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불감증'에 걸린 미국인들
'전쟁 불감증'에 걸린 미국인들
  • 강희정
  • 승인 2010.02.05 11:3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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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엿보기 (28) 기독교인들은 평화주의자여야 하지 않을까?

미국 사람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상대적으로 전쟁에 대해 둔감한 것일까? 내가 보기에 답은 그렇다. 미국은 현재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 두 개의 전쟁에 깊이 개입되어있다. 그런 사실에 대해서 미국인들은 별로 문제시 하지 않는 듯하다. 하루에도 수십 명 혹은 수백 명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대부분 무감각하게 받아들인다. 미군의 희생자 수만을 문제시 할 뿐 이라크인이나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죽음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안중에 없는 듯하다.

내가 미국 땅에 처음 여행 삼아 잠시 들렸었던 때는 2002년의 12월 말이었다. 그 이듬 해 3월에 미국은 이라크 전쟁에 돌입했다. 그 사이에 나는 미국에 잠시 머물면서 놀라운 일을 경험한 적이 있다. 아직도 기억 속에 잊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미국 사람들 더 나아가 미국 기독교인들에 대한 이미지가 아주 부정적으로 각인되었던 사건이다.   

   
 
  ▲ 전쟁이 이들에게는 '일상'이 된다.  
 
당시는 미국이 이라크 전쟁을 개시하느냐 마느냐로 온통 미국 안팎에서 떠들고 있어 뒤숭숭한 때였다. 일요일이 되어 교회에 가게 되었는데 그 교회에서는 이라크 전쟁에 관한 특별 기도회를 예배 중에 따로 가졌다. 그 전 주부터 광고가 나가 있었던 터였고 목사 대신에 한 백인 남자가 기도회를 진행하였다.

기도회를 인도하는 사람이 기도 제목을 나열하는데 가만히 듣고 보니 이라크 사담 후세인 정권 아래에서 억압당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자는 내용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전쟁에 관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구하자는 것과 함께 이라크 정권 아래에서 핍박당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내게는 그 사람들이 전쟁을 개시하는 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당시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노심초사 하면서 불안해하던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기도회가 진행되는 것을 보면서 깜짝 놀라지 없었다. 나중에 그 예배를 주관했던 미국인 목사에게 전쟁에 대한 의견을 물어 보았다. 그는 대답을 하지 않았는데 그 부인이 그 목사가 그 전쟁에 대해서 옹호한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어떻게 기독교인들과 교회 목사가 전쟁을 찬성하고 미국이 전쟁에 개입하는 것을 바라고 기도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난 성탄절에는, 그 전 성탄절 때와 마찬가지로, 미국 보수우파 기독교인들이 대량으로 살포하는 이메일을 받은 적이 있다. 거기에는 "미군들이 전쟁터에서도 여전히 유머 감각을 유지하고 있는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내용과 미군들이 이라크 전쟁 지역에서도 희극적인 모습으로 장난치는 모습을 연출한 사진들이 여러 장 들어 있었다. 끝에는 "하나님께서 우리 군대를 지켜주시기를"이란 로고로 장식되어 있었다.

살육의 현장인 전쟁터가 유머의 공간으로 바뀌어 있을 뿐만 아니라, 전쟁의 정당성과 관계없이 하나님께서 자국의 군대를 축복해 달라고 하는 이런 내용에 대해 많은 크리스천들이 별 문제 의식 없이 웃어넘기고 있다는 것에 대해 나는 의아했다. '전쟁을 일상화' 하는 사진들을 어떻게 무차별적으로 교인들에게 발송이 되도록 하느냐는 질문을 담은 메일을 담임목사에게 보냈다. 대형 교회라서 그런지 나 같은 사람이 보낸 메일에 대해 그 목사는 아무런 답신을 보내지 않았다.

'아기 예수와 전쟁' 이 두 가지 단어의 조합이 얼마나 서로 어울리지 않는지에 대해 미국 사람들은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는 듯했다. 예수가 자기 나라의 군인들만 지켜 주기만을 기도하며 이라크 또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죽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무고한 죽음'에 대해서 무감각한 이 사람들을 어찌해야 할까?

'전쟁 불감증'에 걸린 것처럼 미국 사람들이 전쟁에 대해서 무감각한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나름대로 추론하지 않을 수 없다. 이해되지 않는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뭔가 이유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남북전쟁이라는 내전을 치르기는 했지만 그 밖에 큰 전쟁을 자기 나라에서 치르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도 미국은 1, 2차 세계 대전과 한국 전쟁 그리고 베트남 전쟁 을 통해 그야말로 오늘 날의 초강국의 제국을 이루었다. 전쟁은 특수 소비를 유발하여 자본주의의 부산물로 생기는 불황을 단번에 타개하게 만든다.

미국은 다른 나라에서 벌어진 전쟁을 통해 1차 대전 직전의 불황과 2차 대전 직전의 경제대공황의 늪을 단번에 빠져 나와 버렸다. 그 뿐만 아니라 유럽이 온통 전쟁으로 초토화되는 동안에 고스란히 미국의 본토는 파괴에서 지켜내는 바람에 영국이나 독일을 제치고 세계 제1의 나라로 우뚝 서게 되었다. 이처럼 전쟁의 '특수 효과'를 실감한 미국 사람들은 전쟁이 가져다주는 그 엄청난 이득 앞에서 무감각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전쟁은 인간의 얼굴을 상실하게 만드는 무차별한 횡포를 가져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기독교인들은 '이슬람 지역의 복음화'라든가 '민주적 정권 수립'과 같은 슬로건을 내세우며 미국이 일으킨 전쟁에 대해서 정당화하려고 든다. 그런데 다름 아닌 내 이웃들과 내 교우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나름대로 선량한 양심과 도덕성을 가지고 있는 이른 바 '신실한 기독교인들'이 그러하다는 사실은 참 비극적인 일이다.

지난 주 일요일에 우리가 다니는 교회에서 설교를 들었다. 설교의 초점은 바울이 회심 전과 회심 후의 변화에 맞춰져 있었다. 그런데 목사는 설교 말미에, 바울이 회심하기 전에 초대 기독교인들을 핍박한 사실에서 유추하여 '잘못된 종교는 다른 사람을 핍박한다'는 명제를 내세웠다. 그러면서 기독교인들을 핍박하는 열 개의 나라들을 열거하였다. 첫 번째가 북한이었으며, 그 다음은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를 비롯해 대부분 아라비아 반도와 남아시아에 있는 이슬람 국가들이었다.

나는 그때 미국 목사들이 설교를 통해 어떻게 대중들에게 잘못된 신념을 불어넣어 주는지 알게 되었다. 그 목사는 '잘못된 종교'와 기독교를 대립시키면서 그 '잘못된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사는 국가들에 대한 적대감을 은연중에 불어 넣어 주는 듯했다. 어떤 목사들은 노골적으로 공공연하게 강조하기도 하지만, 그 목사가 의도적으로 그렇게 설교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설교에 젖어 있던 일반 교인들은 미국이 그런 나라들을 상대로 일으키는 전쟁은 '정당한 전쟁'이라고 은연중에 믿게 되는 것이다.

   
 
  ▲ 국가 징병 거부를 이유로 오랜 세월 박해와 차별을 당해온 기독교 평화주의자들인 아미쉬-메노나이트들의 센터의 모습이다.  
 
연초에 근처에 사는 후배들과 연락이 되어 우리가 사는 곳에서 다섯 가정이 모이게 되었다. 미네소타, 보스턴, 미시건 등 짧게는 4시간, 길게는 16시간 걸려서 온 이들에게 의미 있는 시간들을 만들어주기 위해 고심했다. 결국 이들을 아미쉬와 메노나이트 교도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 이들을 데리고 갔다. 몇 년 전에 우리 가족이 다녀왔던 터라 볼거리들이 새롭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 사람들의 '비폭력 평화주의'와 '국가 징병 거부' 등의 신념이 더욱 새로운 의미로 강하게 다가옴을 느꼈다. 기독교인들은 이들처럼 전쟁을 거부하는 평화주의자라야 마땅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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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nyboaz 2010-02-12 09:10:38
역사가들의 견해가 이견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타당하다는 말씀 이해했습니다. 답변에 고맙습니다. 동의는 아니라도. 여전히 제가 드린 질문에 대한 답이 안 보이는군요. 그러기에 일방적으로 미국에 사는 기독시민들의(저를 포함하여) 신앙을 매도하신 점을 제가 지적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