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유로 키울 것인가, 마가렛 조로 키울 것인가
존 유로 키울 것인가, 마가렛 조로 키울 것인가
  • 박지호
  • 승인 2008.04.18 12:57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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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의 한인 2세를 통해 생각해보는 진정한 아메리칸 드림

‘버지니아텍 사건 1주기 포럼’에서 주제 강연을 한 김규만 교수(코네티컷대학)는 “어떤 리더십을 가진 자녀를 키우고 싶은가”라는 화두를 던지면서, 각기 다른 모습으로 성공한 한인 2세 두 명을 소개했다. 바로 존 유 교수와 마가렛 조 씨다. 그들의 성공은 어떻게 다를까. 우리의 자녀가 어떤 모습으로 성공하길 바라는가. 존 유인가, 마가렛 조인가.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자.

아메리칸 드림의 전형, 존 유 교수

   
 
  ▲ 존 유 버클리대학 법학과 교수. (출처 : 버클리대학 홈페이지)  
 
존 유 교수(버클리대학교)는 외적인 조건으로만 따진다면 그야말로 입지전적인 성공을 거둔 인물이요, 아메리칸 드림의 전형이다. 1967년 서울에서 태어나 부모를 따라 한 살 때 미국으로 건너와 하버드대학을 학과 수석으로 졸업했다. 연이어 예일대학 로스쿨에 진학해 24세 때 예일대 법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을 정도로 뛰어난 수재였다. 졸업 후 클러런스 토마스 연방 대법관 서기를 거쳐 2001년부터 2003년까지는 미국 법무부에 몸을 담았고, 35세에는 법률 담당 차관보까지 맡는 등 출세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유 교수에게는 포로 고문과 인권 탄압의 배후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그가 법무부에서 일할 당시 미군이 포로를 고문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보고서를 작성해, 부시 행정부의 고문 사용의 법적 근거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이후 그는 “학자적 양심을 버리고 정부의 범죄를 합리화한 비양심적인 지식인”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됐다.

이로 인해 존 유 교수는 학생들과 인권 단체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아오고 있다. 2004년에는 버클리대학교 학생 수백 명이 유 교수의 사퇴를 촉구하며 탄원서를 돌리고 퇴진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전미법률가협회는 "전범을 신성한 학교에서 떠나게 해야 한다"며 버클리대학 측에 유 교수를 해임할 것을 건의하기도 했다.

이런 반응에 유 교수는 크게 개의치 않는 듯 자신의 정당함을 주장하고 있다. 다음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 내용 중 일부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지키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틀림없이 믿는다. 부시 행정부는 대테러전에서 올바르고 합법적인 선택을 했다. 법과 정책 사이에는 엄연한 구분이 있다고 믿는다. 법률가의 일은 법의 의미를 해석하고 민간 고객이든 선출직이든 상관없이 모든 공직자에게 어떠한 정치적 선택이 법에 의해 허용된 것인가를 해석해주는 것이다. 미국은 나와 가족에게 많은 축복을 주었으며, 나는 공무원으로 국가에 봉사함으로써 미국에 이를 갚을 기회를 갖는 것에 감사하고 있다.”

   
 
  ▲ 존 유 교수의 해임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는 버클리대학 학생들. (출처 : www.indybay.org)  
 
고등학교 중퇴생 마가렛 조


존 유 교수와는 상반된 성공을 거둔 또 다른 한인 2세가 있다. 마가렛 조다. 조 씨는 미국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아시아계 코미디언으로 불린다. 1968년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난 한인 2세인 그녀는 일류 대학은커녕 고등학교마저 중퇴했다. 이후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갔지만 얼마 뒤 코미디 공연에 빠져들었다. 때문에 집안에서 조 씨는 내놓은 자식이나 다름없었다. 여느 한인 가정이 그렇듯 조 씨의 부모도 그녀가 좋은 대학교에 들어가 번듯하게 성공하길 원했기 때문이다.

조 씨는 뚱뚱한 외모에 동양인이라는 약점까지 가지고 있어 미국 연예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기엔 한계가 많았지만,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고 소수 민족에 대한 미국 사회의 고정관념을 허무는 일에 자신의 재능을 사용했다. 특히 코미디의 주제로 인종 문제와 관련한 소재를 거침없이 다뤘다. 조 씨는 과감한 코믹 연기로 아시아계 여성이 말없고 내성적이라는 고정관념을 여지없이 깨뜨려왔고, 한국인 어머니의 이상한 영어 발음이나 억척스런 행동 등을 코미디의 주요 소재로 사용해 아시아계 이민자의 삶의 일상을 그려냈다.

   
 
  ▲ 미국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아시아계 코미디언으로 불리는 마가렛 조 씨. (출처 : 마가렛 조 개인 홈페이지)  
 
“텔레비전을 보면 아시아인들은 존재하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언론을 통해 스스로를 그려볼 수가 없었기 때문에, 아시아인은 아예 존재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거울을 통해 자신을 볼 수가 없을 때, 자신이 흡혈귀와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과 같은 상황이죠.”
(<미국의 소리>와의 인터뷰 중에서)

백인 가정의 일상사를 다룬 작품은 말할 것도 없고, <코스비 가족>이라는 시트콤으로 흑인 가정의 이야기도 미국 사회에 친근하게 전달됐지만, 아시아계 이민자들의 삶을 그려낸 시트콤은 거의 드물었다. 조 씨는 94년 LA를 배경으로 아시아계 이민자 가정에서 일어나는 일상을 시트콤으로 만든 <All American girl>에 주연으로 출연하면서 미국인의 뇌리에 각인됐다. 하지만 아시아계 가정의 삶의 일상이 미국 사람에게는 생경했고, 자신들의 일상이 여과 없이 드러나 아시아계 미국인들도 거부감을 느꼈다. <All American girl>는 안팎의 비난을 받고 조기 종영했지만, 지금껏 한 번도 다루지 않았던 아시아계 가정의 평범한 삶의 일상을 다뤘다는 것에 그 의미가 적지 않았다.

조 씨는 탁월한 통찰력으로 한국계 미국인이 겪는 삶의 애환을 뛰어나게 표현해 수많은 사람의 찬사와 공감을 이끌어내기도 했고, 성적 소수자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활동도 활발히 벌였다. 그래서 CNN에서 Person of the week(금주의 인물)로 조 씨를 자세히 소개하기도 했고, 2003년에는 아시안 법률 교육재단(AALDEF)이 주는 '행동 정의상'을, 2004년에는 민권연맹(ACLU) 남가주 지부에서 주는 인권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존 유 교수가 미국의 전쟁과 포로 고문을 정당화하는 법률적 토대를 제공해, 미군이 이라크에 맘 편히 폭탄을 쏟아 붓도록 했을 때 마가렛 조는 이라크에 납치된 김선일 군의 허무한 죽음에 몸서리치며, 그와 함께 고통을 나눴다. 2004년 6월 고 김선일 씨가 살해되기 직전과 직후에 조 씨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남긴 글의 일부다.

“김선일 씨가 이라크에 인질로 잡혀 있답니다. 그의 나이 33세. 그래서 나는 그의 ‘누나’입니다. 한국 문화에서는 누구든 누나 혹은 형이라고 부릅니다. 서열이 이름보다 중요하기 때문이지요. 나는 어제 그가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것을 보고 비통함과 좌절감에 휩싸여 함께 울었습니다. 그는 공포에 질린 모습을 숨김없이 드러냈습니다. 그 무뚝뚝한 한국 사람이 말입니다. 한국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두려움을 고스란히 표현했습니다. 그의 두려움에 찬 처절한 외침은 충격적이고 소름이 끼치도록 무서웠습니다. 그토록 두려웠던 것입니다. 나도 두렵습니다. (김선일 씨가 살해당한 후) 그들이 죽였습니다. 나는, 우리는, 그리고 모든 인류는 실패했습니다. 죽을 만큼 슬픕니다. 망할 놈의 전쟁. 이번 주는 글을 쓰지 않을 것입니다. 애통함에 빠졌습니다. 어둠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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똘이아빠 2008-04-24 20:04:45
아내와 이 기사를 읽다 뉴조가 무섭다는 생각을 이야기를 했습니다. 세상에 대충 눈감고 성공하면 하나님께도 영광이라는 자식에 대한 속물근성을 여지없이 짓밟아 버리시니.. 악한 것에 분노하되 가슴 속 눈물은 잃지 말라는 최백호의 '시인과 군인'이라는 노래를 어린 아들에게 자주 불러줬었는데 요즘은 좀 뜸했었습니다. 제 속물근성 때문에요. 두렵지만 오늘부터 다시 불러줘볼까 합니다.

juno 2008-04-22 15:52:08
고통과 슬픔을 나누는 것이 값싼 자기연민일 수 있고, 완고한 자기신념도 파괴적 독선이 되기도 합니다. 본능적인 연민은 동물적 속성이기도 하며 냉철한 가치추구는 문명파괴의 원흉이기도 합니다. 자녀를 양육하는데 이들 2사람이 무슨 표상이 될수 있다는 것인지요. 자신의 사랑이나 가치를 증명하려고 남을 해치거나 비난하지 않는 인간으로 키우면, 그게 성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