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이야기]쿠바의 가을을 느끼며
[쿠바이야기]쿠바의 가을을 느끼며
  • 최명숙
  • 승인 2008.12.19 17: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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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짜증 날 때도, 감동 받을 때도 있는 일상

▲ 쿠바의 나무, 팔마 레알. (사진 제공 최명숙)
창밖엔 팔마레알의 높은 꼭대기에서 늘어진 나뭇잎들이 바람에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다. 우리말로 '대왕야자수'라고 하는 팔마레알은 쿠바의 국수(國樹)다. 키가 매우 커서 보기만 해도 시원한 느낌을 주는데, 우리나라 옛 건축물의 배흘림기둥처럼 중간 부분이 불룩하게 나온 것이, 어찌 보면 날씬한 도자기나 항아리 같기도 하다.

쿠바엔 1년 내내 지루한 여름만 계속되는 줄 알았더니, 11월이 되면서 제법 쌀쌀한 가을 날씨다. 아침, 저녁으로 두툼한 털 스웨터가 아쉬운 기온인데, 사람들 말로는 작년엔 이런 날이 딱 이틀뿐이었는데, 올해 유난히 더 춥다고 한다. 쿠바에 처음 왔을 때는 너무 더워서 잠을 못 자 고생했었는데, 이젠 난방도 안 되는 집에서 얇은 이불을 덮고 자려니, 새벽엔 추워서 일어나기 싫을 정도다. 쿠바의 어떤 집에도 난방시설은 없다.

비록 단풍과 낙엽은 없지만, 파란빛 선명한 하늘이 더 높아지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 나무들이 흔들리는 것을 볼 때면 가을의 설렘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아바나를 벗어나 어디든 조금만 달려보면 무심하게 펼쳐진 자연의 아름다움이 혼란한 마음과 머리를 깨끗이 씻어준다. 말 그대로 그림 같은 풍경이 이어진다. 푸른 초원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는 소와 말들, 한없이 높고 높아서 여러 층의 구름이 떠다니는 하늘, 무성한 수풀 사이로 유유히 흐르는 강물. 인간이 제멋대로 훼손하지 않는 한, 지구상 어디든 자연이 아름답지 않을까마는.

지난 주말엔 시외버스를 타고 마딴사스라는 곳을 갔다가 저녁 6시쯤 되어서 아바나에 도착했다. 땅거미가 질 무렵이었는데, 고풍스런 가로등의 주황색 불빛이 어둡고 투명한 하늘을 배경으로 도드라지면서 도시의 더러운 구석들을 가만히 가라앉혀 주고 있었다. 왠지 가슴이 두근거리는 게, 마치 처음 와 보는 곳을 들어서는 느낌이었다.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택시를 타고 알지 못하는 길로 집까지 올 때에도, 모든 풍경이 낯설었다. 처음 달려보는 길이어서 그랬을까? 공기마저 다른 것 같았다. 크리스마스트리로 현관을 장식한 집도, 네온사인을 밝혀놓은 작은 음식점도, 집 앞을 어슬렁거리는 뚱뚱한 여인의 몸짓도, 모두 쿠바의 것이 아닌 듯 생소하기만 했다. 나는 옆에 있던 딸에게 이런 말을 했다. "빛이 달라지면 이렇게 모든 것이 달라 보이는가 봐."
 
쿠바에 도착해서 지금까지 돌이켜보면 정말 모든 일이 예상과는 달리 진행이 되었다. 예기치 못한 일들의 연속이었다. 원래는 쿠바 섬 동쪽 끝에 있는 지방도시, 올긴으로 가서 한글학교를 하기로 했었는데, 막상 쿠바에 도착해보니 정부에서 올긴 지역에 한글학교 인가를 내주지 않아 갈 수 없다고 했다. 마침 아바나의 한글학교에서 가르치던 선생님 한 분이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어서 그 빈자리를 내가 대신하게 되었다. 하지만 한글학교가 개강하는 9월엔 두 차례나 심한 허리케인이 와서 수업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 마딴사스 한글학교 학생분들. 첫 눈에도 한인 후손임을 뚜렷이 알아 볼 수 있는 분들이 꽤 많다. (사진 제공 최명숙)
10월이 되어 겨우 안정을 찾고 수업을 하는가 싶더니, 또 다른 문제가 터졌다. 한글학교엔 나까지 포함해서 모두 세 명의 교사가 있었는데, 그 중 두 분은 부부이고, 전에 스페인에서 한인 목회를 하시던 분들이었다. 나름대로 쿠바에 대한 선교의 비전을 갖고 있었는데, 종교비자를 받지 않고 한글학교 선생이라는 신분으로 노동허가증과 거주증을 획득했다. 그러나 이분들의 원래 목적은 한글학교보다는 선교였으니, 한글학교 교사를 하면서 한편으로 비공식적 선교 활동을 한 것이었다. 쿠바에서는 허가받지 않은 선교 활동이 금지되어 있으니 그 활동은 문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정부로부터 몇 번의 경고가 있었지만 선교 활동은 계속되었던 것 같다. 결국 그분들의 노동 허가증이 연장되지 않았고, 자연히 쿠바에서 출국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러는 과정에서 한글학교가 쿠바 정부의 도마 위에 오르게 된 것이다.

쿠바 정부에서 한글학교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 자세히 보아하니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었던가 보다. 이유인즉슨, 쿠바는 사회주의 국가인 만큼 모든 교육과 의료를 국가에서 책임지는 것을 국가 정책의 기본으로 하는데, 자국민의 교육을 외국 회사의 후원으로 외국인이 가르친다는 것은 그 정책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어떤 이는 쿠바 정부의 이러한 입장을 답답하고 고지식하다고 하겠지만, 나는 그런 고지식함을 우리 정부가 조금은 배웠으면 하는 생각이다. 쿠바 교육의 문제를 선택의 자유가 허용되지 않는 획일화라고 한다면, 우리나라의 교육은 돈벌이를 위한 점수 팔기에 무한정 관대하다는 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자격을 가진 사람이 어떤 교육 서비스를 파는지, 또 학생들이 어떠한 교육 서비스를 구입하고 있는지 우리나라 정부에서는 알 바 아니다. 완전한 통제도 문제지만, 완전한 방임 또한 한심한 노릇이다. 교육에 있어서 자유란 아무 재료나 마구 섞어서 만든 음식을 맛만 있으면 된다는 식으로 내다 파는 그런 자유와는 다른 종류의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한글학교가 폐쇄된 것은 무척 애석한 일이지만 나는 쿠바 정부의 입장을 조금은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어찌 되었든, 참으로 안타까웠다. 지금도 하니엘, 이사이, 사무엘 삼형제가 수업을 마치고 어두운 밤거리를 걸어 집으로 돌아가던 모습, 한국어를 가장 잘하던 또랑또랑한 둘째 이사이의 모습, 우리와 조금도 다름없이 생긴 한인 후손 안토니오 할아버지가 어눌한 발음을 열심히 연습해보던 모습, 한국어 동요를 즐겁게 부르던 수줍은 마야라의 모습들이 생생하다.

쿠바에서 떠나 미국으로 간 목사님 부부는 언젠가 한글학교가 다시 열리게 될 거라고 믿음으로 기도하고 있다지만, 솔직히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것을 믿는 것이 믿음은 아닌 것 같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과 함께 이성도 주셨기에, 믿음 이전에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더 우선되어야 할 것 같다. 믿고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조심할 것은 조심하고 따라야 할 규칙은 따르면서 주어진 상황과 환경에 맞추어 잃지 말아야 할 것을 지키는 지혜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한글학교는 이미 문을 닫았다. 개인 최명숙이 쿠바 친구들을 모아 한글을 가르쳐준다는 것은 합법적으로 가능하지만, 제각기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사람들을 차량 운행 없이 어떻게 한 자리로 모을 것이며, 그런 모임을 할 만한 장소는 또 어디 있겠는가? 생각하면 그저 한숨만 나올 뿐이다. 
 

▲ 군인들. 우리나라의 방위병처럼 사회봉사를 주로 하는 군인들이다. (사진 제공 최명숙)
상황이 이러했으니, '아, 몇 달 만에 나는 쿠바를 떠나야 하나?'하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여행 가이드 일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인 관광객을 안내하는 일인데, 스페인어도 못하는 내가 어떻게 그런 일을 하나 싶었지만, 지난주에 열두 명의 손님들을 하루 동안 안내하면서 첫 걸음을 떼었다.

사실 상황이 예치기 않게 급변하는 바람에, 내가 쿠바에 온 목적을 잃어버리게 되지는 않을까 걱정하면서, 회사에 소속되어서 여행 가이드 일을 한다는 것의 의미를 고민해보기도 했었다. 그러나 일단은 내가 계획한 기간인 2년 동안 쿠바에 머무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2년이라는 기간은, 적어도 그 정도는 살아 보아야 이곳 사람들의 삶과 사회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내린 결정이 아니었던가? 그 초심을 잃지 말고 어떤 일이든 해보자하고 마음먹었다. 사실 별 실무 능력이 없는 내가 이런 기회가 아니라면 언제 또 '회사생활'이라는 것을 해보겠는가? 주신 기회 감사히 받고 열심히 일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집은 네 달 반 동안 세 번 이사를 했다. 그러는 동안 어쩔 수 없이 '적응'이라는 것을 훈련한 것 같다. 쿠바는 한국과 달리 간판이라는 게 거의 없다. 사실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한국처럼 간판이 많고 크고 요란한 나라는 없을 것 같다. 한국은 한 가게마다 가로로 세로로 두 세 개씩의 간판을 달고 있어 쉽게 찾을 수 있지만, 쿠바는 어디엘 가도 내가 원하는 가게를 찾으려면 눈을 씻고 여러 번 실패를 거듭한 후에야 찾을 수 있다. 간판도 표지판도 없다. 가끔 길을 가다 보면 사람들이 어떤 건물 앞에 길게 줄을 서 있는 걸 볼 수 있는데, 도대체 왜 그렇게 줄을 서 있는지 궁금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 쿠바의 초등학교 조회 모습. (사진 제공 최명숙)
몇 달 전 이민국에 갔었는데, 이민국이 들어서 있는 건물 바깥은 물론이거니와 현관 안쪽 어디에도 작은 글자 하나 찾아볼 수 없다. 그런 정도니, 직접 발품을 팔아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어디에 무엇이 있고 어디에서 무엇을 파는지 알아나가야 한다. 게다가 우리나라 대형 마트처럼 모든 물건이 한 장소에 모여 있는 것이 절대 아니다. 비슷한 식료품점이라고 해도 이 가게엔 술과 과자류가 주로 있고, 저 가게에는 냉동 닭이 있으며, 또 어디엔 다른 곳에 없는 밀가루가 있는 등, 일일이 다 다녀봐야 어디서 뭘 살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사실 한 달이 조금 넘는 기간은 새로운 동네에 겨우 적응하는데 필요한 기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적응해서 좀 알 만하면 이사하고, 또 적응해서 좀 알 만하면 이사를 했던 것이다. 게다가 이사를 하면 한국에서도 엄청난 대청소가 필요한데, 쿠바이니 오죽할까? 집마다 특색 있게 모여 사는 해충들, 모기, 바퀴벌레, 까만 개미, 하얀 개미 등 또한 파악하고 처치해야 한다. 이번에 이사를 온 집엔 부엌 배수구에 문제가 있어서 설거지를 하다 보면 물이 역류해서 온 부엌 바닥이 더러운 물 천지가 되곤 했다. 집주인에게 말했더니 우리나라 같으면 하루에 끝냈을 공사를 약 2주일 동안 다섯 차례를 오가며 겨우 물이 내려가도록 고치긴 했는데, 물론 아직도 한 구석은 마무리가 되지 않은 채 시멘트 흙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그런데 이렇게 불편한 곳에 살면서 비로소 딸과 나는 불평하지 않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믿음이 좋아서 감사가 넘쳐나기 때문이 아니다. 불평하면 나만 손해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불평을 해도 소용이 없으니 내 기분만 더 나빠질 뿐이다. 불평을 하는 대신, 좋은 점을 찾아서 감사하게 여기지 않으면 살아나가기가 어렵다. 한국에선 감사가 믿음의 척도라면, 쿠바에선 감사가 생존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어쩔 건가? 내가 애태우고 볶아댄다고 뭐 하나 달라지는 게 없는데. 그저 되면 되나보다, 하면 하나보다 해야지, 내가 어떤 목표와 시한을 만들어놓고 다그친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덕분에 결벽증도 살짝 무디어지고, 조급증도 많이 누그러졌다. 많이 나아졌다고는 해도 아직도 가끔 불평하고 짜증도 내는데, 그럴 때면 딸이 나에게 한마디 한다. "쿠바잖아. 쿠바! 엄마가 원해서 온 거 아냐? 도로 한국 갈 거야?" 이러면 나는 아무 말도 못한다.  

이렇게 살고 있다. 인상주의 화가들이 시시각각 달라지는 빛에 따라 같은 풍경을 다르게 그렸듯이, 나도 변하는 주변 상황과 변하는 내 마음에 따라 쿠바를 조금씩 다르게 그려가고 있는 것 같다. 처음 쿠바에 도착해선 사람들의 피곤하고 지친 표정에 실망을 느꼈다면, 이젠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이 먼저 인사하며 웃어주는 얼굴에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고, 그런가 싶으면 또 상점 점원들의 얼음장처럼 냉랭한 태도에 당혹스럽기도 하다. 점점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이 나에게 보이는 것이리라. '미안하다'는 한마디 말로 해결될 일에 엄청나게 장황한 변명을 늘어놓으며 상대방을 설득하려 하는 모습을 보면 그 비굴함이 역겹게 느껴지고, 상대방이 말하는 중에 끊고 들어가 따발총처럼 쏘아붙이는 것을 볼 때엔 도무지 기본적인 예의도 없는 사람들처럼 보여 진저리가 나지만, 먼저 손 내밀어 도와주고 친절하게 안내해 줄 때엔 잔잔한 감동을 받기도 한다.      
 
마딴사스를 다녀오면서 느꼈던 아바나의 생소한 모습이 떠오른다. 생각해보니 땅거미가 질 무렵엔 항상 저녁준비 하느라고 집에 박혀 있었던 나는, 그 시각 그처럼 '달콤쌉싸름하게' 물드는 아바나의 아름다운 모습을 전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것 같다. 

최명숙/ 희곡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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