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위험하다
북한이 위험하다
  • 이영훈
  • 승인 2008.07.23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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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다시 예고된 굶주림

"맥도날드 감자튀김 조심하세요." 지난 2006년 6월 7일, 서울 환경연합은 서울 종로에 있는 한국 맥도날드 본사 앞에서 감자튀김에 함유된 발암 가능 물질인 아크릴아마이드에 대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현수막 퍼포먼스를 벌였다.

한편, 북한에서 올해 열일곱 살인 상학이는 너무 배가 고픈 나머지 친구들과 감자를 훔쳐 먹겠다고 감자굴에 몰려갔다. 친구들에게 망을 보라하고 감자굴에 들어갔던 상학이는 끝내 올라오지 못했다. 감자의 독성이 강해 숨쉬기 어렵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잽싸게 가지고 나오면 된다고 생각한 것이 화근이었다. 상학이의 시신은 보름이 지나서야 꺼내졌다. 상학이는 두 손에 감자를 꼭 쥐고 있었다.

한국과 북한에서 같은 감자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지만, 의미가 다르다. 남쪽에서는 건강을 위해 되도록 멀리해야 하는 것이라면, 북쪽에서는 목숨을 걸고 구해야만 하는 절박한 생명줄이다. 국제 사회는 이미 10년 전 백만 명이 넘는 아사자가 발생한 북한이 올해 다시 식량난으로 곤경에 처해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북한의 식량난, 실상은 어떠한가?

지난 해 12월, 세계식량계획(WFP)은 2008년 한 해 동안 지구촌이 지원을 집중해야 할 일곱 개 나라 가운데 하나로 북한을 꼽았다. 토니 밴버리 아시아 담당국장은 "지난해 8월 물난리로 북한의 식량 생산량이 급격히 떨어졌으며, 올 한해 650만 명의 북한 주민이 식량난에 시달릴 것"으로 내다보았다. 식량난의 원인은 무엇이며 북한 주민들은 어떠한 고통을 겪고 있는가.

북한의 식량난 원인

강영식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사무총장은 현재 북한의 식량 사정이 지난 1990년대 중반같이 급속도로 악화된 원인을 다음의 세 가지로 지적한다. 

첫째, 지난해 대규모 수해 피해를 입은 북한은 자체 식량 생산량이 10% 이상 감소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지적한대로, 지난해 북한의 곡물 생산량은 300만 톤으로, 외부에서 지원받은 곡물의 양을 70만 톤으로 볼 경우 총 곡물 공급량이 370만톤 에 불과하다. 대규모 기근 사태가 발생한 지난 90년대 중반의 북한 곡물공급량이 400만 톤 수준이었음을 짚어 볼 때 이는 매우 부족한 수치다.

둘째, 외부로부터 식량을 구입하는 비용이 높아 졌다. 국제 곡물 가격은 급등하고 있고, 식량의 주요 수입국이었던 중국은 북한에 대해서도 수출 관세와 쿼터제를 도입해 버렸다.

셋째, 남한을 비롯한 국제 사회의 지원이 중단되거나 불확실해졌다. 지난 8년간 남한과 국제 사회가 지원한 식량은 매년 50만 톤으로, 외부의 지원이 없다면 주민에 대한 배급이 중단되면서 식량 가격은 가파른 상승세를 보일 수밖에 없다. 작년 이맘때 북한 시장에서 쌀 1kg의 가격은 1,000원이었지만 현재 2,200원을 넘어서고 있다.

식량난 상황: 제 2의 고난의 행군

사단법인 '좋은벗들' 이사장 법륜 스님은 북한 주민의 식량 소비 단계를 쌀밥→옥수수와 쌀을 반씩 섞기→옥수수밥→옥수수죽→풀죽→옥수수겨로 만든 죽→벼뿌리 죽이나 소나무 껍질 죽의 여섯 단계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이는 실제 지난 90년대 중반 급격히 아사자가 발생한 상황에서 발견된 과정이다. 그는 현재 북한의 상황이 옥수수죽 단계를 지나 영양실조가 심각하게 번지는 '풀죽을 먹는 단계'로 다가서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은 비단 일반 주민들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딸을 살리기 위해 탈북, 지난 2004년 남쪽에 온 한 여성은 "아버지는 군당 고위 관리였음에도 배급이 끊겨 98년에 영양실조로 돌아가셨다. 얼마 전에 북쪽에 있는 엄마한테서 편지가 왔는데 대학생 조카는 못 먹어 얼굴에 눈밖에 보이지 않고, 그렇게 좋아 보였던 언니는 우리 아이 몸무게도 되지 않는다. 옛날 남한 대통령들은 다만 얼마라도 지원해줘서 먹고 살았다고 북에 있는 언니가 그랬다"며 흐느꼈다.

식량난의 가장 큰 피해자는 어린 아이들과 임산부들이다. 아이들은 늪지에 사는 개구리를 다 잡아 먹고 올챙이를 조리로 떠서 잡아먹다가 올챙이 독에 걸려 죽는 일도 생겼다. 삼봉 지역에서는 개구리가 사라진 뒤 나타난 두꺼비를 구워 먹은 여섯 명의 아이들이 두꺼비 독에 걸려 하룻저녁에 다 죽어갔다.
유엔아동기금(UNICEF)은 북한 어린이의 37% 가량이 만성적인 영양실조 상태이며 산모 3명 가운데 한 명이 영양실조와 빈혈에 시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더불어 탈북자들은 식량난으로 인한 사회적 문제도 제기한다. 당장 한 끼도 먹지 못해 죽어가는 상황에서, 남을 보살필 생각은커녕 서로 속이고 훔치고 죽이기까지 하는 등 험악한 사회 분위기가 북한 사회를 지배하고 있음을 한탄하고 있다.

식량 지원이 북한 체제를 유지시킨다?

지난 6월 16일, 탈북자 20명과 대북 인권 단체 '좋은벗들'은 기자회견을 열어 식량 20만 톤을 북한에 보낼 것을 이명박 정부에 호소했다. 이들의 목소리는 "대북 식량 지원이 김정일 정권의 체제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고 있다"고 주장하는 다른 탈북자 단체들과는 달랐다. 한 탈북자는 "김정일 체제를 생각한다면 쌀 한 톨 보내고 싶지 않다"면서도 90년대에 300여만 명의 동포가 굶어죽은 아픔이 재현되는 상황을 생각한다면 식량 지원이 이루어 져야 한다고 언급했다.

아울러 군 농촌경영위원회에서 근무했다는 그는 북한으로 들어간 식량의 전부가 간부나 군대로 들어간다는 속설에 이의를 제기했다. 그 증거로 북한 개인 시장에 남한이 보낸 쌀 마대들이 그대로 나돌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남한에서 지원 식량이 들어오면 북한의 웬만한 사람들이 다 알고 동포적 지원에 감사하다는 말까지 한다"고 소개했다. 그는 사람이 얻어먹으면 마음이 변하기 마련이기에 식량 지원이 북한 주민의 의식구조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강조하며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의 대북 정책이 북한 동토를 뚫었다"다는 주장에 동의했다.

국제 사회의 식량 원조, 그러나 한국은?

이러한 와중에 미국은 쌀·밀·옥수수·콩 등으로 구성된 50만 톤의 식량을 지원하기로 결정, 이미 지난달 28일에 첫 선적분 3만 8천 톤을 남포항을 통해 북한 측에 전달했다. 일본의 경우 식량 지원 금지 원칙은 유지하고 있지만 북한의 납치 문제 재조사를 조건으로 대북 경제제재 일부를 해제하기로 합의했다. 중국 역시 북한에 15만 톤의 옥수수를 지원하기로 합의하고, 얼마 남지 않은 베이징 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이웃 북한이 국내 상황이 안정이 되도록 발 빠르게 대처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한국이다. 남북 당국 간의 대화는 현재 끊겼고 이명박 정부 출범이후 쌀 지원은 중단된 상태이다. 현 정부는 북한의 식량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나 굶어 죽는 사람이 나올 정도는 아니며, 미국과 중국의 식량 지원으로 배고픔을 견딜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이명박 정부는 대북 식량 지원에 동의하면서도 '북측이 먼저 요청하면'이라는 꼬리표를 떼지 않았다.

배짱을 부리는 동안, 상황은 한국에 불리해졌다. 북한은 영변 핵시설 냉각탑을 폭파하는 행사로 내외에 '비핵화' 의지를 보인 뒤 유럽연합(EU)과 러시아, 이탈리아 등으로부터 대북 식량 지원을 확보해 나갔다. 아울러 테러 지원국의 이미지를 벗음으로 자금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으며 미국의 경제 원조 또한 기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6자회담을 앞두고 배제될 우려에 급박해진 한국은 지난 5월, 노무현 정부 때 약속한 옥수수 5만 톤 지원 카드를 뒤늦게 내밀었으나 북한 측에 거절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이명박 정부는 과거 두 정권의 열매인 6.15와 10.4 선언을 무시하고, 대신 핵을 폐기하고 개방하면 10년 내 북한의 국민소득을 3000불까지 끌어 올리겠다는 '비핵개방3000' 대북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북한은 이미 이 정책을 거부함으로써 현 정부의 대북 노선은 방향을 잃고 말았다.

정부가 못하면 민간단체가 나선다

뒷짐 지고 있는 정부에 보란 듯 대북 지원을 실천한 것은 민간단체다. '정토회'와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은 1만 원어치의 옥수수 20kg으로 북한 동포 4인 가족이 한 달을 살 수 있다고 알리며 모금 운동을 벌이고 있다. 또한 북한 주민 지원 단체인 '한민족 어깨동무'는 지난 4월과 5월, 평양과 개성에서 홍수가 북한을 망치고 있다는 사실을 접한 뒤 식량 생산 농토가 파괴되지 않도록 산에 나무를 심는 것이 근원적인 치료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 단체는 최근 '밤나무 심기운동'을 통해 홍수 방지와 식량 공급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위해 노력하고 있다.

문제는 양이 아니라 시간, "두 달을 버텨라"

'정토회'가 북한 주민의 아사를 막기 위해 필요하다고 추정한 최소 긴급 식량의 양은 20만 톤. 하지만 정토회 측은 실제로 2000만 명의 북한 주민들이 여름을 나기 위해 필요한 양은 하루 500g의 식량을 배급할 경우 60만 톤이 되어야 한다고 언급한다. 하지만 이보다 더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할 점은 북한이 이미 비축 식량이 바닥을 드러내고 장마당에서도 낟알을 찾아볼 수 없는 춘궁기에 접어든 지 오래라는 것이다. 국제 사회가 약속한 식량이 도착하기까지 북한 주민들은 여름 두 달을 버텨내야 한다. 굶주림에 지쳐 쓰러지는 동포들을 일으킬 열쇠를 쥐고 있는 사람들은 '살까기(다이어트)'와 촛불집회로 먹거리 지키기에 열중하고 있는 남녘 사람들의 동포애와 대통령의 의지다.

이영훈 /  <코넷>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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