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육신의 관점에서 본 성경 영감설], 어떤 내용이 문제인가?
[성육신의 관점에서 본 성경 영감설], 어떤 내용이 문제인가?
  • 김구원
  • 승인 2008.04.07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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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자 김구원 씨, "논쟁의 출발은 '성경이 어떤 책인가'에 대한 질문에서 비롯"

지금 웨스트민스터신학교 홈페이지에는 피터 엔즈(Peter Enns) 교수가 정직됐다는 내용이 공지되어 있다. 엔즈 교수는 이번 봄학기가 끝나는 5월말을 기점으로 교수직의 모든 특권을 한시적으로 박탈당하게 된다. 정직(Suspension)은 해고와는 달리 한시적인 것이지만, 이번 결정이 해고에 이르는 수순임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 Peter Enns 교수가 쓴 <Inspiration and Incarnation : 성육신의 관점에서 본 성경 영감설>.  
 
2년 전 엔즈 교수를 종신교수로 승진시킨 웨스트민스터신학교 이사회가 왜 이번에는 18대 9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엔즈 교수의 정직 결정을 내려야 했을까? 사람 사는 것이 다 그렇듯이 이번 사태도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필자와의 이메일을 통해 엔즈 교수도 현 사태가 단지 2005년에 출판된 자신의 책 때문만은 아닌 것으로 확인해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3월 26일 이사회의 발표와 4월 1일의 특별 채플 시간에 열린 이사회와 학생회 간의 대화에서 분명해진 것은,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엔즈의 최근 저서 <Inspiration and Incarnation : 성육신의 관점에서 본 성경 영감설>가 이번 사태의 진원지라는 사실이다. 이 시점에서 논쟁의 중심에 서 있는 <성육신의 관점에서 본 성경 영감설>의 내용 가운데 어떤 것들이 많은 복음주의자들의 심기를 건드렸는지를 묻는 것이 현재로선 가장  적절한 질문인 듯싶다. 

현재 웨스트민스터신학교 동문들의 블로그에는 엔즈 교수의 책 내용을 둘러싼 신학적 논쟁이 한창이다. 엔즈 교수를 '이단'(Heterodox)라고 부르는 사람에서부터 그의 책이 신앙의 자유함을 느끼게 해주었다는 사람까지, 다양한 입장과 반응이 쏟아져나오고 있다. 이번 사태를 비교적 관심 있게 지켜본 필자는 다양한 논쟁을 통해 드러난 <성육신의 관점에서 본 성경 영감설>과 관련한 신학적 논점들을 다음의 세 가지로 정리해보았다.
 
첫째, 비판가들은 엔즈 교수가 성경의 인간적 특징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성경이 하나님 말씀임을 강조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것은 성경이 '정확무오한 영감된 말씀'이라는 것을 실제적으로 부인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지적한다.

웨스트민스터신학교 총장 릴백 박사(Peter Lillback)는 지난 4월 1일 특별 채플 시간에 엔즈 교수의 책이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제1장을 위배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엔즈 교수의 책이 구체적으로 제1장의 어느 부분을 위배하는지에 대한 언급은 피했으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장이 하나님 말씀으로서의 성경의 본질과 권위를 강조하는 반면 성경의 인간적 특징에 대한 별다른 언급이 없다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성육신의 관점에서 본 성경 영감설>에 대한 릴백 총장(또한 이사회의 다수, 그리고 이들의 결정에 동의하는 많은 사람들)의 불만이 엔즈 교수가 지나치게 성경의 인간적 특징을 강조한 나머지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1장에 명시된 '정확무오한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성경의 본질을 강조하지 않았다는 점에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엔즈는 이런 비판에 대해 자신의 책에서 성경의 신적 특징(divine nature)을 좀 더 강조하지 못한 점은 유감이나, 자신의 책은 처음부터 복음주의자들의 성경관에서 간과되어온 성경의 인간적인 특징들을 다루고 그것을 기존의 복음주의 성경관과 조화시키려는 것이었음을 상기시켰다.

엔즈는 자신의 책 1장에서 성경의 인간적 특징들을 나열하고 그것들을 설명하기 위한 방법으로 성육신 유비를 사용한다. 성육신 유비의 핵심은 그리스도가 100% 인간인 동시에 100% 하나님이신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도 100% 하나님의 말씀인 동시에 100% 인간의 책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말씀이 '성육신'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성경이라는 주장이다. 육화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천상의 언어가 아니라, 당시 계시의 대상이었던 이스라엘의 언어와 문화, 세계관을 통해 기록되었고, 나아가 당시 이스라엘은 고대 근동 문화권의 일부였으므로 성경의 언어, 문화, 세계관이 고대 근동의 그것들과 유사성을 가지는 것은 성육신 계시의 당연한 귀결이라는 것이다. 또한 엔즈에 따르면 이런 '육화된 말씀'은 우리와 소통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에 대한 가장 확실한 증거이다. 

기존의 복음주의 성경 영감설을 부정한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엔즈는 복음주의자들이 '영감' 혹은 '정확무오'에 대한 계몽주의적 선이해를 가지고 그것에 성경을 끼워 맞추려 한다고 꼬집는다. 엔즈는 '영감' 혹은 '정확무오'라는 교리적 언어를 성경의 성육신적 실제에 근거해 정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둘째, 비판가들은 엔즈 교수의 책이 창세기의 역사성을 부인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주장한다.

엔즈는 그의 책 2장에서 '신화'를 '인생의 궁극적 문제들에 대답하는 고대인의 근대 이전의, 과학 이전의 방법'이라고 정의한 후, 창세기의 처음 부분이 그런 의미에서 신화적 성격을 가진다고 주장한다. 비판가들은 이런 설명에 대해 엔즈가 창세기 처음 부분의 역사성을 부인한다고 발끈한다.

이에 대해 엔즈는 자신의 책에서 창세기 창조 기사가 '기본적인 역사적 참조점'(basic historical referential nature)을 가진다는 사실을 좀 더 자주 강하게 강조하지 못한 점을 유감으로 생각하지만 자신이 창세기의 역사성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엔즈가 강조하는 바는 창세기에 사용된 역사 서술의 성격이다. 창세기에서 보인 역사 서술 방법은 오늘날 신문기자가 기사를 쓰듯 하나님의 천지창조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계시한 천지창조의 과정(역사적 실재)을 창세기 기자는 자신의 신화적 세계관이 반영된 문학 언어를 통해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입장에서 이런 계시의 성육신 과정이 인간과의 소통을 위해 자신을 그들의 제한적인 문화와 언어 속으로 낮추신 의도적인 사랑의 표현이었다면, 인간 저자들에게는 모국어 구사와 같이 다분히 무의식적 과정이었을 것이다. 엔즈 교수가 창세기를 '신화적'이라고 말했을 때 그의 초점은 천지창조의 역사성을 부인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의 소통을 위해 천한 인간 문화의 옷을 입기를 마다하지 않으신 하나님의 사랑에 있는 것이다.

셋째, 피터 엔즈가 비판받는 세 번째 이유는 성경의 모순적인 부분들을 조화하여 설명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엔즈 교수는 성경이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것을 성경의 본질로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비판가들은 엔즈가 구약성경의 소위 '문제'들을 지나치게 과장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장 9조에 나오는 해석 원리를 근거로 성경에 모순되어 보이는 구절들이 있다 하더라도 그들을 서로 조화되도록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때 강조되는 것은 성경의 궁극적 저자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이고 그분은 절대로 자기모순적일 수 없다는 신학적인 명제이다.

이에 대해 엔즈 교수는 성경에 다양한 신학적 목소리들이 존재하고 그들이 일종의 긴장 관계를 형성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성경이 인간의 실존과 무관한 '철학적인 개념'으로서의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구질구질한 역사에 큰 사랑으로 깊이 개입하시는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엔즈의 설명에 따르면 인생의 문제가 여러 가지로 복잡한 것처럼 그분의 역사적 계시도 단선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인간 문제에 해답으로 주신 하나님의 계시에 그런 인생의 복잡성이 반영되는 것은 계시의 성육신성에 필연적 귀결이라는 주장이다. 

따라서 성경에 내재하는 신학적 다양성은 성경이 오류임을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하나님이 우리의 못난 현실 속에 오셔서 우리와 같이 고통당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역동적인 하나님임을 증거하는 것이다. 엔즈 교수는 이런 신학적 다양성에 다소 실망하는 사람들에 대해 '서로 화해될 수 없는 세계관들'이 공존하는 성경을 주신 분이 다름 아닌 하나님 자신임을 상기시킴과 동시에 우리 신앙(혹은 신학)의 출발은 특정 도그마가 아니라 성경 말씀이어야 함을 주장한다.

이상에서 살핀 바와 같이 신학적 논쟁의 핵심에는 '성경이 어떤 책인가'라는 질문이 있다. 이 질문이 신앙 선배들의 지혜를 함축한 도그마(혹은 신앙고백서)에서 출발하는 연역적인 방식으로 대답할 것인가, 아니면 성경 본문의 자세한 관찰에서 시작하는 귀납적 방식을 택할 것인가로 엔즈 교수와 그 비판가들을 나누고 있는 것이다.

어느 한쪽이 더 옳다고 말하기 앞서 필자가 마지막으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피터 엔즈가 자신의 책에서 밝힌 저술 동기이다. 엔즈 교수는 특정 성경관을 정립하기 위한 조직신학서를 쓴 것이 아니다. 그의 저술 동기는 다소 기독교 변증적이다. 즉 사람들의 믿음을 돕기 위한 것이다. 엔즈의 서문 중 그의 저술 동기를 인용하며 이 글을 마친다.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은 현대 성서학을 공부하면 복음적인 신앙이 망가진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 다시 말해, 성경을 생동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으면서도, 또한 동시에 현대 성서학 연구가 주는 도전들 때문에 고민하며, 기존의 교회에서 주는 대답들에 그다지 만족하지 못하는 기독교인들, 나는 이들을 위해 이 책을 썼다." (<성육신의 관점에서 본 성경 영감설>, 17쪽)

김구원 /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서 목회학 석사(M. Div)를 마치고, 현재 시카고대학에서 고대 근동학과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IVP 구약사전(The Dictionary of the Old Testament: Psalms, Wisdom and Writings, forthcoming)의 기고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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