교수들이었고, 반대편에 섰던 8명은 조직신학과 역사신학 쪽 교수들이었기 때문에, 전공에 따라 입장이 나뉘면서 학교가 분열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도 나왔다.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이사회와 교수들의 결정이 엇갈리면서 정치적으로 총장과 이사회의 입김이 세졌고, 학내에 자유로운 학문 연구 활동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 아니냐는 염려도 나오고 있다. 또 이사회가 웨스트민스터신학교의 정체성과 신앙 정신을 과연 제대로 이해하고 있느냐는 의문도 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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