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을 눈여겨 보았던 일러스트레이터, 노먼 록웰
'작은 것'을 눈여겨 보았던 일러스트레이터, 노먼 록웰
  • 강희정
  • 승인 2008.12.15 19: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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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정 기자의 미국 엿보기 (22) Rockwell's America 전시회

   
 
  ▲ '록웰의 아메리카’라는 전시회 제목에 걸맞게 1910년대부터 60년대에 걸쳐 시대별로 분류된 그의 작품들은 그 자체로 미국 역사의 재현이다. (사진 제공: 강희정)  
 

   
 
  ▲ 노먼 록웰의 작품을 관람하는 사람들은 지나간 미국의 역사와 자신들의 과거의 기억을 되돌아 보고 있는 듯하다. (사진 제공: 강희정)  
 
‘작은 것을 볼 줄 아는 것’을 일컬어 ‘눈이 밝다’라고 했던가?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사람들과 그들의 일상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일을 포착하여 삽화를 그린 미국인 일러스트레이터가 있다. 바로 노먼 록웰(Norman Rockwell)이다. 그의 전시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전해 준 미국인 친구와 함께 노먼 록웰의 작품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오하이오 히스토릭 센터에 가보았다.

노먼 록웰은 1894년에 태어나 1978년에 삶을 마감할 때까지 미국 역사 및 세계 역사상 격변기를 살았던 사람이었다. 그는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일찍이 인정을 받았으며 1916년부터 1963년까지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The Saturday Evening Post)>라는 잡지의 표지 그림을 그려 4,000여 점의 작품을 남겼다고 한다. 

노먼 록웰은 자신이 희망하는 삶을 그림으로 표현하고자 했다고 한다. 인형이 아프다며 병원을 찾은 순진한 소녀를 위해 인형을 진찰해주고 있는 친절하고 지혜로운 의사의 모습이라든지 목마를 타고 함께 노는 할아버지와 아이의 모습, 무슨 선물을 주어야할까 하고 고민하고 있는 산타클로스의 모습, 영양제를 먹여주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 그리고 전쟁에서 돌아온 군인을 반기는 가족의 모습 등의 평범한 일상에 대한 묘사로 일관한 그의 작품들을 통해 록웰이 꿈꿨던 사회와 삶의 이상이 무엇이었던가를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었다.

록웰은 이혼과 사별의 상처를 겪고 세 번의 결혼을 했으며, 두 차례의 세계 대전과 아울러 경제 대공황의 시기를 겪어야 했다. 개인으로나 세계사의 흐름에서나 굴곡이 심했던 삶을 살았던 그는 일상의 평범한 삶이나 가족의 가치를 깊이 절감했었던 듯하다. 그리고 그가 그림들 속에서 표현한 가족들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공감을 불러 일으켰으리라. 이것은 가족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미국인들의 정서와 맞아 떨어져 노먼 록웰은 부와 명성을 거머쥘 수 있게 된 듯싶었다.

   
 
  ▲ 노먼 록웰은 일상의 삶이나 가족의 평범한 이야기에서 소재를 찾아 그림을 그려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사진 제공: 강희정)  
 
‘록웰의 아메리카’라는 전시회 제목에 걸맞게 1910년대부터 60년대에 걸쳐 시대별로 분류된 그의 작품들은 그 자체로 미국 역사의 재현이다. 미국 사람들의 일상과 당시 사회의 이슈들을 표지 그림으로 남긴 록웰은 그가 의도했건 하지 않았건 간에 미국 역사를 타임캡슐처럼 남겨 놓은 셈이었다. 미국이 200여년 조금 넘는 역사를 가진 나라라는 것을 감안하면 록웰은 50여 년에 걸쳐 표지그림이나 삽화 또는 일반 그림 속에 미국 역사의 상당 부분을 남긴 것이다.

관람하는 사람들은 그의 작품 속에서 지나간 미국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있는 듯하다. 낮 시간대여서인지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들이 부부끼리 혹은 친구끼리 함께 와서 지나간 시대의 기억들을 더듬고 있었다. 전시회에서 만난 할머니들에게 말을 건네자 그 분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림들 속에서 많은 기억들을 찾아내며 미국의 과거와 자신들의 지난 이야기들을 이방인에게 알려주기에 애썼다.

할머니 한 분은 40~50년대에 유명했던 잭 베니(Jack Benny)와 밥 홉(Bob Hope) 등의 코미디언들을 록웰의 표지 그림에서 찾아내어 가르쳐주었다.  또 다른 할머니는 경제 대공황 때의 어려움이 그대로 들어나 있는 표지 그림을 가리키며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기도 하고 오늘 날 경제 상황과 연관 지어 근심어린 표정을 짓기도 하였다. 같이 간 미국인 친구 역시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미국의 옛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며 미국의 지난 역사를 훑어 내리고 있는 듯했다.

이들의 이야기를 곁에서 들으며 300여 점이 넘는 노먼 록웰의 작품을 살펴보던 가운데 내게 불현듯 한 가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 수많은 표지 그림과 삽화 중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라든가 아시아계 미국인 혹은 미국 원주민 등의 소수 인종들의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 노먼 록웰에게 이런 소수 인종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었던 것일까.

   
 
  ▲ '네 가지 자유' 시리즈 가운데 하나인 '연설의 자유', 노먼 록웰 1941년 작.(사진 제공: 강희정)  
 

   
 
  ▲ '네 가지 자유' 시리즈 가운데 하나인 '예배의 자유', 노먼 록웰 1941년 작.(사진 제공: 강희정)  
 

   
 
  ▲ '네 가지 자유' 시리즈 가운데 하나인 '결핍으로부터의 자유', 노먼 록웰 1941년 작. (사진 제공: 강희정)  
 

   
 
  ▲ '네 가지 자유' 시리즈 가운데 하나인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 노먼 록웰 1941년 작. (사진 제공: 강희정)  
 

록웰이 1941년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했던 연설을 듣고 그린 ‘네 가지 자유’라는 작품에서마저 소수 인종의 모습은 주변 인물로조차 묘사되지 않았다. 당시 록웰은, 연설의 자유, 예배의 자유, 결핍으로부터의 자유,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 등 기본적인 인간의 자유를 누려야할  주체로서 소수 인종들은 아예 포함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일까. 이런 의심을 살 정도로 그가 그린 대다수 그림들에는 미국 백인들만이 등장할 뿐 소수 인종들은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남북전쟁이 끝난 후 노예제도는 철폐되었고 이후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에게 참정권이라든가 기타 형식적인 자유는 주어졌지만 1960년대 초반까지 흑백분리 정책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었다. 이러한 사회적·문화적인 차별이 당연시되었던 시대에 살았던 노먼 록웰로서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을 포함한 다른 소수 인종들을 자기를 둘러싼 일상의 묘사에서 배제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록웰이 소수 인종이나 사회와 세계가 안고 있는 모순에 대해 끝까지 외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노먼 록웰은 말년에 접어들면서 개인의 일상에서 벌어지는 소박한 일들을 넘어서서 점차 이 세계와 미국 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들을 그림 속에 포착하기 시작했다.

1961년 4월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에 그린 ‘자신이 바라는 바대로 타인에게 행하라’는 제목으로 표지 그림을 그렸다. 그 그림에서 그는 비로소 백인 가족이 그림의 주변부에 놓이도록 배치하고 중심에 다양한 인종과 종족들을 표현하였다.  

록웰은 1966년에 <룩 매거진(Look Magazine)>에서 ‘우리 모두가 안고 있는 문제’라는 제목으로 루비 넬 브리지스(Ruby Nell Bridges)에 관한 이야기를 표지 그림을 그렸다. 록웰은 그 그림에서 초등학교 1학년 흑인 소녀 루비가 연방 보안관들에 둘러싸여 호위를 받으며 백인들만이 다니던 학교에 등교하는 모습을 그렸다. 미국 중산층들의 일상에 치중했던 록웰은 말년에 이르러서 그 그림을 통해 미국 사회가 안고 있는 인종 갈등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어 미국인들의 양심에 적지 않은 파문을 던졌으리라는 짐작을 하게 된다.

   
 
  ▲ 'Do unto others:자신이 바라는 바대로 타인에게 행하라', 노먼 록웰 1961년 작 (사진 제공: 강희정)  
 

   
 
  ▲ 'The Problem we all live with: 우리 모두가 안고 있는 문제', 노먼 록웰 1966년 작. (사진 제공: 강희정)  
 
노먼 록웰은 날카로운 눈썰미로 일반인들이 지나쳐버릴 만한 일상의 사소한 사건들을 포착하여 삶의 가치를 돌아보게 하는 그림들을 화폭에 담았다. 삶의 진실에 닿으려고 애썼던 그는 노년에 이르러서 미국 백인 중산층이라는 존재의 한계를 넘어서 주변부의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고통을 돌아보는 통찰에 이르게 된 듯하다. 노먼 록웰은 ‘눈이 밝은 사람’이었지만 노년에 이르러서 ‘눈이 더욱 밝게 되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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