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끼리 봐주는 게 '프레스 프렌들리'?
친구끼리 봐주는 게 '프레스 프렌들리'?
  • 이한기
  • 승인 2008.05.01 15: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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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관, 양심 있다면 깨끗하게 물러나라

   
 
  ▲ 당선인 시절인 지난 2월 14일,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 인사 결과 발표를 마친 후 이동관 대변인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 제공 인터넷공동취재단)  
 
"정당하게 축적한 부까지 비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지난 2월 22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 이동관 대변인은 장관 내정자들의 부동산 과다 보유 논란과 관련해 이같이 항변했다. 또한 그는 "자유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 체제에서 단순히 재산이 많다는 이유로 국무위원 자격이 없다고 주장한다면 이는 지나친 흑백논리"라며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능력과 국가관"이라고 주장했다.

맞는 말이다. 정당하게 축척했다면 부자라고 해서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이 말을 뒤집어보자. "부당하게 축적한 부가 비난받는 것은 당연하다."

역시 맞는 말이다. 더욱이 국민의 공복을 자처하는 고위 공직자, 권력의 핵심에 있는 청와대나 정부 내각에 몸담는 사람일 경우 더욱더 철저한 자기 관리가 요구된다. 부당하게 축적한 부에 이어 권력까지 손쉽게 움켜쥘 수 있는 사회라면 국민들이 비참해진다. 그 나라의 앞날도 '뻔할 뻔' 자다.

이 대변인의 '강부자 내각 구하기'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춘호 여성부 장관·박은경 환경부 장관·남주홍 통일부 장관 후보자가 임명도 되기 전에 낙마했다. 이후 부적절한 논공행상으로 논란이 된 이웅길 애틀랜타 총영사 내정자도 물러났다. '강부자 내각'보다 심각한 '강부자 수석' 논란 속에서 논문 표절과 땅 투기 의혹, 자경 확인서 위조 건으로 박미석 사회정책수석이 사퇴하는 사태로 이어졌다. 정권이 출범한 지 불과 세 달도 안 된 시점에서 벌어진 일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이러한 자격 미달의 청와대 고위 공직자가 '고구마 넝쿨 캐듯이' 딸려 올라오고 있다는 것이다. '박미석 사태'에 이어 꼬리말 잇듯 '이동관 사태'가 불거졌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절대 농지를 취득하고도 직접 경작을 하지 않아 농지법을 위반했다. 이어 농지 취득 과정에서 허위로 작성한 위임장을 첨부한 '가짜 농업경영계획서'를 제출했다. 뿐만 아니라 이 사실을 특종 보도할 수 있었던 <국민일보>의 편집국장과 사회부장에서 여러 차례 전화해 보도를 막았던 사실까지 드러났다. 할 수 있는 모든 일, 갈 데까지 간 것이다.

이런 사실이 알려진 뒤 내놓은 이 대변인의 해명이 걸작이다.

"(<국민일보>) 변재운 편집국장은 나와 언론사 입사 동기로 6개월 동안 산업 시찰을 다니고 교육을 받았던 친한 사이다. 이런 사정을 제가 설명하고 속된 말로, 친구끼리 하는 말로 '아, 좀 봐줘' 그랬다….

'외압'이라고 하는데, 청와대 대변인이 하는 게 외압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인지상정으로 기자 생활 해본 상식과 도리로 호소한 것으로, 위협을 하거나 협박한 적은 없다…. 내 개인적인 문제도 문제지만 대통령 모시는 입장에서 이렇게 또 유사한 일이라도 문제가 되면 송구스럽다고 부탁했던 것이다."

외압이나 협박보다 더 질이 나쁜 '사적 인연'을 이용한 공적 문제 덮기를 시도한 것이다. '대통령을 모시는 입장에서 송구스러워 부탁했다'는데, 만약 이 같은 사실이 세상 밖으로 알려지지 않았다면 끝까지 시치미 떼고 앉아 얼굴에 분칠하며 '청와대의 입' 노릇을 하려 했다는 것 아닌가. 결과적으로 자기 허물을 덮기 위한 '프레스 프렌들리'였던 것이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인수위 대변인 시절 그는 이와 같은 말도 했다. "검증팀이 한 달 넘게 거의 매일 철야 작업을 하며 (장관) 후보군들을 철저히 검증해 왔으며, 그 과정에서 불법성 여부, 파렴치 행위, 치명적인 도덕적 결함 등을 적발해 상당수 걸러냈지만 완벽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미국 등 선진국의 사례를 참고해 하루 빨리 선진 시스템을 갖추도록 제도적 보완을 해나겠다."

'완벽하지 못한 검증'의 덫에 이동관 대변인 본인이 걸렸다. 완벽하게 검증이 됐다면 '박미석 사태'는 물론 '이동관 사태'도 없었을 것이다. 정권 출범 직전 인수위 대변인 시절에 했던 말들이 고스란히 부메랑처럼 자신에게 돌아왔다.

참여정부의 기자실 정책을 '대못 박기'로 규정하며 맹비난했던 이명박 정부가 더욱 퇴행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목소리도 높다. YTN 돌발 영상 파문, 금융위원회와 한미 정상회담 때의 비보도 요청 논란 등은 밖으로 알려진 일이지만, 브리핑한 내용을 '통째로' 비보도 요청하는 일이 적지 않다고 한다. 100일도 안 된 이명박 정권의 '프레스 프렌들리'의 또 다른 모습이다. 그 핵심에 이 대변인이 자리 잡고 있다.

이동관 대변인에 대한 언론들의 프로필 소개를 보면 대개 '순발력' '친화력' '정치적 감각' 등의 단어들이 나열돼 있다. 지금까지 확인된 바로는 이 대변인의 이 같은 능력이 나라가 아닌 나를 위해 쓰인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떨칠 수 없다. 그리고 계속되는 이명박 정부의 변명에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이제 할 욕도 다 떨어졌다"는 냉소가 퍼지고 있다.

지난 4월 24일 청와대 수석들의 재산이 공개됐다. 이 대변인의 재산은 15억여 원. 그는 당일 기자들과 만나 "하여간 죄송하다, (저의) 재산이 적어서 언론인의 얼굴에 먹칠을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제가 30억~40억 원 있었으면 언론인들의 사기에도 좋았을 텐데"라고 웃어넘겼다. 며칠이 지난 지금, 이동관 대변인은 재산 액수가 아니라 부도덕한 재산 형성 과정과 거짓말 때문에 언론인의 얼굴에 먹칠을 한 꼴이 됐다.

이 대변인에게 일말의 양심이 있다면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공직에서 깨끗하게 물러나는 게 도리다. '가장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말이 있다. 물러난 뒤에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꼼꼼하게 복기해도 늦지 않다. 이 대변인의 '순발력'과 '정치적 감각'이 어떻게 발휘될 지 지켜볼 일이다.

이한기 / <오마이뉴스> 뉴스게릴라본부장
* 이 글은 <뉴스앤조이>와 기사 제휴 관계를 맺고 있는 <오마이뉴스>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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