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당이 뭐기에…'가짜 성전' 짓자고 '진짜 성전' 갈가리
예배당이 뭐기에…'가짜 성전' 짓자고 '진짜 성전' 갈가리
  • 박지호
  • 승인 2009.12.21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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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분쟁 키워드' (1) 예배당 건축

미주 한인 교계에서 '교회 분쟁'은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잦다. 빈도가 높은 만큼 원인도 다양하지만, 도로마다 '사고 다발 지역'이 있는 것처럼, 교회 분쟁에도 '분쟁 다발 이슈'가 있다. 앞으로 교회 분쟁의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이슈들을 중심으로 몇 차례에 걸쳐 살펴볼 예정이다.

Building(교회 건물 크기), Baptism(교인 숫자), Budget(교회 예산). 누군가 한국 교회가 가장 집착하는 것 세 가지를 꼽으며 이를 '3B'라 명명했다. 성공적인 목회는 교인 숫자와 예배당 건물 크기와 비례한다고 여기고, 양적인 성장에 따라 목회자들끼리 우열과 서열을 가리는 한국 교회의 분위기가 '3B'에 집착하도록 만든 것이다.  

'3B'는 긴밀한 상관관계 속에서 서로의 성장을 부추긴다. Baptism(교인 숫자)이 늘어나면, 자연히 Budget(교회 예산)이 증가하고, 늘어난 교회의 재정을 예배당, 기도원 등의 건립과 구입에 사용한다. 새 예배당 건축을 위해선 예산을 늘려야 하고, 그러려면 교인 확보에 매달리게 되는 순환구조가 형성되는 것이다.

   
 
  ▲ 대표적인 '교회 분쟁 다발 이슈' 중 하나가 예배당 건축이다.  
 
'3B'에 중독된 한국 교회, 그중에 제일은 '건축'

3B 중에서도 교회 건물이 차지하는 위상은 남다르다. 건물이야말로 교회 성장을 시위하기 위한 최상의 도구인데다, 건물이 커지면, 나머지 두 가지(예산과 숫자)도 덩달아 많아질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한국 교회가 예배당 건축에 목을 매는 까닭을 신광은 목사(<메가처치 논박> 저자)는 이렇게 꼬집었다.

"'성전(?) 건축'이라는 기묘한 이름의 프로젝트는 대단히 중요하다. 점점 커져가는 예배당은 교회 성장의 가시적인 징표요, 하나님나라 건설에 대한 훌륭한 은유다. 사실 성전 건축 프로젝트는 개별 성도들의 잡다한 욕구와 불만들을 깡그리 청소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공통의 목표 의식을 설정할 수 있다. 눈물겨운 헌신의 드라마도 연출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사업에 현실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구체적 방법을 제시할 수 있는 훌륭한 전략이다. 근사한 건물과 인테리어는 새 신자 전도(?)에도 큰 도움이 되는데다, 근사하고 쾌적한 공간과 최신식 장비까지 누릴 수 있으니 얼마나 금상첨환가!"

'예배당'이라는 수단이 '교회'라는 본질을 소외시키다

개 교회가 교인들의 동의 하에 정상적인 절차를 밟아 교회 건물을 짓겠다고 하면, 법적으로야 문제를 삼을 여지가 없다. 하지만 예배당이 마치 신앙생활을 위한 '본질'인 것처럼 호도하며 교인들을 착취할 때는 문제가 다르다.

이런 경우는 백종국 교수(교회개혁실천연대 공동대표·경상대학교 정치학과)가 말한 '매개의 변증법'으로 설명할 수 있다. 매개의 변증법이란, 매개자의 존재가 매개의 본질보다 우선할 때 일어나는 모순의 과정, 즉 '본말전도 현상'을 말한다. 예배당이라는 수단(매개)을 본질로 둔갑시켜,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도 매개의 변증법에 속한다. 매개의 지위가 강화될수록 본질의 소외는 가속된다. 성도들을 위한다며 예배당 건축을 위해 착취할수록 본질에 해당하는 교회 구성원들의 영적인 형편은 더욱 나빠지는 것이다.

중세 가톨릭교회도 '성당'이라는 매개에 집착하며, 성전 건축을 위해 면죄부를 판매하다 파멸을 자초했던 것도 매개의 변증법으로 설명할 수 있다. 1988년, 한국의 어느 목사가 교회를 건축하기 위해 돈을 뺏으려고 사람을  교회 안으로 유인해 권총으로 두 사람을 쏘아 죽인 사건도 수단에 대한 집착이 본질을 파괴시킨 예라 할 수 있다.

예배당이 교회의 본질인 것처럼, 하나님나라 확장을 위한 거룩한 사업인 것처럼 포장하려면 예배당 건축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 일부 교회 지도자들이 '성전 건축'이라는 거창한 구호를 앞세우며, 다윗에게도 허락하지 않은 성전 건축을 하나님이 허락하셨다고 왜곡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 갖가지 숫자를 조합해 만든 일부 교회들의 예배당 건축을 위한 기도 제목. 샌디에고의 K 교회는 화장실 변기 앞에도 '성전 건축'을 위한 기도제목을 붙여놓았다.  
 
맞춤형 부흥집회로 건축 헌금 마련

예배당이라는 수단이 본질로 둔갑하면서, 교인들은 예배당 건축이라는 목표 아래 종속되게 된다. 교인들의 강도 높은 물질적 헌신과 참여가 필요한 만큼, 교인들의 헌신을 유도하는 데 다양한 방법이 동원되기 시작한다. 설득하고, 권유하고, 강요하고, 협박하는 방법이 동원된다.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교회 건축을 위해 기도하고 믿음으로 헌금을 했더니 엄청난 축복을 받아 부자가 되고 만사형통했다는 레퍼토리가 따라온다.

"교회 건축위원장이 사업이 안 됐다. 그래서 그 어려운 형편에 2억을 헌금했다. 헌금을 하고 나서 IMF가 와서 다른 회사들은 다 망하는데 우리 장로님은 안 망했다. 어려울 때 성전 짓기 위해서 헌금을 했더니 회사도 일어나고 만사형통이었다. 할렐루야." (한국 S 교회 J 목사)

상황이 힘들어지면 '권면'하는 단계에서 '강요'하는 단계로 넘어간다. 이때 자주 사용하는 도구가 부흥집회다. 헌금 강요 전문 부흥사들을 초청해 '맞춤형 부흥집회'를 열고, 비용을 마련하는 것이다. 돈 설교로 유명한 아무개 부흥강사가 주차장 구입을 앞둔 어느 교회의 부흥집회에서 한 발언이다.  

"… 이 교회 교인들은 목숨 걸고 기도해서 파킹랏(주차장) 만들어야 돼. 파킹랏 만드셔이? 1만 불씩만 하면 돼. … 두 손 들고 아멘 해봐. 1만 불 할 사람만 손들어 보란 말이야.…."

   
 
  ▲ 예상과 달리 공사비가 과도하게 늘어나는데 건축비 상환은 고사하고 교회 운영도 힘들어지면, 교인들도 진행 상황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교육관 공사를 분쟁을 겪은 뉴저지의 K 교회.  
 
담임목사가 아예 건축 헌금을 책정해주는 황당한 경우도 있다. 작정하지 않으면 작정할 때까지 심방하겠다는 협박(?)도 곁들인다. 

"일반 성도들은 100만 원 이상, 서리집사는 500만 원 이상, 시무권사들은 1,000만 원 이상, 그리고 장로님들과 안수집사는 2000만 원 이상을 작정하고 헌금해주시기 바랍니다. 담임목사와 교역자들이 건축 대심방을 하겠습니다. 작정이 어렵다면 작정을 하는 날까지 계속 심방하겠습니다." (한국 C 교회 P 목사가 교회 홈페이지에 올린 글 중에서)

이런 일련의 시나리오를 거치는 동안 충직하고 순진한 교인들은 갖은 재산을 교회에 헌납하며 충성을 다짐한다. 최근 무리한 예배당 구입 시도로 논란이 됐던 샌디에고 K 교회의 한 교인은 "모빌홈에 살면서 2만 불 헌금했다. 아들도 집을 잡히고 2만 불을 헌금했고, 이자도 물고 있다. 어린아이들이 저금통을 털고 어려운 성도들이 크레디트카드 긁고, 집 잡히고…"라며 눈물겨운 탄식을 쏟아내야 했다.   

'해결사 부흥사' 동원해…반대하면 '마귀'    

수백만 불에서 수천만 불에 이르는 예배당 건축을 추진할 때, 모든 교인들이 관여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를 효율적으로 진행하고 관리하기 위해서 대개 당회나 건축위원들에게 건축 관련 업무를 일임하게 되고, 필연적으로 건축 관련 정보가 담당자들에게 집중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상황이 좋을 때는 문제될 게 없지만, 예상과 달리 공사비가 과도하게 늘어나는데 건축비 상환은 고사하고 교회 운영도 힘들어지면, 교인들은 진행 상황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엄청난 재정적 헌신을 했는데, 건축 진행 상황을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은 채 일이 악화될 경우 아무렇지 않을 교인은 드물다.

상황이 악화되기 전에 건축 진행 상황을 투명하게 공개하거나, 교인들의 요청할 경우 진행 상황을 공개하면 된다. 하지만 교회의 안정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정보 공개를 꺼리게 되면, 오해가 쌓이고 갈등의 골은 깊어지는 것이다. 예배당 건축의 불가피성을 부르짖던 교회 지도자들은 이제 예배당 건축의 정당성을 강화하고,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여러 가지 장치를 동원한다.

이 단계에 접어들면 건축을 추진했던 담임목사는 자신을 반대하는 교인들을 의식하며 표적 설교 내지 저주 설교로 반대 여론을 잠재우려 한다. 샌디에고 K 교회 K 목사도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한다고 하면서 돈이 없다고 불평하느냐, 어렵다고 분란을 일으켜서 1세와 2세를 갈라놓느냐, 다른 사람에게 편지를 보내서 어렵게 하느냐"며 반대 의견을 내는 성도를 겨냥하기도 했다.

또 다른 경우는 담임목사 대신 군기를 잡을 수 있는 '해결사 부흥사'들까지 불러들이기도 한다. 뉴저지에 있는 K 교회는 건축 과정에서 잡음이 생기자 부흥집회를 가졌고, 당시 강사는 "하나님 성전 건축한다니까, 뉴저지에 있는 온갖 마귀가 몰려와서 그런 것"이라며 일부 교인들을 정죄했다.

마땅히 해야 할 질문을 하지 않은 교인들도 책임

   
 
  ▲ 부족한 건축 비용을 메우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몸부림치는 교회들.  
 
상황이 여기까지 이르면 교인들 간의 관계는 회복할 수 없을 지경으로 파괴되고, 합리적으로 문제를 풀어갈 가능성은 현저히 줄어들게 된다. 하지만 예배당 건축을 고집했던 일부 교회 지도자들만 탓할 수는 없다. '예배당'이란 수단을 하나님나라를 위한 '본질'인 것처럼 둔갑시키는데도 불구하고, 잠자코 있었던 교인들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교회가 건축 문제로 분쟁에 휩싸일 경우 절차상의 문제나 재정 악화로 인한 어려움을 거론하는 경우는 있어도, 본말이 전도된 모순에 분노하며 이를 지적하는 교인들은 드물다. 얼마 전 무리한 예배당 구입 시도로 물의를 일으켰던 샌디에고 K 교회의 한 교인은 200만 불을 공중에 날려버린 뒤에야 "교회 건물을 '성전'이라고 부르지 말자"며 교회 홈페이지에 글을 남겼다.

"교회 건물은 '성전'이 아니라 단지 회중이 한 곳에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벽돌과 나무로 지은 건축물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닙니다. 교회가 건축할 때 목사님들이 교회 건물을 꼭 '성전'이라고 부르기 시작하는 이유가 뭔지 모르시겠습니까? 형편에 따라서 우리는 예배당을 건축할 수도 더 큰 곳으로 옮길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우리가 교회 간판과 십자가를 걸고 성경 구절로 건물을 꾸민다고 해서 건물이 성전이 되지는 않겠죠? 왜냐하면 지금은 각 성도가 교회이며 성전이기 때문이죠."

오늘도 한인 교계의 수많은 목회자들이 예배당 건축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한인 사회의 영적 중심지"니, "선교사를 길러내는 종합 훈련 센터"니, "영적인 지회본부"니 하며 예배당 건축을 위한 빈약한 명분을 내세운다. 하지만 교인들은 잠자코 따라가기만 한다. 그러다 일이 틀어지면 그제야 문제를 인식하고 후회하지만 이미 많은 대가를 치룬 뒤다.

본질을 향한 끊임없는 개혁만이 

매개의 변증법으로 교회의 부패와 타락을 지적했던 백종국 교수는 "수단이 스스로를 정당화하며 본질을 위협하려는 매개의 변증법을 제거하는 근본적 해결책이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어떠한 제도적 절차나 조직도 매개와 수단을 절대화해서 스스로의 욕심을 채우려는 인간의 욕구마저 다스릴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개에 불과한 수단에 놀아나지 않으려면, 본질을 회복하려는 개혁 운동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고 백 교수는 조언했다. '제도 개선'과 '의식 개혁'이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은 불문가지다. 

"예수께서 죽으면서까지 그토록 어렵게 허무신 성전"을 중세 교회가 면죄부를 팔아 세우려할 때 마틴 루터가 개혁을 부르짖었다. 오늘에 이르는 개혁주의 교회가 그렇게 세워진 것이다. 누군가 '성전 신앙'에 오염되어 예배당을 신성시하며 진정한 의미의 성전인 그리스도의 몸을 찢어놓으려 한다면, 종교개혁자들의 부르짖음을 오늘 우리의 외침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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