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세계교회협의회(WCC)는 2013년 부산에서 총회를 열기로 결정했다. WCC라면 한국에서는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기독교대한감리회, 기독교장로회 등이 가입한 단체로서 국내에서는 한국교회협의회(KNCC)를 구성해서 활동하고 있다. 그런데 이 WCC 총회가 한국 부산 시에서 열리는 것에 대하여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을 비롯하여 같은 이름의 고려 총회가 극렬한 반대 투쟁에 나섰다는 보도다.
WCC의 신학이 매우 잘못되었다는 것이 반대 이유이다. 반대하는 이들은 WCC가 1)종교다원주의, 2)인본주의 성경관, 3)세속적 구원론, 4)종교혼합주의, 5)선교무용론, 6)기독교 이름의 정치 단체라고 지적하고 있다. WCC가 기독교 이름을 가장해서 정통적 기독교 신앙을 파괴하는 단체라는 것이다. (2009년 9월에 발표된 예장 고려 측 성명서 참조).
그런 까닭에 그들은 WCC 총회를 한국 땅에서 개최하는 것을 반대한다는 주장이다. WCC 총회를 한국 교회의 '사탄적 재앙'으로 규정했으니 한국 땅에 사탄적 재앙을 허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이 논리적 귀결이다.
▲ 감리교회나 장로교회 통합 측이나 모두가 건전한 교회들이고 또 WCC가 결코 예수 그리스도를 반대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그들에게 증오심을 품고 한반도 밖으로 내쫓겠다는 것인가. | ||
그러나 한국 땅에서 WCC 총회 개최를 못하게 막는 것은 또 다른 반성경, 반기독, 반교회적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예수님이시라면 WCC 총회를 한국 땅에서 여는 것을 반대하셨을까. 그들을 유럽이나 남북미 아니면 아프리카에서나 개최하라고 채찍질하셨을까. 정말 성전에서 물건 파는 사람, 돈 바꾸는 사람들을 내어 쫓듯이 하셨을까.
"나와 함께 하지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라"(눅11:23)는 말씀을 피켓에 써 가지고 결사적으로 반대하라고 하실까. 아니면, "금하지 말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하는 자니라"(눅9:50)는 말씀을 써 붙이고 적극 환영하라고 하실까. WCC가 복음주의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이단 신앙은 믿음에 대한 반역행위임이 틀림없다. 그러니 경고해야 하고 막아야 한다. 하지만 형제끼리의 분열은 사랑에 대한 반역 행위라는 말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믿음에 충실하다가 사랑을 반역하는 것은 혹시 반성경적이 아닐까.
요한 웨슬리는 이런 교회일치운동에 대한 3원칙을 제시한 적이 있다. 1)본질적 교리에는 일치하도록 노력하고, 2)비본질적 진리에는 관용하도록 노력하고, 3)모든 일은 사랑으로 하라.
이 3원칙은 모두 성경말씀에서 풀어 나온 말씀이다. WCC가 본질적 교리에 있어 성경과 일치되지 못한 것이 있어 일치를 요구하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당연한 의무이다. 그러나 혹시 비본질적인 교리에 너무 얽매어 있는 것은 아닌지 자신을 잘 보살펴야 한다.
아니, 그것보다도 모든 일을 사랑으로 해야 한다. WCC가 설혹 지옥으로 들어가는 문이라 해도 그 멸망으로 가는 사람들에게 사랑으로 선교해야 할 것 아닌가. 하물며 감리교회나 장로교회 통합 측이나 모두가 건전한 교회들이고 또 WCC가 결코 예수 그리스도를 반대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그들에게 증오심을 품고 한반도 밖으로 내쫓겠다는 것인가.
한 걸음 더 나아가 보자. 기독교 신자가 아닌 사람들이 이 같은 꼴을 보고 무어라 할까? 그것이 전도에 도움이 될까 아니면 막대한 방해 요인이 되는 것은 아닌가. 신앙의 순수화를 위하여 불교 문화재를 마구잡이로 파괴했던 탈레반이 출현한 것 같다는 세간의 말들을 들어본 일이 있는가.
WCC가 세속적 구원론에 빠져 있다는 주장이나 선교 무용론을 주창하고 있다는 말은 너무 과장되었다. WCC가 무슨 신앙고백단체도 아니지만 굳이 선교를 말한다면 근본주의나 복음주의 혹은 오순절주의 교회들이 무관심하게 여기는 정치적 해방, 경제적 해방 등을 강조했다는 점이 오해를 낳았을 뿐이다. 오히려 구원론과 선교론에 있어서 역할분담을 하고 있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분명히 기독교는 죄악과 사탄에 꽁꽁 묶여 있는 영혼들을 구출해 내는 선교에 십자가를 기꺼이 져야 한다. 그러나 정치적·경제적·사회문화적·교육적 속박을 당하고 있는 하나님의 피조물들에게도 구원의 기쁜 소식을 힘써 전파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WCC도 중요한 선교 대명을 수행하고 있는 단체로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WCC가 그릇된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은 마땅히 경고하자.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눅17:3)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들을 증오하는 마음으로 하지 말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 그것이 모두가 함께 살아나는 함생(咸生)의 길이다.
이정근 / LA 유니온교회 담임목사, 미주성결대 명예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