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으로 되돌아간 샤론네 가족
고향으로 되돌아간 샤론네 가족
  • 강희정
  • 승인 2009.06.03 10: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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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미국 엿보기 25 - 아시아계 이민자들의 현주소

▲ 중국계 이민자인 샤론 가족을 위한 환송회 시간에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장면이다. (사진 제공 강희정)
지난주 금요일, 남편은 샤론이라는 내 친구와 그의 가족을 공항에 태워 주고 돌아왔다. 샤론은 중국계 미국인으로 이전에 우리가 다니던 미국인 교회에서 만났던 친구인데, 그 가족이 고향인 콜로라도 덴버로 다시 돌아가게 되어 남편이 공항까지 환송해주러 갔던 것이다.

샤론의 가족은 토목 기사였던 남편 존이 우리가 사는 오하이오 지역에 있는 한 건설 회사에 취직을 하게 되어 2년여 전에 이사를 왔다. 샤론은 착하고 말수가 적었고, 남편 존은 쿵푸를 좋아해 1년에 몇 차례는 쿵푸 대회에 참가하곤 했으며, 쿵푸 이야기만 나오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들 가족이 이곳으로 이사 올 때는 한 살짜리 아들 하나가 있었고, 그들은 침실 두 개가 있는 아파트를 구입했다. 자신들의 고향이었던 덴버를 떠나 왔지만 이곳에서 직장을 잡았던 터라 오랫동안 이곳에 머물 계획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곳에 정착하고 난  지 1년이 조금 지났을까 하는 작년 봄에 미국 경기 불황의 여파로 존은 일시 해고(lay off)를 당했다.

존이 해고를 당했을 당시 샤론은 새 아기를 뱃속에 가진 상태였다. 마음이 착했던 샤론은 자신의 아이를 가지기보다는 입양을 하고 싶어했는데 남편이 동의하지 않던 중에 자신들의 아기를 가지게 되었다. 존의 해고 소식을 듣게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작년 여름에 한국에 와서 3개월을 지내게 되었고 이후로는 우리 가족이 교회를 바꾸는 바람에 샤론을 더 이상 만나지 못했다.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어버린 존과 경제적인 불안정 속에서 새 아기를 뱃속에 품고 있는 샤론이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간간히 전화와 이메일로만 소식을 주고받을 뿐 샤론과 나는 서로 만나지 못했다. 그러다 한 달 전 우연히 만난 한 미국인 친구로부터 샤론의 가족이 1년 동안 새로운 직장을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찾지 못해 결국 그들의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일시 해고라는 것은 뚜렷하게 업무 성적이 나쁘거나 해고 사유가 없지만, 회사의 재정적인 형편상 감원할 수밖에 없을 때 직원들을 해고하는 제도다. 회사의 재정 상태가 좋아지면 일시 해고된 사원들은 다시 업무에 복귀할 수 있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처럼 불황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일시 해고 된 사람들이 복귀하게 될 가능성은 턱없이 가늘다. 특히 존의 경우처럼 토목이나 건축과 같은 업종에서는 더욱 말할 나위가 없다.

존이 해고되고 나서 일 년 넘게 새로운 직장을 구하려고 여러 방면으로 애를 썼지만 구하지 못하고 부모들이 하고 있는 레스토랑에서 서비스 일을 하기 위해 돌아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이것이 평범한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현주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존의 부모는 존이 세 살 때 타이완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고 한다. 존은 대학에서 토목 기사 자격증을 취득했다고 하니 아마도 학창 시절 '우수하고 재능 있는 학생'이었을 것이다. 아홉 살 때 미국에 건너 온 샤론도 덴버대학교(Denver University)에서 비즈니스를 전공했다고 한다. 그런데 존이 입사한 지 1년이 지나 '일시 해고 대상자'가 되었다는 사실에서 혹여 존이 중국계 미국인이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가져 본다.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우수하지만 불평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고정 관념이 미국 사회에 만연하다. 또한 아무리 우수하다 해도 각자가 맡은 일에만 충실히 해야 하는 전문직에 종사하게 할 뿐 중요한 의사 결정을 내리는 관리직에는 좀처럼 아시아계와 같은 소수 인종에게는 내어주지 않는 것이 미국 주류 사회의 관행이라고 한다.

그러니 위에서 끌어 줄 인맥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일시 해고를 해도 특별히 회사에 고소를 하거나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확률이 큰 존과 같은 사람이 일시 해고의 우선 대상이 되지나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중국계나 한국계 이민자 등의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실업률이 전체 미국인들의 실업률보다 훨씬 높은 비율을 가진다고 하니, 이런 생각이 터무니없는 추측만은 아닌 듯도 하다.

샤론과 존의 경우, 그나마 부모님들과 친지들이 살고 있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보지만, 샤론과 존의 부모들이 자식들은 자신들과는 다른 직업을 가지기를 바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존은 비즈니스를 하기보다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 여가에 쿵푸를 하면서 지내기를 원했다. 샤론은 주말 학교에서 교사를 해보더니 가르치는 일을 좋아하게 되어 언젠가는 대학에 편입하여 교직 과목을 수강해 교사가 되고 싶어 했다.

여가에 쿵푸를 즐기고자 했던 존과 교사가 되고 싶은 샤론의 꿈이 당분간은 이루어질 수 없을 듯하다. 작년 여름에 새로 태어난 여자 아이와 이제 세 돌이 되는 남자 아이를 돌봐야 할 것이고, 덴버에 돌아가서도 가족들의 레스토랑 사업을 도와 경제적인 안정을 얻기까지는 한동안 시간이 걸릴 것이기 때문이다.

샤론의 가족이 덴버로 떠나기 보름 전, 환송회 겸해서 샤론의 첫째 아이 생일 파티가 열려 우리 가족도 참석했다. 작년 여름 이후로 처음 다시 만나게 된 샤론은 우리가 올 것을 기대하지 못했는지 참으로 반가워했다. 직장을 잃어버린 상황에서 둘째 아이까지 태어났는데 아무것도 해주지 않아서 미안한 마음을 품고 있던 터라 생일을 맞은 아이와 새로 태어난 아이 모두를 위해 선물을 준비했다. 그들의 경제 상황을 염려한 나는 상품권으로 대신했다.

공항에 샤론 가족을 태워다 주고 돌아온 남편은 샤론이 처분하지 못한 음식을 차에 가득 싣고 왔다. 아마도 저소득 가족들에게 주어진 쿠폰을 가지고 마련했을 씨리얼이 대여섯 상자나 되었고 각종 양념들과 음식들이 있었다. 그 중에 그녀가 만든 쿠키 반죽이 비닐 팩 두 개에 가득 들어 있었다. 바로 오븐에 넣으면 되도록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오븐에 구울 시간과 온도를 적어 둔 쪽지까지 넣어 두었다. 샤론이 만들었던 쿠키가 맛있고 모양도 좋다고 했던 내 칭찬을 기억했던 모양이다.

공항에 가족을 데려다 준 남편에게 고마워하면서 샤론은 마지막으로, 우리 남편의 현재 직장 생활은 안정적인지를 질문했다고 한다. 같은 아시아계라서 더 정이 들었을지도 모를 우리 가족이 혹시나 자신들과 같은 경제적인 불안정 상태에 들어가지 않을까 하는 염려에서 그런 질문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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