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체 신분 기자, 드림법안 통과 발 벗고 나섰다
불체 신분 기자, 드림법안 통과 발 벗고 나섰다
  • 박윤숙·김명곤
  • 승인 2011.07.29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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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포스트] 안토니오 바가스, '디파인 아메리칸' 캠페인 시작

최근 미국의 유명 신문사에서 능력 있는 기자로 활동하다가 자신이 서류미비 이민자라는 사실을 공표해 논란을 일으킨 호세 안토니오 바가스(30)가 불법체류자 구제 캠페인에 나섰다. 바가스는 자신의 현재 신분과 불법 노동에 대한 법적 해결이 불투명함에도 불구하고 '디파인 아메리칸'(Define American)이라 불리는 캠페인을 전격적으로 시작한 것이다.

이 캠페인은 부모에 의해 미국으로 건너와 불체자 신분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젊은이들의 삶을 조명해 이민법 개혁을 위한 로비활동과 불법이민자에 대한 선입견에 맞서기 위한 것이다.

'디파인 아메리칸'이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현안은 '드림법안(DREAM Act)' 통과이다. 드림법안은 16세 이전에 미국에 정착, 고교 졸업 후 대학에 입학하거나 군에 입대하는 등 일정 요건을 갖추면 불법체류자에게도 영주권 신청 자격을 부여하자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바가스는 '불법체류자로서의 내 인생'이란 제목으로 4천 단어의 장문의 글을 <뉴욕타임스> 웹사이트에 올린 것으로 그동안의 신분을 속이는 삶을 접고 '커밍아웃(떳떳치 못한 신분을 밝히는 행위)'을 선택했다. 그는 자신의 글에서 "나는 미국인이다. 단지 적법한 서류가 없을 뿐이다"라고 주장했으며, 그의 장문은 수 시간 만에 해당 사이트의 '가장 많이 본 기사' 1위를 차지했다.

   
 
  ▲ 불체신분으로 오랫동안 기자 생활을 해온 안토니오 바가스가< ABC 뉴스 >와의 인터뷰를 하고 있는 장면.  
 
바가스는 12살 때 엄마에 의해 필리핀에서 캘리포니아 주 할아버지 집으로 보내졌다. 할아버지는 바가스에게 영주권 카드를 마련해 주었고 바가스는 그 카드가 가짜라는 사실을 16살 때 운전면허증을 신청하면서 알게 됐다. 당시 그의 카드를 받아든 사무식 직원은 "이건 가짜야. 이곳에 다시 오면 안 돼" 라고 말했으며, 바가스는 당시 극도의 배신감과 함께 창피함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바가스는 할아버지로부터 영주권과 기타 가짜 서류를 돈을 주고 샀다는 고백을 듣고 바로 떠오르는 생각이 "그래, 악센트를 없애는 수밖에 없지"였다고 <ABC>와의 인터뷰에서 고백했다. 바가스는 자신이 철저히 미국인으로 살면서 열심히 일하고 자기 분야에서 성취를 이루면 시민권을 얻게 될 것으로 여기며 그렇게 살았다.

이로 인해 동성애자 할아버지 밑에서 며칠씩 방을 비워야 했던 환경 속에서도 바가스는 대학 입학의 열망을 포기하지 않고 학교 교장과 지역 교육감과의 상담 끝에 도움을 받아 장학금을 받고 샌프란시스코 주립대에 입학했다.

또 대학 졸업 후 여러 신문사의 인턴십 일자리에 서류 미비로 취직이 어려웠으나 이에 굴하지 않고 계속 일자리 신청을 한 결과 <워싱턴포스트>로 부터 채용 허가가 떨어졌다. 그러나 신문사가 운전면허증을 요구하자 바가스는 면허 발급절차가 까다롭지 않은 오리건 주에서 취득한 불법 운전면허증으로 신분을 속이며 그의 첫 풀타임직을 얻게 됐다. 그리고 그는 2007년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 사건보도로 영예의 퓰리처상을 받았다.

바가스는 자신의 신분이 신문사 측에 알려질까 노심초사 하며 주로 백악관을 비롯한 워싱턴 소식만을 다뤘고 특히 이민 정책 관련 기사는 피했지만 한번은 힐러리 클린턴의 불체자 운전면허증 관련 입장을 다룰 수밖에 없었다.

이후 정신적 압박을 견딜 수 없었던 바가스는 신문사내 자신의 멘토에게 사실을 털어놓았고 바가스가 신문사를 떠날 때까지 그의 신분 비밀은 지켜졌다.

바가스는 오리건 주 운전면허증이 마감된 후 워싱턴 주 면허증을 취득, 다시 5년 동안 일자리를 이어갈 수도 있었으나 이는 또다시 자신의 신분을 속이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뜻했다.

바가스는 결국 자신이 일하던 <워싱턴포스트>에 글을 올리려 했지만 신문사측이 반응을 보이지 않자, <뉴욕타임스>를 택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바가스가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드림 법안은 2001년 첫 상정 후 지난해 의회에서 다섯 번째로 부결된 뒤 지난 5월 민주당의 주도로 다시 상정됐지만, 공화당이 우위를 점하는 하원에서 쉽게 통과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박윤숙·김명곤 / <코리아위클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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