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서서 일하는 계산원들
하루 종일 서서 일하는 계산원들
  • 이승규
  • 승인 2009.04.07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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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퀸즈의 한인 마트, 계산원 위한 의자 없어…교협·목사회, '관심 갖고 의논해보겠다'

   
 
  ▲ 한국에 있는 대형 마트는 최근 계산원을 위한 의자를 놓기 시작했다. 사진은 이마트 안성점. 하얀 원 안에 의자가 보인다. (사진 출처 서서 일하는 서비스 여성 노동자에게 의자를 캠페인 홈페이지)  
 
3월 18일자 <오마이뉴스>에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한국의 홈플러스와 롯데마트가 계산원들을 위해 의자를 놨다는 내용이다. 홈플러스는 3월 말까지 전국 111개 점포에 2,220개의 의자를, 롯데마트는 63개 점포에 1,230개의 의자를 놨다. 이마트 역시 현재는 안성점, 보라점, 성수점 등 3개 매장에만 의자를 놨지만, 올해 안에 모든 매장에 의자를 놓겠다는 계획을 하고 있다고 <오마이뉴스>는 보도했다.

그렇다면 뉴욕은 어떨까. <미주뉴스앤조이>는 퀸즈 플러싱과 리틀텍, 롱아일랜드에 있는 한인 마트(한아름, 한양, 아씨)와 중국 마트(L&L 슈퍼마켓), 미국 마트(STOP&SHOP, WALMART)를 조사했다. 그 결과 의자를 놓은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다만 아씨 마트와 L&L SUPER 슈퍼마켓만이 박스를 갖다 놔 계산원들이 손님이 없는 틈을 타서 앉아 쉴 수 있도록 했다.

5년 동안 한아름에서 일했던 20대 여성 박 아무개 씨. 박 씨는 여러 가지 일을 해봤지만, 계산원이 제일 힘들다고 했다. 업무의 특성상 자리를 비울 수도 없으며, 일주일 매출액의 절반 이상이 토요일과 일요일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주말에 마음대로 쉴 수도 없다. 가장 힘든 건 하루에 평균 10시간은 서서 일해야 한다는 점이다. 의자가 있으면 손님이 없는 틈을 타 쉬기라도 하겠건만, 자리가 비좁아 의자를 놓으면 자신이 서 있을 공간이 부족해진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얻는 건 다리와 허리에 생기는 병이다.

계산원들이 마음 놓고 푹 쉴 수 있는 시간은 점심과 저녁 식사 시간뿐이다. 물론 손님이 뜸한 시간에는 놀고 있는 계산대를 닫아 계산원들이 계산대를 벗어나 쉴 수 있지만, 휴게실이 없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한아름 본사 홍보실 관계자는 "의자는 없지만 손님이 없는 경우 계산원이 계산대에서 빠져 쉴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 캠페인단이 공개한 여성 노동자의 자리. 하지 정맥류에 걸린 여성 노동자 사진. 이 병은 모두 5단계로 나누는데, 사진은 4단계다. (사진 출처 서서 일하는 서비스 여성 노동자에게 의자를 캠페인 홈페이지)  
 
하루 종일 서서 일하다 보니 다리와 허리에 무리도 많이 간다. 박 아무개 씨는 "계산원 대부분이 다리와 허리에 크고 작은 병을 하나씩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산재로 처리할 수도 없다.

마트 쪽이 내세우는 주된 이유는 손님들의 정서다. 아씨 마트의 한 관계자는 "아직 손님들의 정서가 계산원들이 앉아서 일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 한다"고 말했다. 앉아서 일하는 모습이 손님들에게 좋아 보이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한아름 그레잇넥점의 김 아무개 씨는 한국 사람보다 외국인의 시선이 더 부담스럽다고 했다. 김 씨는 "온갖 민족이 모여 사는 뉴욕에서 외국인들의 정서도 무시하지 못 한다"고 했다.

과연 마트를 찾는 소비자도 그렇게 생각할까. 아씨 마트에서 만난 70대 여성은 "계산원이 의자에 앉아 있어도 괜찮다"고 했다. 단 계산을 할 때에는 일어나야 한다고 했다. 한아름 유니온점에서 만난 30대 남성은 "한국에 있는 일부 마트에서 의자를 놨다는 얘기는 들었다. 그런데 뉴욕에서 한국을 쫓아하기란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이 남성은 의자를 놓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하지 않았다. 아예 무관심한 사람도 있었다. 아씨 마트에서 만난 한 60대 남성은 "나랑 상관없는 일이라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했다.

불편함도 한 몫 한다. 힐사이드에 있는 한아름 관계자는 "약 5~6년 전에 의자를 놨다. 그런데 오히려 계산원들이 불편해 하더라"고 했다. 계산원들은 계산대 안에서 일하는데, 가로, 세로 80cm 정도의 좁은 공간에서 일을 하고 있다. 이 공간에 의자를 놓으면 서 있기도 불편하다. 게다가 3분의 1정도는 바깥으로 삐져나와 카트의 흐름을 방해할 수도 있다. 계산대와 계산대 사이의 간격이 1m도 안 되기 때문이다.

한국은 산업안전보건법 보건 규칙 제227조에 '지속적으로 서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작업 중 때때로 앉을 수 있는 직업의 경우 의자를 놓도록 사업주에게 의무를 지운다'는 조항이 있다. 하지만 미국에는 그런 법조항이 없다.

   
 
  ▲ 뉴욕 퀸즈 지역에 있는 한인 마트 중 의자를 비치해 놓은 곳은 없었다. 사진은 계산원이 서서 일하는 공간. 여기에 의자를 놓으면 서 있기도 불편하다.  
 
계산원들의 삶은 이렇게 고달프다. 이런 사람들의 복지 향상을 위해 교회가 나서면 어떨까. 대뉴욕지구한인교회협의회(회장 최창섭 목사)와 대뉴욕지구한인목사회(회장 송병기 목사)에 취재 결과를 소개하니, 관심을 보이면서 "좋은 생각이다. 한번 논의해보겠다"고 했다.

한국의 상황
 

한국이 이 문제에 관심을 보인 지는 1년이 안 됐다. 지난 2008년 7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과 전국민간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과 산하 27개 노조가 힘을 합해 '서서 일하는 서비스 여성 노동자들에게 의자를'이란 캠페인을 하고 있다.

이들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백화점과 대형 마트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은 업무 시간의 90%를 서서 일하고 있다. 서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가 하루에 8시간을 서서 일할 경우 3~5년 사이의 정맥류 발생 위험은 3년 미만 근무했을 때보다 8배, 5년 이상 근무했을 때보다 12배나 높게 나타났다. 유통 서비스업에서 종사하는 여성 노동자의 건강을 위해 개선되어야 할 과제 1순위로 41.5%가 아픈 다리 문제 해결이라고 꼽았다.

노동부의 조사에 따르면, 전국 15개 대형 유통 업체 소속 427개 매장 중 111개 매장에서 계산원, 안내원 등 서서 일하는 근로자를 위한 의자를 놓았고, 나머지 매장도 올해 안으로 의자를 놓겠다는 계획을 하고 있다.

지난 2월 16일에는 이영희 노동부장관이 이마트 성수점을 방문해 계산대 개선 사례를 돌아보기도 했다. 노동부는 앞으로 유통 업체를 대상으로 서서 일하는 근로자 보호를 위한 의자 비치, 좌식 계산대 설치 등을 단계적으로 개선하도록 업체 쪽에 촉구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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