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이 리먼 살리겠다는 건 코미디"
"산은이 리먼 살리겠다는 건 코미디"
  • 김종철
  • 승인 2008.09.19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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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신자유주의 비판'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의 충고

   
 
  ▲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 (사진 제공 오마이뉴스)  
 
"하루라도 늦기 전에 (경제 정책의) 방향을 바꿔야죠. 그렇게 맹종했던 미국식 경제가 하수도로 저렇게 빨려 들어가고 있는데, 우리가 거기에 운명을 같이 하겠다는 것은 말이 안 되죠."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 톤은 이미 올라가 있었다. 그동안 미국식 신자유주의적 경제 정책에 날선 비판을 해왔던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경제학). 그와 지난 18일 밤 전화 인터뷰를 했다. 학기가 시작되기 전인 9월 말까지 여름휴가를 보내고 있다는 장 교수는 연일 터져 나오는 미국 발 금융 위기 소식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1시간에 걸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중심의 금융 자본주의의 허상을 조목조목 지적하면서, "최소한 2~3년간 금융 위기가 계속될 것"이라며 "전 세계적으로 현 금융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장 교수는 또 산업은행의 리먼브라더스 인수 시도, 정부의 각종 금융 관련 규제 완화 등에 대해 특유의 어조로 강하게 비판했다. 특히 민유성 산업은행장이 '리먼을 인수했을 경우 파산까지는 이르지 않았을 것'이라는 발언에 대해, 그는 한마디로 "희극"이라고 평가 절하했다.

장 교수는 "산은보다 덩치도 크고 경험도 많은 회사들이 손사래 치면서 도망간 회사를 두고, 산은이 무슨 재주로 살리겠다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된다"면서 "왜 미국에서 잘못한 회사를 우리가 가서 구해야 하는지, 그것도 개인 돈이 아닌 납세자(국민)의 돈인데, 무책임한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한국에서도 미국처럼 부동산발 금융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아직 미국처럼 심각하지는 않지만, 거의 유사한 상황에 처해있다"면서 "일본처럼 시기를 놓치지 말고, 하루 빨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교수는 무엇보다 현재 이명박 정부가 추진 중인 각종 금융 규제 완화 등에 대해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내년에 시작될 '자본시장통합법'을 비롯해, 금융 시장 선진화, 산업은행 민영화 등 정부가 추진 중인 각종 금융 정책들은 이미 실패로 끝나고 있는 미국식 금융 모델"이라며 "국민들이 잘못된 정책의 피해를 받기 전에 심각하게 정책 추진을 재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장하준 교수와 나눈 일문일답.

"누가 망할 것이라고 말하긴 어려워도, 누구든 망할 수 있다"

- 최근 미국의 대형 투자 은행들이 잇따라 무너지면서, 전 세계 금융 시장이 대혼란에 빠져 있다. 예전부터 이런 상황을 예상하셨던 것 같은데.

"(웃으면서) 정확히 이런 형태로 올 줄 알았다고 말하면 거짓말이고, 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언젠가 문제가 크게 터질 것이라고는 생각해서인지, 별로 놀라지는 않았다. 지난 20년 동안 신자유주의적 금융 자본주의가 세계를 장악해 왔는데, 그동안 조금씩 불거지던 문제들이 쌓여서 한 번에 드러난 것이다."

- 국내 금융 시장이 상대적으로 다른 나라보다 더 충격을 받은 듯하다.

"여기서 보니까 한국이 굉장히 놀란 것 같은데, 아마 두 가지 이유 때문인 것 같다. 하나는 미국은 절대 안 망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다. 또 하나는 한국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미국의 금융 부실 규모를 과소평가한 측면이 있었다."

- 과소평가했다는 것은.

"(곧바로) 지난 2006년 말에 처음으로 '서브프라임모기지론(비우량주택담보대출)'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나왔을 때 미국 정부는 부실 규모를 500억~1000억 달러로 보고, 다 해결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다 작년 여름에 투자 은행인 베어스턴스가 무너졌을 때 부실 규모가 2000억~3000억 달러가 됐고, (미국 정부는) 작년 크리스마스 때면 해결된다고 했다. 하지만 이 역시 지켜지지 않았다. 결국 이번에 미국 정부가 투입한 공적 자금만 9000억 달러 정도나 된다. 공적 자금을 무엇으로 계산하느냐에 따라 다르긴 하더라도, AIG 등에 직접 들어간 것만 4000억~5000억 달러, 유동성 공급한 것까지 하면 9000억 달러 이상 보는 사람도 있다."

- 도대체 미국 정부나 세계 금융 전문가들도 부실 규모가 정확히 파악이 되지 않는 것 같다.

"미국이 1930년 대공황 이후 각종 규제를 엄격하게 시행했지만, 레이건 시절 이후 규제를 대폭 풀었다. 이후 금융 시장에선 각종 파생 상품이 발달하면서, 금융업에 일하는 본인들 스스로 부실 규모를 몰랐고, 또 장부상 (부실을) 숨기기 좋았다. 정부도 이들 회사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모르니까, 규제도 제대로 안됐던 것이고, 거의 유명무실했던 것이다."

"힘 있을 땐 시장논리, 어려울 땐 정부 개입... 전형적인 이중잣대"

   
 
  ▲ 장 교수는 무엇보다 현재 이명박 정부가 추진 중인 각종 금융 규제 완화 등에 대해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사진 제공 오마이뉴스)  
 
- 리먼 파산 이후, 미 정부가 AIG에 대해 공적 자금을 투입했는데도 금융 시장 불안이 여전하다. 오히려 다음에 누가 쓰러지느냐에 관심이 더 큰 것 같은데. 누가 쓰러질지 예상할 수 있나.

"(웃으면서) 모른다. 무엇을 어디에, 얼마만큼 숨겨놨는지 모르니까. 자신들은 괜찮다고 하더라도, 남들이 안 좋다고 생각하면 망할 수도 있지 않나. 예를 들어 영국에서 가장 큰 주택 담보 대출 업체 HBOS라는 곳이 있는데, 영국 정부도 괜찮다고 했지만, 계속 주가가 떨어지니까 결국 로이즈뱅크라는 곳에 흡수 합병되고 말았다. 이런 걸 보면, 누가 망할 것 같다고 말할 순 없어도, 누구든 망할 수 있다고는 말할 수 있다."

- 미 정부의 공적 자금 투입을 두고 말들이 많은 것 같다. 부실 금융과 기업은 시장 논리에 의해 도태돼야 한다는 것이 그동안 미국에서 줄기차게 이야기해 왔던 논리였는데.

"그동안 여러 차례 책에서도 썼지만, 힘 있는 나라나 사람들은 자신들이 좋을 때는 시장 논리를 펴면서 간섭받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자신들이 어려워지면 곧바로 정부의 개입을 요청하고, 도움 받아 해결하려고 해왔다."

- 전형적인 이중잣대 아닌가.

"(목소리를 높이며) 그렇다. 이중잣대도 보통 이중잣대가 아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우리나라처럼 당하는 사람들이 너무 순진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은 여전히 정부가 개입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는 식으로…. 정부가 해야 될 개입도 안하고 말이지…."

- 미국 금융 시장의 혼란이 언제까지 계속될 것 같은가.

"(잠시 후) 한참동안 가지 않을까 한다. 워낙 금융 쪽이 복잡해서, 진짜 돈이 돌아봐야 부실 규모가 파악되지 않겠나. 또 미국, 영국 주택 가격도 떨어지고, 기업들 망하면서 실업도 늘면서, 실물 경제에 영향을 미치고… 잘못된 것들 다 해소하려면 최소 2~3년은 걸릴 것이다."

- 금융 불안의 끝이 보인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곧장) 끝이 보인다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되고, 1년 전에 시작해서, 지금 점점 퍼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제 금융 핵심부까지 강타를 당하고 있으니까, 그것으로 인한 파급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동안 금융이 실물을 끌어내렸으면, 이제는 실물이 금융을 끌어내리는 단계가 올 것이고, 하루아침에 끝날 일이 아니다."

"왜 국민들 돈 가지고, 미국의 잘못된 은행 인수하려고 하나"

   
 
  ▲ 산은이 인수해서 (리먼을) 살릴 수 있다는 이야기는 그쪽 이야기일 뿐이다. 산은보다 훨씬 덩치도 크고, 경험도 많은 회사들이 손사래 치면서 도망간 회사를 두고 무슨 재주로 산은이 살리겠다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된다. (사진 제공 오마이뉴스)  
 
- 국내 사정을 돌아보자. 산업은행은 최근까지 리먼을 인수하려고 했었다. 민유성 행장은 오늘(18일)도 국회에 나와 산은이 리먼을 인수했다면, 파산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는데.

"(웃으면서) 한마디로 희극이다. 산은이 인수해서 (리먼을) 살릴 수 있다는 이야기는 그쪽 이야기일 뿐이다. 산은보다 훨씬 덩치도 크고, 경험도 많은 회사들이 손사래 치면서 도망간 회사를 두고 무슨 재주로 산은이 살리겠다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된다. 설령 살렸다고 하더라도, 결국 우리나라가 봉 잡히는 것 아닌가? 왜 미국에서 잘못한 회사를 우리나라가 가서 구해야 하는지, 그것도 개인 돈도 아니고, 납세자(국민)의 돈을 가지고 말이지… 완전히 무책임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 정부 일부나 일부 언론에선 리먼 인수를 통해 우리나라가 월스트리트로 곧바로 진입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하는데.

"그것도 우리가 어느 정도 실력이 있을 때 하는 이야기다. 우리는 그쪽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르는데, (인수하면) 속된 말로, 완전히 '바지 사장' 아닌가. 돈만 대고 옆에 멍하니 앉아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내가 어느 정도 기본 능력은 있어야, 이 사람들이 제대로 하는 것인지, 속여먹는 것은 아닌지 알 것 아닌가."

- 정부에선 리먼 쪽에 투자된 금액도 적고, 이번에 국내 시장엔 큰 영향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리먼에 들어간 돈만 생각하면 안 된다. 미국, 영국 중심부 금융 시장이 요동치면서, 한국  주식 시장에서 빠져나간 돈만 얼마인가? 미국이 침체에 들어가면 우리 수출도 곧바로 영향을 받고, 중국 수출 쪽도 마찬가지로 영향을 받으면서 2차, 3차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돼 있다."

"미국식 금융 위기 가능성, 한국도 상황 비슷해"

- 한국에서도 미국 같은 금융 위기가 일어날 가능성은 없나. 물론 정부는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하고 있다.

"미국처럼 심각하지는 않지만, 거의 유사한 상황이라고 본다. 주택 시장 거품이 빠지고 있고, 가계 부채가 엄청 나게 쌓여있고, (미국보다) 정도가 좀 덜하긴 하겠지만 미국에 비해 시장 개방도가 높고, 특히 자본 시장 해외 의존도 역시 높다. 오히려 미국보다 구조적으로 불리한 측면이 많다. 정부가 '우리는 아니다'고 하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일 뿐이다."

- 참여정부도 그랬지만, 현 정부에선 금융 선진화 방안 등으로 각종 규제 완화를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오히려 반대로 규제 강화 쪽으로 돌아가는 양상인데. 정책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루라도 늦기 전에 (경제 정책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 '자본시장통합법' 등 금융 시장 선진화, 글로벌 투자 은행 육성, 산업은행 민영화 등도 다시 생각해야 한다. 이것들이 미국식 금융 자본주의 모델인데, 그 본산지가 지금 무너지고 있지 않은가."

- 한미 FTA와도 연결되는 부분이 많은데, 이 역시 심각하게 고려해야 하지 않은가.

"당연하다. 미국과 FTA할 때부터 이야기를 해왔지만, 미국이라는 나라가 장기적으로 기울어져가는 나라인데, 왜 (우리가) 그렇게 목을 매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해왔다. 이제 미국 경제는 영어식으로 표현하면, 하수도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그 나라와 우리나라가 운명을 같이 하겠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 하지만 여전히 정부쪽 관료나 일부 언론 등을 보면 미국식을 쉽게 버리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

"알고 있다. 아직도 무너져가는 모델(미국식 금융 자본주의)에 미련이 남아서, 어떻게 하면 비슷해질까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 것 같다. 측은한 생각이 든다. 문제는 이 같은 엘리트들에 의해 위험한 방향의 정책이 추진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이 떠안게 되는 점이다.

좀 늦었지만, 이제라도 우리가 정말 갈 길이 미국과 같은 길인지 깊이 있게 생각하고, 과감히 바꿔야 한다. 우리에겐 그리 시간이 많지 않다."

장하준 교수는 누구? 
 
86년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왔다. 당시 대학 동기들이 미국으로 유학을 갈 때, 그는 영국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가 둥지를 튼 곳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이곳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고, 지난 90년 10월 만 27세의 나이로 한국인 최초의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됐다.

장 교수는 "영국 유학 당시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에 한국인 유학생은 한명 밖에 없었고, 케임브리지대 전체에도 한국인 유학생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80년대 후반 미국식 개발 경제학에서 벗어나 영국에서 공부한 것도 남달랐지만, 그는 영국에서도 주류 경제학이 아닌 '제도경제학'이라는 독특한 분야를 전공했다. 주로 경제 모델과 계량화에 치우친 미국식 방식과 달리, 제도의 변화를 중심으로 경제 현상의 근본적인 원인을 설명하려는 새로운 경제학이다.

지난 2002년 영국과 미국 등 선진국들의 강력한 보호무역 정책을 꼬집으면서, 그들의 위선적인 세계화를 고발한 '사다리 걷어차기(Kicking away the ladder)'를 출간했다. 이어 2003년엔 신고전파 경제학에 대안을 제시한 경제학자에게 주어지는 '뮈르달상'을 한국인 처음으로 받았다. 이어 2005년에 경제학의 지평을 넓힌 학자에게 수여하는 '레온티예프상'을 최연소로 수상했다.

특히 중남미의 반미 성향 좌파 지도자인 라파엘 코레아 에콰도르 대통령이 미국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을 때 장 교수의 지도를 받았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그는 특히 장 교수의 <사다리...>를 읽고 감명을 받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장 교수는 <개혁의 덫>, <쾌도난마 한국경제> , <국가의 역할>, <다시 발전을 요구한다> 등의 책을 통해 신자유주의적 경제 체제에 대한 비판과 대안을 모색해왔다. 지난해 출간한 '나쁜 사마리아인' 은 최근 국방부에서 '불온서적'으로 지정하면서, 오히려 인문 서적 가운데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 이 글은 <뉴스앤조이>와 제휴 관계를 맺고 있는 <오마이뉴스>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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