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이웃을 섬기는 나눔의 터, '복음적 중립지대'
① 이웃을 섬기는 나눔의 터, '복음적 중립지대'
  • 이응도
  • 승인 2013.06.10 18:0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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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필라초대교회 이응도 목사…'삶 속에서 복음 드러내는 공간'

저희 교회 성도 가운데 필라델피아 지역 한인회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분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일로 바빠서인지 교회 일에는 그리 열심이지 않습니다. 가끔 사업체에 심방을 할 때면 저는 그분에게서 필라델피아와 주변의 한인 단체들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됩니다.

몇 년 전에 그 분이 제게 아주 인상적인 이야기를 하나 해주셨습니다. 그날도 한동안 교회 출석을 하지 못한 그 분의 가게에 들렀습니다. 마침 그때 한인회에 좋지 못한 일이 있었고, 그 성도는 화가 많이 나 있었습니다. 워낙 말씀을 거칠게 하는 분이어서 대놓고 여러 사람들의 잘못을 설명했습니다. 그 중에 제가 알고 있는 몇 분의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한참 동안 이런저런 말로 목사님들의 실수와 잘못들을 비판하다보니 좀 미안했던 것 같습니다. 급하게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뭐… 그래도 그분들은 필라델피아 사람들이니까…”라는 말을 했습니다. 갑자기 ‘필라델피아 사람’이기 때문에 대충 용서가 된다는 식으로 말씀을 하시는 것이 제게는 이상하게 들렸습니다. 그래서 다시 물었습니다. 도대체 '필라델피아 사람이니까…'라는 말의 의미가 뭐냐고 말입니다. 그 분은 꽤 흥미로운 말을 했습니다.

자신이 오랜 이민 생활의 경험으로 볼 때 필라델피아와 주변 지역에서 목회를 하시는 목사들은 딱 두 가지로 갈라지더라는 것입니다. 첫 번째 부류는 한국으로 가고 싶어 하는 목사들입니다. 그런 목사들은 이 지역에서 이민 목회를 해도 늘 마음은 한국에 가 있다고 했습니다. 한국에 있는 큰 교회로 가기 위한 발판으로 이 지역의 이민 교회를 섬긴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부류는 필라델피아 사람으로 살아가는 목사들이라고 했습니다. 한국으로 가고 싶어도 불러주지 않아서 못가기도 하고, 정말 이민 목회에 사명을 가지고 삶을 바쳐서 교회를 섬기는 목사도 있습니다. 다만 그런 목사들은 분명히 이 지역에 깊이 삶의 뿌리를 내리고 있고, 따라서 필라델피아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한인회와 관련해서 실수를 했던 그 목사님은 이 지역에 30년 이상 살아온 분이고 필라델피아 한인회를 조직할 때부터 오랫동안 관여해 왔다고 했습니다. 많은 잘못이 있고 원망도 듣는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분은 이곳을 떠나지도, 떠날 수도 없는 사람이라 했습니다. 물론 목회도 어려운 상황이고 사람들의 인심도 많이 잃었지만 한인회에서 일하고 있는 자신은 큰 교회, 잘난 목사님들보다는 필라델피아에 뼈를 묻을 바로 그런 목사님들과 계속 일할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이야기의 끝에 제가 농담을 던졌습니다. “그러면 저는 어떤가요? 필라델피아 사람인가요? 아니면 한국으로 갈 사람인가요?” 그분, 저희 교회 교인으로 등록한 그 성도가 담임목사인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목사님은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아직 필라 사람 아니에요. 필라 사람이 되려면 필라를 떠날 수 없는 분명한 이유가 필요해요. 그런데 목사님, 솔직하게 말씀해보세요. 여기서 목회 성공하시면 한국으로 가실 거 아닌가요?”

삶 속에서 복음 드러내는 공간, '복음적 중립지대'

물론 그 분의 생각이 옳은 것도 아니요, 전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내용도 아닙니다.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이민 교회와 목회자가 생각해야 할 중요한 것 한 가지를 말하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것은 교회와 목회자의 지역성, 즉 복음의 현장성에 관한 것입니다.

현대 문화를 설명하는 키워드 중 하나는 ‘다양성’ 혹은 ‘다원화’입니다. 이러한 문화적 조류는 교회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특히 관계 중심의 다양한 형태의 교회가 실험되고 있습니다. 가정 교회, 셀교회 등이 대안으로 나오는가 하면 온라인에서 형성된 관계를 중심으로 교회를 만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리고 우리 주님 오시는 날까지 교회는 지역성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교회는 그 교회가 존재하는 지역과 깊은 관계 속에 있어야 하고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교회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고 지역의 문제가 교회의 문제가 되며 지역의 아픔이 교회의 아픔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천국을 말하고 신앙을 말하고 구원을 말하지만 지역을 말하지 않습니다. 지역의 문제와 상황에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교회의 부흥과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 지역적인 문제에 관여하지 않으려 합니다. 지역에 있는 사람들이 성도로 모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역의 아픔과 고통, 상처와 눈물에 무관심한 것은 우리의 이웃에 대한 교회와 성도의 의무를 저버리는 것입니다. 목회자와 성도와 교회는 그 지역에 함께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좋은 이웃이 되어야 하고 그들을 섬겨야 하고 그들과 소통하며 삶을 나누어야 합니다. 교회가 건강한 지역성을 다양한 관계를 통해 획득하게 될 때 바로 그곳에 선교의 현장이 되고 복음이 뿌리는 내리는 터전이 되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그 성도의 가게에 들러서 다시 물었습니다. “어떻습니까? 아직도 제가 필라 사람이 덜 되었나요?” 그 분이 씨익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하하… 이제 절반 넘었습니다. 거의 다되어가는 것 같네요.” 필라 사람 되기가 참 쉽지 않습니다. 좋은 이웃되는 일도 참 쉽지가 않습니다.

저희 교회의 2013년 표어는 ‘예수 우리의 이웃, 교회 세상의 이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이웃이 되신 것처럼 그 사랑과 은혜로 우리도 세상의 이웃이 되어 섬기고 나누고 헌신하자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교회적인 목표를 구현하기 위해서 몇 년 전부터 가르치고 나누고 강조해온 개념이 있습니다. 바로 ‘복음적 중립지대’라는 말입니다.

복음적 중립지대는 대단한 신학적 개념은 아닙니다. 이미 많은 교회가 실천하고 있기도 합니다. 굳이 설명하자면, “복음을 말로 전하지 않는, 삶으로 실천하는 나눔터”라고 하겠습니다. 이 복음적 중립지대는 성령 하나님이 교회와 성도들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좋은 무대와 같습니다. 지역 사회와 시대의 필요를 바라보며 교회와 성도가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섬기고 헌신하며 나누는 현장이 됩니다.

이미 많은 교회가 실천하고 있다고 말씀드리는 것은, 예를 들어 이민 교회가 가장 많이 시도하고 있는 한국 학교는 복음적 중립지대에 속합니다. 노인 대학도 그렇습니다. Day Care Center나 After School도 그렇습니다. 교회가 아니면 할 수 없는 다양한 사역을 이민 교회는 오랫동안 잘 감당해왔습니다.

그러나 많은 한인 이민 교회가 이러한 사역에 동참했음에도 불구하고 좀 더 나은 선교적 개념으로 발전시키지 못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 사역들이 복음적 중립지대로 발전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기본적인 전제가 있어야하기 때문입니다. 첫째는 이러한 사역이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이 사역이 교회의 성장을 목표로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섬김 자체가 목적이어야 하고, 나눔 자체가 비전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내 안에 있는 은혜와 사랑을 지역 사회에 대한 섬김과 나눔을 통해서 감사하는 것 이상을 넘어서지 말아야 합니다.

물론 이러한 사역의 결과는 마치 강물에 씨를 뿌리는 것과 같아서 결국 하나님 나라와 보편적 교회의 부흥으로 이어지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교회의 성장과 이익에 초점을 맞출 때 그것은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고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유익을 위해 지역을 사용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이미 우리가 목회하는 이민 사회는 그동안 교회가 얼마나 교회의 성장과 부흥을 위해 지역을 사용해왔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교회가 성장할수록 교회 자체가 가지 프로그램과 인적 관리에 역량을 소비하게 되고, 지역의 필요와 아픔에 거리를 둔다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이익과 성장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하나님을 섬기듯 이웃을 섬기는 삶의 나눔터, 그것이 바로 복음적 중립지대입니다.
(다음에 이어집니다.)

이응도 목사 / 필라델피아 초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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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en 2013-07-04 08:08:39
Go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