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의(公義) 없는 사랑은 마약 중독자의 혼음과 같다
공의(公義) 없는 사랑은 마약 중독자의 혼음과 같다
  • 김명곤
  • 승인 2008.09.27 17:2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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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 일지] '예수 이름으로, 예수 이름으로' (1)…'사랑의 미로'를 헤매던 군대 시절

군대에서 '보도 사진병'으로 근무할 때의 일이다. 낮에는 촬영하고 밤에는 12시가 넘도록 암실에서 현상 인화 작업하는 일이 우리들의 임무였다. 희미한 적조등 아래서 5~6시간의 작업을 하면서 우리는 강요에 의해 돌아가면서 노래를 부르거나, 있지도 않은 러브 스토리까지 지어내 고참들의 귀를 즐겁게 하며 느려빠진 시간을 죽이곤 했다.

한참 키득거리며 작업을 하다보면 신병으로서의 긴장감도 누그러들어서 때론 '거, 군대 괜찮네'를 속으로 되뇌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느낌도 잠깐, 암실 작업이 끝난 다음 펼쳐질 ‘매타작’ 행사를 생각하면 마음이 천근으로 무거워지고 오금이 저려오기도 했다.

직속 고참은 독특한 매타작 철학(?)을 갖고 있었다. 불을 켜놓고 ‘행사’를 벌이면 눈이 마주치게 되고, 마음이 약해져 일을 치를 수 없다 하여 불을 끈 상태에서 소총 개머리판이나 총구로 복부나 얼굴을 가격하거나 엎드려뻗쳐 놓은 채로 군홧발로 손가락을 짓이기거나 어떤 때에는 목을 짓밟기까지 했다.

신병 시절에는 트집 잡힐 일도 많아 이래저래 맞기도 했지만 특정 지역 출신이라는 이유로, '환자' (군대에서 기독교인을 일컫는 말)라는 이유로, 어떤 때에는 안 맞으면 기합이 빠진다는 이유로 구타를 당했다. 나보다 두 살 아래였던 고참의 고문에 가까운 구타는 이미 두 달 여의 신병 훈련 동안 닳아버릴 대로 닳아버린 자존심의 마지막 찌꺼기까지도 송두리째 앗아가기에 충분했다. 
 

   
 
  ▲ 암실 작업을 끝내고 동료 사진병들과 함께 찍은 사진. 글 속에 등장하는 고참은 당시 촬영자였기 때문에 사진 속에 드러나 있지 않다.  
 
군대란 기합과 구타 속에서 전력을 증강하는 곳?

당시 짐승처럼 매타작을 당하면서 반사적으로 치밀었던 상념은 '군대란 무엇인가'였다. 6·25를 전후한 가혹했던 군대 생활의 단면을 어른들을 통해 들어왔던 터라 '군대란 기합과 구타 속에서 전력을 증강하는 곳이다'라고 자위는 하면서도 "도대체 이따위 변태성 환자가 지휘권을 행사하는 병영에서 바윗돌을 씹을 만한 23살 정력을 소비할 가치가 있는가" 하는 마음을 긁곤 했다.

이런 저런 상념의 질척거림 속에서 불현듯 치솟는 화끈한 반란과 탈영에의 환상이 주위를 어슬렁거리기도 했다. 이런 환상으로부터 나를 탈출하게 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1인치도 채 안 되는 렌즈 구멍을 통해 들어온 비슷한 처지의 병사들이 저지른 반란과 탈영의 결말이 준 교훈이었다.

헌병대나 보안대 등 군 수사 기관의 요청에 의해 탈영병의 재판 과정이나 이런 저런 연유로 자살하게 된 병사들의 시신을 촬영하면서 보고 듣게 된 사연과 눈물은 암암리에 반란이나 탈영에의 환상에 제어장치를 해주고 있었다.

하나 남은 막내손자 군대 간다고 연무대 가는 기차역까지 김밥 싸들고 쫓아온 홀어머니가 자주 떠오른 것 또한 제어력으로 작용했다.

군대 오기 전 이미 예민하게 체험해온 정신 분열증적 사회 현상이 군대라고 해서 예외일 리 없다는 체념 또한 현상 순응에의 명분을 제공해주기도 했다.

기독교적 '사랑'의 경구 속에서 체질화된 신앙

그러나 이러한 직시적 체험에 의한 제어력 외에, 보다 뿌리 깊고 바위덩어리 같은 확고한 제어력이 있었는데, 그것은 '사랑'이라는 것이었다.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순복하라"는 질서에 관한 경구 속에 20년 이상 순치되어온 데다 "사랑은 오래 참고…."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도 돌려 대라" 등, 숫한 기독교적 사랑의 경구 속에서 체질화된 신앙적 평상심은 이미 이런 경우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를 명확하게 지시하고 있었다.

'곡소리' 나게 매타작을 당할 때,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를 떠올리며 배에 힘을 모으고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저는 사랑의 매를 맞고 있는 중입니다. 고참을 사랑할 수 있게 해 주옵소서"라고. 이제껏 어쭙잖게 실천해왔다고 생각해온 사랑이라는 것에 비하면 한번 도전하고 이겨내서 달성할 가치가 있는 그런 사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주일에 4~5차례씩 ‘맞아주기’가 6개월 여 계속되는 동안 고참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질린 듯한 표정을 짓기도 하였고, 어떤 때에는 끄떡없는 맷집에 지레 화가 난 듯 마구 치고 받는 바람에 적당히 엄살을 떨어야 할 때도 있었다.

인고의 날들을 보내던 어느 날, 드디어 나에게도 졸병이 들어 왔다. 그런데 졸병이 들어온 이튿날 저녁 '신병 전입 기념 매타작 행사'에서 사고가 일어나고 말았다. 매 맞는 요령을 터득했을 리 없는 졸병이 엎드려뻗친 채로 매를 맞던 와중에 몸을 틀다가 잘못 맞아 다리뼈가 부러지고 말았다. 그날은 마침 추석날이었다.

추석날, 달을 보고 울다

달도 밝던 그날 밤, 졸병을 등에 업고 3km정도 떨어져 있던 의무실로 가던 중 등짝을 적셔오는 졸병의 눈물을 느끼고 함께 부둥켜안고 울었다. 그리고는 졸병을 달랬다. 군대 다 그런 것이라고.

의무실에 도달하여 진찰을 받는 중에 사태는 고참이 염려하던 방향으로 흘러가버리고 말았다. 당직 의무장교는 고참이 지시해준 대로 "촬영 나갔다 돌아오다 발을 헛디뎌 넘어지는 바람에 다리가 부러졌다"는 나와 졸병의 말을 애당초 믿으려하지 않았다. 결국 의무장교의 위협적이고 집요한 추궁에 사실은 드러나고 말았다.

마침내 고참은 헌병대 영창에 송치되어 한 달 동안인가 감방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말이 감방 생활이지 고참은 거의 말을 트고 지낼 정도로 가깝게 지내던 감방지기 헌병들의 각별한 배려와 나의 '옥바라지' 속에서 '휴양'을 즐기다가 얼굴에 뿌옇게 살이 올라 출감했다.

출감 후 한 달 쯤 지나 졸병이 퇴원한 어느 날 저녁, 고참은 다시 '행사'를 시작했다. 불사조처럼 우리 앞에 다시 선 고참은 이제는 매질 대신 주먹으로 가슴의 요소요소를 내지르거나 사진 현상·인화에 쓰는 화학 약품 용액에 머리를 곤두박게 했고, 어떤 때에는 세례를 준다며 활명수 섞은 소주를 머리에 붓기도 하였다.

졸병, 매 맞고 쫓겨나다

더욱 더 변태적이 된 고참의 폭력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던 어느 날 저녁, 중대로부터 느닷없이 졸병에게 타부대로 전출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그리고 이 엉뚱한 전출 명령이 고참의 농간에 의해 그리됐다는 사실을 선임하사를 통해 알게 되었다. 고참은 윗선에 이모저모로 '약'을 쳐댔던 것이다.

다음 날 아침, 떠나는 충청도 출신 졸병의 짐을 꾸려주면서 자신에 대한 것인지 고참에 대한 것인지 분별할 수 없는 분노와 허탈감이 일시에 밀려왔다. 혼란스러웠다.

'나는 고참의 정신 질환적 매질을 사랑으로 끈질기게 견뎌내 승리해왔고 언젠가는 고참을 예수쟁이로 만들겠다는 야심을 키워왔다. 그런데 지금, 그 고참에 의해 졸병은 다리가 부러졌고 퇴원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억울하게 쫓겨나게 되었다. 고참은 더욱 간덩이가 부어 매타작 행사를 계속할 것이다. 나는 끈질기게 견디어낼 것이고 신앙적 승리감에 쾌재를 부를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졸병들은 이리저리 두들겨 맞다가 쫓겨나거나 심하면 탈영하여 사고를 낼 것이다.'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상념의 끝은 '나는 공범자였고 앞으로도 공범자가 될 것'이라는 결론이었다. 이제껏 사랑이라 생각하고 고문이나 다름없는 구타를 1년 반 가까이 견디어 오던 것들이 사랑이 아니라 고참의 구타를 정당화시켜주고 암암리에 구타 행위에 중독을 가져다 준 마약과 같은 것이었으며, 그 결과 절대자가 가꾸어 온 공의의 질서는 여지없이 파괴되어 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자기도취적 사랑'의 환각에서 깨어나다

졸병이 쫓겨난 지 3~4일이 지난 어느 날, 새벽 1시가 넘어서 새로 들어온 두 명의 졸병과 함께 다시 매타작 행사가 시작되었다. 분노 때문인지 후회 때문인지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시멘트 바닥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육두문자가 뒤섞인 고성과 함께 벌떡 일어나 고참을 향해 돌진했다. 예상치 못한 일격과 함께 나동그라져 멱살이 잡힌 고참은 새하얗게 변한 얼굴로 손을 부르르 떨며 "어, 네가… 네가 이럴 수 있어?"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씩씩거리는 고참을 슬그머니 풀어주고는 암실로 들어와 문을 걸어 잠그고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사랑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당신이 세워둔 공의의 질서를 우롱하여 파괴하고 이웃뿐 아니라 자신까지도 범죄, 파멸케 하는 이런 마약 중독자의 혼음(混淫)과 같은 자기도취적 사랑을 다시는 흉내 내지 않겠습니다."

김명곤 / <코리아위클리> 편집인

* <미주뉴스앤조이>와 제휴를 맺고 있는 <코리아위클리>의 김명곤 편집인이 쓴 '[평신도 일지] 예수 이름으로, 예수 이름으로...'는 교회 관련 이슈들을 다룬 연재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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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에 2008-10-09 06:06:10
벌떡 일어나 일격을 가하기 전까지 우린 너무 많은 불의에 공범이 되어 있진 않은지 돌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