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성공, 불신 실패?'
'예수 성공, 불신 실패?'
  • 최태선
  • 승인 2009.09.15 02: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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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복주의를 거부하면서도 기복주의에 매여 있는 우리의 모습

한 목사님이 한탄조로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누가복음의 나사로와 부자 이야기를 하면서 이들 가운데 진정 복 받은 자는 누구인가를 생각해 보라고 했답니다. 마지못해 사람들은 나사로가 복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배가 끝나자마자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는 역시 돈을 많이 번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사실 이 시대 교회에서 나사로와 부자 이야기를 하는 경우는 많지만 누가 과연 복 받은 자인가를 생각해 보라고 촉구하는 목회자는 거의 없습니다.

특히 못을 박듯 나사로가 복 받은 자라는 것을 확정해주는 목회자는 더더욱 많지 않습니다. 돈이 최고가 아니라고, 이 세상에서 호의호식하는 것이 다가 아니라고 모두 흔쾌히 말합니다. 그러나 돈이 최고가 아니며 이 세상에서의 삶이 다가 아닌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만일 우리의 신앙이 정말 '예수 성공 불신 실패'라면 그것은 참으로 참람한 일입니다. 거기에서 말하는 성공이 종말론적이고 궁극적인 십자가의 승리가 아니라 세상에 모든 소망을 둔 우리가 두 발 딛고 선 바로 이 땅에서의 성공을 말하고 있으니 참으로 서글픈 현상입니다.

만일 그런 설교를 하는 목사가 있다면 하나님나라에서 발붙일 곳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교회는 수만 명이 모이는 최대의 교회 중 하나입니다. 특히 그 교회 새벽기도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할 만큼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아침 일찍 교회에 나오지 못하는 먼 곳에 사는 분들을 위해 서울 시내는 물론 인접한 도시까지 새벽기도 처소가 곳곳에 따로 마련될 정도로 기도의 열기가 뜨거운 곳입니다.

그렇다면 그 교회는 과연 하나님 나라일 수 있는가? 그 교회 성도들이 그렇게 열심히 하는 기도는 과연 어떤 기도인가?' 정말 생각하기 싫은 내용들입니다. 자신의 신앙이 기복주의라는 것을 인정하는 분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더욱이 자신의 설교가 기복주의이거나 기복주의를 조장하는 내용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설교자는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사로가 복 받은 자라고 설교하는 교회는 텅텅 비고, '예수 성공 불신 실패'를 말하는 교회는 차고 넘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다른 여러 이유들이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우리의 마음이 아니 세포 하나하나가 복음이 말하는 있는 그대로의 내용을 거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기복주의가 아니라고 말하지만 실상은 기복주의임을 인정했으면 좋겠습니다. 여기서 복 받는 게 뭐가 나쁘냐고 말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은 자기 마음속의 욕망의 표출이며 인간의 어리석은 자가당착임을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들의 그런 현상을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습니다. 누구도 아닌 바로 저 자신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비난할 자격이 처음부터 제게는 없습니다. 다만 이제 그것을 볼 수 있는 은혜를 주신 주님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리고 저처럼 보잘것없는 사람에게도 베풀어주신 그 은혜를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받기를 바랄 뿐입니다.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암8:11)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참으로 혼탁한 시대입니다. 주일이면 전국 방방곡곡에 융단폭격 같이 말씀이 선포되지만 정작 그리스도인들은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엄청난 홍수로 사방이 물난리이지만 정작 마실 물은 없는 그런 형국입니다.

우리들이 진정 여호와의 말씀을 듣는다면 '예수 성공 불신 실패'와 같은 이야기들은 사라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들은 그리스도인들은 공통점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믿음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서 그리고 다른 이들의 속에서 믿음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 믿음은 지금 세상에서 각광을 받는 모습과는 사뭇 다를 것입니다.

'가장 훌륭한 그리스도인들이 한결같이 증언하는 이야기가 있다. 그들은 하나님께 가까이 갈수록 자신의 죄와 무가치함이 더 생생하게 느껴진다고 말한다. 가장 깨끗한 영혼들도 자신이 얼마나 깨끗한지 전혀 알지 못했으며, 가장 위대한 성자들도 자신이 얼마나 위대한지 전혀 생각지 못했다. 이들은 자신이 위대하다는 생각 자체를 마귀의 유혹으로 알고 거부했다. 이들은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는 데 온 마음을 쏟았기 때문에 자신은 쳐다볼 시간이 없었다. 이들은 영적 깨달음의 달콤한 역설에 매여 있었다. 다시 말해, 이들은 자신이 어린양의 피로 깨끗해졌음을 알았으나 자신들에게는 죽음과 지옥이 마땅하다고 느꼈다. 이러한 느낌은 바울 서신뿐 아니라 거의 모든 신앙 서적과 가장 뛰어나고 사랑받는 찬송가에도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토저, <신앙의 깊이를 더하라>-

기복주의를 거부하면서도 기복주의에 매여 있는 자신의 모습이 죄에 매여 있는 노예의 모습이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작은 즐거움과 편안함 때문에 세상에 안주하려는 내 안의 숨은 욕망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에서의 성공과 업적을 통해 자신의 위대함을 쌓아가려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이가 아닌 바로 내가 마귀의 유혹을 받는 존재임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의 죄와 무가치함을 생생하게 느끼기 때문에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얼마나 크고 감사한 일인가를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는 데 온 맘을 쏟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진정 나사로의 복을 믿는 자들이라면, '예수 성공, 불신 실패'의 자기도취에서 벗어나 내게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하며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하여 촌음을 아껴 쓰는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시대가 아무리 혼탁할지라도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생명수가 흐른다면 만물을 소성시키는 그분의 생명수가 온 세상을 구원할 것입니다. 그것은 오로지 자신의 죄와 무가치함을 깨달은 작은 자들의 몫입니다.

우리의 약함을 통해 역사하는 그리스도의 권능을 세상에 드러내는 작은 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최태선 / 기자회원, 어지니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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