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매 부흥회'의 추억
'경매 부흥회'의 추억
  • 김명곤
  • 승인 2008.10.11 17: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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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 일지] 목적 위해 '성령의 역사'를 위장하다니

1960대 말쯤으로 기억된다. 여름방학을 맞아 인근 교회에서 부흥집회가 열렸다. 우리는 저녁을 일찍 먹고 먼 길을 걸어 집회에 참석했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이름과 몸짓까지 기억날 정도로 부흥강사의 설교는 신도들을 여러 번 웃겼다 울렸다 하며 '은혜'를 쏟아냈다. 특히 '말씀을 잘 쪼갠다'는 소문이 퍼져나가면서 저녁집회는 물론 새벽집회에까지 참석자들이 늘어갔다. 마지막 날 저녁집회는 뒤쪽의 긴 의자를 여러 개 들어내고 자리를 만들어야 했을 정도로 초만원을 이루었다.

죄로 가득한 인간의 본성을 사흘 내내 강조한 강사는 마지막 저녁 집회에서 '주의 종에게 순종하지 않은 죄'를 지적했다. 그는 "하나님께서 순종하는 자에게는 7배나 축복을 더할 것이지만, 그렇지 않은 자에게는 집에 기르는 마소나 돼지가 죽고 부모 자식이 병들어 죽고 패가망신할 것"이라고 했다. 강사가 자신이 경험한 여러 사례를 들며 "당장 회개하라!"고 소리치자 여기저기서 곡성이 터지며 가슴을 치고 바닥을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사가 두 손을 공중으로 치켜들며 '죄짐 맡은 우리구주'를 선창하자 모두가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이후로 강사가 불러준 회개기도 제목에 따라 통성기도와 찬송을 여러 차례 번갈아 했다.

중학교 3학년 나이에 불과했던 우리는 모두가 눈이 붓도록 회개의 눈물을 흘렸다. 얼핏 보니 우리를 이끌고 온 주일학교 교사들도 가슴을 치며 기도를 하고 있었다.

"오늘밤 은혜가 쏟아졌다, 받은 은혜에 감사해라"

강사 목사님은 단상에 있는 종을 두들기며 기도를 중단시켰다. 그리고 모두 눈을 감으라면서 "오늘밤 하나님의 은혜가 쏟아졌다. 이제는 받은 은혜에 감사해야 한다"고 했다. 잠시 뜸을 들인 강사는 "그런데 이 교회 담임목사님을 보니 영락없는 거지꼴"이라며 "회개하는 마음으로 주의 종에게 양복을 지어줄 사람은 손을 들라"고 했다. 이어서 텔레비전, 구두 등으로 이어지다가 "이번에는 사모님 양장 한 벌…" 이런 식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이 '보은' 요구는 시작에 불과했다. 강사는 '이제 교회 목사님이 전혀 하지 않은 어려운 얘기를 꺼낸다'면서 다시 한 번 기도하자고 했다.

강사가 간절하게 드린 기도의 내용은 대략 '우리는 모두가 번듯한 집을 가지고 있는데, 머리 둘 곳도 없이 돌아가신 우리 주님을 창문이 깨지고 가마니가 깔린 맨땅에 모시게 한 것을 용서해달라'는 것이었다. 여기저기서 "주여! 주여!"하는 외침이 들려왔다. 다시 강사가 입을 열었다.

"도대체 건축을 시작한 지 2년이 넘도록 하나님의 성전이 제대로 세워지지 못했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면서 "먼저 장로들과 안수집사들이 회개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는 "지금부터 마음에 부담이 가면 언제라도 나가도 좋다"고 덧붙였다.

그때부터는 이런 식으로 이어졌다.

"눈 뜨지 마세요. 먼저 10만원, 10만원 바치실 분 손드세요. 아니, 받은 은혜에 10만원이 무슨 큰돈이라고…, 축복받을 준비가 안 돼 있군요. 아, 예 저기 있군요!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다음으로 5만원 하실 분…."

밑바닥까지 내려간 현찰 보은 순서가 끝나자 강사는 이번에 다시 한 번 기회를 준다며 다른 방법을 제시했다.

"피아노 바치실 분! 오르간 없어요? 자 이번에는 의자, 의자 다섯 개 바치실 분, 신실하신 우리 하나님이 몇 배로 갚아주십니다. 두 개, 한 개…. 예, 감사합니다. 다음은…”

강사는 크고 작음이 문제가 아니라며 교회 안에서 쓰일 만한 모든 물건의 이름을 차례차례 불러냈다.

중학교 3학년 나이에 거금 5,000원 약정…아직도 못 갚아

보은의 시간이 끝나자 담임목사님이 안경을 벗고 눈물을 훔치며 단위에 올랐다. 그리고는 '오늘밤 여러분의 사랑을 확인하고 회개의 눈물을 흘렸다. 용서해달라. 아까 양복 등을 약속한 것은 받은 걸로 하겠다. 교회 건축으로 헌금해달라'고 했다.

"아멘! 할렐루야!" 소리와 함께 박수가 터져 나왔다. 담임목사는 집회가 끝난 뒤 강사 목사님이 신유의 기도를 하는데 기도 받으실 분은 남으라고 했다.

친구 누이는 기도를 받고 끼고 있던 금반지를, 주일학교 교사 중 하나는 약정 헌금과 비녀를 헌금함에 넣었다는 후문이 있었다. 그날 저녁 나는 타 교회 부흥집회였음에도 불구하고 어린 나이에 거금 5,000원을 약정했고 지금까지 그 돈을 갚지 못했다.

이후에도 약간의 차이는 있었지만 유사한 형태의 부흥집회에 여러 번 참석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때마다 "예수는 머리로 믿는 게 아니다.", "주의 종이 하시는 일이니…", "교회를 시끄럽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며 입을 다물었다.

언제부턴가 '분명히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며 괴로웠으나 '개인 영성 생활의 평화를 깨트려서는 안 된다'고 짐짓 다짐하고는 모른 체 했다. '시끄러운 것은 영적인 것과 반대'라는 오도된 경건주의에 붙잡혀 있었던 당시에 이 같은 결의를 하기란 매우 쉬웠다.

그리고 '경매 부흥회'가 종교개혁 이전의 면죄부 판매의 또 다른 형태라는 사실, 더 나아가 복음의 순수성을 좀먹어 온 폐단 중의 폐단이라는 사실을 깊게 통찰하고 반성하는 데에는 그로부터 십 수 년이 더 걸렸다.

"원시적 순수함은 훼손됨 없이 하나님께 그대로 바쳐져야 한다"

단적으로 말하면 경매식 건축헌금 우려내기의 가장 큰 문제는, 목표를 이루기 위하여 인간의 어설픈 두뇌로 '성령의 역사'를 위장하고 이용하는 야비함이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죄의 막중함을 깨닫는 순간, 학식이나 재산, 나이의 노소에 관계없이 순수해지기 마련이다. 이 원시적 '순수함'은 어떤 형태로든 훼손됨이 없이 하나님께 그대로 바쳐져야 한다. 그래야만 재창조가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그런데 기독교 신앙의 근간을 이루는 '죄', '죄사함', '은혜', '구원' 등을 건축이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직·간접으로 이용하는 것은 성령의 역사를 모독하는 사악한 죄악에 다름 아니다.

어쩌면 교회 건축은 하나님이 목회자와 교회 유력자들의 참을성과 겸손을 테스트하는 도구일지 모른다. 당장 어떤 결과가 손에 잡히지 않는 답답함 때문에 성전이 아니라 바벨탑을 쌓아 놓고 박수를 칠 일이 아니다. 지금도 이 같은 일이 있는지 모르겠으나 어떠한 강변과 부드러운 권유에도 속지 말 일이다.

수십 년 전 경험했던 '경매의 추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얼굴이 후끈거리고 가슴이 쓰리다. 하나님은 천신만고 끝에 실존적 순수함에 도달한 자녀가 일순간 '바알의 축복'과 맞바꿔지는 현실에 얼마나 통탄해하셨을까.

김명곤 / <코리아위클리> 편집인

* <미주뉴스앤조이>와 제휴를 맺고 있는 <코리아위클리>의 김명곤 편집인이 쓴 '[평신도 일지] 예수 이름으로, 예수 이름으로...'는 교회 관련 이슈들을 다룬 연재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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