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열 교수, "호전적인 부시에게 평화라니"
이만열 교수, "호전적인 부시에게 평화라니"
  • 이만열
  • 승인 2010.06.19 18:35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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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한국 전쟁으로 상처받고 파괴된 공동체를 찾아가라

기독교 언론 매체인 <뉴스앤조이>가 전하는 내용이다. 이달 6월 22일 오후 5시 30분,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한국 전쟁 60주년 평화 기도회'가 '분단을 넘어 평화로'라는 제목으로 열리는데, 거기에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을 초청하기로 했단다. 주최 측은 부시 전 대통령이 평화 통일과 자유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도록 배려하겠다고 한다.

'평화 기도회'에 부시를 초청하겠다는 발상을 보면서 느껴지는 바가 많다. 그는 정당한 명분 없이 이라크 침공을 감행했다. 그는 "이라크에 대량 살상 무기가 은닉되어 있다는 증거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라크를 침공했다. 그러나 이 정보는 거짓된 것이었음이 뒤에 드러났다. 미국과 영국 측이 승리를 선포한 뒤 2004년 10월, 미국이 파견한 조사단은 "이라크에 대량 파괴 무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보고서를 제출하였다. 전쟁을 시작한 근거가 된 대량 파괴 무기 은닉은 이렇게 거짓으로 밝혀져 이 전쟁의 정당성이 크게 흔들리게 되었다. 이 명분 없는 전쟁은 이라크라는 나라를 철저히 파괴했고, 2007년 현재 민간인 사망자 최소 65만 명과 난민 450만 명을 양산했다. 여기에 지금도 살해당하고 있는 민간인과 군인을 합산하면 피해 규모는 더 불어날 것이다. 그뿐인가. 2001년 9·11 테러 이후 알카에다를 잡겠다고 시작한 아프가니스탄 침공은 오바마 정권에도 계속되고 있다.

이라크에 대량 살상 무기가 존재한다는 주장이 근거 없음이 밝혀졌을 때 부시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했을까. 이라크와 세계에 사과하고 이 정당성 없는 침략군을 철수하고 이라크에 법적인 책임을 졌어야 했다. 그렇게 했어야만 미국의 과오에 대해 최소한의 책임을 진다고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전쟁 발발에 대한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았다. 미확인된 정보에 근거하여 섣불리 전쟁을 시작한 것은 처음부터 다른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인권과 민주화 문제에서 세계를 주도한다고 자처한 미국은 베트남 전쟁 개입과 이라크 전쟁으로 말미암아 그런 위상이 크게 흔들리게 되었다. 불의한 전쟁으로 미국의 위상을 크게 떨어뜨린 부시를 한국 교회가 평화의 사도로 둔갑시켜 초청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9·11 사태 이후 미국은 알카에다와 전쟁을 선포하고 그들의 근거지라고 판단한 아프가니스탄에 침공, 벌써 10년 가까이 전쟁을 계속하고 있다. 역시 부시 때에 이뤄진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에 은신하고 있는 알카에다를 잡겠다는 것이지만 그 목표도 뚜렷하지 않고 작전 지역 또한 분명하지 않다. 민간인 사살도 서슴지 않은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은 위장된 '평화'의 이름으로 아프가니스탄의 국가적 자주성뿐만 아니라 부족적 공동체도 망가뜨리고 있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은 결국 탈레반과의 싸움으로 변화되었다.

평화가 전쟁의 승리로 주어질 수 있을까. 전쟁에 승리하여 상대방을 힘으로 누르고 침묵토록 하는 것이 평화일까. 부시를 이은 오바마는 아프가니스탄에 대해서 한술 더 떠서 미군의 증강을 결정했고 우방에 대해서도 증원 파병을 요청했다. 그걸 보면서 오바마의 등장 때에 그에게 걸었던 기대가 사라졌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의 진창에서 헤어나는 길은 병력을 증강하고 무기를 점차 정예화하는 데에 있을까. 이미 드러난 바와 같이, 그것은 끝없는 보복의 연속으로 될 수밖에 없다.

지금 전쟁에 쏟아붇고 있는 그 막대한 비용을 평화의 비용으로 전용하는 때에라야 평화의 실마리가 열려질 것이다. 거기에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는"(사 2:4) 평화의 때가 올 것이다. 미국이 지금이라도 불의하고 무모한 전쟁을 종식, 철군을 단행하고, 지금까지 쏟아부었던 전쟁 비용을 평화 구축을 위한 비용으로 전환할 때 세계를 향한 새로운 지도력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10년, 이라크에서 8년간 전쟁을 치렀던 부시 못지않게, '한국 전쟁 60주년 평화 기도회'를 준비하는 한국 교회 소위 지도자들의 자세도 문제다. 평화를 위한 기도회를 열겠다면서 평화와는 반대의 길을 걸어온 부시를 초청해서 그를 마치 평화의 사도인 양 대접하겠다는 것은 아무래도 기독교적인 가치관과는 부합하지 않는다. 부시를 초청한 것이 역설적인 발상에 의한 것이라면 이해됨직한 소지가 있다. 그를 무모한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으로 치부하고 그에게 전쟁이 이렇게 비참한 것이니까 전쟁할 생각일랑 아예 하지 말라고 강조하면서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우게 하자는 취지라면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번에 부시를 초청하는 것은 그런 의미가 아니다.

'9·11 테러'에 대한 보복 수단으로서 전쟁을 일으킨 '그의 용기'에 주목하면서 응징 수단을 과감히 실천한 그에게 한 수 배우기 위해 그를 초청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이게 기독교 지도자들이 취해야 할 자세인가, 한국 기독교는 기껏 이 수준밖에 되지 않는가.

오랫동안 민족 문제와 통일 문제에 접근해 왔던 한국 기독교는 1980년대까지 통일 문제를 남북한 정부만이 배타적으로 보유하고 있던 자세에 비판을 가하면서, 민족 통일 문제를 국민 대중의 것으로 끌어내리는 일에 누구보다 앞장서 왔다. 그리고 1990년대에 이르러 공산권의 붕괴로 북한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진다고 할 때 북한 돕기에 가장 먼저 나선 것도 한국 교회다. 한편 새 세기에 들어와서 '반핵 반김' 대열을 주도하면서 서울 광장을 뜨겁게 한 것도 역시 한국 교회였다.

한국 기독교는 이렇게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문제를 두고 양면성을 보여 왔다. 그러나 전쟁과 평화의 문제를 두고 어느 편을 선호하는 것이 기독교적인가 하는 것은 자명한 문제다. 여기에 한국 기독교는 분명한 입장을 가져야 한다.

미국의 기독교 원리주의자들은 응징을 위해 전쟁을 불사한다는 입장이다. 부시와 그를 충동하는 기독교 세력들이 취한 태도다. 그들은 자기들이 자의적으로 설정한 '의로운 전쟁'에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승리로 이끌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 한국의 기독교인들 중에도 그 아류에 속하는 이들이 없을까. 부시를 초청하여 '평화 기도회'를 열겠다고 하는 이들이 바로 부시와 같은 동류의식을 가진 이들이 아닐까.

이번에 부시를 초청하는 '평화 기도회'는 준비위원회 대회장 김삼환 목사(명성교회)와 준비위원장 이영훈 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 총무 고명진 목사(수원중앙침례교회)로 구성됐다고 전한다. 기도회 강사는 조용기 원로 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 김장환 원로 목사(수원중앙침례교회), 김삼환 목사 등이라고 한다. 부시 전 대통령 초청에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김장환 원로 목사는 "6·25를 경험한 목회자들이 한국 전쟁 경험담을, 부시 전 대통령이 평화 통일과 자유에 대해 이야기하면 좋을 것"이라고 했단다. 주로 대형 교회의 목사들이 중심이 되어 상암월드컵경기장을 빌려 거창하게 대회를 개최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비용이 얼마가 들든지, 어느 정도의 인원이 모이든 그것은 그들의 자유에 속할 것이다. 그러나 당부할 것이 있다. 대형 교회 목회자들이 주관하는 그런 행사가 '평화 기도회'라는 이름으로 자신들의 이름이나 드러내는 그런 거창한 모임이 되어서는 안 된다. 과거의 행적으로 보아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분들도 있다. 평화라는 이름을 걸고 적대 의식을 고양하는 그 모임이라면, 그런 행사에 사람들은 동원되었으나 정작 그 기도를 들으실 하나님이 함께하실까 걱정스럽다. 부시를 초청할 정도라면 그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차라리 그 모임이 6·25 동족상잔의 죄악을 고통스럽게 되돌아보면서 분단의 죄악을 통회하는 '미스바의 성회'(삼상 7:5~6)가 되기를 원한다. 그렇게 되려면 부시 초청을 취소하라. 아직도 이라크 침공을 회개하지 않는 부시는 그런 회개의 모임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또 있다. 몇몇 교회와 이름난 목회자들의 이름으로 하는 그런 모임이 한국 기독교의 이름으로 치러지지 않기를 기대한다. 그런 일이 아니더라도 한국 교회는 우리 사회로부터 욕먹을 일이 너무 많다. 이미 이름이 거론된 분들이 한국 교회를 대표한다고 할 수도 없거니와 그들은 영적으로 신선감을 주기에는 한물 간 사람들이다. 한국 교회를 대표하는 척하면서 혹시라도 매명에 열을 올릴까 두렵다. 후세들에게 그런 식의 기독교 행사를 더 가르치지 않았으면 한다. 더구나 '평화 기도'를 하겠다면서 부시를 초청하고 한국 교회가 이런 일을 했다고 선언한다면, 하나님이 그 외식을 어떻게 보실까. 네 골방에 들어가 민족적인 죄악과 평화 통일을 위해서 조용히 기도하기를 실천하라고 책망하지 않을까 두렵다.

이번 '평화 기도회'를 주도하는 대형 교회에 고언하고 싶다. 부시를 초청하여 그런 거창한 행사를 주관할 물질적 능력이 있다면, 한국 전쟁으로 인해 상처받고 가정이 파괴된 공동체를 찾아가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조용히 그곳에 용서와 화해를 심고 평화를 확대해 가는 노력이 더 필요하지 않겠는가. 그런 조용한 사역이 부시를 초청해서 요란하게 평화 기도회를 하는 것보다는 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공동체와 민족에게 진한 감동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부시와 평화', 호전적인 그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21세기를 전쟁으로 시작한 부시, 그에게 평화라는 말도 어울리지 않는데 더구나 '평화 기도회'는 더 용납될 수 없다. 아무리 한국 교회의 몇몇 지도자들이 역사의식이 없다 하더라도, 호전성을 가진 그를 기독교의 이름으로 평화의 사도인 양 초청하는 것은 한국 교회를 오도하는 것이다. 부시와 함께 '평화 기도회'를 개최한다는 데 대해서 부끄럽게 생각하는 많은 한국 기독교인들이 있음을 인지한다면, 그를 빌어서 평화를 말한다는 것은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다. 부시가 아무리 하나님을 위한 열정을 가졌다 하더라도 그가 저지른 중동의 두 전쟁은 "평화를 만드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마 5:9)이라는 말씀에는 결코 부합할 수 없다.

함석헌평화포럼에 실린 글을 저자와 편집자의 허락을 받아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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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편무지개 2010-06-23 21:56:18
집회에 거론되는 모든분들은 그림자정부 프리메이슨의 33도 조직들입니다. 현재 미국은 기독교국가가 아닙니다. 프리메이슨 조직이 세운 프리메이슨 국가입니다. 1달러뒷면 피라미드위에 눈모양이 바로 프리메이슨의 상징입니다. 포털사이트에서 프리메이슨 검색하시면 자세한 내용들이 나와있습니다. 프리메이슨 자유,평등,박애를 앞세우며 종교화합을 내세우고, 자신들의 무서운세력을 확장하여 전세계 단일정부 음모가 있습니다.

조건일 2010-06-22 21:10:12
소위 한국기독교 지도자를 자처한다는 이들이 이런 집회를 한다니 정말 한심하기 이르때 없구나. 평화라는 기본 단어의 의미도 모르고 예수정신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무지한 지도자들이라는 자들의 행태에 분노와 절망을 금할수 없다. 아! 정녕 한국교회는 이대로 무참히 가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