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회, 서까래 바꾸는 정도로 안 된다'
'한국 교회, 서까래 바꾸는 정도로 안 된다'
  • 이학준
  • 승인 2011.06.22 11:4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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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준 교수, '한국 교회 패러다임을 바꿔라'

한국 교회가 역사상 최대의 위기에 직면했다는 뉴브런스윅신학원의 이학준 교수(신학 및 윤리)는  ‘공적 영성’의 회복이 한국 교회 문제 해결의 핵심 키워드라고 단언한다. 공적 영성의 결여가 오늘날 한국 교회의 이기적인 기복신앙을 낳고, 자기 주장만 강조하는 소통불능의 그리스도인을 양산했다는 것이다. 또 한국 교회가 사회적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성도들 역시 책임 있는 시민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도 공적 영성의 부재가 낳은 결과로 봤다. 이학준 교수는 공적 영성을 창출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안한다. 한국 교회에 만연한 기복주의, 개교회주의, 이분법적 사고, 단순논리주위를 뛰어 넘는 성서적 창조론과 구원론, 일반 계시와 특별 계시, 이성과 신앙, 칭의론과 성화론을 엮어내는 통전적인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미주뉴스앤조이>는 앞으로 이학준 교수의 공적 영성에 대한 문제 제기를 6차례에 걸쳐 나눠 실을 예정이다. (편집자 주)

언더우드가 처음 한국에 왔었을 무렵, 한국은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에 놓여 있었습니다. 국가적으로 가장 어렵고 힘든 때에, 초창기 기독교는 복음을 통해 한국 백성들의 마음을 위로했을 뿐만 아니라 한국 민족이 개화할 수 있는 새로운 세계관과 삶의 방식을 제시하려 했습니다. 그 결과 개신교가 당시 전체 인구의 2%가 채 안되는 소수였음도 불구하고 일제의 식민 통치 하에서 세계를 놀라게 한 비폭력 저항운동(3.1운동)을 이끌었습니다.

한국 교회의 화려한 영광의 과거

또 한국 초기의 개신교는 민족의 아픔을 품고 민족의 근대화와 계몽에 앞장서면서 역사 속에서 민족의 공신력을 얻어, 심지어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도 예배당 건축에 헌금을 보내올 정도였습니다. 당시에는 예수 믿는다는 것이 근대화와 신학문을 소용하는 것으로 이해되었고, 또 은자의 나라 조선이 세계와 교류하며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이라 여겼으며,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고, 독립운동과 자유 보존에 앞장서는 애국하는 것으로 받아들였졌습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개신교를 받아들이고, 교회에서 훈련받아 나라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기독교의 발전이 한국의 근대화를 의미했었습니다. 

초기 한국 교회는 세계 교회 역사상 유래를 찾기 어려운 새벽기도와 종교적인 헌신, 열정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변화시켰는데 성공했었습니다. 패배의식과 가난에 찌들어 있던 사람들에게 기독교 신앙은 방탕, 나태와 도박, 술, 담배 등 나쁜 습성들을 버리고 근면하고 생산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심리적 동기를 부여해 주었고, 그 결과 많은 그리스도인인 사회 지도층을 배출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한국에서 개신교는 불교, 유교, 가톨릭보다 훨씬 후발 종교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시아와 세계에서 보기 드문 부흥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제 이런 영광의 시간들이 급속히 지나가고 있습니다.

역사상 최대의 위기 앞에선 오늘의 한국 교회

오늘 한국 교회는 안팎에 걸쳐 큰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여러가지 부정적인 요소들이 서로 맞물려 시너지 효과를 내며 개신교를 위기로 몰아 넣고 있습니다. 교회 내부적으로는 영적 침체와 성장률의 둔화 내지 감소라는 문제와, 외부적으로는 도덕적 추락으로 인한 사회 신뢰도의 하락이라는 곤경에 처해 있습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언론에 오르내리는 목회자와 성도들의 추문들, 교단과 신학교의 다툼과 분열들, 교회 권력과 명예를 둘러 싼 싸움들이 한국 개신교를 큰 위기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추문들과 혼란은 개신교인들의 사기를 크게 저하시킬 뿐만 아니라, 개신교를 싫어하고 반대하는 그룹에게 공격의 빌미를 제공하는 데 큰 일익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미국과 달리 개신교가 사회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오히려 불교, 유교, 무교 등 타종교와 개신교가 함께 경쟁하며 공존하는 이른바 다종교 사회로서 사람들이 여러 종교들 가운데 자신들이 보기에 더 참신하고 설득력이 있으며 신뢰할 만한 종교를 선택하는 사회입니다. 따라서 한국 개신교가 사회적 신뢰도를 계속해서 상실해 간다면 자동적으로 사회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지금 한국 교회가 겪고 있는 위기는 개신교 전래 이래 가장 큰 위기라고 여겨집니다. 만일 한국 개신교가 지금의 이 위기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한국 교회는 한국의 현근대사에서 그저 약 120년의 짧은 시기동안 빛을 발하다가 어느 날 느닷없이 소수 종교로 전락하게 되는 전대미문의 종교가 될지도 모를 만큼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대로 간다면 몇 십 년 내에 유럽의 교회들처럼 몇몇 교회를 중심으로 나이 든 성도들만 초라하게  모여 예배를 드리는 지경까지 내몰릴 수 있습니다. (11~12)

위기의 심각성

이런 한국 교회의 위기가 더욱 심각해 보이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들 때문입니다.

첫째 개신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들과 불신이 한국 사회에 깊이 만연해져 있다는 것입니다. 2009년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한국 교회에 대한 한국 사회의 신뢰도는 19.1%이 불과하지만 카톨릭은 36.1%, 불교는 31.1%였습니다.

둘째는 청년층과 30~40대층이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국 개신교의 장래에 대한 적신호이며, 20년 후 한국 교회의 불확실한 모습을 충분히 예상하게 합니다. 셋째는 사람들이 개신교를 대신해 선택할 수 있는 타종교들이 한국 사회 내에 존재하고 있고 한걸음 더 나아가 사회적 문화적 경쟁력을 키우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카톨릭과 불교는 막강한 조직력과 자본, 그리고 자신들의 브랜드파워를 가지고(불교는 한국의 전통종교라는 역사적 기득권, 카톨릭은 성례와 제례의 엄숙함과 제도적인 통일성) 개신교의 자리를 잠식하는 가운데 개신교에 대한 대안 종교로서 한국 사회 안에서 부각되고 있습니다.

넷째는 현재의 개신교 내에 이런 위기에 대한 바른 신학적, 사회적 분석이 부족하며, 위기극복을 위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노력과 성찰이 아직 나타나고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28)

위기의 원인, 신앙 패러다임의 한계

그렇다면 19세기 말과 20세기에 걸쳐 역사의 아픔을 짊어진 가운데 수많은 민족지도자들을 길러내며, 조국의 광복과 근대화의 등불 역활을 자임해 온 한국 교회가 어쩌다가 이런 비판과 경멸의 대상인 된 것일까요? 오늘 한국 교회의 위기는 단순히 대사회홍보의 실패나 지도자들의 비도덕성, 권위적인 교회운동 등의 문제에만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 교회의 목회와 신앙생활의 바탕을 이루는 신학적 패러다임의 한계에서 기인한 것이며, 이 신앙 패러다임을 갱신해야지만 극복될 수 있습니다.

신앙의 패러다임이란 산앙의 경험을 이해가고 해석하는 하나의 신학적 세계관(Worldview 또는 Model)으로, 보통 어느 특정 시대의 종교가 따르는 가시적 또는 암묵적 신학적 체계에 의해 구성됩니다. 이 신학 체계에는 주요 종교적 상징들은 물론, 전체가 되는 질문들과 가치와 실천들이 나름대로의 체계를 가지고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신앙 패러다임은 마치 안경과 같아서 신앙인이 하나님과 세상과 자신을 이해하는 사고의 방향과 내용을 구성할 뿐만 아니라, 교회 전통 속에 깊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알게 모르게 성도들의 영성 형성에 깊은 영향을 끼칩니다. 그들의 영성 코드는 그들이 속한 종교기관의 패러다임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한국 교회는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치면서 형성되어 온 종파주의적(sectarian) 패러다임에, 1960년대 이후 급격히 형성된 자본주의적이고 기복적인 요소들이 결합되어 교회 성장 지향주의, 물량주의, 배금, 배권주의의 심각한 영향을 받았습니다. 또한 전통사회에서 근대 및 탈근대사회로 급속히 변화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필요와 요구들을 적절하게 충족시켜 주지 못했고, 그 변화 속에서 기독교로서 사회적 사명을 제대로 감당할 수 있는 패러다임을 개발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옛 패러다임의 장점이었던 경건성과 도덕성의 이미지마저 이제 손상을 입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사회적 리더십을 타 종교에 넘겨주고 말았습니다. 교회 안의 청년층과 중산층 지식인 그룹의 이탈현상의 심화와 타종교로의 이동이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일제와 공산당의 박해를 거치며 체특된 한국 개신교 신앙의 단순성과 경건성, 헌신은 한국 교회의 큰 미덕이요, 장점이었습니다.

하지만 교회가 사회적 소수의 단계를 벗어나 막강한 경제력과 사회적 영향력을 지난 오늘날에는 도리어 단순함과 경건성, 개인적 신실성만으로는 교회의 사회적 책무를 다 감당하기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또한 한국 개신교는 성도들에게 전문화되고 다원화된 사회에서 신앙인으로서의 제대로 된 정체성을 갖고 사회적 역활을 감당하는 길을 알려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현재 한국 개신교의 문제는 외형적으로는 막대한 부와 인력을 보유하게 된 교회가 실질적으로는 아직도 옛날의 가난하고 힘 없던 시절에 형성된 신앙과 사역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한 데서 기인한 세계관의 괴리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개교회의 부흥과 성장만을 강조하는 것이나, 주초 금지, 주일 성수, 이혼 금지, 자살 정죄 등의 단편적인 도덕 규범을 중만하는 것만으로는 첨단 다원사회를 살아가는 성도의 삶에 적합한 방향 제시를 해줄 수 없습니다. 한국 개신교가 생존과 존립이라는 초창기의 당면 과제를 넘어서 세계화 시대의 사회적, 영적, 도덕적 책임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그 패러다임의 옷을 바꿔입어야 합니다.

이것을 한국 교회가 가진 전통적 신앙 패러다임의 한계를 보여줍니다. 이 한계는 곧 패러다임의 위기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패러다임의 위기란 현재의 한국 개신교가 제시하는 삶의 양과 가치가 현재 한국 사회와 그 구성원들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 가치, 집합적 욕구, 추구하는 삶의 양식과 큰 괴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또 변화하는 사회의 욕구와 기대에 부합하는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지금 한국 개신교가 교회 안팎의 강력한 여러 도전과 비판들에 직면하고, 사회적 신뢰를 거의 잃어 가고 있는 것은 근본적으로는 이 패러다임의 한계, 위기 때문입니다.

신앙 패러다임의 재구성

따라서 종합적인 신학적 점검을 통한 신앙 패러다임의 재구성 없이는 한국 개신교의 획기적인 방향 전환과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신앙 패러다임을 재구성한다는 것은 기독교 신앙의 근본 진리를 변화된 삶의 현장과 연결시켜주는 작업입니다. 패러다임의 변화가 계속 필요한 이유는 사긴이 흐르면서 사회 제도, 문화, 그리고 사람들의 관계, 개인의 욕구와 기호가 바뀌기 때문입니다.

제도, 욕구, 기호의 변화는 인식의 변화, 삶의 양식의 변화를 가져오며, 불가피하게 기존의 교회의 패러다임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항상 사회 제도와 문화의 변화, 그리고 삶의 양식의 변화에 대응하여 복음을 재해석하고 스스로의 패러다임을 재구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신앙의 패러다임의 재구성은 결코 신앙의 본질을 바꾸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말씀의 진리가 특정 시대적 상황 속에 다시 성육신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에 네 복음서가 있는 이유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사건을 다양한 공동체의 상황에 적용하고 해석하여 전달하기 위한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21세기 한국 개신교의 생존과 발전을 위해서는 한국 교회의 어떤 한 부분에 대한 부분적인 수리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건물의 지붕이나 서까래 하나를 교체하는 정도의 미봉책 수준이 아니라, 21세기적인 상황에 걸맞는 신앙적 가치와 구조를 정립하기 위한 기초와 틀을 다시 놓는 전면적인 작업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살아계신 성령의 음성에 진지하게 귀 기울이는 가운데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여러 상황과 문제들에 제대로 잘 이해하고, 신앙의 근본적인 질문들을 한국 사회의 변화된 현장 속에서 다시 던지는 동시에 그에 대한 적절합 답을 모색해야 합니다.

이학준 교수 / 뉴브런스윅신학교 

* 이 글은 이학준 교수가 출간한 <한국교회, 패러다임을 바꿔야 산다>에 나온 내용 중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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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준 교수 2011-06-24 13:19:11
교수님 기독교의 긴박성을 말씀하신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진리는 변하지 않습니다. 첨단사회를 살아가면서 기독교의 변화를 말씀하셨습니다. 언제까지 주초금지와 주일 성수만 부르 짓을 것이냐고... 그런데 이것 중요한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느교회 교인이 당신 목사님들을 세례를 베푼 주일 밤 세례자까지 초대하여 만찬을 교인 음식점에서 가졌습니다. 그런데 교인은 소주. 양주, 맥주를 돌렸습니다. 통합측 교회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