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존재 변화시킨 십자가가 바로 기적입니다'
'내 존재 변화시킨 십자가가 바로 기적입니다'
  • 최태선
  • 승인 2009.10.02 01: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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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사람들⑧, 십가가의 역설과 기적

삶의 위기가 닥칠 때 하나님께 매달리며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것이 기적을 요구하는 일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전혀 잘못된 일이 아닙니다. 불행이 행복으로 바뀌기를 바라는 일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절대 허물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렇게 하나님께 매달리며 기적을 바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는 신뢰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나약한 인간의 가장 순수한 마음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숙한 신앙인은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곳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버리거나 그분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가난이 부요함으로 바뀌지 않고, 심각한 질병이 치유되지 않고, 아픔과 고통이 사라지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 해도 그의 신앙은 흔들림이 없습니다. 그런 극적인 변화만이 기적이 아니라 삶 자체가 기적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사실 진정한 신앙인은 살아 숨을 쉰다는 것 자체가 기적임을 압니다. 삶의 곳곳에 숨겨져 있는 주님의 손길을 느끼기에, 세상 곳곳에서 그분의 손길을 감지하기에 그의 모든 삶은 그냥 감사입니다. 그렇게 언제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할 수 있음이 사실은 가장 큰 기적입니다. 무슨 신기한 일이 일어나기를 바랄 이유가 더 이상 그에게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곧 믿음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바로 이런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그런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기적의 신앙이 아니라 신앙의 기적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막8:11) 구하는 바리새인들에게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느냐"고 깊이 탄식하셨습니다.

기적(표적)을 구하는 세대를 "악한 세대"라고 말씀하시고(눅11:29)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요4:48)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기적 때문에 하나님을 믿겠다는 인간들의 태도를 멀리 하셨습니다. 그분은 신앙이 기적보다 선행함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조하셨습니다. 그러기에 믿음이 없는 곳에서는 기적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바리새인들과 마찬가지로 기적을 구합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떤 이들은 아예 한술 더 떠 하나님과 거래를 하려고 들기도 합니다. 돈을 내세우기도 하고, 헌신을 내세우기도 하고, 생명을 걸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내세우고 걸고 있는 모든 것이 주님의 것임을 까맣게 잊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도무지 주님께 드릴 것이라곤 없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 가운데 주께 받지 아니한 것이 하나도 없음을 왜 그리 자주 잊어버리는지요? 주님께는 순서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왜 그리도 쉽게 잊어버리는지요?

자아가 강한 문화일수록 기도가 쉽게 변질됩니다. 하나님을 기적을 일으키는 연기자로 만들고 그 연기를 보며 즐기려 합니다. 자기도 모르게 신앙인이 아니라 구경꾼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자기 삶의 변화는 그만두고라도 자기가 누구이고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무관심해지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무엇보다 꾸준한 자아 성찰을 요구합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인간이란 타락한 존재이기에 자아 성찰은 오히려 해롭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자신의 진면목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고 바른 삶을 살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 짜릿하고 극적인 체험을 추구하는 문화 속에서 기적은 구하면서도 기도는 하지 않는 이상한 신앙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지나가던 사람들이 조롱하였습니다.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막15:29-30) 그들의 요구는 기적을 행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그들의 성화에 못 이겨 십자가에서 내려오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사람들은 기적이 일어났다고 흥분하여 '이분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다.'라고 떠들면서 온갖 소동을 벌이며 그분을 추종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다음에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소동은 가라앉고 기적은 그들의 기억 속에 아련한 추억으로 남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기적의 소동을 일으킨 분으로 기록되었다가 세상의 다른 모든 위인들처럼 잊히고 말았을 것입니다. 물론 더 이상 아무런 의미도 줄 수 없는 존재가 되어서 말입니다.

그분의 십자가에서는 아무 기적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다만 쓸쓸히 숨을 거두셨습니다. 그러나 그곳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엔 사랑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의 기적이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그 기적의 힘으로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한 기적이 어디 있겠습니까? 십자가에서 내려오는 기적, 남을 감탄시키는 기적이 아니라 내 존재를 변화시켜주는 기적, 그것이 바로 십자가의 기적입니다.

신앙인의 눈으로 바라볼 때 내 모든 삶과 세상의 모든 것이 기적이 아닌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또한 기적이 아닙니다. 기적의 이런 이중적 의미를 깨닫는 날, 하루 하루가 주어지고 꽃이 피고 푸르름의 향연을 지나 낙엽이 지고 열매가 맺고 눈보라가 몰아치고, 일 하고 대화 하고 사랑하고 다툼과 고통과 어려움을 겪는 일까지 모두 숨 쉬고 살아가는 모든 일상이 사실은 기적임을 바라보면서 삶 자체를 감사로 받아 찬양으로 주님께 올려드릴 수 있게 되는 날, 우리의 예배는 거룩한 산제사가(롬12:1) 되고 세상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 속에서 평화로운 하나님 나라가 될 것입니다.

십자가의 기적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신앙이란 바로 이런 기적이 내 안에 자라고 있음을 아는 것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의 기적을 이루시고 우리에게도 그 기적에 동참하라고 우리를 격려하시는데 우리는 십자가 때문에 평안하지 못하다고, 십자가를 없애는 기적이 내게 일어나게 해달라고 떼를 쓰며 매달리고 있습니다.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겠다는 각오와 노력이 없다면 안타깝지만 그것은 예수님과는 관계가 없는 믿음입니다.

오직 우리가 예수님 가까이 머물 때에만 주님의 생명이 나에게 전해집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의 역설이며 또한 기적입니다. 그 기적이 내 안에 있기는 있는 것일까요? 만일 없다면 언제 그 기적이 내 안에 일어날 수 있을까요? 내 삶이 다 가기 전에 내게 그런 기적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 서늘한 가을바람이 불어옵니다.

최태선 목사 / 어지니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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