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 보지 말고 복음 안에서 자유하세요'
'눈치 보지 말고 복음 안에서 자유하세요'
  • 노진산
  • 승인 2010.08.12 12:43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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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진산 목사의 복음 여정 ① 갈라디아서 1:6~10

갈라디아서를 한 마디로 요악하면 '복음'입니다. 우리에게는 오직 한 복음밖에 없습니다. 구원을 얻거나,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것은 오직 한 복음밖에 없다는 사실을 갈라디아서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갈라디아서 1:6~10)은 복음의 정의를 말해주지 않습니다. 그것보다는 복음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갈라디아서 2장 14절을 봅시다.

"그러므로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따르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

이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굉장히 중요한 원리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 원리가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은 베드로에게 인종 차별, 비겁함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베드로가 복음의 진리대로 행동하지 않고 있다고 얘기합니다. 베드로가 복음의 선에서 이탈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베드로 당신이 복음대로 살지 않으면서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살라고 말할 수 있느냐 하는 꾸짖음입니다. 사실 이 사건은 굉장한 사건입니다. 사도 바울은 젊은 사도였습니다. 반면에 베드로는 교계 어른이었습니다. 괘씸죄에 걸려도 크게 걸릴 일이었습니다.

   
 
  ▲ 사도 바울.  
 
사도 바울이 베드로에게 이런 얘기를 하게 된 배경이 있습니다. 베드로는 평소 이방인들과 잘 어울렸습니다. 그들과 밥도 먹고 교제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예루살렘에서 직책이 높은 사람들이 온다는 소식을 들은 베드로가, 그날은 이방인들과의 식사 자리에 나가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온 사람들에게 이방인과 식사하는 모습을 보여줘 봤자 좋은 게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베드로의 이런 비겁함을 질책한 것입니다. 항상 이방인들과 어울렸으면서 다른 사람들이 보니까 태도를 바꾸는 모습이 복음이 아니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복음은 우리 삶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겁니다. 그저 예수 믿고, 구원 받고, 천국에 가는 것이 복음의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 생각과 결정과 모든 삶이 진정한 복음의 영향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복음이 중요합니다. 

복음은 우리 삶에 가장 중심에 있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 교회에 문제가 있다면 복음을 제대로 적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너무 단순하게 말씀 드리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복음을 왜곡하고, 잘못 적용했을 때 우리는 헤어 나올 수 없는 어려움에 처합니다. 복음은 우리 모든 삶과 연결이 되기 때문에 복음을 잘못 적용하면 삶이 어려워지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우리에게 세 가지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첫 번째는 놀랍다고 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금방 복음의 선에서 이탈할 수 있느냐는 겁니다. 두 번째는 복음을 잘 못 전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세 번째는 우리가 누구에게 칭찬을 받느냐고 합니다.

놀랍다는 의미부터 살펴보겠습니다. 6절과 7절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에 있는 여러 교회 교인들이 진정한 복음을 받았는데, 놀랍게도 다른 복음으로 가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다른 복음으로 간다는 말은 이 교리에서 저 교리로, 이 교회에서 저 교회로 간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하는 것은 우리가 다른 복음으로 간다는 것은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예수의 은혜에서 떠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갈라디아서 5장 4절 말씀을 봅시다.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사도 바울은 굉장히 무시무시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것은 은혜에서 떨어진 자라는 말씀입니다. 은혜에서 떨어진다, 굉장히 심각한 말씀입니다. 많은 사람이 복음 안에서 자유하지 못하기 때문에 굳이 지지 않아도 될 엄청난 멍에를 지고 열심히 삽니다. 그러다 다른 사람을 보면 그들은 편하게 사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다보니 정죄를 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분명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았는데, 왜 다른 곳으로 가느냐고 질책합니다. 복음이 앞에 있는데, 왜 자꾸 거기서 떨어져 의로, 규례로, 율법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을 하느냐는 겁니다. 십자가를 옆으로 제쳐 두고 나의 행위로 율법으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것은 십자가를 멀리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 성경책 몇 장 읽고 기도 몇 시간 하는 게 나쁘다는 말이 아닙니다. 신앙생활하면서 우리가 꼭 해야 하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동기가 중요합니다. 이것으로 하나님께 인정받으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행위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동기가 중요합니다.

사도 바울은 다른 복음을 가면 저주를 받는다고 합니다. 무시무시합니다. 8절과 9절 말씀을 봅시다.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여기서 반복하는 단어가 저주입니다. 이것보다 더 무서운 말이 있을까요. 사도 바울이 얼마나 급했으면 이렇게 얘기를 했을까요. 그것도 두 번이나 말이죠. 다른 복음을 전하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히 떨어져 나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은 여기에서 자신도 그렇게 될 수 있다고 합니다. 바울 자신도 복음에서 이탈해 저주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복음이 중요합니다.

특히 한국 교회에서 이런 현상이 많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종, 하나님의 사자, 목사는 하나님이 심판하시니까 비판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냥 두라고 합니다. 하지만, 여러분 그냥 두면 안 됩니다. 사도 바울조차도 스스로 복음의 선에서 이탈할 수 있다고 합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언제 어떻게 복음의 선에서 이탈할지 아무도 모릅니다. 여러분, 그럴 때는 찾아가서 권면을 해야 합니다. 목사라고 해도 반드시 얘기를 해줘야 합니다. 하나님의 종은 하나님이 심판하시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을 버리십시오. 여러분이 사랑하는 목사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기 원하십니까? 우리 교회 공동체 아닙니까, 가족이라는 얘기입니다.

아무리 멋있게 설교를 해도, 말할 때마다 척척 들어맞는 예언을 해도, 공부를 많이 해도 기도를 오래 해도 성경이 말한 복음과 다른 것을 전하면 저주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내용과 핵심입니다.

성경은 복음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권위를 두어야 합니다. 목사가 하는 말이 중요한 게 아니라, 성경이 어떻게 말하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교회가 성경에 권위를 주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교회에 권위를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이 주는 권위로 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다른 사람 신경 쓰지 않고 이렇게 강하게 말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성경이 주는 권위 때문입니다.

10절을 봅시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사도 바울은 오직 하나님만 신경 쓰라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보다 사람을 신경 씁니다. 사도 바울은 그걸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예수그리스도 앞에 올바로 서는 것이 훨씬 중요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다른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얘기했을 때 약간 삐딱한 사람은 '너나 잘 하세요' 하고 말했을 수도 있습니다. 사도 바울을 시기하고 질투하고 미워하는 사람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오직 하나님만 신경 썼습니다.

우리가 기쁘게 하실 분은 하나님 한 분밖에 안 계십니다. 저의 청중은 한 명밖에 없습니다. 저를 보고 판단하시는 분은 하나님밖에 안 계십니다. 죄송합니다. 여러분이 아닙니다. 저는 여러분을 기쁘게 하기 위해 사역할 수 없습니다. 제가 기쁘게 해야 할 분은 하나님뿐입니다. 그분에게만 칭찬을 받으면 됩니다.

복음 안에서 자유 했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한인 교회 교인들이 목사의 눈치를 봅니다. 장로의 눈치를 봅니다. 교회 중직자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 건 좋은 신앙의 자세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거기에 너무 얽매이지 마십시오. 이 영화를 봐도 되냐, 이 책을 읽어도 되냐, 이 사람이랑 만나도 되나 등등 너무 많은 사람의 눈치를 봅니다. 과연 누구를 기쁘게 하려고 그렇게 고민하십니까. 

10절에서 우리는 또 다른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10절 말씀을 그대로 인용해 다른 사람에게 무례하게 하는 크리스천들을 간혹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다른 사람에게 무례하게 하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진리를 위해서라면 이 사람, 저 사람과 싸우라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인들이 '내가 하나님의 종이지, 당신의 종이야? 싫으면 그만 두지' 하는 무례한 태도는 그리스도인의 태도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이미 하나님은 여러분을 기쁘게 보고 계십니다. 그런데 자꾸 눈치를 보고 자유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얼마나 안타깝겠습니까. 그게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그게 어머니의 마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의 선에서 이탈하지 마십시오. 우리에게는 오직 한 복음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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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hoi 2010-08-22 23:38:52
누구를 기쁘게하려 하느냐? 정말 중요한 말씀입니다. 눈치,채면보기 바쁜 저희 평신도에게 좋은 성서말씀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양승훈 2010-08-20 00:16:40
노 목사님, 사람들의 눈치 보는 설교가 넘쳐나는 시대에 말씀에 대한 순종을 강조하는 좋은 설교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