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조 총격 사건 1년 그 이후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꼭 1년 전인 2007년 12월 31일 오후 두 시경, LA 라하브라 시에 있는 조그만 상가 주차장에선 13발의 총성이 울렸다. 동양인 한 명이 기물을 파손한다는 주민의 신고를 받은 경찰이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울리며 현장에 도착했다. 당시 현장에는 마이클 조(당시 25세) 씨가 자동차 타이어를 교체할 때 쓰는 쇠지레를 들고 있었고, 경찰은 조 씨를 범인으로 여기고 총을 겨눴다. 경찰은 조 씨를 향해 "멈추고 손을 들라"고 지시했고, 조 씨는 "난 아무런 잘못도 없다. 날 내버려두라"며 경찰을 등진 채 유유히 걸어갔다.
▲ 주차장 CCTV에 찍힌 마이클 조(화면 중앙) 씨의 마지막 모습. 경찰이 조 씨를 향해 총을 겨누고 있다. | ||
사고가 일어난 바로 그때, 직장에서 일하고 있던 조 씨의 어머니 조홍란 씨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복통에 주저앉았다. 한참을 원인 모를 복통과 씨름하던 조홍란 씨는 아들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사건 이후 세상은 마이클 조 씨를 빠르게 잊어가는 듯했다. 그로부터 1년 뒤, 2008년 12월 31일 오후 2시, 사고 현장에선 마이클 조 씨 1주기 추모 예배가 열렸다. 조 씨의 가족과 친지, 친구, 교인들까지 약 50여 명이 참석해 고인을 기렸다. 아들이 총에 맞아 죽어간 자리에서 조 씨의 어머니는 'Amazing Grace'를 찬양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몇몇 친구들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지만, 조 씨 어머니의 표정은 오히려 밝았다.
▲ 아들이 총에 맞아 죽어간 자리에서 '나같은 죄인 살리신' 찬양을 부르는 마이클 조 씨의 어머니 조홍란 씨. 뒤로 조 씨가 웃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목격자를 찾는 전단지는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사고 현장에 남아 있었다. | ||
조 씨가 세상을 떠난 날 밤 조홍란 씨는 밤새도록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그야말로 땡깡을 부렸다. 왜 데려갔냐고, 그 많은 재능을 주고 꽃을 채 피우기도 전에 데려가야 했냐고 원망했다." 그렇게 밤새 뒤척이다 새벽에 일어나 성경을 펴들었고, 이사야 55장이 눈에 들어왔다.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때 갑자기 마이클의 삶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이 마치 '나는 마이클을 통해 계속 일하고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느껴졌다."
▲ UCLA 미대를 졸업한 마이클 조 씨는 예일대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던 중 사고를 당했다. | ||
하지만 조 씨의 죽음을 둘러싸고 유족과 경찰 측의 주장은 엇갈렸다. 경찰 측은 당시 조 씨가 타이어 지레로 경찰을 위협했다고 주장했고, 유족은 당시 현장에 있던 목격자의 증언을 토대로 아무런 위협도 가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주차장 폐쇄회로 화면에서 조 씨가 화면 밖으로 사라진 뒤 경찰이 발포했기 때문에 진실이 무엇인지 알 길은 없다. 게다가 사건 직후 경찰의 눈치를 보느라 섣불리 증언을 하겠다고 나서는 주민도 없었다. 당시 쇼핑몰에 있는 네일 가게에서 일하던 베트남 여성은 얼굴과 이름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MBC <PD 수첩>과 인터뷰했다.
"한 남자(마이클 조)가 담배를 피우며 걸어가고 있었다. 경찰은 '거기 서, 손들어'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경찰을 향해 계속 걸어갔다. 경찰은 뒷걸음쳤다. 그가 듣지 않고 계속 걸어가자, 경찰이 그를 쏘았다. 그리고 그는 쓰러졌다. 그게 전부다. 어떤 신체 접촉도 없었다. 그는 그냥 걷기만 했다."
하지만 사건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라하브라 시 경찰국장은 "조 씨가 손에 들고 있던 타이어 지레로 경찰을 치려 하자 위협을 느껴 발포했다"고 말했다. 타이어 지레가 위협적인 무기가 아닌데 굳이 총을 쏴야 했냐는 기자의 질문에 경찰국장은 "타이어 지레로 맞아본 적이 있냐"고 대꾸했다.
▲ 추모식이 끝난 뒤 현장에 남아서 기도하고 있는 조 씨의 친구 Sheean cho 씨. | ||
한인회를 중심으로 조 씨 사망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해 곳곳에서 추모 행사와 서명 운동이 일어났다. 마이클 조 씨가 졸업한 UCLA에서도 검찰의 공정한 조사를 요구하면서 촛불 시위가 이어졌다. 조 씨를 추모하는 인터넷 홈페이지(http://www.justiceformikecho.com/)에만 4,100명 정도가 서명했고, 서면으로는 15,000만 명이 참여했다. 서명 결과를 캘리포니아 연방 상원의원 사무실과 연방 법무부에 전달했다.
하지만 결과는 회의적이었다. 경찰이 조사 발표를 미루는 동안 사고를 낸 해당 경찰관들은 슬그머니 복귀했다. 사고 직후 데이비드 백 변호사(한인커뮤니티변호사협회 회장)는 "이렇게 발버둥을 치지만 결과가 벌써 명시되어 있는 것 같다. 경찰에서는 정당방위라는 결과를 발표할 것이라고 생각된다"고 예상했다. 백 변호사의 예언은 적중했다. 사건 이후 6개월 뒤, 오렌지카운티 검찰에서는 "정당한 공무 집행"이라고 발표하고 사건을 마무리했다.
▲ 마이클 조 씨가 총격을 받은 자리에서 조 씨의 아버지 조성만 씨가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왼쪽에 총탄의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 ||
마이클 조 씨 측의 변호사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배심원들은 공권력 집행자들의 잘못을 인정하기를 망설인다. 그들은 경찰이 시민을 보호하는 것은 옳다고 여긴다. 우리가 요구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보상금이다. 경찰관들을 해임시킬 수도 없을 것이다."
조 씨의 아버지 조성만 씨는 "변호사가 얼마의 배상금을 요구했는지 묻지도 않았다"며 배상 여부는 관심도 없다고 말했다. 다만 아들의 무고한 죽음이 밝혀지는 것 외에 어떤 것도 바라는 게 없다고 했다.
"우리가 무슨 힘이 있겠나. 하지만 정의는 살아 있다고 믿는다. 경찰이 아무리 증인들의 입을 막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증언한다고 해도 진실은 밝혀질 것이다. 우리 아들의 죽음을 계기로 더 이상 무고한 시민들의 피해가 없었으면 좋겠다. 이 일이 끝날 때까지 아들의 죽음을 잊지 말고 계속 지켜봐달라."
저작권자 © NEWS 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