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진실 규명은 매우 중요한 일'
'과거 진실 규명은 매우 중요한 일'
  • 이승규
  • 승인 2009.03.29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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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화해위 김동춘 상임위원 뉴욕 방문…'역사적 진실 어느 정도 들춰냈다는 자부심'

   
 
  ▲ 뉴욕을 찾은 김동춘 교수는 진실화해위 활동이 어려움도 있지만, 그동안 의혹이 있었던 사건의 진실을 어느 정도 들춰냈다는 점에서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했다 .  
 
김동춘 교수(성공회대,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 상임위원)가 뉴욕을 방문했다. 김 교수는 3월 26일 오후 7시 퀸즈 플러싱 리셉션하우스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자신이 몸담고 있는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위원장 안병욱)가 주로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등을 소개했다. 강연회는 6·15뉴욕위원회가 주최했고, 20여 명이 모였다.

김동춘 교수가 상임위원으로 있는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는 2005년 12월 출범했다. 위원회는 △일제강점기 또는 그 직전의 항일 독립운동 △일제강점기 이후 우리나라의 주권을 지키고 국력을 신장시키는 등의 해외 동포사 △광복 이후 한국전쟁 전후 불법 민간인 집단 희생 사건 △광복 이후 헌정 질서 파괴 행위나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로 발생한 사망·상해·실종 사건, 그 밖에 중대한 인권 침해 사건과 조작 의혹 사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거나 대한민국을 적대시하는 세력에 의한 테러·인권 유린·폭력·학살·의문사 △위원회가 진실 규명이 필요하다고 인정한 사건 △진실 규명 범위에 해당하는 사건이라도 법원의 확정 판결을 받은 사건은 제외하되, 위원회가 의결한 재심의 사유가 있는 사건 등의 진실을 규명하는 작업을 한다.

한나라당 등 보수 세력은 진실화해위원회 출범 초반 '왜 나쁜 과거사를 들춰내려고 하느냐'며 반대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과거사 청산 작업은 우리나라만 하는 것이 아니라며, 남아공이나 칠레, 아르헨티나, 과테말라 등 나라는 과거 의혹이 있던 사건의 진실을 밝히고,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의 화해를 주선하는 일 등을 했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가해자가 자신의 죄를 인정하더라도 처벌하는 조항은 없다. 진실화해위원회가 특별 사면이나 복권을 건의할 수 있다. 대부분 이 두 과정을 통해 일은 마무리된다. 일부에는 법이 그렇게 미약해서 어떻게 과거사를 청산할 수 있겠느냐고 하지만, 김 교수는 한국의 정치적인 분위기상 처벌 조항을 집어넣는 것은 어려웠다고 했다.

2009년 2월 현재 진실화해위원회에 진실 규명을 신청한 건수는 10,988건이다. 그중 민간인 집단 희생이 7,814건으로 제일 많다. 이어 적대 세력 관련(좌익은 우익에게, 우익은 좌익에게 희생당한 사건) 1,660건, 인권 침해가 623건, 항일 독립운동이 273건, 해외 동포사가 16건이다. 하지만 이조차도 재력이 있거나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들은 신청을 하지 않았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신청했다가 더 잃을 게 많다는 판단에서다. 지역적으로도 호남 지역은 신청 건수가 많은데, 영남 지역은 거의 하지 않았다.

진실화해위원회의 활동이 쉬운 건 아니다. 아픈 과거를 들춰내야 하기 때문이다. 공적인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사건의 경우 생존자의 증언에 의존해야 하는데, 그것도 만만치 않다. 피해자도 과거의 사건을 기억하기 싫어하는 경우가 있어 진술이 어렵지만, 가해자들은 자신에게 피해가 올까봐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등의 말로 빠져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 진실화해위 활동은 2010년 2월까지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  
 
김 교수는 거창 사건의 예를 들었다. 거창 사건은 한국전쟁 중 일어난 양민 학살 사건으로, 당시 지리산 공비 토벌 작전을 벌이던 육군 제11사단 제9연대 제3대대가 주민 600여 명이 공비와 내통했다고 잘못 판단해 중화기 등으로 무차별 학살한 사건이다. 위원회는 이 사건의 진실을 파악하기 위해 당시 중대 군인들의 주민등록을 조회해 찾았다. 하지만 이미 죽은 사람들이 절대 다수였다. 어렵게 지역 경찰관 1~2명을 찾아 당시 상황을 물었지만, 경찰들은 '어디에 갔다 왔더니 그런 사건이 벌어졌다'는 식으로 대답을 했다.

김 교수는 진실화해위원회가 역사적 진실을 밝히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고 했다. 특히 한국전쟁의 경우 여전히 진실을 밝히는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김 교수는 한국전쟁을 바라보는 남과 북의 시각이 너무 다르다고 했다. 그는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이념을 묻지 말고, 당시 피해자들의 증언을 확인한 뒤 부상당했던 사람들, 불의에 고통당했던 사람들을 찾아내 진실을 밝히는 작업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되면 왜 우리가 이런 어려움을 당했는지 알게 되고, 남북통일에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는 얘기다.

김 교수는 진실화해위원회 활동을 많은 사람이 알지 못한다고 했다. 특히 보수적인 매체는 위원회의 활동을 거의 다루지 않는다. 하지만 위원회는 후세들에게 역사를 제대로 알려준다는 사명감으로 일하고 있다. 자료도 많이 축적했다. 김 교수는 위원회가 어느 정도 진실을 들춰내고, 피해자들의 정신적 상처를 치유했고, 화해를 위해 한 발 나가는 정도의 역할은 했다고 자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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