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은 '명사'가 아닌 '동사'다
신앙은 '명사'가 아닌 '동사'다
  • 유용석
  • 승인 2009.12.03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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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윤실의 호루라기… 크리스천과 이중국적

세상에 태어나 보니 식민지 치하에서 일본의 황국 신민이 되어 있었다. 어릴 때 북간도로 이민 가서는 나중에 일본이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부의를 꼭두각시로 만들어 놓은 만주국 국민으로 살아야 했다. 해방 직후 고국으로 돌아온 후에는 북쪽에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공민이 되었다가 1.4 후퇴 때 남하해 대한민국의 국민이 되었다. 그리고는 35년 전 미국에 건너왔고 지금은 미국 시민으로 살고 있다.

이민 온 지 4년 반이 되자마자 시민권을 신청해 정확히 5년 만에 미국 시민이 되었다. 서둘러 시민권자가 된 것은 직업상 무역을 위해 세계 각지를 여행해야 하는데 당시만 해도 비자 문제로 한국보다는 미국 여권을 지니는 것이 유리했기 때문이다.

중국 개방 후 선교와 사업 목적으로 연변을 자주 여행했는데 그 때 조선족들은 같은 동포인데도 북한서 온 사람들은 좀 얕보고 한국서 온 사람들은 공연히 거들먹거린다며 꼴 보기 싫어했지만 미국에서 간 필자는 공손하게 대하는 것 같았다.

한 번은 시민권자가 된 지 얼마 안 되어 일본에 간 일이 있었는데 나리타 공항에서 입국심사를 맡은 일본 관리의 태도가 어찌나 불손한지 참지 못하여 큰 소리로 야단치고 훈계한 일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오기가 미국 여권의 '빽'이 아니었나 싶다.

사도행전에는 사도 바울이 선교 여행 중 로마 시민권자였기 때문에 두 번 생명을 건진 이야기가 나온다 이처럼 이 땅의 시민권은 우리의 운명을 바꾸어놓을 만큼 중요하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예수 믿고 구원 받은 크리스천들은 이 땅의 이런 시민권뿐 아니라 그보다 더 좋은 하늘나라 시민권을 가진 '이중국적자'라고 말한다.

최근 언론에 따르면 한국 정부가 외국에 사는 65세 이상 동포들에게는 한국 국적을 허용한다는데 그렇게 되면 우리는 이 땅에서도 이중국적자가 되는 셈이다. 하지만 필자는 이 정책에 반대한다. 미국 시민권 하나만 가지고 사는 것이 옳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 한인들은 너무 모국지향적이다. 이런 잘못된 사고가 한인 사회를 폐쇄적이고 배타적으로 만들고 있다. 미국에 왔으면 이곳에서 잘 살아야 하는데 왠지 우리 한인들은 공중도덕과 법을 잘 안 지키고, 약한 이웃 민족은 깔보고, 모였다 하면 싸우고 분열한다. 정직하지 못해 월남 사람들보다도 못산다는 통계 수치나 나오고, 국민의 의무인 투표는 소홀히 해서 힘없는 민족으로 살아간다. 오래 전 한 주류 신문이 미국인들을 상대로 소수민족 선호도 조사에선 한인은 거의 꼴찌를 차지했었다.

한인 사회는 반 이상이 교회에 나가는 기독교인이다. 크리스천 커뮤니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받은 이런 불명예는 곧 크리스천의 불명예이기도 한 것이다. 미국에는 4,000개에 가까운 한인 교회가 있다. 여기서 매주일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성경공부와 제자훈련이 실시되고 새벽기도가 드려진다. 우리 한인처럼 예수 잘 믿는 민족이 세상에 또 있을까?

그런데도 우리의 생활이 변하지 않아 믿지 않는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 한인타운의 한 큰 교회가 몇 년간 계속한 분쟁은 믿는 사람 전체와 교회를 심히 부끄럽게 만들었다. 한국 기윤실이 2년 연속 실시한 교회 신뢰도 조사는 목회자도 교인도 언행이 불일치하고 이웃과 사회에 대한 사랑과 섬김이 부족함을 지적한다.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했고 나치에 저항했던 독일의 신학자 본 훼퍼 목사는 신앙을 '명사'가 아닌 '동사'라고 했다.

바울의 말 대로 우리는 이 땅과 하늘나라를 동시에 가진 이중국적자들이다. 하늘나라에 가서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부끄러운 구원 받은 자가 되지 않기 위해 우리 크리스천들은 이 땅에서 먼저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고 이웃 사랑을 실천하며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

유용석 / LA 기윤실 실무책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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