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다른 선교사를 보기 원한다면
조금 다른 선교사를 보기 원한다면
  • 이승규
  • 승인 2009.06.15 22: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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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시대를 지킨 양심], 월요모임 선교사들의 민주화 투쟁기

▲ <시대를 지킨 양심>은 1970년대와 1980년대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싸운 파란눈의 선교사들 이야기를 담았다.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한국의 민주주의는 암흑이었다. 당시 정권은 언론을 통제했고, 비판의 목소리는 용납하지 않았다. 정권에 쓴소리를 하는 외국 언론도 발붙일 틈이 없었다. 많은 사람이 감옥에 가야 했고, 중앙정보부라는 곳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해야 했다. 하지만 온갖 모진 탄압을 해도 정의의 목소리는 새어 나오게 마련이다.

이 정의의 싸움 한복판에 한국과 별로 상관이 없는 파란눈의 선교사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들은 미국·캐나다·오스트리아·독일 출신 선교사들인데, 복음을 전하기 위해 한국 땅을 밟았다. 그런데 혹독한 정치 상황이 이들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 짐 스텐츨 목사는 당시 상황에 대해 '무언가를 해야만 했다'고 했다. 짐 스텐츨 목사를 비롯한 10여 명의 선교사들은 역사의 방관자로 남아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뜻을 같이 하는 선교사들은 일단 월요일에 모여 한국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소식을 공유하기로 했다. 월요모임이 시작한 계기다. 모이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평균 8명에서 10명이 모였고, 많이 모일 때는 20여 명이 모였다.

암흑기였던 이 시대에 대다수 선교사들은 침묵했다. 이들은 자신들은 '손님'이라고 생각했다. 손님 입장에서 입을 다물어 주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월요모임 선교사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선과 악이 분명한 상황에서 선교사들마저 입을 다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예의'를 벗어 던졌다. 정의를 위해 싸우는 사람 편에 섰다.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어떻게든 한국의 상황을 알려야했다. 이들은 외국인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한국의 소식을 외부로 알렸다. 지인들이나 소속 교단에 편지를 보냈다. 이들은 처음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이 고작 편지를 보내는 일밖에 없다는 사실에 자괴감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도 큰일이었다. 당시 한국인들은 아예 외부의 소식조차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워싱턴포스트>나 <뉴욕타임즈> 등의 신문도 한국 정부에 비판적인 기사가 있으면 그 부분은 까맣게 칠해서 들어와야 했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미국 부통령이 한국을 방문할 때는 부통령을 만났고, 미 대사도 만나기 위해 시도했다. 이들의 활약 덕분에 월요모임은 한국의 인권 소식을 알리는 국제적인 통로가 됐다.

이들의 민주화 투쟁은 당연히 순탄하지 않았다. 이들과 뜻을 같이 하지 않는 선교사들은 교단 선교부에 월요모임 활동을 중단해달라는 편지를 보냈다. 이런 경우 가장 많이 쓰이는 말이 '공산주의자'다. 짐 스텐츨 목사 역시 '빨갱이'란 소리를 들어야 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 그저 하나님의 양심과 공의대로 행동한 것뿐인데, 이들의 행동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념의 잣대를 들이댔다.

짐 시노트 신부는 민주화 투쟁을 하다 추방을 당했다. 당시 한국 정부는 비자 기간이 남아 있는 조지 오글 선교사를 비행기에 태워 강제로 미국으로 보낸 적이 있는데, 이 일로 미국 대사관이 강력하게 항의를 했다. 그래서 짐 시노트 신부를 강제 추방하지 않고, 비자를 갱신해주지 않는 방법으로 추방을 했던 것이다. 문혜림 선교사는 가택연금을 당해 오도가도 못 하는 신세가 되기도 했다.

월요모임 선교사들은 당시 한국의 경제 기적을 보도하던 일부 언론들의 기사가 틀렸다고 생각했다. 자신들이 알고 있는 노동자들은 언론이 보도하는 그것과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하루 12~18시간을 일했고, 일주일에 한 번도 쉬지 못하는 날도 많았다. 노동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정부와 회사 쪽의 압력을 받았고, 심지어는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었다.

월요모임 선교사들의 활약상을 그린 <시대를 지킨 양심>(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은 이들의 회고록이다. 짐 시노트 신부, 페이 문 선교사, 메리언 킴 선교사 등 15명의 선교사가 썼다. 이들은 현재 미국 뉴저지 등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다. 그동안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등에서 이들을 몇 번 초청, 발전한 한국의 민주주의 상황을 보여주곤 했다.

선교사들은 말한다. 민주주의는 성취됐다고 해서 그냥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고. 계속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이를 위해 투쟁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리고 오늘날 민주주의를 위해 자신의 목숨과 인생을 희생한 사람들을 결코 잊지 말라고 당부한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뒤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조금 다른 선교사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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