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 목사님들만? '청년들도 합니다'
성명서 목사님들만? '청년들도 합니다'
  • 박지호
  • 승인 2009.08.04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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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교회 삭개오 청년부의 시국 성명서

미디어법안 통과로 한국 사회와 정치권이 들썩이는 가운데, LA의 작은 한인 교회 청년들이 '미디어법을 반대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평화의교회 삭개오 청년부는 8월 1일자로 <미주뉴스앤조이> 게시판을 비롯해 미주 지역에 있는 각종 온라인 매체에 이 성명서를 올렸다.

이들은 "대다수 국민 반대를 무릅쓰고, 언론 자유가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는 미디어법안을 불법으로 통과시킨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진실과 공평과 정의에 역행하는 것"이라며 "고국의 어려움을 염려하는 기독인들로서 민주주의의 근간인 언론의 자유와 독립성이 심각하게 훼손되는 현 상황에 안타까움과 탄식을 하나님과 역사 앞에 쏟아놓는다"는 말로 성명서를 시작했다.

국민의 60% 이상이 반대한 미디어법안이 통과되면서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족벌 언론들에 의한 여론 독과점 현상이 초래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됐고, 법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변칙과 편법이 동원되면서 민주주의가 심각하게 훼손되었다는 것이다. 또 "여론의 다양성보다 경제적 득실을 따지는 것은 언론을 경제 회복을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지극히 위험한 발상"이라며 언론의 자유를 돈과 맞바꾸려는 정치인들의 천박한 인식에 우려를 나타냈다.

'이런 교회도 있군요'

   
 
  ▲ 미주 한인 주부 포털 사이트인 게시판에 올린 성명서.  
 
대단할 것도 특별할 것도 없는 성명서지만, 반응이 그리 나쁘지 않다. "이런 교회도 있군요. 조용기, 김홍도만 있는 줄 알았더니."(미시유에스에이) "다녀보고 싶은 교회입니다. 이런 교회가 좀 더 많았으면 합니다."(미즈빌) 유명 목회자들이 발표한 것도 아니고, 엄청난 숫자의 청년들이 참여한 것도 아닌, 고작 20여 명에 불과한 개 교회 청년부가 낸 성명서지만 눈여겨보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지난 7월 14일 열린 LA 기독교연구실천아카데미 창립포럼에서 양희송 실장은 한국 교회의 '목회자의 과잉 대표성' 현상을 지적한 바 있다. 한국 개신교는 흔히 '교계(church society)'로 표현되는 목회자 집단에 의해 대표되었다. 때문에 일반 성도들의 생각이나 관점과 대치되는 의견들이 교계의 연합 기구나 교계 지도자들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해당 기사 보기)

지난 6월 12일, 한국에서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가 1,200만 기독교인 이름으로 "각계 시국선언은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법질서에 대한 도전이며,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애도는 자살에 대한 선동 행위"라고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에 교회개혁실천연대를 포함한 25개 기독교 단체가 항의하며 한기총에 "누가 당신을 기독교의 대표로 세웠냐, 신앙을 가장해 권력에 야합하지 말라"고 비판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일반적으로 한국 교회에서 청년들의 존재는 미미하다. 그 숫자의 많고 적음과 무관하게 교회 운영과 주요 직책에서 배제된 채, 교회의 허드렛일에 손발처럼 헌신만 요구당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점에서 이번 성명서는 그 내용의 옳고 그름이나, 전문성의 유무를 떠나서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표현했다는 점이 유의미하다. 더 이상 교계 단체와 목회자가 대표성을 독점하는 구조가 아닌, 교회 안팎의 다양한 그룹들이 주체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실천 사례에 해당하는 것이다.

아래는 삭개오 청년부가 정리한 성명서 전문이다.

<미디어법 날치기 통과에 대한 평화의 교회 삭개오 청년회 성명서>

LA 평화의교회의 삭개오 청년회는 한국의 정치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 인애와 공평과 정직의 도를 정치에 실현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지만 대다수 국민의 반대를 무릅쓰고, 언론의 자유가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는 미디어법안을 불법으로 통과시킨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진실과 공평과 정의에 역행하는 것입니다.

평화의교회의 삭개오 청년회는 고국의 어려움을 염려하는 기독인들로서 민주주의의 근간인 언론의 자유와 독립성이 심각하게 훼손되는 현 상황에 안타까움과 탄식을 하나님과 역사 앞에 쏟아놓습니다.

'법안'도 '절차'도 문제입니다. 국민의 60% 이상이 반대한 미디어법안이 통과되면서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족벌 언론들에 의한 여론 독과점 현상이 초래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됐고, 법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변칙과 편법이 동원되면서 민주주의가 심각하게 훼손되었습니다.

미디어법안 통과로 신문·방송 겸영이 허용되면 언론의 독점이 심화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한 목소리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여론 독과점 현상을 막기 위해 신문사가 종합편성방송ㆍ보도전문방송(뉴스 관련 프로그램)을 겸영하거나 지분을 소유하는 것을 금지해왔습니다.

하지만 족벌언론의 방송 시장 진입이 허용되면, 해당 신문사의 논조가 방송을 통해 확대재생산되면서 여론의 다양성이 위축될 것 입니다. 결정적인 순간마다 사주와 언론사의 이익을 위한 홍위병 노릇을 해온 사실을 감안할 때 족벌언론에게 진실 보도, 권력 감시와 견제라는 언론의 본연의 사명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여기에 혼맥으로 얽히고설켜 있는 족벌언론과 대기업이 결합하면 대자본이 여론을 지배하는 사회가 되면서, 기득권의 지배 체제를 옹호하는 목소리는 커지고, 사회적 약자와 서민을 대변하는 목소리가 소외당할 것입니다.

미디어법이 통과될 때 드러난 편법과 변칙도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 치명적인 오점을 남겼습니다. 표결 종료 선언을 하고 재투표를 실시해 일사부재의의 국회법을 어겼고, 대리투표 논란까지 일고 있습니다. 입법부의 최고 의사 결정 기관인 국회에서 이 같은 불법이 자행된 현실은 국회의 권위가 훼손되고 대의 민주정치가 유린당한 것입니다.

무엇보다 미디어법안을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민생법안이라고 주장하는 정부와 여당의 천박한 접근에 심각한 우려를 느낍니다. 미디어 산업 규제를 풀면 일자리가 창출된다는 것은 근거가 빈약할 뿐 아닐라, 신문·방송 겸영 문제를 놓고 여론의 다양성보다 경제적 득실을 따지는 것은 언론을 경제를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지극히 위험한 발상이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으로 종교는 공동체가 위험에 처할 때 가장 먼저 앞장 서 모범이 되어왔습니다. 평화의교회 삭개오 청년회는 머나 먼 타향에 머물지만, 고국이 처한 현실에 안타까워합니다. 한국의 정치인들은 사실만을 보고 다양한 목소리를 들어야할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고 막는 미디어 악법 통과를 즉각 자진 철회해주시기 바랍니다. 독재자만이 한 목소리만을 국민에게 강요합니다. 한국의 정치인 여러분,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지 마시고 이제라도 국민의 원하는 것에 귀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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