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죽이는 사회
사람을 죽이는 사회
  • 박노자
  • 승인 2011.06.14 19:1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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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 교수, "사랑의 가능성을 원천봉쇄한" 한국

한국학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늘 한 가지 어려움에 봉착한다. 학생들에게 "한국 자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연속 1위를 차지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솔직하게 말문이 막힌다. 한국에 대한 해석을 노르웨이 사회에 제공해야 하는 사람으로서는 이 현상을 사회학적으로 해명할 수 없어 전문성에 회의마저 느끼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심화에 따른 민중 생계의 불안화’? 꼭 틀린 말은 아니다. 특히 부도가 난 사람들 중에서는 비관자살이 흔한 일로 알려져 있고, 가정 생계에 대한 책임을 본격적으로 지게 되는 30대 중에서는 자살이 주요 사망원인 1위의 위치를 점하고 있으니, 양극화나 노동의 불안화 등과 자살률의 관계는 의심할 수 없다. 1995년과 1998년을 비교할 때 1997년 외환위기와 구조조정의 여파로 자살자 수가 거의 두 배로 껑충 뛴 것도 엄연히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 못지않게 신자유주의가 강타한 남아공이나 에스토니아 등 여러 중진 자본주의 국가들은 자살률이 한국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즉, 단순히 최근의 민생고만을 탓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집단 구성원으로서의 책임을 강조하는 유교적 사회로서의 특징’? 역시 꼭 틀린 진단은 아니다. ‘민주’(즉, 온건 자유주의) 세력의 지도자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해 책임져야 한다는 판단을 내리고 이 세상을 하직한 노무현 전 대통령부터, 나쁜 성적 탓에 앞으로 명문대에 들어가 효자·효녀 노릇을 하지 못할 것이라 판단하여 ‘성적 비관 자살’의 길을 택하는 고교생들까지, 이 사회에서 자살은 흔히 ‘집단에 대한 책임의 표현’으로 통한다. 그러나 ‘책임의 윤리’와 함께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신체를 스스로 훼손하지 못하게 하는 것도 유교 전통이다. 즉, 전통을 통한 설명도 그 한계를 드러낸다.

필자로서는 사회학적으로 ‘자살 공화국’으로서의 한국의 현실을 해명하기가 지극히 어렵지만, 체험적으로는 얼마든지 설명할 수 있다.

경제적 요인도 사회·문화적 요인도 작용하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자본주의가 철저하게 내면화돼 있는 최근의 한국 사회에서 사랑이 불가능한 것이 문제일 것이다. 타인을 위해 아낌없이 자기 자신을 내주는 것이 사랑이지만, 이 사회에서는 자신으로부터의 도피나 소유욕이 사랑의 이름으로 포장된다. 교회나 사찰마다 하나님 사랑과 부처님 자비가 외쳐지지만, 그 실상을 자세히 보면 성금이나 불전을 주어서 죄에 대한 면죄부나 이윤추구 정글에서의 성공에 대한 주술적인 보장을 사라는 이야기에 불과하다. 우리는 아이들을 사랑한다기보다는 아이 교육에 ‘투자’해 나중에 아이가 거둘 ‘성공’을 공동 소유하려 한다. 피 말리는 학습 경쟁에 내몰려 부모의 공포와 소유욕의 대가를 대신 치러야 하는 아이는, 살인적 체제의 ‘나사’로 전락하고 만 그 부모를 진정으로 사랑하기가 쉽겠는가? 입시학원이 된 학교나, 등록금을 약탈하고 시간강사나 환경미화원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악질적으로 착취하는 악덕 기업이 되고 만 대학에서 앎에 대한 순수한 사랑을 키울 수 있겠는가? ‘인건비 절약’이 주된 모토가 된 기업체에서 일하면서 자신의 노동을 사랑할 수 있는가?

도스토옙스키 말대로 사랑이 불가능한 세계가 지옥이라면, 우리는 지옥살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지옥에 떨어진 인간들이 자살이라는 방법을 통해 지옥을 절망적으로 벗어나려 한다는 것은 과연 놀라운 일인가?

필자는 북한 사회의 세습적인 수령주의나 과도한 군사주의, 국수주의 수준의 ‘조선민족 제일주의’에 찬동하지 못한다. 그러나 북한 사회가 지금처럼 ‘현실 사회주의’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폐쇄적 형태로 왜곡되게 성장하지만 않았다면, 필자는 차라리 오늘날 한국보다 북한이라도 선택했을 것이다. 빈곤과 억압은 견딜 수 있어도, 인간을 상품화시켜 사랑의 가능성을 원천봉쇄한 이 사회의 분위기를 인간으로서 견딜 수 없다.

박노자 교수 / 오슬로대학

   
 
  ▲ 박노자 교수. (출처 : 박노자 교수 홈페이지)  
 

박노자(朴露子,Владимир Тихонов) 교수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유대계 아버지와 러시아인 어머니 밑에서 태어났다. 상트페테르부르크국립대학교의 동방학부 조선학과를 졸업했고, 고려대학교와 경희대학교 대학원에서 수학했으며, 모스크바국립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한국 여성과 결혼한 후 2001년 대한민국으로 귀화해, 현재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학의 부교수로 재직하며 한국학을 가르치고 있다. 한국어로 책이나 기고문 등을 통해 토종 한국 사람보다 날카롭게 한국 사회 각 분야의 모순점을 지적하고 있으며, 한국 사회의 파시즘 경향을 주로 비판해왔다. 저서로는 <당신들의 대한민국>, <우승열패의 신화>,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 <박노자의 만감일기> 등이 있다. (위키피디아 참조)

* 박노자 교수 개인 블로그에 실린 글을 필자의 동의를 얻어 전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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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방위13년차대원 2013-10-14 04:07:48
내 영혼이라도 자살공화국 대한민국을 떠날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