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목사의 '거리 전도' 순례기
어느 목사의 '거리 전도' 순례기
  • 한재경
  • 승인 2011.06.19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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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사회 속 '익명의 그리스도인'을 찾아서

매주 금요일, 거리로 전도를 나서는 날입니다. 약간의 떨림과 두려움이 다시 고개를 듭니다. 크리스천이 되고 난 뒤 '거리 전도' 경험은 거의 전무했습니다. 혹여라도 재촉하던 걸음을 방해했던 거리 전도자를 만날 때면, 은근히 부화가 일었던 기억이 납니다. 광신적 전도자들은 분명 문제지만, 건강한 복음 전도자도 있었는데, 나는 그들을 일반화시켰습니다. 많은 이유를 끌여들였지요. 저들이 다니는 교회는 이단 아닐까? 너무 광신적인 거 아니야? 삶과 신앙의 균형이 깨진 거 아니야?  

하지만 그들을 향해 ‘열’을 냈던 것은 이제보니 제 자신을 꾸짖는 질타였습니다. 교회 강단을 벗어나서, 성경공부 모임을 벗어나서, 광야 같은 세상에 던져진 익명의 그리스도인을 향해 침묵한 제 자신을 향한 부끄러움과 아픔을 숨기는 책략이었습니다. 아테네에서 복음을 외쳤던 바울의 체험은 내 삶에서 어떤 현실도 찾지 못했습니다.  

‘익명의 그리스도인’, 이 분들이 제 거리 전도 순례의 대상입니다. 이미 교회에 출석하는 분들이 아니라, 어떤 이유로든 교회를 멀리하는 분들입니다. 교회는 싫어하지만, 예수는 좋아하는 분들입니다. 인간이 만든 제도 때문에 신앙의 길을 방해받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찾아 나서는 순례라고 생각했습니다.  

한인이 많이 모이는 마켓은 포기합니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길목에서 기다리기보다는 그들이 사는 삶의 현장으로 발품을 팔아 찾아가고 있습니다. 어떤 때는 3시간을 돌아다녀도 제가 만든 전도지 30장을 다 주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이정도 시간에 한인마켓에서 나눠주었으면 수백장은 족히 가능했을 겁니다. 지난 번 리틀 페리(Little Ferry)의 아파트 단지 전체를 돌았지만, 겨우 2명을 만났을 뿐입니다. 

발품으로 만나는 거리는 미국 경제의 여파로 고통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For Rent’에 시선이 머물고, 마음의 일렁임이 무겁게 지나갑니다. 금요일 오후 힘든 노동 사이에 전도 팜플렛을 드리면서 기도의 울림을 체험합니다. 타인을 위한 진실한 기도가 거리에서 울립니다. 

이번주에는 뉴저지 Cliffside Park로 나갔습니다. 날씨가 마음을 망설이게 했습니다. 천둥과 번개가 줄기차게 내리더니, 이내 햇볕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철물점을 하시는 분과는 오래도록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사는 이야기, 교회에 대한 생각과 느낌, 저에 대한 걱정까지. 서로의 마음과 마음 사이에 아무런 장벽도 느낄 수 없었습니다. 건강하시라고 인사하며 작별했습니다. 

한인이 운영하는 가게를 중심으로 방문하다보니, 많이 다가서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한 명을 만나도 좋다고 여겼습니다. 익명의 그리스도인을 만나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거리 방문 순례가 마무리될 무렵,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차에 타자마자 세찬 비가 물 붇듯 쏟아졌습니다.

뉴저지 버겐카운티에는 70개의 타운이 있습니다. 한 주에 한 타운씩, 거리 전도 순례를 마치는 날을 기대합니다. 그날에 깨달음을 기대합니다. 순례의 마지막 지점에서 나의 마음은 과연 어디에 있을지 기도합니다.

‘순례’란 의미가 제게 깊습니다. 익명의 그리스도인을 향한 걸음이지만, 동시에 제 자신 깊은 곳을 향한 순례이기도 합니다. 모든 것을 다시 생각하고 점검합니다. 크리스천, 하나님의 자녀, 목사, 복음 전도자, 그리고 내 안에 심겨진 아가페 사랑 이 모두가 현실의 자리를 찾고 삶을 통해 피어나길 기대합니다.

한재경 목사 / 뉴저지 한인회중교회

뉴저지에 한인회중교회를 개척한 한재경 목사는 '이민 사회는 교회가 섬기는 이웃'이라고 고백으로 '누구나 환대 받는' 안전한 공동체를 꾸리고 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들'이며 '교회의 재정은 하나님과 이웃 위해 써야 한다'는 그는 '생명을 살리고 돌보는 제사장 운동', '정의와 평화를 위한 예언자 운동'을 실천하는 건강한 교회 공동체를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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