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잘 곳 찾으려 12번 문 두드린 사연
잠 잘 곳 찾으려 12번 문 두드린 사연
  • 최상진
  • 승인 2010.02.07 03: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상진 목사의 '노숙 체험', 그 30일간의 여정 (3)

누가복음 9장을 보면 어느 사람이 길을 가시던 예수님께 "주여, 어디로 가시든 나는 따르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예수님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셨다. '나는 다 내려놓은 빈 털털이 노숙자니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다'는 말 아닐까. 

그러나 종말론적인 깊은 의미로 해석을 하면 이 세상에 너무 미련을 갖지 말고, 주님과 함께 하나님나라를 건설하는 데 소망을 가지라는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것을 내려놓고, 주님이 가르쳐주신 나눔과 섬김의 도를 따라, 위로는 하나님을 아래로는 이웃을 섬기는 제자도의 삶을 실천하라는 말이다.

세상을 살면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만큼 두려운 것도 없을 것이다. 한 밤중에 마약과 살인이 난무하는 흑인 슬럼가에서 길을 잃어 본적이 있는가. 해가 저물어 버린 깊은 산중 숲 속에서 나침반도 없이 길을 잃어 본적이 있는가. 뉴욕 맨해튼과 같은 대도시를 운전하다 네비게이션이 작동을 안 해, 어디로 가야 할지 당황해 본 경험이 있는가. 갑자기 실직되어 내일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한 적이 있었는가. 어디로 가야 할지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앞이 캄캄한 경험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지난 1월 22일 늦은 저녁, 메릴랜드에서 필라델피아로 떠날 때였다. 운전 중에 그리고 휴게소에서 미리 준비해 놓은 노숙자 쉘터들 연락처를 보고 전화를 걸었다. 어디를 가든 영하의 날씨에는 24시간 오픈하는 응급쉘터가 있기 때문에 큰 걱정을 안 했었다.

   
 
  ▲ 힘들게 찾았던 숙소 근처 슬럼가.  
 
그러나 저녁 9시가 넘자 갑자기 두려움이 엄습했다. 노숙자 쉘터에 잠자리를 요청하는 대로 거절을 당했다. 영하의 날씨라 노숙자들이 몰려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여섯 군데에 전화를 했는데 모두 거절당했다. 일곱 번째 전화를 한 쉘터는 오후 4시까지 도착해 신청서를 작성하고, 신분이 증명된(?) 노숙자들에 한해서만 받는다며 거절했다.

밤 10시가 되어 필라델피아의 다운타운이 눈에 보였다. 캄캄한 다운타운을 지날 때 갑자기 두려움이 더 엄습했다. 어디로 가야 할지, 그리고 어디서 잠을 자야 할지 걱정이 앞섰다. 여덟 번째 쉘터에 전화를 했더니 자리가 없다며, 다른 쉘터 전화번호 하나 달랑 주고는 쌀쌀맞게 전화를 끊었다.

다운타운 흑인 슬럼가에 완전히 들어섰을 땐, 정말로 오금이 저릴 만큼 무섭고 떨렸다. 우리 평화나눔공동체 노숙자들이 그렇게 노숙자 체험을 하지 말라고 나를 말렸던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미 두 눈에서 눈물이 핑 돌았다. 정말 어디로 가야 할지 앞이 캄캄했다. 그래도 한 가닥 희망을 갖고 아홉 번째 쉘터에 전화를 했지만, 한 백인 여성이 자리가 없다며 일언에 거절했다. 거절감은 실망으로 실망은 두려움으로 변했다.  

마지막으로 열 번째 쉘터에 전화를 했으나 역시 거절당했다. 늘 가난한 사란들을 위해 봉사를 했던 워싱턴디씨의 슬럼가와 별 차이가 없는 데 오늘은 왜 이렇게 무서운 걸까. 정 안 면 차 안에서 자기로 마음을 먹었지만, 차 안도 불안하다는 생각에 온몸이 써늘했다.

다시 용기를 내어 애절하게 도와달라고 사정을 하자, 웨이팅 리스트에 넣어 줄 수는 있지만, 자리가 없으면 의자에 앉아 밤을 지새워야 한다고 했다. 이 밤에 앉아 있을 공간만 있다는 것 하나로도 너무 기뻐했다. 펜실베니아 다운타운 흑인 슬럼가에 위치한 '릿지 에비뉴 쉘터'에 도착하니 밤 10시30분이 넘었다.

필라델피아 흑인 슬럼가에 있는 '릿지 에비뉴 노숙자 쉘터'에 들어서자, 모슬렘 복장을 한 흑인 여성이 카운터에 나를 오라 하더니 노숙자 신청서를 작성하라고 했다. 내 인생에 처음으로 공식적인 노숙자로 등록되는 순간이었다.

잠시 후 그녀는 나를 한참 바라보더니 인종란에 Black이라고 적었다. 아시아 노숙자를 본 적이 없었나보다. 내 인생에 처음으로 흑인 노숙자가 되었다는 생각에, 내심 움터나는 웃음을 억지로 참았다.

밤 11시 20분이 되어 한 직원이 이곳 쉘터에 침대가 없다며 다른 장소로 이동한다고 집합을 시켰다. 30여 명의 노숙자들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직원이 갑자기 나를 막고는 내 앞 사람까지 밴에 태웠다. 나부터는 자리가 없어 안에 들어가 다시 기다리라고 했다. 매우 당황스러웠다.

   
 
  ▲ 릿지 에비뉴 노숙자 쉘터. (사진 제공 : 최상진 목사)  
 
밤 11시40분이 되어 직원이 나머지 노숙자들을 낡은 벤에 빈틈이 없이 꽉 끼어 태웠다. 만원 전철에 갇혀 있듯 이렇게 다닥다닥 붙어서 몸을 부대낀 것은 처음이었다. 술 냄새에 악취에 심지어 입냄새까지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에서는 도저히 벗어날 길이 없었다. 게다가 흑인 운전자는 노숙자들을 짐짝처럼 다루며 커브 길에서도 너무 거칠게 차를 몰아 어깨는 물론 심지어 머리까지 서로 부딪쳤다.

마치 수용소로 끌려가는 전쟁 포로 같은 기분이랄까. 매일 이러한 전쟁을 치러야 하는 노숙자들을 직접 몸으로 체험을 하고 나니, 노숙자들이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정이 넘어 도착한 곳은 필라델피아 시청에서 운영하는 레크리에이션 센터 실내 농구장이었다. 베드와 담요를 배정 받고 나니 밤12시10분이 되었다. 저녁을 못 먹은 터라 배가 무척 고파왔다.

때마침 한 직원이 놀라울 만큼 얇은 샌드위치를 하나씩 주었다. 작은 식빵에 슬라이스 햄 두 쪽뿐, 야채나 양념도 없었다. 맛은 짜고 음료수도 없어 목에 넘어가질 안았다. 체육관에는 샤워장도 없고 화장실만 있었다. 세면이나 양치질 하는 노숙자들도 아무도 없었다. 도저히 혼자서 세면을 하거나 양치질을 할 용기가 없어 아침에 일어나 하기로 하고 잠에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서도 세수를 하거나 양치질을 하는 노숙자가 한 명도 없었다. 쉘터에서 잠을 자는 것도 고난 그 자체였다. 체육관에서 대형 히터가 돌아가는 소리는 마치 비행기가 날아가는 소음과 같았다. 게다가 옆에서 같이 자고 있는 노숙자 형제가 코를 고는 소리까지. 결국 비행기 두 대가 옆에서 잠을 방해하는 바람에 20분마다 잠을 깨야 하는 고통을 당했다.

여러 위험도 감수해야 했다. 새벽 네 시쯤에 눈을 떠보니, 어느 검은 물체가 내 머리 곁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 형제는 "I'm sorry!"라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사실 베개를 대신해 머리 밑에 둔 배낭에는 나의 귀중한 정보들이 담겨 있는 노트북 컴퓨터가 있었고, 주머니에는 비상용 크레디트 카드를 넣어 둔 지갑이 들어 있었다. 그 시간에 깨어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내 옆에서 온갖 소음을 내고 있던 두 대의 비행기 덕분이었다.

어디를 가야 할지 모른다는 것, 다시 말하면 노숙자의 인생이란 아무런 희망이 없는 그저 두려움과 공포 자체인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그 길을 선택하셨다. 나는 노숙자 체험을 통해 한 가지를 배운 게 있다면, 우리가 영원히 거할 처소가 하늘에 있기에 더 많은 것을 가난한 이웃과 함께 나누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상진 목사 / 평화나눔공동체 대표

노숙자들을 11년째 돕고 있는 최상진 목사는 지난 1월20일 워싱톤디씨를 출발해 메릴랜드, 펜실베니아, 뉴저지, 뉴욕, 메사츄세츠, 커네티컷, 조지아를 거쳐 2월21일까지 노숙자 체험을 갖는다. 함께 한두 시간만이라도 참여하길 원하거나 후원을 하기 원하는 사람은 최상진 목사(571-259-4937)에게 연락하면 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