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 포탄' 사태, 교회는 어떻게?
'연평도 포탄' 사태, 교회는 어떻게?
  • 김기대
  • 승인 2010.11.23 20:43
  • 댓글 1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책 없는 싸움에 희생되는 백성 보호가 교회의 역할

천안함에서 아까운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은 후 사회 장년층 이상 연령대의 반응은 왜 젊은이들이 촛불을 들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미군 장갑차에 의해 ‘기껏’ 두 명 죽은 미선이 효순이 때는 그렇게 추모와 반미의 분위기가 끓어오르더니 수십 명의 장병들의 희생에 대해서는 추모도 없고 반북도 없이 침묵하냐는 뜻일 게다. 

그렇다. 그들의 죽음은 슬프다. 천안함의 원인이 북한의 공격이었어도 슬프고 단순 침몰이었어도 슬프다. 정부가 그것을 북한의 공격으로 단정하면서도 그들을 국가 유공자 우대하는 모순(즉 패잔병 취급하지 않는 것)에 대한 일부의 불만도 있으나 나는 그들이 받은 추대가 조금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젊은 영혼들의 목숨과 가족들의 아픔은 그 어떤 추대와 보상금으로라도 치유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 공격을 막아내지 못한 한국군 고위급들이 피격설을 마치 자랑처럼 이야기하는 것 때문에 젊은 장병들의 고귀한 희생이 희석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생각할 것이다. 그러면 왜 추모의 촛불이 없었는가? 미선 효순 때는 국가가 침묵을 강요했다. 아이들의 죽음에 대한 의문도 제기할 수 없었다. 이 강요된 침묵 앞에 젊은이들은 촛불을 들 수밖에 없었다.

반면 천안함 때는 촛불을 들 겨를도 없이 모든 미디어가 동원된 대대적인 추모가 있었고 촛불보다 더 세련된 추모행사들이 기획되었다. 그런 점에서 왜 촛불을 들지 않았냐고 따지는 어른들의 말씀에는 적어도 촛불의 진정성에 대한 수긍이 있다. 관에 의해 기획된 추모보다는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민의 촛불이 더 솔직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아닐까?

연평도에서 아까운 두 명의 병사가 또 목숨을 잃었다. 말년 휴가를 앞둔 사병의 죽음이기에 더 애절하다. 대통령을 비롯해 대부분의 내각들이 군 면제인 나라에서 자신의 의무를 다하고 이제 제대와 복학을 기다리던 그 젊음을 누가 보상할 것인가?

북한의 공격은 마땅히 비난받아야 하며 국제 사회에서 어떤 형태로든 책임을 져야 한다. 아직도 의문점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천안함과는 다르다. 우리가 공격을 당했으므로 마땅히 응징을 해야 한다는 의견들도 호전주의자라고 비난할 수만은 없다. 말이 좋아 한 민족이지 이미 60년을 다른 나라로 살아오던 차에 한 주권국가가 공격을 받았는데 당하고 있으라고 말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잠시 숨을 고르자. 우리에게 전쟁을 시작할 결정권이 있느냐를 먼저 묻자. 이것은 꼭 법적인 의미의 결정권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 전시작전권과 같이 아직 우리가 갖지 못한 그러한 의미의 결정권이 아니다. 현대 사회에서 여론도 하나의 권력인 마당에 국제 여론이 우리의 전쟁에 모두 찬성할 것인가는 의문이다.

사람의 수만 보자면 천안함이 더 큰 공격이었지만 대한민국 정부는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 북한의 최첨단 어뢰에 당하고도 몇 마디 비난으로만 응징했을 뿐이다. 오히려 인도주의적 지원까지도 머뭇대는 비인도적 태도로 잃은 것이 더 많았고 국내정치에 이용하려던 의도는 보궐선거의 패배로 소득 없이 끝나고 말았다. 

또 묻자. 확전이 되었을 경우 그것이 과연 대한민국의 통일을 가져올 수 있느냐는 것이다. 천 걸음 양보해서 주석궁에 태극기를 꽂는 것이 통일이라고 주장하던 어떤 극우주의자의 주장을 우리 모두 일리 있다고 치자. 그런데 과연 확전이 그런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까? 집권자들은 이러한 상황의 불가능성을 알면서도 국가적 위기가 그들의 위기를 가져올 것을 우려하여 이루지도 못할 강성발언을 쏟아내고 보수 언론은 맞장구치며 대부분이 군필일 법한 순진한 서민들은 그것이 가져올 파장을 모르는 채 말려들고 있다.

바로 대한민국 정부와 미국이 처해 있는 이러한 딜레마를 모르지 않는 북한은 이런 치졸한 범죄를 저질렀다. 언론의 분석대로 6자회담을 이끌어 내려는 북한의 벼랑 끝 전술일 것이다. 명색이 유엔 가입국이기도 한 북한의 외교라는 것이 이렇게 폭력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지만 솔직히 주변 국가의 이해관계를 무시하고 미국과 함께 북한을 고립화시키는, 즉 북한의 대응 폭력을 부르는 대한민국의 대북 정책도 이해가 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푸에볼로호 납북사건 때도, 1.21 무장공비 남파사건 때도, 판문점 도끼 만행사건 때도, KAL기 사건 때도 대한민국은 늘 피해자였지만 기득권은 반공정서에 기대어 득을 보았다. 보궐선거 패배로 끝난 천안함 정국이 지극히 예외적인 경우일 뿐 이번에도 역시 불법사찰, 사대강 같은 국내 현안들이 하루아침에 묻혀 버렸다. 안보 정국에 말려 풀어야 할 현안들을 묻는 것이 습관이 되면 될 수록 북한은 마치 어떤 신호음처럼 이러한 범죄를 자꾸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남북의 힘없는 백성들에게 돌아갈 뿐이다. 일부 사건에서 대한민국의 무고한 백성들이 목숨을 잃었지만 몇 푼 보상금으로 슬픔을 대신했을 뿐이다. 또한 이러한 폭력적인 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정권에 매여 사는 북한의 인민들은 얼마나 굶주림에 고통을 겪고 있겠는가? 

이럴 때일수록 가장 침착해야 할 것은 교회다. 교회가 정치의 논리에 얽매여 확전에 가세하거나 대치 정국 속에서 반사적인 이익을 얻으려고 한다면 한국 교회는 또 한 번 시민들의 차가운 시선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지금 교회에 필요한 것은 안타까운 죽음을 당한 젊은이들에 대한 추모다. 이번에는 숫자도 숫자일뿐더러 선거라는 이슈도 없기 때문에 천안함 정국과 같은 관주도의 대대적인 추모는 어려울 것이다.

이럴 때 교회는 남북의 긴장정국에 희생된 젊은이들의 죽음을 애도하며 남북한 양 당국에 대한 평화를 촉구해야 한다. 폭력으로 푸는 자와 폭력을 부르는 자의 싸움에서 희생되는 것은 약자들 뿐이다.

교회의 역할은 세속의 권력에 편승해서 안전을 보장받는 것이 아니라 대책 없는 싸움에 희생되는 백성들을 보호하는 일이다. 더 이상의 희생이 발생하지 않도록 교회는 양쪽 정부에 대해 평화의 메시지를 전해야 할 것이며 기독교인들은 한반도의 평화와 무고한 생명들의 안식을 우리의 기도 제목에 또 하나 추가해야 할 것이다. 

 김기대 목사 / 평화의교회 담임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수원촌놈 2010-12-02 07:32:23
완전히 정신나간 말이네

맹집사 2010-11-30 09:44:41
'연평도 포탄' 사태? 말해놓고도 우습죠잉.
웃기는 목사.. 도대체가 개신교 목사들은 다 이런 수준인지.
세상이 교회를 걱정해야 하니 원.. ㅉㅉ

지나가다 2010-11-30 09:33:46
김기대 목사라.. 극우주의자라 함은 조갑제씨를 지칭하나 본데, '극우'가 뭔지나 알고 하는 얘긴가요.
정말 한국의 헐렁한 개신교 목사들은 답이 안나오네요.
함부로 발언하려말고 골방에서 절대독서량이나 더 채우세요.
엉성한 논리로 설익은 좌파 흉내 내지말고..

션 김 2010-11-30 09:29:05
듣던 대로 친북좌파 사이트군요.
목사? 난 집사인데요, 귀하에게 전혀 존경이 안가는데 어쪄죠

걱정 2010-11-30 01:52:38
김목사님의 글 잘읽었습니다. 그러나 촛불데모를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진실하게 쓰지 못했군요. 반미/종북의 정서를 이야기하지 않으면 그문제를 정확하게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촛불데모하는 이들이 종북/반미계통의 사람들이기에 북괴에 불리한 일은 절대로 촛불데모할 수가 없지요.만약에 천안함 사건에 미국이 역할이 1%만 있었더라도 난리가 나게 촛불데모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