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 사찰이 아닌 한국 교회 무너질라
이러다 사찰이 아닌 한국 교회 무너질라
  • 김민수
  • 승인 2010.10.29 13:09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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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밟기' 전에 우리 안에 있는 우상부터 무너뜨려라

최근 논란이 된 '봉은사 땅밟기' 동영상에 이어 '대구기독교총연합회'가 제작했다는 내용이 담긴 동화사 땅밟기 동영상, 미얀마에서의 찬양동영상 등 개신교인들의 비상식적인 행동들이 하나둘 도마에 오르고 있다.
 
이런 행태를 바라보면서 개신교 목사인 나는 불편하다 못해 분노한다. 복음의 본질과 멀어진 한국 대형 교회의 행태에도 신물이 나는데, 광신도들의 돌출행동(?)까지... 이러다가는 그들의 기도대로 사찰이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개신교가 무너지지 않을까 우려가 앞선다.
 
사실, 이슈화되지 않았을 뿐이지 불상이나 사찰 혹은 타 종교의 상징물이 기독교인이라고 자처하는 이들로부터 공격의 대상이 되고 훼손된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그 이전에도 이런 일들은 종종 있었지만, 그것은 개인적이고 은밀하게 행해졌다.
 
그러나 최근에는 개인적이고 은밀하게 이뤄지던 일들이 집단적이고 공개적인 방법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것은 그동안 기독교가 '복음의 본질'을 제대로 전하지 못한 결과들이 사회현상으로 드러나는 것이므로 심각한 문제다. '열매를 보아 나무를 안다'고 했는데, 이제 한국의 기독교가 그동안 맺은 열매들을 하나 둘 내어놓는 과정에 있는 듯해 더 걱정스러운 것이다.
 

   
 
  ▲ ▲ '동화사 땅 밟기' 동영상 중  
 
한국 교회는 우상숭배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국 교회는 과연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가? 그동안 수많은 이들이 한국 교회의 개혁을 요구했으며, 회개를 촉구했다. 그 본질적인 내용은 '맘몬(물질)지향'이었다.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한국 교회는 물질적인 축복을 자신들의 전유물인 양 휘둘렀고, 교인들 개개인의 삶의 고단함은 '믿음의 약함'이라고 가르쳐왔다.
 
대형 교회는 기득권자들의 영적인 갈급함을 적당히 채워주고 그들이 죄책감을 적당히 덜어낼 수 있는 스킬(Skill)적인 설교로 부자들의 귀를 만족시켜줬다. '삶'이 없는 예배만으로 신앙인의 의무를 다한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 것이다. 혹은 성경의 단어들을 비성서적으로 해석하면서 '치유나 기적의 역사' 운운하며 사기 행각에 몰두했다. 이렇게 자신들의 세를 확장한 교회들이 기독교를 '사이비 종교화'했던 것이다. 그 근저에는 자본주의 법칙이 철저하게 작용했고, 한국 교회는 '맘몬의 노예'기 되어버린 것이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교회가 오히려 세상보다 더 추해졌으며, 교회의 정치와 세상의 정치가 별다르지 않을 뿐 아니라 더 추악할 때도 있었다. 초대 교회의 모습은 사라지고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교인, 목사, 교회 사이에 당연한 것처럼 인식되었다. 그것뿐이 아니었다. 사회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교인들은 믿음이 약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지 못한 것처럼 왜곡했다.
 
성공 신화에 사로잡혀 성공하지 못한 교회, 성공하지 못한 교인, 성공하지 못한 신앙을 가리는 기준은 모두 '물질(맘몬)'적인 것이었다. '맘몬'을 섬기는 한국 교회. 우상 맘몬을 하나님께서 하락하신 복으로 착각하게 하려면 외부에 적을 만들어야만 했다. 그것이 바로 타 종교에 대한 배타적인 행동이었던 것이다. 유일신 종교라는 한계도 있지만, 성서의 전체적인 흐름을 보기보다는 자신들의 욕심을 가득 채워줄 말씀만 취사선택해서 교인들을 세뇌시켰던 것이다.
 
한국 교회는 타 종교를 무너뜨리는 일에 열중하기보다 먼저 자기 안에 있는 우상인 '맘몬'을 무너뜨리고자 힘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여리고성처럼 안으로부터 먼저 붕괴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찰 내 찬양, 퇴폐적인 노래와 무엇이 다른가
 
예수가 복음을 전할 때, 당시 종교지도자들이었던 바리새파와 사두개파가 있었다. 어찌, 그 지파에 속한 모든 이들이 위선자였겠는가? 그러나 그들의 행태는 예수가 보기에 위선적이었으며, 눈먼 자가 눈먼 자를 인도하는 격이었다. 이러한 가식적이고 위선적인 모습을 보다 못한 예수는 그들을 향해 "독사의 새끼들아!"라고 분노에 차서 쌍말을 한다.
 
그러자, 그들은 예수를 죽일 음모를 꾸미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을 죽이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을 죽인 위선자들은 끝내 자신들이 무슨 잘못을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시대적인 상황은 다르지만, '봉은사 땅밟기'나 대구기독교연합회에서 제작했다고 적혀 있는 동영상이나 미얀마 사찰에서 찬양을 부르는 이들은 사명감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그 일을 했다고 착각할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분명 당신들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독사의 새끼들아!"라고 분노하실 것이다.
 
신앙이란 말이 아니라 삶이다. 신앙이란 지금 이 땅에서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시대적인 징조를 제대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그들은 단지 성서를 문자적으로만 보고, 자신들이 원하는 말씀만 취사선택해서 이 시대와는 상관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물론, 자신들의 그런 삶을 합리화시켜주는 수많은 성서구절을 인용하면서 말이다.
 
성서는 통으로 봐야 한다. 그 흐름이 무엇인지를 봐야 한다. 당신들이 정말 '독사의 자식들'이 아니라면, 지금 이 시대적인 상황에서 '봉은사 땅밟기'를 할 것이 아니라, 굴착기에 파헤쳐지며 신음하는 아름다운 4대강을 밟으며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위해 기도하고 찬양해야 할 것이다.
 
또 타 종교를 비방하는 억측성 동영상을 만들 것이 아니라, 인간의 욕심이 불러오는 자연적인 재앙들에 대한 동영상을 만들어 기독교인들의 회개를 촉구해야 한다. 또 다른 나라 사찰까지 가서 찬양할 것이 아니라, 그 찬양이 과연 퇴폐적인 노래와 뭐가 다른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무례한 광신도들이여, 당신들부터 회개하라. 그리고 당신들을 위해 기도하라.
 
   
 
  ▲ '봉은사 땅 밟기' 동영상을 만든 찬양인도자학교 관련자 10명이 27일 오전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을 찾아 문제의 동영상에 대해 정식으로 사과했다. (사진 제공 봉은사)  
 
목회자들이여, 제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
 
이런 문제들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맘몬'과 야합한 목사들에게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보다는 교인들의 마음에 맞는 설교, 혹은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설교, 교인들을 현혹하여 물질을 뜯어내려는 설교, 그리고 자신들의 행태를 합리화시켜주기 위한 설교와 성경공부, 오로지 출석하는 교회에만 봉사하게 하고, 다른 교회 교인들을 빼앗아오는 것을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목회 마인드, 자기가 섬기는 교회보다 작은 교회를 우습게 알고, 자기 교회가 손가락 안에 들어가면 목에 젓가락이라도 걸린 듯 거만해지는 목사들, 교인들의 헌금으로 교계의 지도자자리를 꿰차고는 폼 잡는 목사들, 힘 있는 정권의 나팔수가 되어 성서의 정신이 아닌 강자의 정신으로 무장한 목사들, 그들 모두가 '맘몬'과 야합한 목회자들이다.
 
그들에게서 나오는 말씀은 생명이 있는 말씀일 수가 없다. 웅변술에 혹해서 눈물 찔끔찔끔 뺄 수는 있겠지만, 은혜를 받는 만큼 비신앙적인 삶을 살아가게 되는 현상은 이제 일상화됐다. 모든 목회자들이, 신도들이 다 그렇다면 절망일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짝퉁들이 판치는 가운데서도 진품 신앙인이 있고, 진품 목회자도, 진품 교회도 있어 개인적으로 희망을 버릴 수가 없다.
 
외부의 비판, 내부의 비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라

이런 논쟁의 중심에 서면 늘 질문 받는 것이 있다. '그래, 너는 얼마나 잘나서 그러냐?'는 식의 비아냥거림이다. 나쁜 짓을 한 이들에 대해서는 한없이 너그러우면서, 그것을 비판하고 바로 잡으라고 하는 이들에게는 눈곱만큼의 아량도 없다. 지금, 외부적으로 내부적으로 비판의 소리와 자성의 소리가 많이 있다. 이러한 문제는 단순히 감정적으로 어느 편이 될 문제가 아니다.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계명을 지키는 것은 유일신 종교를 가진 기독교인의 신앙고백이요, 삶의 지침이다. 타 종교를 가진 이들에게 이 말씀을 공격적으로 강요하는 것은 문제가 심각하다. 공격적인 강요가 아니라, 진정으로 그렇게 복음전파의 사명감에 불타서 사찰에 들어가 찬양하고 기도하지 않고는 못 배기겠다면, 그 정신으로 일상을 통해서 감동을 시켜라.
 
'저 사람은 뭔가 달라, 그런데 알고 보니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군!'하는 긍정적인 삶을 살아가란 이야기다. 나는 기독교인입네 하면서 장로 대통령이 하시는 일이니 무조건 찬성, 이런 무례한 일들도 당연한 일, 교회의 비리를 덮는 것을 당연한 일이라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내부의 비판과 외부의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수용할 수 있을 때, 성숙해 지는 것이다. 그리고 '긍정적인 모습도 많은데 왜 부정적인 사건들만 가지고 떠드느냐'는 수준 낮은 소리는 하지 말자. 그 사건이 없었다면 모를까, 그런 일이 있었다면 지적해준 것에 대해 오히려 고맙게 생각할 일이다.

김민수 /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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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 2010-11-01 22:42:51
한국 교회를 저 지경으로 만든 배경에는 성공신화에 사로잡힌 일부 대형 교회 목사님의 경박한 기복주의 신앙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적지 않은 목회자들이 교회를 자기 성취의 수단으로 만드는 현상을 보면서 안타깝고 가슴 아픈 마음을 갖게 됩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성경과 신학에 대한 천박한 이해입니다. 그들의 배경에는 신학을 제대로 공부하지 못한 경력을 들출 수 있습니다. 교회의 개혁이 저들 대형 교회 목사님들 때문에 막혀 있다는 절친한 신학교수 친구의 말이 생각납니다. 총회, 신학교에 돈을 제공하는 대가로 개혁 마인들를 가진 목회자, 신학자들을 감시, 감독하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본 정신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데 있음에도 사람을 고치고 변화시키는 데는 관심이 없고, 외적인 성취를 축복으로 외곡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기독교 상업주의까지 가세해서 순진한 교인들을 오도하고 있습니다. 자기 절제와 변화가 없는 복음을 전하면서 자기 자신이 희생의 제물이 된 장본인을 삼일 교회 안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조용기 목사님의 숨겨진 비행도 언젠가는 공공연히 드러나게 되겠지요. 그리고 많은 목회자들의 비행도 언젠가 드러날 것입니다. 종교 개혁이 한국 교회 안에서 새롭게 시작될 때가 아닌가,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 보고 있습니다.자기 변화라는 좁은 길로 들어서지 않는 한, 교회는 세상의 빛이 아니라, 사람들의 치소거리가 되지 않겠습니까?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 3: 16)이 생각납니다. 기독교를 희극화 시키는 잘못된 목회자들의 각성을 기대합니다.

진리사랑 2010-10-31 22:01:24
아멘. 옳은 말씀입니다.
우리가 척결해야 할 우상들은 믿지않는이들의 우상이 아니라, 믿는이들 사이의
우상입니다. (고전 5:13-14)

이번 땅밟기가 왜 성경적으로 틀리며 오히려 왜 죄가되는지
아래 글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회원 가입없이 바로 읽을 수 있습니다.

cafe.daum.net/maranatha./FfqW/470

나중된자 2010-10-31 09:26:24
김 민수목사님 같은 분이 계시니 희망이 보입니다.
기독교가 여기까지 오게된 데에 지대한 공헌을한 목사님들 회개하셔야 합니다.
"인자가 올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