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과학', 꼭 싸워야 하나 화해할 방법은 없나
'신앙과 과학', 꼭 싸워야 하나 화해할 방법은 없나
  • 박지호
  • 승인 2009.05.10 13: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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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LA 아카데미 공개강좌 2] '과학과 신앙'에 대한 다양한 관점 제시

"과학과 신앙, '적'일까, '동지'일까, '남남'일까." '신앙과 과학'이라는 주제로 오랫동안 고민해온 우종학 박사(UCLA 연구원)는 한국 복음주의권에서 몇 안 되는 과학계 오피니언 리더 중 한 명이다. 그는 5월 6일 LA 풀러신학교에서 열린 공개강좌에서, 하나님의 창조는 명백한 '진리'이지만, 창조의 그림은 '다양'할 수 있다고 말하며, 신앙과 과학을 이해하는 다양한 관점을 소개했다. 

'풀러신학교 한인학생회'와 'LA 기독교연구실천아카데미'가 마련한 이번 공개강좌에는 풀러신학교 학생을 비롯해 30여 명이 참석했다. 2시간이 넘게 진행된 열띤 강의에 참석자들은 시종 집중했고, 강의가 끝난 뒤에도 남아서 질문을 던지며 관심을 보였다.

창조과학자들이 기독교를, 무신론 과학자들이 과학을 대변하도록 만들어 신앙과 과학을 배타적인 관계로 몰아가는 흐름을 문제의 출발점으로 지목한 우 박사는 무신론자들과 창조과학자들이 세워놓은 게임의 법칙에 휘말려 들지 말라고 강조했다.

우 박사는 '창조와 진화'로 대변되는 극단적인 논쟁은 '신앙을 폐기 처분한 지성인'과 '지성을 폐기 처분한 신앙인'을 낳게 만들 뿐이라고 비판하며, 신앙과 과학을 대립적인 관계가 아닌 상호 보완적인 관계로 설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창조과학만이 기독교의 유일한 입장인 것처럼 호도되는 현실을 지적하고, 유형론의 틀을 이용해 신앙과 과학을 보는 다양한 관점을 제시했다.

▲ LA 기독교연구실천아카데미 운영위원인 우종학 박사는 예일대학교에서 천체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산타바바라 소재 캘리포니아대학교(UCSB)에서 연구원으로, 현재는 나사(NASA)에서 수여하는 '허블 펠로우십'을 받고, UCLA에서 연구 활동을 하고 있으며, 올해 9월에는 서울대학교 천문학과 교수로 부임할 예정이다.
우 박사는 청중의 대부분이 신학생인 점을 감안해, '창조와 진화' 논쟁의 상당 부분은 성서 해석의 문제에서 비롯됐다고 말하며, 올바른 성경 해석과 올바른 창조의 그림을 제시하도록 신학생과 목회자들의 관심을 촉구했다. 다음은 우 박사의 강의 내용을 요약·정리한 것이다.

신앙과 과학의 관계가 신앙생활의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니까 적당히 덮어두어야 하는가. 신앙과 과학, 창조와 진화에 얽힌 해묵은 논쟁은 여전히 수많은 지성인들이 신앙의 문턱을 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지구의 나이를 만년으로 주장하는 창조과학은 과학자나 지성인들에게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는 천동설이나, 지구는 평평하다고 주장하는 것과 동급으로 취급된다. 때문에 기독교와 복음도 창조과학의 수준쯤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신앙과 과학을 양극화시키면 복음을 변증할 기회마저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신앙과 과학에 얽힌 해묵은 오해부터 풀자

신앙과 과학의 올바른 관계 설정을 위해 '신앙과 과학'에 얽힌 뿌리 깊은 오해부터 해결해야 한다. 둘 사이에 크게 세 가지의 오해가 있다.

첫째는 과학자는 곧 무신론자라는 등식이다. 하나님을 배제하고 과학을 한다고 여기거나, 하나님이 과학에 들어갈 자리가 없다고 여긴다. 과학자 중에는 무신론자가 있지만, 과학자라고 해서 무신론자는 아니다. 과학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고 여기는 과학자는 별로 없다. 과학은 경험할 수 있는 것을 다룰 뿐이지, 신의 존재와 같은 형이상학적인 부분은 다룰 수 없다는 것을 과학자들 스스로도 알고 있다.

둘째는 창조과학이 기독교의 유일한 견해라는 오해다. 창조과학이란 약 만 년 전에 우주 만물이 신에 의해서 창조되었다고 믿고, 성경을 토대로 과학을 세우겠다는 입장이다. 창조과학이 기독교를 대표하는 유일한 목소리로 비춰지는 것은 대중 매체에서 과학과 신앙의 문제에 접근할 때 극단적인 시각들만 부각해왔기 때문이다.

이런 오해는 창조과학자들로 하여금 기독교를 대변하도록 하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무신론자들이 과학을 대변하게 해서 종교와 과학의 싸움처럼 그려지고 말았다. 이런 대립 구도의 피해자는 다름 아닌 '신앙을 폐기 처분한 지성인'과 '지성을 폐기 처분한 신앙인'이다.

▲ 우 박사는 갤럽 조사 결과를 제시하며, 미국인 중에 절반 가까운 숫자가 약 만 년 전에 지금의 우주가 창조되었다고 믿는다는 것은 일반 과학자들에겐 무척 충격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진화론이 곧 무신론인가

셋째는 진화론과 무신론을 동일하게 여기는 경우다. 진화주의(evolutionism)와 진화론(evolutionary theory)을 구별해야 한다. 진화론이라고 말하면, 무신론까지 포함하는 진화주의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진화 이론을 가지고 무신론과 연결하면 진화주의가 되는 것이지만, 생명체가 어떻게 변해 가는지 탐구하는 진화 이론은 무신론과는 엄연히 구별된다.

이런 혼란을 피하기 위해서는 세계관적 논의와 과학적 논의를 다른 차원에서 해석해야 한다. 유신론이냐 무신론이냐를 따지는 것은 세계관적 논의이고, 진화 이론이나 빅뱅 우주론을 말하는 것은 과학 이론에 속한다. 어떤 과학 이론이든 유신론이나 무신론의 세계관 아래 포함될 수 있는 것이다. 세계관과 과학 이론을 대립시키는 전제 자체가 문제다.

본론으로 들어가 과학과 신앙의 관계에 대한 다양한 견해를 살펴보자. 크게 3가지 관점으로 정리할 수 있는데, 각각의 견해를 비판하면서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신앙과 과학에 대한 세 가지 견해

첫째가 '갈등론'이다. 신앙과 과학이 상호 배타적이라는 입장이다. 신앙과 과학이 양립할 수 없기 때문에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인데, 무신론 과학자들과 창조과학자들이 이 그룹에 속한다. 무신론 과학자들은 인간이 자연 진화 과정에 의해 목적과 방향성 없이 만들어졌다고 여기고, 창조과학자들은 인간은 신이 창조한 것이기에 진화론은 틀렸다고 주장한다. 이 두 집단은 창조의 과정을 기적적인 방식에 제한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둘째는 독립론이다. 신앙은 초자연적인 세계를, 과학은 자연 세계를 다루기 때문에 서로 독립적일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많은 크리스천 과학자들과 불가지론자들이 이 입장이다. 예를 들어 주전자에서 물이 끓는 현상을 보고, 열이 가해져 섭씨 100도가 넘었기 때문에 물이 끓고 있다고 말하며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차를 마시고 싶어 물을 끓이고 있다고 말하면 현상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다. 과학은 어떻게(how)라는 문제를 다루고, 신앙은(why)라는 문제를 다룬다고 할 수 있다. 결국 과학의 결론은 신앙적(신학적) 결론과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마지막으로 상보론이다. 신앙과 과학은 전체 우주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동반자 관계이기 때문에 신앙과 과학을 연결해서 봐야 한다는 통합적인 입장이다. 하워드 반 틸과 같이 진화론을 받아들이는 크리스천 진화론자가 대표적인 경우다. 신앙과 과학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점에서 독립론과는 구별된다. 이들의 주장은 신앙과 과학은 서로 다른 차원의 영역을 다루고 설명하지만, 그 둘을 비교하면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신앙은 과학자들의 동기나 연구 태도에도 영향을 준다. 남들이 자기 연구 결과를 확대하거나 논문을 조작할 때, 정직하고 성실하게 연구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 진화 이론을 받아들이는 독실한 크리스천 생물학자들도 적지 않다. 왼쪽부터 Francis Collins, Kenneth Miller, Darrel Falk의 저서들.
창조과학 어떻게 봐야 하나

창조과학자들이 주로 취하는 방식은 과학이 틀렸음을 과학으로 증명하려 하고, 신이 우주 만물을 창조했다는 창조의 증거를 과학적 증거를 통해 뒷받침하려고 시도한다. 창조과학자들은 무신론 과학자들이 내세우는 게임의 법칙을 인정해주는 것 같아서 아쉽다. 창조과학자들은 마치 과학이 발전할수록 하나님의 영역이 왜소해질까봐 두려워하는 것 같다.

성경을 텍스트로 해서 과학을 연구하려고 하고, 신앙을 과학적으로 입증하려고 하는 창조론자들은 스스로를 갈등론자가 아니라, 상보론자라고 주장하지만, 현대 과학이 말해주는 결과를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면 사실상 갈등론에 가깝다.

과학계에서 창조과학은 과학이라고 할 수 없는 유사 과학으로 분류된다. 과학계에서 인정할 수 있는 새로운 과학 방법론을 창조과학자들이 제시한 것도 아닌데다가, 창조과학의 대부인 헨리 모리스는 성경을 과학 교과서로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특히 진화 이론이나 빅뱅 우주론에 관한 창조과학자들의 전문성은 상당히 떨어지는 편이다. 때문에 창조과학의 주장이 오히려 무신론 진화론자들의 입지를 더 견고히 해주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 얼마 전 우종학 박사는 <무신론 기자,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다>(IVP)라는 책도 출판했다. 이 책은 무신론 기자와 크리스천 과학자의 가상 대담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어, 과학과 신앙에 얽힌 무거운 주제를 읽기 쉽고 재밌게 풀어냈다. 이 책에는 신앙과 과학의 관계 외에도, 창조과학과 지적설계운동을 어떻게 볼 것인지, 과학을 숭배하는 무신론자들의 문제점은 무엇인지, 진화 이론에 대한 잘못된 반증들은 무엇인지 자세히 다루고 있다.
성경 해석이 근본적 이슈

창조론자들이 진화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진화 이론 자체가 틀렸다고 여기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진화 이론이 우주가 6일 동안 창조되었다는 성경의 창조 기사에 위배된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그럼 과연 진화론이 성경에 위배되는가. 여기서 핵심이 되는 것은 창조 기사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문제다. 복음주의권에서 창조 기사를 해석하는 방식은 크게 3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하루를 24시간으로 해석하는 문자적인 해석 방법이다. 이 해석에 따르면 천지창조가 6일 동안 일어난 것이다. 두 번째는 창조 기사가 연대별이 아니라 주제별로 쓰였다는 입장인데, 창조 기사는 창조의 골격을 보여준다고 해석하는 골격 이론이 불린다. 셋째는 창조 기사는 '어떻게'가 아니라, 누가 창조했는지 보여주기 위해 쓰였다는 것이 비유적 해석 방법이다.

중요한 것은 미국 신학계 내에서도 첫 번째에 해당하는 문자적인 해석을 지지하는 신학자는 드물다는 점이다. 창세기의 문자적 해석을 거부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도 포기해야 한다고 믿는 창조과학자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창조과학회는 성서 신학자들의 도움을 받아서 창세기를 새롭게 해석하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창조 진화 논쟁', 과학 아닌 신학의 문제

지금까지 신앙과 과학의 다양한 관계를 살펴봤다. 이중에서 어떤 견해를 선택하든, 중요한 것은 자신과 다른 입장을 기독교적 견해가 아니라고 폄훼하는 태도를 지양해야 한다는 점이다. 비록 과학에 대한 견해는 다르더라도, 하나님의 창조에 대해선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과학과 신앙의 관계에 대한 다양한 관점이 존재하지만, 창조는 불변의 진리이고, 창조 그림은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특히 목회자의 경우 과학 이론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과학을 함부로 폄하하는 오류를 범해선 안 된다. 진화 이론을 한 번도 공부한 적 없이 진화 이론은 과학적으로 틀렸다고 단정하면, 우연히 교회를 찾은 생물학도가 제대로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겠나. 복음을 변증하려고 해도 과학을 몰라서 문제가 되는 경우도 많다. 과학을 충분히 이해해야, 과학에 기대어 기독교와 복음을 폄하하는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다.

한국에 반기독교 정서가 만연한 데는 과학에 대한 몰이해도 한몫을 한다고 본다. 창조과학은 과학자들에겐 전혀 이슈가 못하기 때문에 창조와 진화의 논쟁은 더 이상 과학의 문제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창조와 진화 논쟁은 신학의 문제다. 미국의 수많은 신학자들이 창조과학의 문제를 'bad theology'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한다. 신학자들이 올바로 성경을 해석해야 하고, 올바른 창조의 그림을 제시해야 이유가 여기에 있다.

▲ '풀러신학교 한인학생회'와 'LA 기독교연구실천아카데미'가 마련한 이번 공개강좌에는 풀러신학교 학생을 비롯해 30여 명이 참석했다. 2시간이 넘게 진행된 열띤 강의에 참석자들은 시종 집중했고, 강의가 끝난 뒤에도 남아서 질문을 던지며 관심을 보였다.

LA 기독교연구실천아카데미는?

'오늘의 기독교를 연구하고 교회의 내일을 위해 실천한다.' LA 기독교연구실천아카데미는 오늘날 기독교의 현실을 고민하고, 더 나은 교회의 미래를 열기 위해 연구하고 실천하는 모임입니다. 

'기독교연구실천아카데미'는 역사와 사회에 대한 총체적 접근, 교회와 신앙을 이해하는 다양한 관점, 그리고 현실을 넘어서는 대안적 방식을 통해 예수의 길을 찾아가며, 이것을 위해 함께 연대하며, 연구하고 실천하는 모임입니다. 

LA 교계에 있던 작은 공부 모임들이  <미주뉴스앤조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네트워크가 형성됐고, 각자 갖고 있는 콘텐츠와 진행하고 있던 공부 모임을 공유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양한 공부 기회를 만들어주자는 공감대가 형성됐습니다.  

작년 11월부터 운영위원들을 중심으로 함께 모이기 시작했고, 현재까지 9차례에 걸쳐 준비 모임과 2회의 공개강좌가 열렸습니다. 6월, 7월, 8월에도 매달 한 차례씩 공개강좌 및 기타 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며, 9월 이후에는 정기 연구 모임이 시작될 계획입니다.

문의 :  연구실천아카데미 ( cafrap@gmail.com), 박상진 간사(213-507-6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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