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의 집과 고장난 냉장고
무지개의 집과 고장난 냉장고
  • 전현진
  • 승인 2013.09.26 23:0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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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와 후원으로 무지개 피워주세요

   
 
 

▲ 가정 폭력을 피해 무지개의 집 쉘터를 찾은 여성들은 요즘 고장난 냉장고로 골치다. 냉장고가 제 기능을 못해 되도록 상하지 않는 음식만 보관할 수 밖에 없다. 냉장고를 켜두면 고약한 소리가 나고 바닥으로 물이 계속 샌다. ⓒ미주뉴스앤조이 전현진

 
 
'덜덜덜.' 부엌이 시끄럽다. 집안이 울린다. '똑똑' 새는 물소리도 들린다. 물은 바닥에 고였다. 지하 작업실 천장에 검은 곰팡이 자국을 남겼다. 범인은 냉장고다. '식품을 저온에서 보관하는 장치'가 저온은커녕 음식을 보관하기도 불안하다. 냉장고는 맨 아래칸에만 냉기를 머금었다. 이 냉장고는 이제 조명이 나오는 '찬장' 정도로 쓰인다.

무지개의 집(이사장 방은숙·사무총장 김은경)으로 몸을 피한 여성들. 남편의 폭력이나 극심한 생활고로 무지개의집 '쉘터'(shelter)를 찾은 이들은 요즘 이 냉장고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 쉘터의 터줏대감 노릇을 한 냉장고가 올해 들어 제 명을 다했기 때문이다.

올해로 창립 20주년을 맞은 무지개의 집. 국제결혼으로 미국을 찾은 한인 여성들을 돕기 위해 시작했다. 뉴욕의 한 한인교회의 지원 덕분이다. 무지개의 집은 급히 몸을 피해야 하는 여성들과 어머니를 따라 나온 아이들을 위해 쉘터를 운영했다. 그렇게 황망히 몸을 피한 수많은 여인들은 이 냉장고에서 김치도 꺼내먹고, 아이를 위해 계란을 꺼냈다.

이 냉장고가 무지개의 집과 보낸 시간은 10년이 훨씬 넘는다. 쉘터가 지금의 위치에 터를 잡기 전부터다. 그동안 이 냉장고를 거친 손길이 얼마나 될지 헤아리기 힘들다. 무지개의 집을 거쳐 간 여성들이 300명은 넘으니 말이다. 냉장고가 마주한 여인들의 모습도 다양했다. 얼굴 곳곳에 퍼렇게 든 멍 자국. 눈물에 부은 눈두덩이. 얼굴에 깊게 드리운 그늘. 잠시 찾은 안식에 내쉬는 한숨. 냉장고는 무지개의 집의 산 증인이다.
 
무지개의 집을 찾은 여성들은 쉘터에서 3~6개월을 지낼 수 있다. 쉘터는 한 주택을 임대해 사용해오다 좀 더 안전하고 편하게 피해 여성들이 쉴 수 있도록 무지개의 집이 구입했다. 매달 2500달러의 '모기지'(mortgage) 비용을 내야한다. 빠듯한 살림에 어깨는 무겁다. 현재 8명의 여성들과 유치원생과 초등학생 3명도 쉘터에 몸을 맡기고 있다. 쉘터를 찾는 이들은 먹고 자는 비용과 교통비 등을 지원 받는다.
   
 
 

▲ 8명의 여성들과 3명의 아이들이 여러 사정으로 무지개의 집 쉘터에 몸을 피했다. 쉘터 입구 신발장에는 여성용 운동화와 아이들 신발이 눈에 띈다. ⓒ미주뉴스앤조이 전현진

 
 
쉘터의 주소는 비밀이다. 가장 편안하고 안전해야할 가정에서 물리적/정신적 폭력을 겪은 여성들이 이곳을 찾는다. 그들에게 남편은 가해자다. 가정은 위험하다. 아이와 함께 몸을 피했지만, 언제 찾아와 또다시 해코지할지 모른다.

여성들이 겪어야 했던 갖은 공포와 불안. 그 기운이 쉘터 곳곳에 묻어난다. 그 울음소리가 벽을 넘고 담을 넘지 않도록 쉘터는 가만히 품어준다. 미국 문화와 법을 조금이라도 아는 남자들은 아내를 때리지 않는다. 대신 아내의 마음과 정신을 구타한다.

가정폭력 아래 살던 많은 여성들은 피해 사실을 숨긴다. 특히 한인들은 더하다. 주변의 반응이 두렵기 때문이다. 피해 여성들을 향해 '오죽하면 때렸겠냐. 맞을 짓 한 거 아니냐'며 핀잔을 주는 경우도 있다. 마음을 찢어 놓는 날카로운 눈빛도 두렵다. 많은 피해 여성들은 아무도 모르게 도움을 구한다. '타인의 고통'을 바라보는 '이웃'의 시선이 더 두렵다.
   
 
 

▲ 무지개의집은 가정 폭력을 예방하기 위해 시민들을 대상으로 홍보 활동에 나서기도 한다. (사진 출처 무지개의 집)

 
 
무지개의 집이 20년 동안 많은 여성들을 품어왔다. 정서적·언어적·육체적 폭력과 마주한 여성들을 보호하고, 가정폭력을 예방하기 위한 활동을 한다. 깨진 가정을 회복하고 다시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직업 훈련과 지원도 하고 있다. 한인뿐만 아니라 다양한 국적의 여성들도 품는다. 고등학생들을 위한 파티를 열어, 건강한 관계를 맺는 성인으로 자라도록 교육한다. 많은 청소년들이 방학 때면 무지개의 집을 찾아 위로의 손길을 더한다.
   
 
  ▲ 무지개의집 쉘터 지하에 있는 여성들을 위한 재봉틀 작업 및 교육장. 바로 윗층에 부엌이 있어 고장난 냉장고에서 떨어진 물이 작업장 천장으로 샜다. ⓒ미주뉴스앤조이 전현진  
 
한인 언론을 통해 자주 얼굴을 비친 무지개의 집이지만, 여전히 어렵다. 문제는 돈이다. 가정 폭력 피해 여성들을 보듬어 주려면 돈이 필요하다. 당장 먹을 쌀도 바닥이 보인다. 몸과 마음을 편히 누일 쉘터도 유지비가 든다. 고장난 냉장고, 이제 수리도 못한다. 새로 사야하지만 적어도 1200달러는 필요하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일부 후원자들이 후원금을 낮추거나, 없던 일로 하기도 한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당장 가벼워진 주머니와 희망 안고 찾아온 여성들이 눈에 밟힌다.

지난해 무지개의 집 창립 19주년에는 기념예배가 열렸다. 무지개의 집 출발을 기억하고, 예배로 기념일을 맞으려는 소망 덕분이었다. 하지만 교회의 참여도가 너무 낮았다. 무지개의 집을 기억하고 방문한 교회도 있지만, 많은 교회들은 외면했다. 약하고 가난한 여인들을 돕고자 교회의 지원으로 출발한 무지개의 집이지만, 교회의 외면에 부딪친 것이다.

교회에 후원과 기도를 요청하면 자주 냉담한 반응과 마주한다. '우리가 도움 받아야 되는 상황'이라며 성토하는 곳도, '교회 일도 아닌데 왜 교회에 도움을 요구하냐'는 반응도 있다. 무지개의 집이 하는 일이 '교회 일'이 아니라는 것이 이유다. 교인을 늘리고 교회를 홍보하는 일에 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몇몇 한인 교회의 도움만이 무지개의 집에 새겨진 말씀을 기억하게 할 뿐이다. 꾸준히 후원하는 교회들은 무지개의 집을 통해 지역과 이웃으로 말씀이 스미길 기도한다. 하지만 무지개의 집 전체를 놓고 보면 그 분량이 너무 작다.
   
 
  ▲ 무지개의 집은 가정폭력 피해 여성들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여성들의 자립을 위해 직업 훈련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미주뉴스앤조이 전현진  
 
한인 교회의 도움으로 시작한 '사역'이지만 현재 교회 후원은 전체의 10% 정도다. 약한 자를 돌보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성경의 말씀 때문에 시작한 사역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교회의 손길은 마주하기 힘들다. 무지개의 집을 겪은 많은 봉사자들은 교회의 모습에 보고 지치고 만다. 사랑과 위로를 나눠주는 일을 '사역'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교회의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외면 당하기 일쑤다.

가정과 사회에서 상처 받은 여인들 중 많은 수가 무지개의 집에서 예수를 만났다. 김은경 사무총장은 "무지개의 집이 하는 일도 선교"라고 힘주어 말한다. "기독교의 정신으로 예수의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다"며 고통 받는 여성, 오갈 곳 없는 여성을 돕는 일 역시 "제대로 된 전도이고 제대로 된 선교"라는 것이다.

김은경 사무총장은 10여 년 전 예배 반주를 위해 무지개의 집과 인연을 맺어 지금까지 왔다. 목회자의 자녀로 태어나 자란 김 사무총장은 무지개의 집을 섬기는 것을 '하나님의 일'로 여기며 상처 받은 여성들과 함께 아픔을 나눈다. 한인 교회의 기도와 위로의 손길을 구하는 이유도 무지개의집을 통해 이웃 사랑을 나누고자 함이다.
   
 
 

▲ 무지개의집은 1993년부터 뉴욕 여성들의 쉼터 역할을 해왔다. 사진은 지난 6월 열린 창립 20주년 행사에서 인사의 말을 전하는 김은경 사무총장. ⓒ미주뉴스앤조이 전현진

 
 
전현진 기자 / jin23@www.newsnjoy.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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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ng s shin 2013-10-04 06:14:11
무지개집 주소좀 알려주세요. 도와주고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