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를 바로 이해해야 신앙이 산다!
경제를 바로 이해해야 신앙이 산다!
  • 박득훈
  • 승인 2014.02.12 17: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칼럼] 박득훈 목사, '성서 경제 이야기'

   
 

▲ 박득훈 목사. (미주뉴스앤조이 자료사진)

 
 

이 글은 <성서 경제 이야기> 시리즈의 첫 글이기에 성서로 직접 들어가기 전에 꼭 필요한 서론적 이야기를 해 보고 싶습니다. 저는 그 동안 적지 않은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경제관에 접해 오면서 묘한 모순을 발견하곤 했습니다. 어떤 때는 경제문제를 아주 중요한 신앙적 관심사로 보는가하면 또 어떤 때는 신앙의 본질과는 무관한 하찮은 것으로 여기는 모순입니다. 전자는 다양한 버전의 번영신앙을 일컫습니다. 요약하면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경제적 풍요와 성공을 주시길 기뻐하시는 분임을 굳게 믿고 열정을 다해 적극적으로 자신의 번영을 추구하는 신앙입니다. 물론, 버전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습니다만, 물질적 축복을 받아 그 일부를 이웃에게 베풀자는 사족을 붙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후자는 우리가 속해 있는 사회의 경제문제에 대한 신앙적 무관심을 뜻합니다. 예컨대 한미FTA, 양산되는 비정규직노동자, 경제민주화, 보편복지, 경제적 불평등 같은 굵직한 경제적 사안들은 신앙의 본질과 무관하다는 입장입니다. 그건 세속사회의 이념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시민들과 정치인들이 알아서 처리할 문제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과 교회가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할 과제는 전도와 선교입니다. 경제문제는 이런 식으로 신앙적 관심사에서 간단하게 제외됩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이 두 가지 사이에서 모순을 별로 느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 이유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성경이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지지한다고 믿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그리스도인들이 항상 염두에 두어야할 바는 믿음이 생긴 이후에도 여전히 불완전하기 때문에 자기 유익을 위해 성경을 뒤틀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성경이 후자의 관점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점을 말씀드리기 위해 미국의 대표적인 복음주의 사회운동가인 짐 월리스와 관련된 유명한 일화를 다시 한 번 언급하고 싶습니다. 그는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교 1학년 시절 친구들과 신구약을 정독하였습니다. 그 목적은 부와 가난, 불의와 억압 등의 경제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백성의 책임을 언급하는 모든 구절들을 찾아내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들은 놀라운 결과에 직면해야 했습니다. 그런 구절들이 수천 개에 이를 뿐 아니라 구약에선 그 구절들의 주제가 우상숭배 다음으로 중요하고 경제적 불의와 우상숭배는 서로 관련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신약 전체로 보면 1/16, 공관복음에선 1/10, 특히 누가복음에선 1/7이 가난한 사람들과 돈(혹은 맘몬)에 관한 말씀이었습니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자신들이 자란 교회에서 그와 관련된 설교를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월리스는 그 구절들을 가위로 오려낸 헌 성경책을 들고 다니며 미국 그리스도인이 읽는 “구멍 난 성경”이라고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월드비전과 성서공회를 통해 <가난과 정의 성경>이라는 부제가 달린 성경을 출판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성경의 특징은 억압과 가난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위한 사회정의에 대한 하나님의 열정을 보여주는 구절들에 오렌지색을 엷게 입혔다는 점이다. 그 구절들이 무려 3,000개에 이릅니다.

이는 예수님께 나아와 영생의 길을 물은 한 부자 청년 지도자를 생각나게 만듭니다(눅 18:18~30). 그는 예수님을 선하신 선생님이라고 부를 정도로 경건한 언어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십계명 중 순서를 바꿔서 7, 6, 8, 9, 5 계명을 언급하자 그 모든 것을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자신 있게 말할 정도로 실천적인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예수님이 제시한 영생의 길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떠나고 맙니다. 자신의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줌으로써 하늘의 보화를 차지한 다음 자신을 따르라는 예수님의 요청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에게 가혹한 요구를 하신 이유는 그에 대한 깊고 진실한 사랑 때문이었습니다(막 10:21). 그는 자신의 경건성과 실천들, 심지어는 구제활동 때문에 숨겨져 온 부에 대한 탐욕을 발견해야만 하나님의 은혜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왜 적지 않은 이들이 성경을 열심히 읽으면서도 이렇게 사회정의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과 예수님이 제시하는 영생의 길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는 것일까요? 경제문제에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경제적 부에 대한 탐욕과 집착에 예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성경의 진의를 뒤틀게 만듭니다. 성경의 진의를 뒤트는 방식을 고든 피는 <탐욕의 복음을 버려라>에 실린 자신의 글에서 명료하게 보여줍니다.

저자는 “이들의 성경 사용방식은… 첫째 핵심구절에 대한 빈약하거나 잘못된 해석, 둘째 성경구절의 선택적 사용, 셋째 성경의 전체적 관점을 이해하는 데 실패하는 것, 특히 신약성경 저자들의 기본적인 신학적 틀을 이해하는 데 실패하는 것” 등 세 가지 점에서 잘못되었다고 지적합니다.

저는 앞으로 연재하게 될 글에서 이 점을 명심하고 경제문제와 관련된 성경을 풀어보고자 합니다. 물론 저 역시 완전할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그러기에 더욱 겸허한 마음으로 진리를 향해 나아가려고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그 길을 꼭 지켜주시길 기도합니다.

박득훈 목사 / 새맘교회, 교회개혁실천연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