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권 유지 집착이 미국을 쇠락의 길로 인도'
'패권 유지 집착이 미국을 쇠락의 길로 인도'
  • 박지호
  • 승인 2009.01.09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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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아카데미 공개강좌] '매개의 변증법'으로 본 미국 금융 위기

풀러신학교 한국어선교학부와 <미주뉴스앤조이>, 현재 준비 단계에 있는 LA 아카데미(가칭)가 함께 준비한 '미국 금융 위기와 한국의 자본주의 그리고 하나님나라'라는 주제의 공개강좌가 1월 6일 LA 풀러신학교에서 열렸다.

주제 강연을 한 백종국 교수(경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현 UCLA 방문교수)는, 오늘날 경제 위기가 온 것은 미국이 전후 패권 유지를 위해 전략적으로 신자유주의를 추구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백 교수는 미국의 패권 형성이 초래한 미국 금융 위기의 역사적 과정을 되짚으며, 매개의 변증법이라는 보편적 논리를 통해 미국의 몰락을 설명했다.

   
 
  ▲ 백 교수는 매개의 변증법이라는 보편적 논리의 틀을 통해 미국의 몰락을 설명했다.  
 
"매개의 변증법이란, 매개자의 존재가 매개의 본질보다 우선할 때 일어나는 모순의 과정을 말한다. 본말이 전도되는 현상인데, 매개의 본질인 '인간'과 '재화'보다 매개자인 '돈'이 우선하게 되는 현상이나, '하나님'과 '인간'의 매개자인 '성직자'가 본질보다 우선하는 현상도 매개의 변증법의 좋은 예다.

매개의 변증법은 매개자가 스스로를 강화하려고 하는 매개적 관계의 모순 때문에 발생하는데, 그런 모순이 누적되면서 매개자와 얽혀 있는 모든 관계가 파괴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결국 자신을 강화하려는 매개자의 노력이 자신을 종말로 이끄는 결과를 초래한다."

두 차례의 세계 대전 이후 전쟁을 통해 막대한 돈을 벌어들인 미국은 권력과 부의 절정기를 누렸다. 이후 미국은 자신을 중심으로 세계를 정치적·경제적으로 재구성해가기 시작한다. 이른바 미국 패권 체제의 돌입이다. 하지만 1970년대 이후로 미국은 쇠락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미국은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패권 유지를 위해 경제적·정치적으로 전략적 공세주의를 펼치기 시작한다.

백 교수는 패권 유지를 위한 미국의 이런 발버둥이 오늘의 비극을 초래했다고 분석했다. 미국은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정치·경제적인 노력을 동시에 기울이는데, 경제적으로는 신자유주의를 강조하면서 금융 부문의 국제 경쟁력 강화를 추구했고, 정치적으로는 부시 독트린으로 대변되는 군사적 개입주의 외교 정책을 선택했다.

"90년대 이후 패권의 하락을 극복하기 위해 미국은 3차 산업, 그중에서도 금융 산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방대한 재정 적자 해소를 위해 금융 부분에 자유화를 유도했다. 헤지펀드 등 다양한 금융 기법과 기관들을 개발하고 신자유주의 논리를 동원해 이들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규제를 완화했다. 모기지에 대한 규제를 풀어 서브프라임의 원인을 초래했고, 파생 상품들이 규제 받지 않는 바람에 속임수까지 동원되는 불법적인 투자도 만연하기 시작했다. 더 나아가서는 다양한 수단을 동원하여 교역 상대국에 이런 미국식 금융 체제를 이식하였다."

그 결과가 무엇인가. "미국은 세계 대공황 이래 가장 심각한 금융 위기를 맞았다. 국가 채무가 8년 새 무려 5조에서 10조 달러로 두 배 이상 뛰었고, 서브프라임 사태로 대변되는 미국 금융 체제의 붕괴가 발생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 정부는 현재 7,000억 달러에 달하는 구제 금융안을 제출하기에 이르렀다."

미국 경제가 치명적인 타격을 입은 또 하나의 원인은 미국의 '냉전적 소비' 때문이다. 미국은 소비를 촉진하고 봉쇄 정책을 유지하느라 여러 전쟁(한국전쟁, 베트남전쟁)에 개입했다. 또 냉전 시대 이후에는 북한과 이란 등 또 다른 적대 세력을 만들어 군사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한 것도 미국 경제에 치명적인 타격을 줬다. 이라크전쟁이 대표적인 예다.

"미국은 선제 공격권을 가지고 미국이 스스로 판단해 언제든지 공격할 수 있다는 '부시 독트린'을 내세워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했고,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럼스펠드 전 국방부장관은 많아야 500~600억 달러가 소요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현재 매월 160억 달러씩 지출되고 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셉 스티글리츠는 이라크 전쟁 때문에 3조 달러가 낭비되었다고 발표했다."

백 교수가 제시한 매개의 변증법에 나타난 것처럼 미국이라는 초강대국도 스스로를 더 강하게 만들려는 매개적 관계의 모순에 봉착하게 됐고,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이런 몸부림이 매개의 변증법이라는 수렁에 더 깊이 빠져들게 만든 것이다.

   
 
  ▲ 7시에 시작한 공개강좌는 10시까지 이어졌지만, 참석자들은 백종국 교수의 강의를 경청했다. 참석자들은 강의가 끝난 뒤에도 남아서 백종국 교수에게 질문을 던지며 해답을 모색했다.  
 
백 교수는 미국 사회에 다양한 위험 요소도 많지만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이번 대선으로 지배 세력이 교체되었다는 점과 규제 완화에서 규제 강화로 방향을 선회한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미국이 세계를 지배하려는 패권을 버리고, 세계의 국가들과 어울려서 살아가는 법을 배워나갈 때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백 교수는 강조했다.

"은행 간 채무 보증, 예금 지급 보장, 은행 국유화, 금리 인하, IMF 구제 금융 등과 같은 단기 처방도 중요하지만, 미국의 지배 연합이 신자유주의적 공화당 연합에서 케인즈주의적 민주당 연합으로 교체되었다는 점에 희망이 있다고 본다. 특히 민주주의가 없는 나라에 민주주의를 이식하겠다는 식의 군사적 개입주의 외교 노선을 버리고, 인권과 인간의 존엄성을 기준으로 문화적, 경제적으로 개입하겠다는 오바마 독트린(dignity promotion)의 등장도 상당히 의미 있는 변화다."

"모든 역외 거래에 세금을 부과하는 등 규제 완화 움직임에서 규제 강화로 돌아서고 있다. 모든 국가들이 서로 동조하는 다자간 협정 체제를 모색해야 하고, 해외 전쟁과 국내 소비를 줄여서 미국의 패권적 낭비를 절제해야 한다. 미국 사회의 고통스러운 처방이 될 것이지만, 이 처방의 성공 여부가 향후 미국의 운명을 좌우할 것이다."

백 교수는 미국의 패권 형성이 초래한 미국 금융 위기의 역사적 과정을 살펴보면서, 이에 대한 해결 방안을 제시했다. 강의 시간의 한계와 미국이라는 콘텍스트를 감안해 한국 자본주의의 문제점과, 인애와 공평과 정직이라는 하나님나라의 속성을 반영한 '공동체적 자본주의'에 대한 언급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다만 극단의 신자유주의 체제가 보여준 미국 경제의 몰락을 언급하면서, 한국 사회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점들을 언급했다. 백 교수는 특히 미국식 신자유주의 체제가 몰락하는 것이 뻔히 드러난 상황에서 토건국가식 신자유주의로 치닫고 있는 한국 사회에 대한 안타까움도 드러냈다. 또 규제 완화에서 규제 강화로 방향을 선회하고 있는 미국과 달리, 모든 것을 시장에 내맡기는 것을 최선으로 여기며 각종 규제 완화를 추진하는 한국 정부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냈다.

"경제 난국 극복 종합 대책을 보면 부동산 및 건설 경기 활성화를 위해 종합부동산세를 무력화하고, 주택 투기 지역을 해제하고, 주택과 토지 융자 제한을 해제하고 있다. 이런 한국의 상황은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위기를 초래한 상황을 연상케 한다. 부동산 경기를 살리려는 의도지만, 경기가 조금만 활황 국면으로 접어들면 통제 불능의 투기 상황이 연출될 것이다."

백 교수는 하나님나라의 속성을 반영한 사회·경제 체제가 어떠해야 하는지 일일이 설명하는 대신, 이사야서 10~11장을 언급하면서 강의를 마무리했다.

"불의한 법을 공포하고, 양민을 괴롭히는 법령을 제정하는 자들아, 너희에게 재앙이 닥친다. 가난한 자들의 소송을 외면하고, 불쌍한 나의 백성에게서 권리를 박탈하며, 과부들을 노략하고, 고아들을 약탈하였다." (사 10장) … 주의 영이 그에게 내려오신다. 그는 눈에 보이는 대로만 재판하지 않으며, 귀에 들리는 대로만 판결하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들을 공의로 재판하고, 세상에서 억눌린 사람들을 바르게 논죄한다. 그는 정의로 허리를 동여매고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는다." (사 11장)

   
 
  ▲ 이번 공개강좌를 공동으로 주최한 풀러신학교 선교대학원의 이광길 박사(한국학부 부원장)는 강의에 앞서 "신학이 하나님을 이해하는 학문이라면, 선교학은 인간을 이해하는 학문이다. 선교적인 차원에서는 콘텍스트에 해당하는 정치·경제·사회·문화를 잘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런 강의를 들을 수 있어서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인사말을 전했다.  
 
   
 
  ▲ 강의가 끝난 뒤에는 사회를 맡은 천진석 목사가 나와서 공개강좌를 함께 준비한 LA 아카데미(가칭)에 대한 소개와 다음 공개강좌에 대한 광고를 했다. 다음 공개강좌에서는 Yale University에서 거대블랙홀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우종학 박사가 "무신론자들의 도전, '창조과학'이 대안인가?"라는 제목으로 강의할 예정이다. 과학과 신앙의 관계에 대한 여러 가지 견해들을 살펴보면서, 과학과 신앙이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는 문제들을 기독교적 시각으로 고찰할 예정이다. 그리고 과학과 신앙의 양극화의 상황에서 신학자와 기독교인 과학자들에게 주어진 역할도 고민해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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