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 성공학'과 기다림의 영성
'목회 성공학'과 기다림의 영성
  • 정용섭
  • 승인 2010.05.02 13:26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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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목사의 신학 단상(5)

간혹 후배들이나 신학교 제자들에게 우스개 비슷한 소리로 아래와 같은 말을 한 적이 몇 번 있다.

“목회 성공 비결을 가르쳐 줄 테니까 잘 들어봐라. 비결은 다른 게 없다. 군대와 마찬가지로 줄을 잘 서야 한다. 신학생, 전도사, 부목사로 있을 때 대형 교회, 아니면 최소한 중형 교회에 가야 한다. 특히 정치력이 있는 담임목사가 있는 교회라면 금상첨화다. 모든 걸 갖춘 교회에서 파트로 있든지 아니면 전임으로 있든지 자기가 맡은 부분에서 두각을 나타내라.

전도사나 부목사의 경우는 대개 교육 부서를 담당하는데, 그런 부서는 신앙보다는 일종의 인간 관리만 잘하면 별로 큰 힘들이지 않고 효과를 낼 수 있다네. 50명 모이는 학생회를 2년 만에 80명으로, 3년 만에 100명으로 성장시키면 담임목사와 당회원들의 신임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부근의 다른 교회에도 이름이 난다. 일단 목회 초기에 이런 성과만 낼 수 있다면 그는 이제 앞길을 보장받은 것이나 다름없다네.

자기가 맡은 부서를 크게 부흥시키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정치력이 있는 담임목사가 그 후배를 확실하게 밀어줄 것이다. 큰 교회니까 교회를 개척할 수도 있고, 자리가 비는 교회로 밀어줄 수도 있을 거야. 이렇게 자기 능력에 맞는 적당한 교회의 담임목사로 취임한 다음에 일정한 성과를 올리면 조금 더 큰 교회의 청빙을 받고, 그런 과정을 통해서 중대형 교회의 담임목사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다. 그러니까 목회에 성공하려면 일단 줄을 잘 서야 하느니라.” 

한국 교회는 거의 이런 구조로 굴러간다. 그래서 그게 어떻다는 걸까? 이런 구조로 굴러간다고 해서 내가 개인적으로 크게 뭐라 할 말은 없다. 교회도 역시 사람이 모인 단체이기 때문에 어떤 세력 형성의 알력이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이건 옳고 그름, 선과 악의 차원이라기보다 그냥 인간이 살아가는 그런 삶의 현실일 뿐이다.

신앙과 교회와 목회의 본질보다는 오히려 교회 정치 구조로 돌아가는 오늘의 현실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이것으로 인해서 파생되는 교회의 위기는 우리가 외면할 수 없다. 그 위기는 교회 구성원들의 관심이 신앙의 본질보다는 일종의 교회 메커니즘에 집중된다는 것이다.

일반 신자들의 관심도 역시 교회 안에서 자기의 자리를 확보하는 데 있다. 장로가 되기 위해서 기울이는 열정은 얼마나 격렬한가? 교회의 살림살이에 자신의 전 인생을 건 장로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런 것들이 좋은 쪽으로 진행된다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그게 그렇지 못하니 하는 말이다.

또 다른 위기는 기성 목회자들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젊은 목회자들마저 목회를 순전히 기술공학적인 차원으로 생각한다는 데에 있다. 요즘 신학대학교 도서관이나 식당의 게시판에 붙어 있는 온갖 안내문 및 포스터를 보라. 소위 경배와 찬양 집회를 보라. 워십댄스 모임을 보라. 심지어 이런 저런 모양의 온갖 큐티 모임을 보라. 거의 모든 행사들은 사람을 다루는 기술 연마에 집중되어있다.

그래도 그렇게 해야 사람들이 모이니까 어쩔 수 없는 거 아니냐고 말할 수 있다. 한국 교회가 이미 이런 방식으로 어떤 방향을 잡았기 때문에 한동안 이를 거스를 길은 없어 보인다. 이런 데 마음을 빼앗긴 사람들을 향해서 리터지(liturgy, 예전) 중심의 예배와 신학적 설교와 그런 영성으로 돌아오라고 아무리 외쳐도 우이독경일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든지 자기를 확장하고 자극시키는 데 빠져든 사람은 자기를 버리는, 온전히 성령만 지배하는 그런 예배와 설교에 마음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점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떤 대안이 있나? 현재 한국 교회에 실효성 있는 대안은 없다. 이미 대학입시 중심의 교육에 빠져버린 한국의 중고등 교육을 전인 교육으로 바꿀 뾰족한 대안이 없는 것과 같다.

대학 입시 제도를 바꾼다고 해도 해결이 안 되고, 고등학교 교장이 그런 제도와 싸울 수도 없고, 학생 개개인은 더욱 무력하다. 몇몇 대안학교가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실제적인 대안은 아니다. 한국 사회라는 이 시스템 전체가 시나브로 바뀌는 때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한국 교회의 갱신, 목회의 갱신은 한꺼번에 도저히 이룰 수 없다. 지금 뾰족한 수도 없다. 한국 교회 개혁을 위한 목회자 모임이 있긴 하지만 그것으로 해결될 수 없다. 더구나 그들의 그 개혁이라는 건 일종의 개량주의에 불과할 때가 많다. 그런 개량이나마 필요한 거 아니냐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보기에 따라서 그냥 가만히 있는 것보다 못할 수도 있다.

아무런 대안도 없다면 어찌할 것인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적당한 성서의 예인지 모르겠지만 탕자의 비유에서 아버지는 집 나간 둘째 아들을 찾으러 돌아다니지 않았다. 만약 아버지가 그를 찾아 나섰다면 공연히 헛수고만 하든지 아들이 훨씬 멀리 달아났을지 모른다. 아버지는 그냥 집에 기다렸다.

소극적인 것 같지만 기다림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힘이다. 기다림의 영성이야말로 목회 성공학이 판치는 오늘의 교회 현장에서 영적인 아픔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
 
정용섭 목사 / 샘터교회 담임·대구성서아카데미 원장

* 대구성서아카데미에 실린 글을 필자의 허락을 받고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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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 2010-06-08 05:41:56
성령의 사람들은 내일을 준비케 하십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을 올바로 깨닫게 하십니다. 신학박사라도 성경을 올바로 해석치 못하면 가라지입니다. 거짓된 것을 소리높여 외치는 자들이 하나님의 종들입니다. 썩은 고름을 짜내듯이 무엇이 교회를 썩게 만들고 있는가를 알고 세상에 외쳐야하는 것입니다

나목사 2010-05-04 17:28:17
정말 오랜 만에 들어보는 정답입니다. 기다림의 영성!!!!!!!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