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러드 같은 미국 문화
샐러드 같은 미국 문화
  • 강희정
  • 승인 2009.03.05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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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엿보기 24 - 미국에 '주류 문화'는 없다

미국은 여러 가지 음식 재료로 만들어진 '샐러드'처럼 각양각색의 문화가 어우러진 사회다. 나는 세계 각국 음식이 들어와 미국 음식이 되어 가는 데서 그 말을 실감하였다. 미국에서 번화한 상가 지역이나 혹은 길가 모퉁이 작은 상가에서 세계 각국의 음식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다소 보수적인 지역에 속하는 오하이오도 이러할 진대, 보다 개방된 다른 주에서는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 샐러드처럼 다양한 게 미국 문화와 음식이다. 이런 사회에 주류 문화란 사실상 허구에 지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미국에 온 지 몇 달 되지 않았을 때 있었던 일이다. 미국 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미국에 대해 보다 많이 알고자 하는 바람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이것저것 질문하곤 하였다. 그 중 한 가지가 "가장 좋아하는 미국 음식이 무엇인가?"였다. 그런데 어떤 한 친구는 심드렁하게 "프렌치프라이"라고 대답하였다. 나는 이 친구가 내 질문을 잘못 이해한 것으로 생각하고, "유럽 음식 말고"라고 하면서 재차 물었다. 그러나 그 뒤의 대답도 다르지 않았다.

왜 미국 사람들이 흔히 먹는 감자튀김이 프렌치프라이라고 불리는지 그 내력은 잘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프렌치프라이는 프랑스 음식이 아니라 미국 음식의 하나라는 것이다. 프렌치프라이는 독일계 이민자가 만들었다는 '햄버거'와 함께, 너무도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미국 인스턴트 음식의 대명사가 되었다. 이제 누구도 햄버거 옆에 있는 감자튀김을 보고 유럽 문화를 연상하지 않는다.

또 이탈리아 음식인 '라자니아', 일본 음식인 '데리야끼 치킨', 멕시칸 음식인 '타코', 중국 음식인 '제네럴 추즈 치킨'(일명 탕수육) 등도 미국인들이 일상에서 자주 먹는 음식들이 되었다. 이밖에도 내가 이름을 알지 못하는 여러 나라의 수많은 음식이 미국인들의 식탁에 오르고 있으며 인도, 타이, 베트남, 몽고, 한국, 에티오피아, 소말리 등 세계 각 나라 음식을 소개하는 레스토랑들 또한 미국인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미국 문화를 대표하는 패스트푸드 레스토랑 업계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전에 패스트푸드 시장을 장악한 것은 맥도날드를 포함한 햄버거 레스토랑이었다. 지금도 맥도날드 레스토랑의 위력은 여전히 막강하지만 멕시칸 음식도 미국의 패스트푸드 시장에서 이제 큰 세력을 과시하고 있다. 그 중의 하나가 '치폴레'(Chipotle)라는 레스토랑이다.

히스패닉어로 고추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이 멕시칸 레스토랑은 조그만 회사로 출발했으나 빠르게 성장했으며, 이런 까닭에 몇 년 전 맥도날드사가 인수하였다. 많은 히스패닉계가 미국으로 들어오면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이것은 멕시칸 음식이 미국 문화에 편입된 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

그런데 멕시칸 음식 문화가 미국 문화에 편입된 과정을 살펴보면 꽤 흥미롭다. 미국의 '주류 세력'은 대다수 소수 민족들에 대해 고정관념이나 편견을 가지고 있지만, 멕시칸 사람들이나 문화에 대하여 더욱 부정적인 평가를 하는 경향이 있다.

   
 
  ▲ 멕시칸 음식은 미국인들이 가장 즐겨 찾는 미국 음식이 됐다.    
 
미국과 남미 여러 나라들의 경제력 차이가 큰데다가 지리적으로 가까이 있는 탓에, 부지기수의 히스패닉계 사람들이 국경을 넘어 '불법적인' 방법으로 풍요로운 미국 사회 한 쪽으로 들어오고자 한다. 소위 '주류 미국인'들이 히스패닉계 사람들을 싫어하는 이유는 이들로 인해 자신들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사회 복지 비용이 증가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논리에 따르면, 당연히 멕시칸 음식이나 문화도 배척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다양하고 자극적인 향료들이 들어있는 멕시칸 음식들이 미국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그래서 이제 멕시칸 음식들은 미국 전역에 걸쳐 미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미국 음식'이 되었다. 히스패닉계 이민자들이 '치폴레'의 사례에서 본 것처럼 멕시칸 전통 음식을 미국인들의 입맛에 맞추고 또 그것에 맞는 다소 이국적인 분위기를 연출해 미국인들을 매료시켰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현상을 경영학적 관점에서 보면, 멕시칸 음식들이 미국 주류 문화에 맞게 새로이 변형되고 포장돼 시장에 선보인 끝에 미국 주류 사회의 인정을 받게 된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시장의 무한 경쟁 상태 속에서 적자생존의 과정을 거쳐 선택된 것이라는 것이다.

멕시칸 음식 문화가 미국 주류 사회에 편입되는 과정을 알게 되면서 나는 문화의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이전에 나는 문화라고 하는 것이 '각 사회나 민족마다 가지고 있는 고유한 것'이라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미국과 같은 '다문화 사회'에 살면서, 새로운 문화가 유입되고 각각의 문화가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는 것을 보게 되면서 이제 그전과는 다른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문화라고 하는 것은 본래 흐르는 물처럼 흘러가는 것이며 동시에 어떠한 것도 배타하지 않고 받아들이며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것. 이른바 '순수하고 고유한 문화'는 없으며, 사람들이 고유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들조차 사실은 다른 문화로부터 영향을 받아 형성된 것이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과정 속에 있다는 것.

더 나아가 사회의 '주류 문화' 혹은 '주류 세력'이라고 하는 것도 임시적인 것이거나 사실상 허구에 불과한 것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까지 이른다. 지금 미국 사회에서 앵글로 색슨계가 주류라고 불리지만, 멕시칸 음식이 이 땅을 점령했듯이, 머지않아 지금 소수계로 불리는 히스패닉계 혹은 아시아계가 이 땅의 주류 세력으로 등장하지 않을 말라는 법은 없을 테니까 말이다. 바로 땅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이시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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