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워드매스킹'과 한국 교회
'백워드매스킹'과 한국 교회
  • 김용민
  • 승인 2010.09.08 20:42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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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를 누리는 아량과 여유조차 사치일까

'백워드매스킹'이란 테이프를 빨리 감아 다 돌리고 이를 반대편에 걸어 재생하는 것을 말한다. 다시 이야기해 레코드판을 역재생하는 것이다. 음악을 뭐 이런 식으로 듣느냐고 문제 삼을 사람들이 있을 거다. 사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그런데 그렇게 듣는 사람들이 있고, 이 사람들이 ‘접해보니 사탄의 음모가 서려있음이 확인됐다’며 종교적 낙인을 박고 있다.

이들의 주장을 좀 더 구체적으로 풀어보자. '소녀시대' 및 손담비의 노래를 거꾸로 재생하면 음란한 메시지가 들린다는 논리이다. 이는 지난 5월30일 강남의 한 대형 교회에서 영화 <회복>의 조감독 박성업 씨가 '현대 미디어에 대한 올바른 이해'라는 주제의 강연에서 나온 것이다. 이 메시지는 29살의 프리랜서 웹 콘텐츠 디자이너에 의해 동영상으로 촬영 제작돼 인터넷에 퍼진 것이다.

   
 
  ▲ ‘백워드매스킹’이란 테이프를 빨리 감아 다 돌리고 이를 반대편에 걸어 재생하는 것을 말한다.  
 

강사는 소녀시대 등 인기 대중 가수의 노래는 음란한 메시지로 점철돼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모든 미디어 콘텐츠는 영감의 결과물”이라고 설명하면서 “이 노래를 듣는 이들로 하여금 음란의 영이 활개 치게 만든다”라고 지적했다.

논란은 커졌다. 그러자 웹 콘텐츠 디자이너는 인터넷신문 <민중의소리>와 가진 인터뷰에서 "대중가요 속 음란성을 정면으로 공격했더니 사단이 마구 일어나 믿지 않는 수많은 대중들을 충동해 강연했던 사람과 나의 미니홈페이지를 공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대중문화에 조금이라도 조예가 있는 사람이라면 1994년 서태지의 '교실 이데아 소동’을 떠올릴 것이다. 당시에도 3집 앨범에 수록된 노래 <교실 이데아>를 역방향으로 재생할 때에 특정 부분에서 ‘피가 모자라’ 등의 가사가 들린다는 소문이 봇물처럼 터졌다. 이에 대해 당시 서태지는 괴 소문을 즉각 부인했다. 하지만 4개 음반 중 가장 적은 판매량을 나타내는 비운을 맛 봤다.

실제 백워드매스킹을 통해 특정 종교에 대한 반대 메시지를 전했던 아티스트가 있었을까.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실질적 물주인 <국민일보>는 서태지의 <교실 이데아> 논란이 커질 때, “실제 외국의 그룹 중에 이글스, 레드제플린, 비틀스는 거꾸로 돌려들으면 메시지가 나오는 ‘백워드매스킹’ 기법으로 녹음을 했으며 그중에는 ‘사탄이 하나님이다’. ‘거꾸로 돌려라’,  ‘내속에 있는 사탄을 믿는다’ 이런 말이 들어있기도 하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한국 개신교회 내부에서는 서태지의 노래에 문제가 있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표명하지는 않았다.

이 상황을 지켜보는 아티스트 입장은 황당하기만 하다. 가수 신해철 씨가 관련해서 당시에 남겼던 글이 있다. “내가 만든 노래, `날아라 병아리'를 거꾸로 들으면 '병아리 내가 죽였다'하고 나온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종교 단체라면 마땅히 사회를 안정시켜야 할 텐데, 사실도 아닌 것을 왜곡해서 선교에 활용하려는 태도는 문제가 많다.” 그러면서 이런 해석도 내놓았다. “종교는 거의 대부분 기성세대에 의해 주도된다. 보수적인 사고를 정당화하고 젊은이들의 순종을 요구한다. 당연히 당시 록 뮤지션에게 공격의 목표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교회 내부에서도 ‘백워드매스킹 음란성 폭로’를 보는 시각이 곱지 않다. 개신교 음악 분야에서 20여 년간 비평 활동을 해 온 유재혁 씨는 “요즘같이 표현의 자유가 사실상 무한대 보장되는 세상에서 뭐 하러 백워드매스킹을 통해 메시지를 전하겠는가”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일반 대중음악을 하는 뮤지션 중에 ‘내 노래를 백워드매스킹해서 들어보면 모종의 메시지가 나온다’라고 주장했다는 사람을 여태 본 기억이 없다”라고 말했다.

다만 개신교 대중음악 그룹인 페트라가 한때 백워드매스킹에 도전한 일이 있었는데 소득이 없었다고 덧붙였다. 역주행 음악을 만들려면 정주행 음악도 거기에 맞춰 제작해야 하는데 누가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하겠느냐 이 이야기이다.

결국 이번 사건, 몇몇 종교인들이 가공한 이슈로 국한해서 봐야할까. 그러나 우리는 혼란을 직시해야 한다. 사회 도처에 정직과 신뢰가 무너진 탓이 크다. 사실 이 때문에 음모론은 수시로 출몰하지 않았던가. 소녀시대 및 손담비 노래 백워드매스킹 논란 또한 이 관점에서 봐야 한다.

안타깝다. 이제는 이젠 종교마저 불신 조장의 한 축이 된 듯해서 말이다. 사회 불안은 이로써 촉발된다. 대중문화를 있는 그대로 누리고 즐기는 아량과 여유조차 우리 사회에서는 사치일까. 답답하다. 

김용민 / 시사평론가

* 김용민 님의 개인 블로그(http://newstice.tistory.com/)에도 실린 글입니다.

기사 관련 동영상. 강사의 발언은 1분 55초부터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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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평화 2010-09-18 00:25:34
저도 편향적인 복음주의를 무척 경계합니다만, 이 문제만큼은 적절한 대책이 필요합니다.
특별히 본인이 예전에 경험한 것을 근거로 하고 있고, 실재로 거꾸로 돌려서 증명이 가능한 문제입니다.
대중 미디어를 모두 다 경계하라는 식은 문제가 있지만,
문제가 있는 미디어는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량 문제로 치부하기엔, 백워드 매스킹은 역사가 깊은 방식이고,
요즘처럼 다 드러내놓는 분위기에서도 가끔씩 사용되는 방식이기 때문에, 무시해선 안됩니다.
만일 여유를 가져라. 라는 식이라면 마를린 맨슨도 즐겨도 된다는 식으로 논리적 비약이 발생될수 있습니다.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는 고장난 자동차인것인데, 요즘은 교계에서도 브레이크 없는차가 Cool 한 차가 되어 가는것 같아 씁쓸하네요.

장나라 2010-09-10 11:38:07
눈을뜨고 귀를 열어야 볼수 있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미디어에 언론에 사법부와 교육,정치
문화계에 가득해야하며 그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 질것이다.

장나라 2010-09-10 11:33:37
파수꾼은 모두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높이 멀리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보아야한다.
문화의 영역과 인터넷을 장악하려 하고 있다. 마음과 생각을 지키지 않으면 살수 없는 세상이다. 세상은 알지 못하지만 빛인 주님의 자녀들은 어둠을 밝혀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