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8 밀알의 밤'에서 전경호 씨가 마림바를 연주하고 있다. | ||
마림바는 실로폰보다 약 3배 정도 크다. 건반은 61개나 된다. 전 씨는 선천성 시각 장애인이기 때문에 마림바를 본 적이 없다. 처음 마림바를 만났을 때는 일일이 손으로 건반을 만져봤다. 건반 사이 간격과 크기 등을 가늠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런 노력 끝에 조금씩 마림바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전에 실로폰을 연주한 적이 있지만, 마림바는 실로폰과 또 달랐다.
연주회가 다가오면 선생님이 곡을 연주해 mp3에 녹음을 해줬다. 전 씨는 이 곡을 듣고 음을 외웠다. 앞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시각 장애인 대부분은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도 '절대 음감'을 갖고 있었다. 점자로 이루어진 악보가 있지만, 전 씨는 많이 사용하지 않는 편이다. '정안인'(시각 장애인이 아닌 사람)보다 10배는 더 연습했다. 그렇게 연습을 했는데도 연주할 때마다 한두 개씩 음이 틀린다. 아직 실력이 부족한 탓이라고 생각했다.
음을 외우는 것은 힘들지 않았는데, 다른 것이 전 씨를 힘들게 했다. 마림바 연주를 잘하기 위해서는 몸이 리듬을 타야 한다. 61개 건반을 자유자재로 치기 위해서는 몸이 뻣뻣하면 안 된다. 이 부분이 힘들었다. 초기에는 정말 어쩔 줄 몰라 했지만, 꾸준한 연습이 이마저도 극복하게 만들었다.
'정안인'도 최소한 6개월은 배워야 연주를 할 수 있다는 고 전경호 씨를 가르친 이철수 선생이 얘기했다. 전 씨는 ‘정안인’과 똑같이 6개월 만에 연주회를 열었다. KBS 교향악단과 협연한 적이 있다. 물론 시각 장애인이라는 특이점도 작용했다. 이 선생은 "경호의 음악적 감각이 그만큼 뛰어나다"고 말하자, 경호 씨가 손사래를 쳤다. 지금도 연주를 하면 맘이 흡족해질 만큼 연주하지 못한다는 점을 스스로 알기 때문이다.
경호 씨는 태어난 지 3개월 만에 미숙아망막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급하게 수술을 했지만 허사였다. 워낙 어렸을 때부터 시각 장애인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중도 실명자들보다는 충격이 크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걸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좌절감은 컸다.
경호 씨는 지금까지는 실력보다는 시각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실력으로 인정받기 위해서 계속 노력을 할 생각이다. 기회가 된다면 줄리어드 음대에 가서 더 공부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마림바를 칠 수 있다는 것에 안주하지 말고, 기초를 튼튼히 해서 마림바를 정복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이것이 저를 도와준 모든 분에게 은혜를 갚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에요. 프로 연주자로서 절대 뒤지지 않는 전경호가 될 거에요. 시각 장애인도 음악을 연주할 수 있다는 꿈을 가졌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